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17
817회. 천외이선(天外二仙)과 천외검선(天外劍仙)
남진무사 동유수는 자신이 듣고도 믿어지지 않아 잠시 멍한 얼굴로 눈만 끔뻑였다.
별호를 친히 내리고, ‘황상의 검’이 되어 달라 부탁한 것으로도 모자라 생사여탈권까지 주겠다니?
황궁의 상황을 모르는 그에게 지휘사의 말은 충격이었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느냐?”
지휘사 모양의 말에 동유수는 얼른 자세를 바르게 했다.
“아, 아닙니다. 너무도 파격적인 말씀이시라 소신의 귀로 듣고도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그러자 모양이 피식 웃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으냐?”
“솔직히 그런 마음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알고 싶으냐?”
모양이 그윽한 눈으로 동유수를 응시했다.
마치 이걸 알게 되면 다시 이전의 너로 돌아갈 수 없다는 그런 눈빛이었다.
동유수는 잠깐 망설였다.
금의위 특성상 많은 비밀을 알게 되면 그만큼 권력에 가깝지만, 위험했다.
특히나 황상의 ‘부탁’ 발언과 ‘생사여탈권’은 황제의 권위를 추락시키는 것으로 그 위태로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망설이던 동유수는 결연한 어조로 답했다.
“예.”
어차피 알려 주려고 물어본 것이라면 응하는 게 지휘사에 대한 예의였다.
모양이 주위를 지키고 있던 금의위들에게 말했다.
“백 보 밖으로 물러나 경계해라.”
“존명.”
백룡전을 지키고 있던 금의위들이 백 보 밖으로 물러났다.
주위를 몇 번이나 확인한 후에야 모양의 입이 열렸다.
“이 년 전 유명교주가 큰 공을 세우자 황상께서 그를 불러 치하하셨다. 정확히는 그가 알현을 청한 걸 거부하지 못하셨다. 그들이 국경 정벌군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그때 유명교주를 따라 황궁에 들어온 두 사람이 있다. 천하의 유명교주조차 그 둘을 어려워했지. 유명교주는 그 두 사람을 천외이선(天外二仙)이라 소개했다.”
“천외이선요?”
“처음 들어 보는 별호였지만 그들의 능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황궁을 지키던 금의위는 물론 금군도 그들의 옷깃조차 건드리지 못했으니까.”
“금군까지 동원했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명목은 황상의 앞에서 무위를 시연하겠다고 했지만, 그건 단순한 무위의 시연이 아니었다. 금의위와 금군은 그 두 사람에게 패했다. 그날 이후로 천외이선은 황궁에 자리를 잡았다. 부끄럽게도 금의위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들을 등에 업은 유명교주는 딱 하나만을 요구했다.”
“혹 그것이 유명교를 호국의 종교로 선포하라는 것이었습니까?”
“네 말대로다. 그 이후 유명교는 호국의 종교가 되었고, 금의위는 그들을 위해 일해야 했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천외이선이 황제의 자리에 욕심을 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마치 은거라도 한 것처럼 장춘전(長春殿)에 틀어박혀서 움직이지 않았다.”
“아!”
동유수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개봉에 나와 있는 동안 황궁에서 그런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났었다니!
“황상께서는 연적하에게 기대를 걸고 계신다. 연적하가 사위(四衛)의 군대를 대파했다는 보고에 오히려 기쁨을 감추지 못하셨지. 그에게 ‘천외검선’이라는 별호를 친히 내리신 것도 ‘천외이선’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남진에서 오래전부터 천외검선이라는 별호를 사용해 왔습니다. 소신은 그래서 천외검선이라 하신 것으로 알았는데…….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천외이선과 연적하는 모두 인세를 초월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사위의 군사는 물론, 금군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존재들이지. 황상께서 굳이 ‘부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신 것도 그래서고.”
“…….”
동유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연적하에게 과분한 제안이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자신의 착각이었던 것 같다.
“대인께서도 금군이 연적하를 당해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천외이선을 보건대 연적하 역시 금군으로 막지 못할 것이다.”
멍한 얼굴로 지휘사를 보던 동유수가 급히 말했다.
“대인, 어제 남진에서 진우생 소기와 그의 처를 추포하였습니다. 연적하가 알기 전에 풀어 주고 수습해야 하지 않습니까?”
“수습해야 하는 것은 맞다만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동유수가 의아한 얼굴로 지휘사를 보았다.
일이 벌어졌으니 빨리 되돌려야 할 텐데 서두르지 말라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천외이선과 달리 연적하에게는 지켜야 할 혈족이 있다. 연적하가 그걸 알게 된다면 협상에 더욱 유리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서두르지 말라는 게다.”
“하지만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진우생과 이 부인에 대한 예우를 지시했다. 내일이면 뇌옥이 아니라 별채에 연금(軟禁)되게 될 것이니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별채의 관리를 저희 남진에서 맡아도 되겠습니까?”
“네가 원한다면 그리하도록 지시하겠다.”
“북진에서 진우생을 혹독하게 다루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의 처분 또한 차후 내려질 것이다. 지금까지는 천외이선 때문에 북진이 무엇을 하건 방치했다. 연적하가 황상의 제의를 받아들이면 일거에 청산할 테지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냥 내버려 둘 생각이다. 그 점 또한 연적하에게 주지시키도록 해라.”
간접적으로 진우생의 삶이 팍팍해질 수도 있음을 말하라는 것이다.
“명대로 하겠습니다.”
“화급을 다투는 일이니 지금 즉시 청성산으로 떠나거라. 도강언에 도착하면 연적하에게 안내해 줄 사람이 너를 찾아갈 것이다.”
“예.”
자리에서 일어난 동유수는 지휘사 모양에게 인사를 올리고 즉시 백룡전을 떠났다.
***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바뀌었다는 말이 있다.
진우생과 이유화가 그랬다.
그러니까 첫날 금의위에 잡혀 왔을 때만 해도 두 사람은 절망했다.
그들은 자신의 가족들이 화를 피하기만 바라고 또 바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연적하가 추포되지 않아서 그런지 고문이 행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고문이 아니더라도 두 사람에게 옥사는 끔찍한 곳이었다.
특히나 북진의 위사들은 진우생을 그냥 두지 않았다.
그들은 조사를 빙자해 시도 때도 없이 진우생을 괴롭혔다.
괴롭힘의 강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심해졌다.
그러던 금의위가 하루 만에 바뀌었다.
날이 밝자마자 북진무사 장부아가 친히 찾아와 진우생과 이유화를 석방했다.
장부아가 꺼내 주자마자 남진의 능가경 천호가 득달같이 달려왔다.
그 자리에서 장부아는 능가경에게 진우생과 이유화를 인계했다.
능가경은 진우생과 이유화를 금의위의 별채로 데리고 갔다.
“진 소기,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 아직 지시가 내려오지 않아 집으로 보내 줄 수는 없다. 하지만 다시 옥사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때까지 별채에서 지내도록 해라. 별채를 떠날 수는 없겠지만 외부와의 연락은 자유로이 해도 된다.”
“예. 감사합니다.”
진우생은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능가경 천호는 까마득한 상관인지라 꾹 참았다.
그런 진우생의 마음을 짐작한 능가경이 웃으며 말했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무엇이든 물어도 좋다.”
그제야 용기를 얻은 진우생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저어, 연 대협이 누명을 벗은 것입니까?”
“누명이라. 북진은 모르겠지만 남진에서는 처음부터 연 대협을 대역죄인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능가경은 남진과 북진의 입장을 철저하게 분리했다.
그러는 편이 진우생에게 설명하기 적당해서다.
“허면 앞으로는 어찌 되는 것입니까? 남진의 주장대로 연 대협이 대역죄인이 될 수도 있습니까?”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북진에서도 더 이상 연 대협을 대역죄인이라 주장하지 않을 터이니 그 점은 염려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이유화가 끼어들었다.
“대인. 제 남편은 역적과 한패라는 이유로 저렇게 매를 맞았답니다. 연 오라버니는 대역죄인이 아니라는데, 왜 제 남편이 매를 맞아야 하는 거죠?”
그러자 능가경이 급히 말했다.
“이 부인. 오늘 아침, 북진의 주문우 백호와 천산갑 총기가 권력을 남용한 죄로 추포되었습니다. 그들은 진 소기에게 행한 권력 남용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겁니다. 제가 반드시 그리되도록 하겠습니다.”
능가경은 수하의 처에 불과한 이유화에게 공손한 모습을 보였다.
그것만 봐도 능가경이 누구를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 뒤로도 능가경은 한참 동안 이유화의 비위를 맞추다가 돌아갔다.
***
십이월 중순.
사천성 청성산.
청성파 산문 앞 서촉관(西蜀館).
해거름 무렵.
중년의 남자 둘이 서촉관 앞에 도달했다.
동유수 남진무사와 길 안내를 맡은 성도 지부 장욱 총기다.
서촉관에 이르자 장욱은 습을 하고 조용히 사라졌다.
서관의 현판을 올려다보는 동유수의 얼굴에 만감이 교차했다.
연적하와 알고 지낸 지 제법 되지만 오늘처럼 긴장이 된 적은 없었다.
‘하아! 세월 참…….’
녹림의 총순찰이던 그가 어느덧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위치라니.
아무런 부담을 느끼지 못하고 다가갔던 이전과 달리 마음이 무거웠다.
잠시 후 동유수는 문을 열고 서촉관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쇼!”
모처럼의 손님에 주인이 박력 있게 소리를 내질렀다.
우렁찬 그의 외침에 식당 손님들의 시선이 일제히 입구로 향했다.
동유수가 어색한 얼굴로 주인에게 다가갔다.
“별채에 머무르고 있는 손님을 만나러 왔네. 안으로 기별을 넣어 주게.”
“별채라고 하시면……. 어느 분을 만나러 오셨습니까?”
주인이 중년 남자의 눈치를 살폈다.
동유수가 주인에게 얼굴을 바삭 들이밀고 속삭이듯 말했다.
“연 대협에게 하남에서 동유수가 찾아왔다고 전하게.”
“아, 예.”
주인은 동유수의 기세에 눌려 굽실거리며 자리를 떠났다.
잠시 후 연적하가 환하게 웃는 얼굴로 식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연적하와 눈이 마주친 동유수는 급히 허리를 숙였다.
“연 대협. 오랜만에 뵙습니다.”
“에이! 우리 사이에 뭘 그렇게 격식을 차려요? 그동안 잘 지냈어요?”
연적하가 손사래를 치며 동유수의 맞은편에 앉았다.
인세를 초월한 지금에도 여전한 그의 모습에 동유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연 대협의 염려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그동안 소식이 뜸하던데 어디 멀리 다녀오셨나 봅니까?”
“네,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아주 먼 곳에 다녀왔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또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어요?”
“눈 덮인 청성산이 아주 절경입니다. 잠시 산책을 하며 말씀 나누고 싶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러죠.”
연적하는 흔쾌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며칠 동안 별채와 식당만 오가서 답답하던 참에 잘됐다 싶다.
두 사람은 마치 산책이라도 하는 것처럼 청성산으로 올라갔다.
청성파의 산문을 지키던 도사들이 연적하를 알아보고는 머리가 땅에 닿도록 숙였다.
하지만 뒤끝이 긴 연적하는 그런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쳤다.
그런 연적하의 모습을 본 동유수가 웃으며 말했다.
“청성파에서 연 대협을 쫓아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사실이었나 봅니다?”
“부끄럽지만 사실이에요. 나는 그냥 눌러앉아 있으려고 했는데, 누님이 싫어해서 나왔어요.”
“청성파 도사들의 생각이 짧군요. 땅을 치며 후회할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런데 진짜 왜 왔어요? 금의위 사람이 죽은 것 때문에 온 건 아니죠? 그 사람이 우리 누님과 아기만 노리지만 않았어도…….”
“그 일 때문이 아닙니다.”
동유수는 연적하의 설명이 길어지기 전에 서둘러 부인했다.
지금 금의위와 연적하 사이의 싸움을 되새김질해 봐야 득이 될 게 없어서다.
“그럼 도지휘사 때문에 온 거예요? 그거라면 나도 할 말이 많다고요. 그 사람이…….”
“그것도 아닙니다.”
“응? 금의위도 아니고, 도지휘사도 아니라고요? 또 뭐가 남았지?”
“황상께서 연 대협께 전하라는 밀지(密旨)를 가지고 왔습니다.”
뜬금없이 황제가 거론되자 연적하는 뜨악한 얼굴로 동유수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