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30
830회. 문파의 이익에 눈이 먼 거지요.
‘팔달문의 흑검대가 상단을 지켜 주고 있다’는 말에 마부들은 반사적으로 연적하와 심통을 보았다.
그러나 연적하와 심통은 무심한 얼굴로 나뭇가지로 모닥불을 들쑤시기만 했다.
흑검대 대주 송충과 부대주 소비는 주인처럼 편안하게 불 앞에 앉았다.
이윽고 송충이 젊은 마부에게 말을 걸었다.
“보아하니 숙수가 요리를 제공하는 것 같던데. 맞나?”
“예, 예.”
“오늘은 우리도 건량 대신 요리를 먹을까 하는데. 자네 이름이 뭔가?”
“마등이라 합니다.”
“그래, 마등. 아직 저녁 전이지?”
“예.”
“네가 우리 먹을 것도 가져와 줘야겠다. 할 수 있겠느냐?”
“예.”
마등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저녁이라고 해 봐야 초반(炒飯, 볶음밥)에 청채 몇 점이 전부이니 어려울 것도 없었다.
송충은 무료한 얼굴로 불가에 모인 사람들을 가볍게 둘러보았다.
평범한 면상이 척 봐도 마부와 짐꾼 들이다.
염소수염의 늙은이를 스치듯 보던 송충이 다시 시선을 돌렸다.
허리춤에 낯선 쇠막대기가 매달려 있었다.
“그건 단봉이오?”
노회한 심통은 연적하가 잡부 흉내를 내자 고분고분 답했다.
“이건 절에서 쓰는 금강저요.”
“금강저? 아! 그 뾰족한 말뚝 같은 거? 그걸 왜 가지고 다니오?”
송충이 고개를 갸웃하자 소비가 말했다.
“대주님, 이 세상에 쓸모 없는 물건은 없습니다. 뭐에라도 쓰겠지요. 그렇지 않소?”
소비가 묻자 심통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소.”
송충은 더 이상 금강저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마부나 짐꾼 따위가 가지고 다니는 물건이라 별 볼 일 없으려니 생각한 것이다.
그때 멀리서 ‘텅텅텅-’ 하고 솥단지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저녁 식사를 하라는 알림이다.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난 마등이 송충에게 머리를 굽실거리며 말했다.
“대협, 식사를 가지고 오겠습니다.”
“그래라.”
마등과 두 명의 마부가 서둘러 모닥불가를 벗어났다.
연적하와 심통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송충과 소비는 신경 쓰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마부와 짐꾼들이 마차의 짐을 지키기 위해 교대로 먹는다고 생각했다.
한가하게 모닥불을 들썩이던 연적하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그런데 팔달문은 어떤 문파예요?”
송충과 소비가 거의 동시에 청년을 보았다.
송충이 뭐라고 답하기 전에, 소비가 상관인 그를 대신해 설명했다.
“성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문파라고 생각하면 된다.”
“와아! 세네요?”
연적하가 놀라는 척하자 송충이 말을 덧붙였다.
“그건 지난해까지의 일이고. 올해 도강언의 생가(生家) 공사가 끝나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게 될 것이다.”
“도강언의 생가요?”
송충이 귀찮다는 듯 시선을 돌리자 소비가 말했다.
“용지진에 유명교주님의 생가가 있다. 그 생가의 복원을 팔달문이 맡아서 하고 있다. 생가의 복원이 끝나면 유명교에서 성지로 발표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팔달문의 위세는 더욱 높아지게 되지.”
연적하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송충과 소비를 보았다.
저들의 말을 들으니 팔달문은 유명교에 충성하는 문파였던 모양이다.
갑자기 입맛이 썼다.
대행수가 팔달문에 쩔쩔매는 게 이상했는데 그래서 그랬던 모양이다.
팔달문이 유명교에 줄을 댄 문파라면 금인상방에서 굽히고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그러는 동안 마등이 나무 접시에 초반과 청채를 담아 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초반을 본 송충과 소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마등은 송충과 소비에게 조심조심 접시를 건네고는 부리나케 돌아갔다.
송충은 흑검대주의 체면도 잊고 걸신들린 사람처럼 초반을 먹어 치웠다.
그건 소비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접시에 코를 박고 마치 개처럼 쩝쩝 소리를 내며 먹었다.
초반을 절반쯤 먹고 난 뒤에야 송충과 소비는 고개를 들어올렸다.
사천요리 특유의 매콤한 양념 때문인지, 초반의 뜨거운 김을 쐬서 그런지, 두 사람의 콧등에 땀이 맺혀 있었다.
우연히 소비를 본 송충이 옷깃으로 제 콧잔등을 쓰윽 닦으며 말했다.
“소비,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쉬엄쉬엄 먹어라.”
“제가 본래 좀 빨리 먹습니다. 그런데 초반이 제법 맛있네요. 실력 있는 숙수를 데리고 다니나 봅니다?”
“그래 봐야 초반이지.”
말과 달리 송충은 꽤나 만족한 얼굴이다.
아닌 게 아니라 유명한 반점의 요리처럼 아주 감칠맛이 났기 때문이다.
그때다.
발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잡부들이 손에 나무 접시와 그릇을 들고 나타났다.
각각의 나무 접시에는 초반, 닭구이, 청채가 담겼고, 그릇에 든 것은 계란탕이었다.
송충과 소비가 눈을 동그랗게 치떴다.
저 정도면 객점 식당에서 나오는 요리와 별 차이가 없을 정도다.
뒤이어 송충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상단에서 자신과 소비가 식사한다는 걸 알아차렸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고서는 야영지에서의 갑작스러운 진수성찬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소비도 그렇게 생각했던지 입이 귀에 걸렸다.
송충과 소비는 들고 있던 나무 접시를 슬그머니 옆으로 내려놓았다.
물론 새로운 요리를 맛보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
잡부들은 요리가 든 접시와 탕이 담긴 그릇을 청년과 노인의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허리 숙여 인사를 하고는 돌아갔다.
‘뭐지?’
송충과 소비는 허탈한 눈으로 모닥불 건너편에 놓인 요리를 보았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하던가!
송충과 소비는 실망을 넘어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에서 팔달문의 흑검대보다 더 대접받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강호의 도리이자 규칙이었다.
불쾌한 얼굴로 지켜보던 송충은 다시 나무 접시를 앞으로 끌어당겼다.
그러나 모닥불 건너편으로 보이는 닭요리와 계란탕을 보니 손이 가질 않았다.
소비도 나무 접시를 앞에 두고 돌부처처럼 우두커니 앉아만 있었다.
송충과 소비가 기막힌 얼굴로 앉아 있을 때 마부들이 하나 둘 돌아왔다.
구경꾼들이 생기면 감정은 배가되는 법이다.
이를 갈며 보고 있던 송충이 마등에게 손짓을 보냈다.
“부르셨습니까?”
마등이 공손히 묻자 송충이 말했다.
“저 두 사람은 따로 돈을 내고 요리를 사 먹는 것 같은데, 맞느냐?”
“아닙니다.”
“아니라고?”
송충이 황망한 눈으로 마등과 모닥불 건너편 요리를 번갈아 보았다.
“허면 저들도 우리처럼 상단에서 주는 대로 받아 먹고 있다는 소리냐?”
“예, 예.”
마등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옆에서 듣고 있던 소비가 소리를 버럭 내질렀다.
“너 이놈! 헛소리 하지 마라! 그렇다면 왜 저들과 우리의 음식이 다르단 말이냐!”
팔달문 고수가 화를 내자 마등은 연적하와 심통의 눈치를 살폈다.
말해도 되는지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소비가 으르렁거렸다.
“어허! 눈알을 굴리네? 이빨을 다 뽑아 버리기 전에 바른대로 말해! 이 새끼야!”
상대적으로 열악한 초반에 감정이 상한 소비는 마부에게 분노를 쏟아냈다.
그 소란에 연적하가 닭다리를 문 채로 고개를 쳐들었다.
순간 불똥이 그에게 튀었다.
“뭘 쳐다봐 이 새끼야! 눈알을 확 뽑아 버리기 전에 깔아 이 씨벌 놈아!”
순간 마부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죽으려고 환장을 한 것도 아니고, 남천 대협에게 저런 욕설이라니!
“큭큭큭!”
정작 폭언을 들은 연적하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그래, 저래야 맞는 거다.
유명교 같은 곳에 드나드는 놈들이 협객 흉내라니 개가 웃을 일이다.
심통도 웃다가 사래가 걸렸는지 옆에서 캑캑거렸다.
청년과 늙은이가 대놓고 웃자 이번에는 송충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상단의 일꾼 따위가 팔달문의 흑검대를 비웃어?’
이쯤 되면 강호의 생리를 몰라서 그랬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죽인다.’
지금 저들을 죽이지 않으면, 흑검대는 물론 팔달문까지 병신 소리를 듣게 될 게다.
마음을 정한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웃어?”
한편 송충이 나서자 조금 전까지 펄펄 뛰던 소비는 감정을 가라앉혔다.
아무리 팔달문이라 해도 금인상방의 사람을 죽이는 것은 가벼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자신이 아니라 대주가 나서는 게 맞았다.
연적하가 물고 있던 닭다리를 떼고 송충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그럼 울어?”
잘해 봐야 잡부가 태연하게 되묻자 송충은 멈칫했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반말을 찍찍 할 사람은 없다.
뒤늦게 청년과 늙은이의 정체가 자신의 짐작과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팔달문의 송충이다. 너는 누구냐?”
“나? 석경장의 장주 연적하.”
순간 송충은 화들짝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
“서, 설마, 남천 대협이십니까?”
“어. 왜?”
“정말 남천 대협이 맞습니까?”
“맞다고! 이 새끼야! 유명교 똥구멍이나 빠는 새끼들이 입맛 떨어지게 왜 자꾸 처물어?”
순간 송충과 소비의 얼굴은 사색이 됐다.
강호에서 연적하와 유명교의 악연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호천맹조차 유명교에서 손을 뗀 지금 유명교의 유일한 적은 연적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최근 청성산에서 금의위와도 지휘사의 군대를 대파하기도 했다.
그 바람에 유명교는 물론 황실에서도 포기한 사람으로 불리고 있다.
그런 그의 앞에서 유명교주의 생가를 복원했다고 큰소리쳤으니 좋게 끝나기는 틀렸다.
송충은 급히 읍(損)을 하며 허리를 꺾었다.
“남천 대협! 필부 송충이 대협을 몰라뵙고 실수를 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용서 안 해! 이 새끼야.”
“…….”
송충은 입술을 물어뜯으며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천하십대고수에 비견되는 그에게서 달아날 자신이 없었다.
소비도 허겁지겁 송충의 곁에 나란히 섰다.
“살고 싶냐?”
“예!”
연적하의 물음에 송충과 소비가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적들에게 연적하는 소악마로 불릴 정도로 잔혹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스스로 유명교 쪽 사람임을 밝힌 송충과 소비에게 연적하는 저승사자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자비로운 사람이니까 기회를 줄게. 오늘 중으로 죽산을 깨끗하게 청소해. 내일 상단이 죽산을 넘어가는데, 도적 떼가 나타났다? 그럼 팔달문은 강호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거야. 알겠어?”
“예?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송충은 눈앞이 캄캄했지만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흑검대 열두 명으로 가능한 일인지 아닌지는 차후에 고민할 문제다.
못 하겠다고 했다가 이 자리에서 맞아 죽고 싶지는 않았다.
연적하가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팔달문은 정파야? 사파야?”
“정파입니다.”
“잘됐네. 좋은 일도 하고, 문파도 살리고. 시간 없을 텐데 얼른 가 봐.”
“예…….”
송충과 소비는 도망치듯 허둥지둥 자리를 떠났다.
그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연적하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정파라면서 유명교주의 생가를 복원한다는 사람들은 뭐야? 미친 거야?”
“자기들 문파의 이익에 눈이 먼 거지요.”
“아무리 눈이 멀어도 그렇지.”
연적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정파를 자처하는 저 사람들의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