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23
823회. 요즘은 금력이 곧 권력입니다.
일월 초하루.
호광성.
여산현.
광해루.
수염이 허연 두 노인이 광해루의 창가에 마주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십두마병인 구유귀검 이무영과 천산비마 하소상이다.
한쪽에 밀려난 빈 그릇을 보면 식사를 마치고 마시는 술이 분명했다.
차 대신 술인 셈이다.
두 사람은 반복되는 고된 일상에 지쳤는지 말없이 술잔을 비웠다.
한참 만에 이무영이 입을 열었다.
“하 형. 이제는 슬슬 거취를 정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소?”
하소상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거취라. 이 형은 저쪽으로 마음이 기운 거요?”
그러자 이무영이 자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적월 님을 잃은 뒤로 우리만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었소. 삼 년이면 적월 님에 대한 예우는 다 했다고 생각하오. 우리가 백두마군이 될 게 아니라면, 저쪽에 줄을 대는 게 낫지 않겠소?”
두 사람 모두 적월 공취산을 주군으로 모시던 십두마병들이다.
자연히 공취산이 사라진 뒤로 명왕교 내에서 입지가 줄어든 상태였다.
궂은일을 도맡아 하지만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상태로 벌써 삼 년.
지쳐 낙심한 그들에게 마교에서 입교를 종용했다.
유명교주의 아래에 있었다면 재고의 여지도 없는 일이지만 지금은 달랐다.
공취산마저 사라진 지금 십두마병인 그들을 이끌어 줄 사람은 없었다.
하소상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백두마군이 될 게 아니라면 마교로 갈아타야 한다는 이무영의 말은 맞았다.
하소상의 반응을 살피던 이무영이 계속해서 말했다.
“뒤로 알아보니 백두마군들도 이제는 천두마왕을 포기하는 분위기더이다.”
“그게 참말이오?”
“팔황신모가 천두마왕의 진언을 거짓으로 알려 주었는지 성공한 사람이 없다고 하오. 아무리 제물을 써도 진전되는 느낌이 없어 거지반 포기한 것 같더이다.”
“유명교주가 거짓으로 진언을 가르쳐 주었다고 생각하오?”
“누가 알겠소. 거짓으로 가르쳐 주었는지, 다른 특별한 조건이 있는 것인지.”
두 사람은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명왕교에서의 미래를 논했다.
대화가 시들해졌을 무렵, 한 떼의 사람들이 반점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외부의 차가운 바람이 반점 안을 한차례 휘감았다.
이무영과 하소상은 말을 끊고 슬쩍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상인 십여 명이 빈자리를 찾는지 반점 안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띄엄띄엄 앉아 있던 자리가 손님들로 꽉 찼다.
옆에 사람이 들어앉자 자연히 이무영과 하소상도 입을 다물었다.
상인들의 대화로 조용하던 반점은 이내 장터처럼 시끌벅적해졌다.
“차 행수님, 혹 청성산의 이야기를 들으셨습니까?”
“모르지. 우리는 강서성에서 왔는데 알 턱이 있나? 무슨 일이 있었는가?”
“아! 그렇지. 제가 깜빡했네요. 청성산에서 남천 대협과 도지휘사의 군대가 맞붙었답니다.”
“남천 대협이 왜 도지휘사의 군대와 맞붙었다는 건가?”
“낙성문의 제자가 유명교를 욕하고 청성산으로 달아났는데, 그곳에 남천 대협이 있었던 거지요. 남천 대협은 유명교를 좋게 보지 않으니까 낙성문 제자를 보호해 주었던 모양 입니다.”
“저런! 그래서?”
“유명교를 욕하면 무조건 역적이 되는 세상 아닙니까? 당연히 금의위부터 도지휘사까지 낙성문 제자를 내놓으라고 압박을 했답니다.”
“그걸 남천 대협이 받아친 건가?”
“남천 대협이 원래 누르면 튕기는 사람으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더구나 유명교라면 이를 가는 사람이 순순히 말을 들을 리가 없지요.”
“그래서?”
“금의위는 물론 도지휘사의 군대까지 꽤 많이 죽거나 다쳤다고 합니다.”
“허! 대단하군. 그럼 남천 대협은 석경장을 버리고 녹림으로 돌아갔겠군?”
“그게 좀 이상합니다.”
“이상해?”
“금의위와 도지휘사가 청성산에서 조용히 물러났다고 하네요?”
“남천 대협이 산으로 달아난 게 아니라 금의위와 도지휘사가 물러났다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자네가 잘못 들은 거겠지.”
“아닙니다. 어디에 잘못 알아들을 구석이 있습니까? 남천 대협이 달아났느냐? 아니면 금의위와 도지휘사가 물러났느냐? 이거밖에 없지 않습니까? 금의위와 도지휘사가 물러났다고 했다니까요.”
“정말 그랬다면 뒷거래가 있었겠지. 우리가 뒷거래를 하는 것처럼.”
“여하튼 그 일로 남천 대협은 사천성과 하남성, 남직례성에서 최고수로 떠올랐습니다. 젊은 나이에 벌써 천하십대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으니 말 다했지요.”
“남천 대협이 몇 살이지? 이십 대 중반인가?”
“초반으로 알고 있습니다.”
“허어! 이십 대 초반에 천하십대고수의 반열이라니 놀랍기는 하군.”
“사람은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건 또 왜?”
“남천 대협의 활동 무대가 사천성, 하남성, 남직례성 아닙니까? 강호의 중심부에서 활동하니까 벌써 천하십 대고수 소리를 듣는 거지요. 호광성에서 아무리 날고 뛰어 봐야 천하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 못합니다. 명왕교만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호광성 일대를 장악했지만 사천성이나 하남성에서 명왕교 얘기하는 사람을 못 봤습니다.”
“그야 유명교의 이름에 가려져서 그런 게지.”
“그렇게 말하면 남천 대협의 이름도 뜨면 안 되지요. 그런데 남천 대협은 뜨는데 명왕교는 잠잠하지 않습니까?”
“그게 지역의 탓이다?”
“제가 볼 때는 그런 것 같습니다. 만약 명왕교가 하남성까지만 진출해도, 천하는 명왕교 얘기로 들끓을 겁니다. 호광성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관심이 없다니까요.”
“뭐, 그럴지도.”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무영이 하소상에게 슬쩍 물었다.
“하 형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연적하에 대해 묻는 거요? 아니면 명왕교가 유명해지지 못한 이유를 묻는 거요?”
“연 씨가 관인들과 지지고 볶든 말든 우리가 신경 쓸 게 뭐 있소. 명왕교가 하남성으로 진출하면 천하의 이목을 끌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시오?”
“호광성이 가장 밑바닥에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 않소?”
사실 명왕교가 호광성에 자리를 잡은 것도 그런 지리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백두마군들은 유명교의 관심 밖으로 벗어나기 위한 장소로 호광성을 택했다.
세가 커지니 그 지리적인 이점이 도리어 발목을 잡은 형국이지만 말이다.
이무영이 불만 가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쪽이야 아직 유명교 눈치를 본다지만, 저쪽은 왜 움직일 생각을 안 하는지 모르겠소.”
하소상이 이무영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가 말하는 이쪽은 명왕교, 저쪽은 마교를 의미했다.
명왕교와 마교가 손을 잡은 지도 어언 삼 년.
그동안 명왕교의 이름으로 호광성을 접수했지만 마교는 그 이상의 활동은 자제하고 있었다.
“저쪽으로 줄을 서고 싶으신가 보오?”
“혼자서 줄 서 봐야 개밥의 도토리가 아니오. 하 형과 함께라면 모를까.”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하소상이 결심한 듯 말했다.
“까짓것! 함께 줄 섭시다. 어차피 이쪽에는 이끌어 줄 사람이 없어서 쓰다가 버림받기 딱 좋소. 그럴 바에야 그쪽에서 새로 시작하는 게 낫지.”
하소상의 말에 이무영의 얼굴이 활짝 폈다.
“잘 생각하셨소. 그럼 내 저쪽에 기별을 넣어 입교 날짜를 받도록 하리다.”
마침내 마교 입교를 결정한 두 사람은 만취할 때까지 술을 마셨다.
***
여산현.
광명촌.
광명정 앞.
이른 아침.
광명정 앞마당에 백여 명의 무인들이 집결했다.
명왕교 고수들은 광명정에 모인 무인들이 부담스러운지 광명정을 피해 돌아다녔다.
잠시 후 광명정에서 초로의 노인 셋이 걸어 나왔다.
마교 무광곡성문의 문주 초혼귀마 요진갈과 마도단천문의 문주 수라혈제 금언무, 그리고 명왕교 백두마군의 일인인 악불 방천각이다.
순간 마당에 도열해 있던 백여 명의 무인들이 허리를 꺾으며 우렁찬 음성으로 외쳤다.
“마음을 마교에 바칩니다![把心交給魔]”
“마교를 위해 죽겠습니다! [会为魔而死].”
흐뭇한 눈으로 교도들을 바라보던 요진갈이 말했다.
“어젯밤 마도단천문의 합류로 우리의 전력은 배가되었다. 마도단천문이 일천을 죽이면, 무광곡성문은 일만을 죽일 것이다! 무광곡성문이여! 천하를 어둠 속에서 통곡하게 만들 지어다!”
그러자 무광곡성문의 교도들이 허공에 주먹을 흔들며 ‘와아!’ 하고 화답했다.
이제 질세라 금언무도 소리쳤다.
“살고자 하는 자는 꿇어라! 마도단천문이 강림하였으니 만마(萬魔)가 앙복할 것이다!”
“우아아아!”
마도단천문의 교도들이 경쟁하듯 환호성을 내질렀다.
악불 방천각은 두 사람이 약속이라도 한 듯 명왕교를 거론하지 않자 쓴웃음을 지었다.
명왕교의 심처에서 명왕교가 손님이 된 느낌이다.
하지만 마교 육문의 문주인 요진갈과 금언무에게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었다.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던 방천각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두 분 문주님. 조금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요즘은 금력이 곧 권력입니다. 십대상방을 손에 넣으면 천하를 얻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지요. 그러니 무림방파보다 상방을 먼저 접수하는 편이 낫습니다.”
요진갈이 가소롭다는 눈으로 방천각을 보았다.
“방 마군.”
“예.”
“그대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 같아. 무력과 금력에 순서를 두는 것은 의미가 없네. 십대상방이니 뭐니 입으로 떠들어 대지만, 그들을 무릎 꿇리는 것은 결국 칼이 아닌가 말일세.”
“그, 그렇기는 합니다. 십대상방을 손에 넣으면 천하를 제패하기가 더 수월하다는 뜻에서 드린 말씀이었습니다.”
방천각은 요진갈과 금언무를 상전 대하듯 했다.
강호에 전해져 내려오는 마교 육문의 위상을 생각하면 당연한 행동이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금언무가 끼어들었다.
“방 마군은 아직 우리 마교를 잘 모르나 보군. 우리는 뭘 손에 넣을 생각이 없어. 알고 보면 그 반대야. 우리는 천하를 갈아엎으려고 온 사람들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나?”
“아! 예.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아니야. 그래도 좋은 생각이었네. 십대상방을 찢어발기면 천하가 뒤집어질 테지?”
금언무가 빤히 보자 방천각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마교가 미친놈들이라는 건 알았지만 저 정도로 막 나갈 줄은 몰랐다.
천하를 제패하리라 생각했는데 입만 열면 갈아엎고, 찢어발긴단다.
계속해서 금언무가 물었다.
“하남성에 십대상방이 몇 개나 있나?”
“세 개가 있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지. 마도단천문과 무광곡성문, 그리고 명왕교에서 하나씩 맡는 거야. 가장 빨리 손에 넣는 쪽이 하남성을 갖는 거지.”
요진갈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찬성하겠소.”
방천각이 애매한 얼굴로 물었다.
“찢어 버리겠다고 하셔서 좀 헷갈리는데, 상방을 없애자는 말씀이십니까?”
그러자 요진갈이 웃으며 금언무를 대신해 답했다.
“흐흐흐. 방 마군은 의외로 순진한 구석이 있구려. 우리 마교도들도 입으로 음식을 먹고, 뒷구멍으로 똥을 싼다오. 삼살(三殺)의 규칙에 어긋 나지 않는 한 상방을 없앨 일은 없소. 상방을 먼저 손에 넣는 쪽이 하남성의 패주(霸主)가 된다는 뜻이외다.”
“아! 그러셨군요. 제가 고지식해 깊은 속뜻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방천각은 배알이 꼴렸지만 간이고 쓸개고 내줄 것처럼 굽실거렸다.
***
사천성.
청성산.
청성파 산문 앞 서촉관(西蜀館).
해가 바뀌어 일월이 되자 남궁천은 다시 남궁세가로 돌아갔다.
별채에서 지내는 연적하와 남궁연, 그리고 석경장 식솔들의 생활은 단조로웠다.
먹고 자고 쉬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심통이 연적하를 따로 불러냈다.
“왜?”
“공자님, 돈이 다 떨어져 갑니다.”
“얼마나 남았는데?”
“길어야 닷새 정도면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합니다. 당장 이번 달에 산후조리를 돕고 있는 여자에게 줄 돈도 없습니다.”
“아휴! 젠장. 돈 얘기가 왜 안 나오나 했어. 심 노인은 꿍쳐 놓은 거 없어?”
“구주에서 도망치듯 급하게 오느라 돈이 될 만한 걸 챙기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아쉬운 대로 겨울 산행이라도 다녀올까요?”
산행이란 녹림의 은어로 강도 짓을 뜻한다.
연적하가 정색을 했다.
“미쳤어? 그랬다가는 석경장과 영원히 작별이야. 다시 평범한 생활로 못 돌아간다고.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