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29
829회. 호위와 칼잡이
흑검대 대주 일도단참 송충이 애매한 눈으로 등원용 대행수를 보았다.
팔달문은 성도 동편에서 알아주는 문파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일 년 전 유명교에 줄을 대면서 그 지위는 더 확고해졌다.
어떻게든 팔달문에 한 발 걸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상방도 부지기수다.
그런 팔달문이 먼저 도와주겠다고 손을 내밀었는데 외부의 도움은 받지 않겠단다.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있지?’
물론 금인상방이 십대상방의 하나인 만큼 호위대 역시 탄탄하겠지만, 다른 곳도 아닌 성도에서 팔달문의 호의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속이 뒤틀렸지만 송충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시정잡배도 아니고 그만한 일로 시비를 걸 수는 없었다.
강제로 돈을 빼앗는 것은 녹림도들이나 하는 짓.
팔달문 정도 되는 위치면 상대를 살살 구슬려 이익을 얻어 내야 한다.
“나도 금인상방의 호위대가 능력이 뛰어남은 알고 있소. 그런데 중강현으로 가고 있지 않소?”
“그렇습니다만.”
“허면 죽산을 지나시겠구려.”
죽산은 금당현과 중강현 사이를 가르고 있는 야트막한 산이다.
정확히는 산이라기보다 길게 이어진 구릉이라 해야 옳다.
산세는 험하지 않으나 나무가 빽빽해 대낮에도 어두 컴컴하기로 유명하다.
산의 초입에 대나무숲이 있어 죽산이라 불린다는 설과, 과거에 구릉 전체가 대나무 숲이었다는 설이 있지만, 말 그대로 설에 불과했다.
등원용이 조금 굳은 얼굴로 송충을 보았다.
상단의 동선이 눈에 띄는 건 당연하지만 노골적으로 묻는 건 실례였다.
도시 밖이 온통 도적 떼투성이인 까닭이다.
등원용이 가타부타 답하지 않자 송충이 말을 이었다.
“아, 오해는 하지 마시오. 올해 초 두단산에서 떨어져 나온 도적 떼가 죽산에 자리를 잡았다는 소문이 있소. 나는 팔달문에서 새로 만든 흑검대의 대주외다. 방주님의 명으로 죽산의 실태를 조사하러 가던 중이오.”
송충이 호방한 얼굴로 등원용을 보았다.
사실 현무상방의 의뢰를 받았지만 거기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제야 등원용의 얼굴이 풀렸다.
그런 일로 죽산을 가는 거라면 저들의 강압적인 권유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팔달문에 따로 보호를 요청할 생각은 없다.
호위대에 남천 연적하가 있기 때문이다.
타강에서 손해를 본 것도 그런 결정에 한몫했다.
팔달문과 관계를 맺어 두면 좋겠지만 지금은 그런 일에 돈을 쓸 여력이 없었다.
“그러시군요.”
“…….”
등원용의 반응이 신통치 않자 송충은 기가 막혔다.
금인상방이 대륙의 십대상방이라고 하지만 그래 봐야 장사꾼에 불과하다.
무림 방파가 갑이라면 장사꾼은 을이다.
팔달문 정도 규모의 무림 방파에 찍히면 아무리 십대상방이라도 괴롭다.
‘이것 봐라? 죽산의 도적 떼까지 알려 줬는데 내 제안을 씹는 건가?’
송충이 뻘쭘한 얼굴로 서 있을 때다.
보다 못한 흑검대 부대주 소비가 나섰다.
“이보시오. 등 형. 죽산의 도적 떼는 우리보다 당신들 상단에 더 큰 문제가 아니오? 지금 상단의 칼잡이들을 믿고 우리 대주님의 호의를 무시하는 거요?”
속이 뒤틀린 소비는 상방의 호위대를 칼잡이로 비하했다.
상방에서 호위로 고용한 사람들 중에 낭인 출신이 많았기 때문이다.
시비조의 말에 등원용은 마음이 무거웠다.
지금이야 연적하가 동행하고 있으니 괜찮지만 나중이 문제다.
팔달문이 딴지를 걸면 성도에서 금인상방의 활동이 위축될 게 뻔했다.
거기까지 생각한 등원용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숙였다.
“그럴 리가요. 저희 같은 장사꾼이 왜 팔달문의 영웅들을 무시하겠습니까? 실은 타강을 건너는 도중에 사고가 있었습니다. 얼음이 깨지는 바람에 짐마차와 짐꾼 들을 여럿 잃었지 뭡니까. 이번 상행에서 이문을 남기기 어려운 형편인지라, 제안에 응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대행수의 사과에 송충의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저런! 얼마나 피해를 입었소?”
“하아! 짐마차 세 대와 짐꾼 열 명을 잃었습니다.”
“쯧쯧! 그쪽의 사정은 잘 알겠소. 하지만 겨울이라 우리 사정도 좋지 못하오. 최근에는 큰일을 벌여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소.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알아준다고 하지 않소? 적당한 선에서 성의를 표시해 주시오. 그럼 죽산까지 동행해 드리리다.”
송충은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금인상방과 같은 물주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
등원용은 밀고 당기기 끝에 죽산까지 동행의 대가로 은자 오십 냥을 주기로 했다.
거래가 성사되자 송충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갔다.
자기를 빤히 보고 있는 금인상방의 행수들 얼굴을 마주하기 민망해서다.
연적하는 상방과 무림 방파 간의 거래를 무심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누가 봐도 억지로 하는 계약이지만, 그는 오히려 큰 영감을 받았다.
닳고 닳은 상인들에게 호위비를 뜯어내다니!
강호에서 무인이 살아가는 새로운 방법을 배운 느낌에 뿌듯하기까지 했다.
경험이란 이래서 중요한 것이다.
자신도 목격하지 않았다면 이런 식의 거래가 가능하다는 걸 몰랐을 게다.
‘돈 벌기 쉽네.’
그가 우물거리던 음식을 삼킬 때 등원용이 말했다.
“이거 송구하게 됐습니다. 남천 대협을 먼저 소개했어야 하는데……. 지금이라도 부를까요?”
호위 비용의 합의가 끝나자마자 송충은 미처 잡을 틈도 없이 떠났다.
그 바람에 연적하에게 그를 소개시키지도 못했다.
“아유! 괜찮아요. 나하고 볼일이 있는 사람도 아닌데 왜 불러요. 그냥 두세요. 아니, 귀찮으니까 나에 대해 알려 주지 마세요.”
연적하가 손사래를 쳤다.
사실 그는 뜨내기들과의 인사가 피곤해서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하던 참이다.
“그런데 대행수님. 팔달문의 사람이 호위대를 칼잡이라고 하던데. 왜 그런 거예요?”
그러자 등원용이 계면쩍은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행수들과 상단의 큰손들만 가득했지 호위대는 보이지 않았다.
“그건 상방의 호위에 낭인 출신들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아!”
“처음에는 상방도 표국처럼 호위를 고용할 때 신원 확인을 철저히 했습니다. 하지만 상방이 많아지면서 일손 부족에 시달리게 되었지요. 특히나 상행을 호위하는 호위대의 인력난이 극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낭인들을 대거 받아들이게 되었던 겁니다.”
연적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신도 그간 수많은 상방을 봐 왔기에 어떤 상황인지 알 것 같았다.
심통이 옆에서 한마디거들었다.
“표국은 아직도 신원 확인이 까다롭습니다. 고가의 물품은 표국을 이용하는 것도 그래섭니다. 표국에 비하면 상방의 호위는 칼잡이지요. 상단을 호위하다가 도적으로 돌변한 호위들도 많습니다. 흐흐.”
등원용이 씁쓰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군소방파 출신의 제자들을 많이 채용하고 있지만, 그래도 호위는 항상 부족합니다. 우후죽순처럼 상방이 생기다 보니……. 성도만 해도 몇 개의 상방이 있는지 모를 정도니까요.”
“그렇게 많아요?”
“망해서 사라진 상방보다 새로 개업한 상방이 더 많다는 말도 있습니다.”
“와아! 심 노인. 우리도 상방을 했어야 하는 거 아니야?”
“공자님이 상행을 따라 다니실 게 아니면 그런 말씀 마십쇼.”
“심 노인이 다녀도 되잖아?”
“그것도 어쩌다 한두 번이지 남은 평생 상행을 따라다니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럼 월아와 금아를 시켜.”
“그 어린 애들을 상행에 내보내라고요? 농담이라도 그런 말씀 마십쇼. 천벌받습니다.”
심통이 정색을 하자 연적하가 머쓱한 얼굴로 말했다.
“농담인 걸 알면서 무슨 천벌이야. 자기 제자들 얘기만 나오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덤벼든다니까.”
“공자님도 그러는 거 아닙니다.”
“내가 뭘?”
“애들에게 무공 한 초식도 가르쳐 주지 않으면서 부려먹을 생각만 하십니까?”
“나도 가르쳐 줬어.”
“구주에 다녀온 뒤로 우리 애들 들여다본 적이나 있으십니까?”
“와아! 우리 애들이래. 누가 들으면 심 노인이 애를 낳은 줄 알겠어?”
“말 돌리지 마시고요. 매일 아기와 놀아주기만 하셨지 월아와 금아는 거들떠보지도 않으셨잖습니까?”
집요한 심통의 공격에 결국 연적하는 손을 들고 말았다.
“알았어. 내가 잘못했으니까 그만하자. 돌아가는 대로 애들 봐줄게. 됐지?”
“흐흐. 감사합니다.”
심통은 바라던 답을 듣자 실실 웃었다.
연적하는 한번 한 말은 반드시 지키니 월아와 금아에게 이보다 좋은 일도 없을 터였다.
***
다음 날.
상단 행렬의 뒤에 흑검대 열두 명이 꼬리처럼 달라붙었다.
흑검대의 무사들은 상단과 일정하게 거리를 유지하며 움직였다.
호위를 돕겠다고 말했지만 누가 봐도 묻어 가는 모양새였다.
호위대 대주 하후찬이 뒤쪽을 힐끔 보고는 등원용 대행수에게 말했다.
“팔달문에서 뭘 도와주겠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시작이 좋지 못했으니 우리가 도와 달라고 애걸복걸하기를 기다릴 걸세.”
“허! 그런데 대행수님은 죽산의 산적 떼에 대해 들으셨습니까?”
“해가 바뀐 뒤로 첫 번째 상행이 아닌가. 당연히 나도 처음 듣는 소릴세.”
“저렇게 뚝 떨어져 오니 눈에 거슬리네요.”
“그러려니 하게. 팔달문에 대해서는 방주님과 따로 대책을 세울 생각이니까.”
등원용은 가급적 팔달문의 비위를 맞춰 줄 생각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불필요하지만 죽산까지의 호위를 요청한 것도 그래서다.
해거름 무렵, 상단 앞에 죽산이 나타났다.
선두에 있던 호위대주 하후찬이 연적하의 짐마차로 말을 달려왔다.
짐마차 위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있던 연적하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남천 대협. 죽산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곧 해가 질 것 같아 산을 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요?”
“송구하지만 오늘도 야영이 될 것 같아 양해의 말씀을 드리려고 왔습니다.”
“아, 난 또 뭐라고. 상관없어요.”
“예, 감사합니다.”
하후찬이 꾸벅 묵례를 하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멀어져 가는 하후찬을 보며 심통이 흐뭇한 얼굴로 말했다.
“칼 밥을 먹는 놈치고 꽤나 예의가 바른 놈 같습니다.”
“다 좋은데 심 노인은 아무한테나 놈놈 하지 마. 여기가 오봉산인 줄 알아?”
“공자님, 오봉산이 아니래도 제 나이쯤 되면 그렇게 말해도 됩니다. 칠파일문의 원로들도 대부분 저처럼 말합니다. 애정 어린 호칭인 셈이지요.”
“그래? 그런데 왜 심 노인이 하면 진짜 욕같이 들리지?”
“선입견을 버리십쇼.”
옥신각신하던 두 사람은 마차에서 내려왔다.
그러는 동안 벌써 마부 하나가 모닥불을 피웠다.
연적하와 심통이 모닥불을 쬐는 동안 사위가 어두컴컴하게 어두워졌다.
심통이 기가 막히다는 얼굴로 말했다.
“아직 산을 오르지도 않았는데 해가 빨리 지네요. 요즘은 눈을 떴다 싶으면 어느새 밤입니다. 그런 걸 보면 제가 나이를 먹긴 먹었나 봅니다.”
“무슨 소리야? 나이를 먹긴 먹었나 봅니다가 아니라 척 봐도 많이 먹었어. 이제 슬슬 저승사자가 눈에 보일 텐데. 아직 안 보여?”
“흐흐흐! 무슨 그런 말씀을.”
연적하와 심통이 불가에서 노닥거리고 있을 때다.
어둠 속에서 흑검대 대주 송충과 부대주 소비가 툭 튀어나왔다.
두 사람은 마부들과 연적하, 심통을 쓱 쳐다보고는 불 앞에 자리를 잡았다.
이윽고 송충이 마부들에게 말했다.
“놀랄 것 없다. 우리는 팔달문 사람들이니. 죽산 일대를 순찰하다 불빛이 보여 왔을 뿐이다. 팔달문의 흑검대가 상단을 지켜 준다는 건 알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