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08
808회. 사고는 아닐 거야
대청마루의 의자에 앉아 묵묵히 듣고 있던 남궁연이 입을 열었다.
“한 소저가 있던 움막에 불이 난 시각이 언제죠?”
갑작스러운 질문에 소삼종 총기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
통보로 끝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움막에 불이 붙은 시각이라니?
“그게,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유시 말(오후 7시)경으로 알고 있습니다.”
“화재의 원인은요?”
“촛불이 넘어져서 난 것으로 잠정 결론 내렸습니다.”
“유등(油燈)이 아니라 초라고요? 초가 맞나요?”
남궁연이 소삼종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밀납으로 만든 초는 귀한 물건이라 보통 사람들은 생김새로 잘 모른다. 당연히 청성산 외곽의 움막에서 사용할 물건도 아니었다.
“금의위에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물론 불이 나서 타 죽었다는 것도 금의위에서 해 준 말이겠죠?”
어딘지 날카로운 남궁연의 질문에 소삼종은 이번 일이 간단치 않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번 일은 천호소가 아니라 금의위에서 일어난 일이다.
“맞습니다. 한소양을 담당하고 있던 금의위 위사가 그렇게 보고했습니다.”
“금의위의 일이면 위지휘사가 한 소저의 사망 사건에 대한 조사를 따로 하지도 않았겠군요.”
“예. 하지만 화재가 난 것은 사실입니다.”
“물론 그랬겠지요. 알았어요. 당신은 그만 돌아가도 좋아요.”
소삼종은 재빨리 돌아섰다.
일위(一衛, 오천오백 명)의 군대가 포위를 한 형국인데 왜 이렇게 마음이 쫄리는지 모르겠다.
당장 남궁연만 해도 그렇다.
봐준다는 듯이 ‘그만 돌아가도 좋다’고 했다.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인데 그 소리를 들었을 때 기뻤다.
막 걸음을 떼어 놓으려는 그의 귓가로 연적하의 음성이 들려왔다.
“한 소저가 사고로 죽었기를 바라는 게 좋을 거야. 그게 아니라면 여럿이 피를 볼 테니까. 지시한 놈, 실행한 놈, 알고도 덮은 놈, 다 죽는다.”
“…….”
머리털이 곤두설 정도로 섬뜩한 살기가 느껴졌지만 소삼종은 뒤를 돌아보지 못했다.
말만 들었는데도 벌써 사지에서 힘이 쪽 빠지는데 어떻게 눈을 마주친단 말인가!
그는 이를 악물고 걸음을 떼어 놓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천호소 무관들이 한소양의 죽음과 무관하기를 빌었다.
천호소의 무관이 사라지자 연적하가 남궁연에게 시선을 돌렸다.
“누님 생각은 어때요? 한 소저의 죽음은 사고인가요? 아니면 누군가 죽인 건가요?”
“글쎄. 아직은 뭐라 단정하기 어렵지만 사고는 아닐 거야.”
“왜요?”
“한 소저가 잡힐 정도로 천호소 군사들이 촘촘하게 포위망을 짜고 있잖아. 더구나 유시 말이면 초저녁이라 잠잘 시간도 아니고. 그런데 움막이 다 타 버릴 정도로 불이 났다? 더구나 금의위가 특별히 관리하던 움막이? 금의위에서 우리를 너무 무르게 본 거지. 자기들의 권세에 익숙해져서 정상적인 판단을 못한 거야.”
“금의위에서 죽였다는 거예요?”
“하오문에서나 쓸 법한 방식을 금의위가 사용했다는 게 조금 놀랍네.”
“그들은 왜 한 소저를 금의위로 압송하지 않은 거죠?”
“너 때문일 거야.”
“나요?”
“처음에는 천호소(천백 명)가 왔고, 그다음은 일위(一衛)를 동원했지. 이후로는 더 많은 군대가 필요할 거야. 그 정도 군대를 움직이려면 확실한 명분이 필요해. 이를테면 네가 만고의 역적이라든지 하는.”
“음.”
“하지만 너는 유명교를 욕한 죄로 쫓기는 한 소저를 도와준 것뿐이잖아. 고관들이 모두 유명교를 지지하는 건 아닐 거야. 그들은 네가 협의(俠義)로 한 소저를 도왔다고 할 수도 있어. 천하에서 오직 한 소저만이 그걸 증명할 수 있지.”
“아!”
“처음에는 한 소저만 잡아가려고 했을 거야. 그랬는데 네가 끼면서 일이 커진 거지. 너를 잡으려면 대군을 동원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명분이 약하니까.”
“한 소저를 죽여 입을 봉했다?”
“사고가 아니라면 그랬을 거야. 물론 금의위 말도 들어 봐야겠지만…….”
“그놈들이네요.”
남궁연은 여지를 남겼지만 연적하는 금의위가 한 짓이라고 믿었다.
금의위가 아니라면 청성산에서 한소양을 죽일 만한 사람이 없어서다.
***
청성산.
위지휘사 막사.
소삼종 총기는 산을 내려가자마자 위지휘사의 막사로 달려갔다.
때마침 막사에 있던 류이근은 소삼종의 호흡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물었다.
“갔던 일은 잘되었느냐?”
“예,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아니 문제가 생길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냐?”
“남궁연이 한소양의 죽음을 사고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설마 금의위를 의심하더냐?”
“그런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연적하가 한소양의 죽음과 관계된 자들을 모두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모두 죽이겠다고? 금의위가 한 일이라면 금의위를 죽이겠다는 건가?”
“남궁연의 말을 듣고 한 말이니……. 분명히 그럴 겁니다.”
“금의위를 죽이면 만고의 역적이 되는데……. 아무리 연적하가 천방지축으로 날뛴다 해도 정말 그럴까?”
“그가 내뿜는 살기에 제대로 걷기조차 어려웠습니다. 죽이고도 남을 자입니다.”
잠시 침묵하던 류이근이 소삼종에게 말했다.
“수고했다. 별궁에서 나눈 대화는 당분간 비밀로 해라.”
“예.”
류이근은 소삼종을 내보낸 뒤 골똘히 생각했다.
‘남궁연이 금의위를 의심하고 있다는 건…….’
남궁연은 강호에서 ‘십전무후’로 불릴 만큼 지략이 뛰어난 사람이다.
어쩌면 금의위에서 한소양을 죽였을지도 모르겠다.
‘금의위가 위험하다.’
연적하는 일위의 군사로도 상대할 수 없을 정도의 고수.
금의위의 무위가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그를 상대할 수는 없다.
거기까지 생각한 류이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금의위에 귀띔을 해 줄 생각이다.
이 기회에 금의위와 안면을 트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막사를 벗어난 류이근은 금의위들이 머무르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
청성산.
금의위 막사.
정오 무렵.
금의위 천호 하시진과 위지휘사 류이근이 마주 앉았다.
류이근의 시선이 무심코 부목을 댄 하시진의 한쪽 다리로 향했다.
그는 지난번 공격 때 연적하에게 맞아 한쪽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그나마도 그는 운이 좋았다.
다른 금의위들은 양쪽 다리와 팔까지도 부러졌으니 말이다.
하시진이 조금 거북한 얼굴로 운을 뗐다.
“어쩐 일이십니까?”
“아, 한 가지 알려 줄 이야기가 있어서 왔소.”
“…….”
하시진이 말하라는 듯 류이근을 응시했다.
벼슬은 위지휘사인 류이근이 높지만 하시진은 조금도 주눅 들지 않았다.
금의위는 황제 직속의 기관이라 권력의 중심이 까닭이다.
“실은 오늘 아침, 화룡대의 총기 하나를 별궁에 올려보냈소. 한소양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는 명목이었소만, 실은 별궁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함이었소.”
하시진이 가볍게 눈을 찌푸렸다.
하고 많은 명목 중에 하필이면 한소양의 죽음을 들고 갈 게 뭔가 싶어서다.
이어지는 말에 하시진은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총기가 돌아와서 하는 말이 심상치 않아 하 천호를 찾아왔소이다.”
“그가 뭐라고 했습니까?”
“남궁연이 한소양의 죽음을 의심하는 것 같다고 하더이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오른 하시진이 날 선 목소리로 류이근을 힐난했다.
“가만히 있는 벌집을 건드리셨군요. 한소양의 이야기를 굳이 별궁에 전해야 했습니까.”
“어차피 알려질 일이라 선수를 치는 게 나을 거라 생각했소. 물론 목적은 정확한 거리 측정을 위해서였소만.”
사실 류이근은 골치 아픈 일을 정리한 것에 불과했다.
어차피 사고사라 생각한 그는 한소양의 문제를 거론함에 거리낌이 없었다.
하시진 역시 그의 입장을 알기에 더 이상 그 문제를 따지고 들지 않았다.
류이근은 하시진의 안색을 슬쩍 살핀 후 계속 말했다.
“그런데 연적하가 화룡대 총기에게 경고를 했다고 하더이다.”
“경고요?”
“한소양의 죽음에 관계된 사람을 모두 죽이겠다고.”
“…….”
가슴이 철렁한 하시진은 눈만 끔뻑거렸다.
북진무사와 도지휘사에게까지 상해를 입힌 놈이니 금의위를 죽이는 건 일도 아니리라.
류이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한소양의 죽음에 대해 내가 모르는 일이 있소?”
“…….”
하시진은 입술을 움찔했지만 금의위의 기밀인지라 끝내 말하지 않았다.
노회한 류이근은 어떤 상황인지 대충 짐작하고 얼른 화제를 돌렸다.
“내가 괜한 말을 했나 보오. 나는 금의위의 말을 전적으로 믿고 있소. 사흘 후에 사위(四衛)가 모이면 연 적하도 끝날 테니 너무 신경 쓰지 마시오.”
“실은…….”
하시진이 뭐라 말하려 했지만 류이근은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솔직히 나는 한소양의 일에 관심이 없소. 나와 위소(衛所) 무관들의 목표는 오직 적의 섬멸에 있소. 그러니 나에게까지 한소양의 일을 말해 주지는 않아도 되오.”
순간 하시진의 눈자위가 실룩거렸다.
말은 그럴싸하지만 연적하의 경고가 두려워 거리를 두려는 것으로 보였다.
“그럼 나는 이만 가 보리다.”
류이근이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하시진은 다리를 핑계로 일어서는 시늉만 했다.
위지휘사인 류이근의 신분을 생각하면 꽤나 불경스러운 모습이다.
그러나 류이근은 쳐다보지도 않고 막사를 떠났다.
“흥! 겁쟁이 같으니.”
하시진은 연적하의 협박에 꼬리를 말고 달아나는 류이근을 비웃었다.
하지만 이내 그의 어깨가 축 처졌다.
일위(一衛)의 군사로도 당해 내지 못한 고수가 죽이겠다고 공언했으니 그럴 수밖에.
***
사흘 후.
청성산에 사위(四衛)의 군대 이만 이천이 모였다.
동원된 화포만 백 문.
궁병은 무려 일천오백이나 됐다.
본래 일천이백이던 궁병의 수를 도지휘사가 급하게 더 늘려 그리된 것이다.
사위의 지휘 막사.
거대한 막사가 무관들로 발 딛을 틈도 없이 북적거렸다.
상석에 앉은 도지휘사 구시우가 네 명의 위지휘사, 그리고 스무 명의 정천호를 둘러보았다.
온 몸으로 투기를 뿜고 있는 무관들을 보니 마음이 든든했다.
아직도 얼굴이 퉁퉁 붓고 피멍으로 가득한 구시우가 손을 들어 올렸다.
옆 사람과 속닥이던 무관들이 입을 다물고 일제히 도지휘사를 주목했다.
“제장들, 오랜만이다. 건강한 모습을 보니 반갑군.”
“장군님도 전보다 훨씬…….”
위지휘사 중에 하나가 무심코 화답하다 말을 흐렸다.
본래는 ‘전보다 훨씬 보기 좋습니다’라고 하려 했는데, 지금의 구시우는 눈 뜨고 못 볼 정도였다.
퉁퉁 부은 얼굴과 아직 빠지지 않은 피멍으로 사람이 아니라 괴수 같았다.
한순간 분위기가 싸해졌다.
당황한 무관들이 구시우를 보았지만 너무 부어 표정을 알기 어려웠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무관들에게 구시우가 탁하고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전보다 훨씬 더러운 상황이다. 다들 상황은 들어서 알고 있겠지? 교활한 연적하는 무림고수라는 위치를 잘 활용해 금의위와 위소의 지휘관들만 쓰러뜨리고 있다. 북진무사는 아직도 자리에 누워 있다. 남의 일이라 생각하지 마라. 제장들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