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24
824회. 얼마 정도 받을 수 있을까요?
연적하가 펄쩍 뛰자 심통은 얼른 말을 바꿨다.
“어이쿠! 뭘 그렇게 놀라십니까? 농담해 본 겁니다.”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 말라고. 누가 들을까 무섭네.”
“흐흐. 공자님, 많이 소심해지셨습니다?”
“소심이 아니라 우리가 남의 돈을 빼앗아 호의호식한다고 오해를 할까 봐 그러지.”
그 말에 심통은 더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지 않았다.
그건 녹림 출신들이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멍에인 까닭이다.
“여하튼 돈을 좀 마련해야 합니다. 생활비도 문제지만 석경장으로 돌아갈 여비를 마련해야 하지 않습니까?”
“아! 그러네.”
연적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생활비에, 석경장으로 돌아갈 여비까지 돈 들어갈 일투성이다.
하지만 객지에 나와 있는 터라 당장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었다.
돈을 융통하기에 청성파가 가장 좋지만 그쪽에는 아쉬운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았다.
“가만, 남연객점에 돈이 좀 모여 있지 않을까? 이 년이나 이익금을 못 받았잖아.”
청성산에서 개봉에 있는 남연객점까지 대략 이천팔백 리(약 1100킬로미터). 운종술을 사용하면 오가는 데 이삼일밖에 안 걸리는 거리다.
“남연객점에서 얼마를 받으셨는데요?”
“내 몫으로 한 달에 두세 냥 정도 떨어진다고 하더라고.”
“세 냥씩 모였다 쳐도 일흔두 냥밖에 안 되네요. 주씨 모녀에게 돈을 주고 나면 별채를 빌리는 값은 되겠습니다. 그래도 사 먹을 돈이 부족하네요.”
노회한 심통은 그런 쪽으로 셈이 빨랐다.
연적하는 머리를 긁적였다.
별채에 있는 사람들은 하루 세끼를 죄다 객점 식당에서 해결하고 있었다.
그것만 해도 상당한 지출이다.
남연객점에서 받은 돈으로 안 된다면 다른 방도를 찾아야 했다.
“공자님.”
“왜?”
“상방의 일을 잠깐 봐주는 건 어떻습니까?”
“상방?”
연적하가 솔깃한 얼굴로 심통을 보았다.
전에 상방의 일을 잠깐 봐주고 은자를 꽤 많이 받은 기억이 떠올라서다.
“가모님은 어차피 봄이 오기 전까지 청성산에 계실 것 아닙니까?”
“그렇지.”
“그동안에 상방의 일을 봐주면 목돈이 생길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긴 상단에서는 천 냥 이천 냥을 쉽게 부르긴 하더라. 그렇지?”
“상행에 걸린 돈이 워낙 크니까요.”
심통도 장단을 맞췄다.
귀가 얇은 연적하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성도에 가서 잠깐 일할 만한 상방이 있는지 알아봐. 겨울 한철 뛰어 보자고.”
“그런데 일은 누가?”
심통은 ‘겨울 한철’ 소리에 살짝 발을 빼려 했다.
한겨울에 바깥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으니 당연하다.
“누구긴 누구야? 우리 중에 그런 일 할 수 있는 사람이 나하고 심 노인밖에 더 있어? 당 노인을 내보냈다가는 골병들어서 오히려 돈이 더 나갈 수도 있다고.”
“공자님, 나이는 제가 당가보다 많습니다.”
“대신 몸이 튼튼하잖아.”
“저도 이젠 몸이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그렇습니다.”
“그럼 장주인 나 혼자 나가서 막일을 하라는 거야? 시중들어 주는 사람 하나 없이?”
“공자님이 누군지 알면 상단에서 알아서 잘 모실 겁니다.”
“나가.”
“예?”
“손가락 하나 까딱이지 않고 놀고 먹으려면 나가라고. 나는 그런 꼴 못 봐.”
“공자님, 이런 말씀은 안 드리려고 했는데 저도 이젠 나이가 있어서……. 찬바람을 쐬면 뼈가 시립니다.”
“그러니까 나가라고. 서로 보지 말자고. 내 눈에만 안 보이면 돼. 그럼 곰팡이가 필 때까지 방구석에 누워 있어도 뭐라 안 해.”
연적하가 도무지 봐줄 것 같지 않자 심통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알겠습니다. 뼈가 삭아 문드러지는 한이 있어도 공자님을 모시고 다니겠습니다.”
“뼈 삭는 소리 하고 있네. 한서불침(寒暑不侵)의 몸이 이깟 추위에 뼈가 삭겠어? 별채에서 빈둥거리는 것보다 훨씬 나을 텐데 뭘 그렇게 앓는 소리를 해?”
그러자 심통이 제 가슴을 툭툭 치며 처량한 얼굴로 말했다.
“마음의 뼈는 한서불침하고 상관이 없습니다.”
“그게 적적해서 그런 거야. 돌아다니다 보면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다니까.”
“예, 예. 공자님을 도와 겨울 한철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번 돈은 제가 써도 되는 거겠죠?”
“그야 당연하지. 내가 심 노인 돈에 눈독 들일 사람으로 보여? 나 그런 사람 아니야.”
“알겠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 기운이 좀 나네요.”
“그럼 얼른 가서 일자리 좀 알아보고 와.”
“공자님이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뭘 도와?”
“제 걸음으로 성도에 가면 왕복 이틀은 걸리지 않겠습니까? 시간이 촉박한데 이틀이나 날려서야 되겠습니까?”
“운종술로 데려다 달라고?”
“예.”
연적하는 귀찮은 마음에 오만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심통의 말대로 이틀이나 되는 시간을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그래, 가자. 가.”
연적하가 투덜거리며 마당으로 내려가자 심통이 터덜터덜 그 뒤를 따랐다.
***
사천성.
성도.
삭풍에 살갗이 따가울 정도로 추운 날씨지만 거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촌에서 올라온 사람처럼 고개를 홰홰 돌리며 걷던 심통이 한곳을 가리켰다.
“공자님, 저기 상방 간판이 모입니다.”
연적하의 시선이 심통의 손가락을 따라갔다.
아닌 게 아니라 금인상방(今人商幫)이라는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 추운 날씨에도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걸 보니 유명한상방 같았다.
두 사람은 부지런히 금인상방을 향해 걸어갔다.
대문이 활짝 열려 있어서 안으로 들어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를 찾아가야 할지 막막했다.
뻘쭘한 얼굴로 서 있는 두 사람의 등 뒤로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무슨 일로 오셨수?”
연적하와 심통이 반가운 얼굴로 돌아섰다.
금인상방의 서기인 황규가 낯선 노인과 청년을 빤히 바라보았다.
‘처음 보는 얼굴들이군.’
행색은 멀쩡했지만 황규는 예리하게 뜯어보았다.
이 겨울에 상방을 찾아온 사람치고 사연 없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연적하를 대신해 심통이 나섰다.
“여기가 장사꾼들이 모여 있다는 상방이냐?”
“…….”
황당한 질문에 황규는 일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금인상방이 성도에 문을 연 이래 이런 식의 질문은 처음이었다.
“들어오기 전에 금인상방이라고 적힌 현판을 보지 못하셨소? 노인장이 말한 상방이 맞소. 이곳은 대륙 십대상방의 하나인 금인상방이외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소?”
황규는 노인의 뻔뻔함에 치를 떨었지만 상방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답게 정중함을 잃지 않았다.
“너희 방주를 만나러 왔다. 그에게 안내하거라.”
순간 황규의 눈썹이 실룩거렸다.
십대상방의 방주를 만나기 위해서는 성주도 예약을 해야 한다.
그런데 상방이 뭔지도 모르는 뜨내기들이 와서 방주에게 안내를 하라니?
“무슨 용무인지는 모르겠으나 방주님을 만나려면 먼저 약속을 잡아야 하오. 어디의 뉘시며, 무슨 일로 그러는지 말씀해 주시면…….”
참을성 부족한 심통이 황규의 말을 끊었다.
“나는 구천노도 심통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분은 남천 대협이시다. 방주에게 안내하거라.”
“헛!”
황규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지르고 급히 허리를 조아렸다.
“어, 어서 오십시오!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소인이 방주님께 모시겠습니다.”
상방의 방주라고 해도 구천노도와 남천의 이름 앞에서는 먼지만도 못한 존재다.
특히나 남천은 녹림의 이인자.
그의 눈 밖에 나면 금인상방은 그날로 문을 닫아야 하는지라 황규는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황규는 두 사람을 십방각(十方閣)으로 모시고 갔다.
잠시 후 십방각에 도착한 그는 ‘남천 대협과 구천노도가 방주님을 만나러 오셨다’고 고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장양 방주가 맨발로 뛰어나왔다.
두 사람을 안으로 모신 장양은 연적하를 상석에 앉히고, 자신은 아래 쪽에 심통과 나란히 앉았다.
“남천 대협. 이 누추한 곳까지 어쩐 일이신지요?”
그는 십대상방의 방주답게 연적하가 청성산에서 벌인 일을 자세히 알고 있었다.
금의위와 도지휘사조차 안중에 두지 않는 인물이니 상방의 방주쯤은 파리 목숨처럼 여기리라.
그렇게 생각한 장양은 죽은 조상이 살아온 것처럼 연적하를 대했다.
연적하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런데 돈이 똑 떨어진 걸 몰랐지 뭐예요. 심 노인이 아까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계속 모르고 있었을 거예요. 돈이 필요해서 방주님을 찾아왔어요.”
장양이 웃는 듯 우는 듯 한 얼굴로 연적하를 보았다.
녹림 출신이라서 뻔뻔한 줄은 알지만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할 줄이야!
칼만 안 들었지 이건 강도나 다름없었다.
장양은 이가 갈렸지만 오히려 웃음을 잃지 않았다.
아니, 그러려고 노력했다.
만에 하나 연적하가 칼이라도 뽑아 들면 지옥도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드려야지요. 얼마가 필요한지 말씀만 해 주십시오.”
마음을 비우고 기다리는 그에게 뜻밖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래서 말인데 겨울 동안 상방의 일을 좀 거들까 해서요. 혼자는 아니고 나하고 심 노인 이렇게 둘이요. 전에도 몇 번 상방의 일을 도와준 적이 있거든요. 심 노인, 그때 우리가 얼마를 받았었지?”
“꽤 많이 받았습니다.”
노련한 심통은 금액을 정확히 말하지 않았다.
금인상방에서 그보다 더 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 때문이다.
장양이 황당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상방의 일을 거들다니?
그는 자신이 들은 게 맞는지 궁금했다.
“저어, 남천 대협. 지금 겨울 동안 상방의 일을 거들겠다고 하신 게 맞습니까?”
“예. 일을 해야 돈이 들어오죠. 매일 놀고먹는 것 같은 녹림도 일을 하는데……. 아, 예를 들자면 그렇다는 거예요. 내가 녹림이라는 게 아니라. 에, 잘 아시겠지만 녹림도 산행을 나가야 돈이 생기잖아요.”
연적하는 피하고 싶었던 녹림의 이야기가 자꾸 나오자 당황했다.
하려던 말은 ‘일해야 돈이 생긴다’는 것인데 왜 자꾸 녹림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그 바람에 듣고 있던 장양은 연적하가 진심으로 일을 돕겠다는 건지, 협박을 하는 건지 헷갈렸다.
“저어 상방에서 하는 일은 딱 정해져 있습니다. 상단을 꾸려서 타지로 상행을 가는 거지요. 저희 금인상방의 경우 개봉에 비단, 차, 칠기, 동백유 등을 가져다 팔아 이문을 남깁니다. 짐마차를 끌고 꼬박 한 달 동 안 추위와 녹……. 음, 가야 하는 거리지요.”
그는 ‘추위와 녹림도들과 싸우며 가야 한다’고 하려다가 급히 말을 얼버무렸다.
녹림의 총순찰인 연적하 앞에서 할 소리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연적하는-과거 오봉산 시절-겨울에 상단을 털어 본 경험이 있는지라 고개를 끄덕였다.
“개봉까지 상단을 호위해 주면 되는 거죠? 얼마 정도 받을 수 있을까요?”
장양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추운 겨울에 남천 연적하와 구천노도 심통이 개봉까지 호위해 주겠다니?
‘진심인가?’
장양은 떨리는 음성으로 되물었다.
“남천 대협, 정말 개봉으로 가는 저희 상단을 호위해 주실 겁니까?”
“그렇다니까요. 우리 상단 호위 여러 번 했었어요. 심 노인, 뭐라고 말 좀 해 봐. 우리 상단 호위 많이 했었잖아?”
“그랬지요. 장양이라고 했느냐?”
“예.”
“연 공자님과 나는 산에서 내려온 뒤로 여러 차례 상단 호위를 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니 너는 공자님에게 얼마를 드릴 수 있는지 말해라.”
“아…….”
그제야 장양은 이 모두가 빈말이 아님을 알았다.
천하십대고수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남천 대협과 그의 식솔로 알려진 구천노도를 상단의 호위로 채용하게 되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