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18
818회. 내가 뭘 원하는지 알죠?
연적하는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은 황제와 밀지를 주고받을 만한 관계가 아니다.
녹림에서 나온 지 몇 년 되지도 않은 자신에게 밀지라니?
아니 황제가 왜 적과도 같은 녹림 출신에게 밀지를 보낸단 말인가?
“사람을 잘못 찾아온 거 아니에요? 알다시피 나는 황실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데요?”
녹림은 기본적으로 나라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황실을 대하는 태도도 보통 사람들과 달리 까칠했다.
녹림에서 십 대 후반을 보낸 연적하 역시 알게 모르게 그런 영향을 받았다.
그러니 황제가 밀지를 보냈다고 해서 ‘황공합니다!’ 하고 무릎 꿇을 리가 없다.
연적하가 멀뚱멀뚱 바라보자 동유수 남진무사는 입맛이 조금 썼다.
보통 사람들은 황제의 이름만 나와도 자빠지는데, 하물며 밀지까지 내려졌다는 데도 무덤덤하다니!
하지만 황제마저도 갑(甲)으로 인정한 상대에게 자신이 감히 왈가왈부할 수는 없었다.
“연 대협께 보내는 밀지가 맞습니다. 금의위 지휘사 대인께서 친히 저에게 명하신 일입니다.”
말을 마친 동유수는 품 안에서 밀봉한 편지를 꺼내 연적하에게 내밀었다.
어딘지 께름칙한 눈으로 보던 연적하가 한 손으로 건네받았다.
순간 동유수의 눈썹이 꿈틀했다.
황제의 밀지를 한 손으로 받는다는 것은 상상해 본 적도 없다.
그런 일이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니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울컥’한 것이다.
동유수는 머릿속으로 참을 인자(忍字)를 되뇌이며 불편한 마음을 다스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연적하는 뚱한 얼굴로 밀봉한 편지를 열어 내용물을 꺼냈다.
[천외검선(天外劍仙)]무슨 대단한 내용이 적혀 있는 줄 알았는데 단 네 글자가 전부였다.
“천외검선? 이게 뭐예요?”
“황상께서 연 대협에게 하사하시는 별호입니다.”
“에? 무림인들의 별호를 황제가 지어 주기도 해요? 난 몰랐네.”
동유수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그럴 리가요. 황상께서는 무림인들의 별호를 지어 주지 않습니다. 오직 연 대협에게만 해당되는 일입니다.”
“아, 그렇구나. 별호가 뭐라고 밀지까지 보내요?”
“밀지의 내용은 소관의 머릿속에 있습니다. 지금 들려 드릴까요?”
“뭐, 어차피 그 이야기를 하려고 온 것일 테니 들어나 보죠.”
“황상께서 연 대협에게 천외검선의 별호를 하사하시고, ‘황상의 검’이 되어 주시기를 부탁하셨습니다.”
“그거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네요?”
“예, 맞습니다. 오래전에 저희 남진에서 연 대협에게 붙여 드렸던 이름입니다. 그때는 남진에서 임의로 그런 소문을 흘렸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정식으로 황제가 그렇게 해 주기를 바란다고요?”
“맞습니다. 만약 연 대협께서 ‘황상의 검’이 되어 황실과 나라를 지켜 주신다면, 생사여탈권을 허락한다고도 하셨습니다.”
“생사여탈권요? 그게 뭐예요?”
“연 대협에게 사람을 살리고 죽일 권리를 주겠다는 말씀이지요.”
“그런 권리도 있어요?”
연적하는 동유수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차피 무림인들은 지금도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데 거침이 없다.
그런데 그럴 수 있는 권리라니?
동유수는 속으로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역시 무림인이라 그런지 생사여탈권에 둔감하구나.’
그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에 말했다.
“물론 무림인들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음에 주변 눈치를 보지 않지요. 허나 아무리 무림인이라 해도 사람을 상하게 하면 국법에 의해 결국 죄인이 됩니다. 그 처벌이 늦어질 뿐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살인과 같은 큰 죄를 지으면 평생을 관부에 쫓기게 되지요. 무림 세가들이 관부의 눈치를 보는 것도 실은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관부에서 그들에게 법의 잣대를 들이대면 피해 갈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연적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건 맞는 말이다.
그래서 무림인들 중에는 신분을 감추거나, 다른 사람 행세를 하며 사는 경우도 허다했다.
물론 자신은 그 정도 죄를 짓지 않아서 석경장에 정착했지만 말이다.
“특히나 관인들과 싸움을 벌여 상하게 할 경우, 그 죄는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관부에서 언제가 됐든 결국은 죄의 대가를 청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동유수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바로 이 청성산에서 관인을 상하게 한 사람이 연적하인 까닭이다.
연적하는 남의 일인 양 딴청을 부렸다.
“그렇겠죠.”
“그런데 이 생사여탈권을 가지게 되면 그런 죄에서 자유롭습니다. 연 대협께서 누구를 상하게 했든, 심지어 관인을 쳐 죽여도 나라에서 죄를 묻지 않습니다.”
“관인을 죽여도 죄가 안 된다고요?”
“어디 관인뿐입니까? 황상께서 특정인을 예외로 두지 않았다는 것은, 황족을 죽여도 죄를 묻지 않겠다는 뜻과도 같습니다.”
“황족까지요?”
그 말에는 솔직히 연적하도 놀랐다.
황제가 생사여탈권의 범위에 황족까지 넣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보통은 ‘황족을 제외한’이라는 단서를 첨부하는데, 이번에는 그런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그러니 실로 어마어마한 권한을 허락하신 것이지요. 연 대협께서 ‘황상의 검’이 되어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럴 정도로 황제에게 문제가 생겼어요?”
단도직입적인 연적하의 질문에 동유수는 한순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동유수가 입을 열었다.
그는 지휘사가 황궁의 비밀을 알려 준 것은 연적하에게 전하기 위함이라 생각했다.
“유명교주가 오랑캐를 물리치고 난 뒤에 황상을 알현했습니다. 그때 천외이선이라 불리는 두 명의 고수를 대동했지요. 그 두 명의 고수에게 금의위와 금군이 모두 패했습니다. 그 뒤로 천외이선은 황궁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황상께서는 연 대협께서 천외이선을 없애 주기를 바라십니다.”
“천외이선요?”
연적하가 황당한 눈으로 동유수를 보았다.
강호의 천하십대고수에도 들지 않는 완전히 처음 듣는 별호였다.
“예, 유명교주가 그들을 천외이선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뭐하는 사람들이래요?”
“그건 소관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의 출신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유명교주라면 알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니까 결론은 황제를 위해서 천외이선을 없애 달라 이거네요?”
“맞습니다. 황상과 황실의 안위가 위태로우니 연 대협께서 황상을 위해…….”
“생각해 볼게요.”
연적하가 동유수의 말을 끊었다.
황실과 엮이는 것도 내키지 않지만, 무엇보다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물론 그러셔야지요. 언제쯤 답을 주실 수 있으십니까?”
“모르죠. 빨리 먹다가 체할 수도 있으니까 서두를 생각 없어요.”
“아, 예에…….”
애가 탄 동유수는 연신 연적하의 안색을 살폈다.
무림인이라면 꿈에도 원할 ‘생사여탈권’을 준다는 데도 뚱한 얼굴이다.
진우생의 이야기를 들어도 그럴까?
“참, 개봉 지부의 금의위에서 작은 일이 벌어졌었습니다.”
“개봉 지부요?”
아니나 다를까!
황제의 이야기에도 시큰둥하던 연적하가 관심을 보였다.
“북진에서 연 대협의 매제(妹弟)인 진우생 소기를 추포했었습니다. 저희 남진에서도 모르게 한 일이라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그랬군요.”
연적하가 무덤덤하게 받아들이자 동유수는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했다.
“때마침 지휘사 대인이 개봉에 오셔서, 진우생 소기 부부는 바로 석방되었습니다.”
“부부요? 내 사촌 동생도 잡아갔어요?”
연적하가 놀란 눈으로 동유수를 보았다.
기대했던 반응이 나오자 동유수는 더욱 신중하게 말을 이어 갔다.
“북진의 백호가 지휘사님의 행차를 오해하고 제멋대로 움직였던 것이지요. 지휘사님이 연 대협께 밀지를 전하기 위해 찾은 걸 반대로 해석했던 모양입니다.”
“반대로요?”
“예. 그는 지휘사께서 연 대협을 추포하기 위해 움직였다고 지레짐작해 진우생 부부를 추포했습니다. 자기 딴에는 출세를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습니다만, 제 발등을 찍은 꼴이 되었지요.”
“그래서요?”
연적하의 음성이 착 가라앉았다.
뜨끔한 동유수는 급히 말을 이어 갔다.
“그날 저녁에 그 일을 알게 된 지휘사께서 대로하셨습니다. 다음 날 아침 그 일에 관계된 자들이 모두 추포되었고, 옥사에 있던 진우생 부부는 별채로 옮겨졌습니다.”
“왜 별채죠?”
“…….”
순간 동유수는 말문이 막혔다.
집으로 보내지 않고 별채로 옮긴 이유는 연적하를 압박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걸 사실대로 말했다가는 오히려 역효과가 날 터였다.
“그것은 북진에서 추포한 이유를 조사하기 위함입니다. 누명을 썼는지, 권력 남용인지를 알아야 하니까요. 별채는 일반 가옥보다 더 시설이 좋으니…….”
“결국 잡아 두고 조사를 이어 가겠다는 거네요. 내가 바르게 이해했나요?”
“명목상 조사지 내용을 알고 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진우생 소기가 나중에라도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하려는…….”
“이봐요. 내가 세상 물정을 모르는 바보로 보여요? 동 대인 그렇게 안 봤는데, 나를 물로 봤나 보네?”
“아, 아닙니다. 오해십니다. 소관이 어찌 감히 연 대협을 그렇게 보겠습니까?”
연적하가 동유수에게 시선을 돌렸다.
구주(九州)였다면 동유수는 자신의 옆에 서지도 못했을 게다.
황제? 그 역시 마찬가지다.
구주의 한 개 주만 해도 황제가 다스리는 나라보다 컸다.
자신은 그 아홉 개 주를 다스리는 대종사였다.
황제도 안중에 없는데 금의위는 오죽할까.
그런 금의위가 자신의 사촌 동생 내외를 잡아 두고 있는 것이다.
“사촌 동생 내외를 잡아 두면 내가 ‘예, 예’ 하고 시키는 대로 할 것 같았어요?”
“아, 아닙니다. 절대로 그런 뜻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동유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럴 의도가 전혀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진우생 부부를 볼모로 잡은 건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약간의 기대를 품고 뜸을 들인 것에 불과했다.
“동 대인.”
“예.”
“나랏일 하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한결같이 머리가 나쁜지 모르겠어요. 봐 봐. 북진의 그 백호와 동 대인 쪽 사람들 하는 짓이 똑 같잖아.”
“그게……. 송구합니다.”
변명을 하려던 동유수는 급히 머리를 숙였다.
생각해 보니 남궁연에 가려 그렇지 연적하는 잔머리가 뛰어난 사람이었다.
뻔한 변명으로 일관하다가 나쁜 놈으로 찍히느니 용서를 구하는 게 나았다.
연적하가 훈계하듯 말했다.
“사람들이 하나만 알지 둘을 몰라. 내 도움이 필요하면 납작 엎드려야지. 왜 자꾸 흥정을 하려고 하지? 흥정이 될 거라고 생각하나? 동 대인, 말해 봐요. 사촌 동생 부부를 잡아 두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할 것 같았어요?”
“아닙니다. 연 대협께 뭔가를 시킨다는 건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단지 자그마한 인연의 줄을 저희가 잡고 있다는 걸 보여 드리고 싶었는데, 방법이 잘못됐던 것 같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동유수가 깔끔하게 빌자 연적하는 이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동 대인.”
“예.”
“청성파를 봐요. 나에게 별궁을 내 주고 좋은 관계를 맺었는데, 뭘 잘못 먹었는지 다시 나를 내쫓았잖아. 동 대인이 지금 청성파하고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 지금까지 잘 지냈잖아. 아닌가?”
“맞습니다. 제가 즉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심려를 끼쳐 드려 송구합니다.”
“상대에게 뭔가 바라기 전에, 그를 위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뭔지를 먼저 생각해요. 감동을 받아야 도와줄 마음이 들지 않겠어요? 거 뭐더라? 인지상정(人之常情)? 그래, 그런 게 인지상정이잖아. 금의위라고 협박이 몸에 밴 모양인데 그러면 안 돼.”
“연 대협의 말씀이 옳습니다. 저의 접근 방법이 틀렸던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신다면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나도 예전에 동 대인 덕을 좀 봤으니까, 한 번은 봐 드릴게. 나 마음 약한 사람이에요. 나 같은 사람 감동받게 하는 거 어려운 일도 아니야. 내가 뭘 원하는지 알죠?”
“예!”
동유수는 그게 뭔지 몰랐지만 일단 ‘예’라고 답했다.
연적하의 마음을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