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37
837회. 연적하의 머리를 가져오라 해라
은하장 안채.
깊은 밤.
유명교에서 나간 뒤 신장(神將)으로 이름을 바꾼 백두마군 셋이 마주 앉았다.
그래도 은하장의 주인이라고 혼세검마 척진경이 주인 행세를 했다.
“험, 누추한 곳에 모시게 되어 송구하오. 돌보는 사람이 없으니 말이 아니구려.”
혼천혈귀 강상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새집이나 마찬가지외다. 내 초월산장은 교주의 측근들이 죄다 부쉈다고 하더이다. 악불은 어떻소?”
“신월사는 이미 나와 관계를 끊고 유명교 쪽으로 돌아섰소. 관부가 나서서 신월사를 유명교 지부로 사용하게 했다고 하더이다.”
악불 방천각의 말에 척진경이 ‘쯧쯧!’ 하고 혀를 찼다.
호광성으로 달아날 때 각오한 일이지만 막상 들으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고 보면 은하장은 운이 좋았다.
외떨어진 곳에 있어 무사했지 그게 아니었다면 빼앗겼거나 짓밟혔을 게 분명했다.
그나저나 문제는 그게 아니다.
“두 분도 소문을 들으셨소? 연적하가 녹림에 명을 내렸다고 하던데.”
척진경의 말에 방천각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들었소. 저쪽에서 놈의 의제를 죽여 복수에 눈이 돌아간 것 같더이다.”
여기서 ‘저쪽’은 마교를 의미한다.
그 사고는 마교 육문의 이문(二門)인 ‘무광곡성문’과 ‘마도단천문’, 그리고 명왕교가 하남성으로 진출하려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다혈질의 강상피마저도 고개를 홰홰 저었다.
“하필 연적하의 의형제를 건드려서 일이 복잡하게 됐소. 오봉십걸 정도는 살려 줬어야 하는데.”
방천각이 아쉬운 얼굴로 말했다.
“마교 이문에서 오봉십걸이 누군지나 알았겠소? 아니, 설사 알았다 해도 죽였을 게요. 그들이 어디 남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이오?”
척진경도 거들었다.
“악불의 말씀이 맞소. 그들은 오봉십걸이 누군지 안다 해도 죽였을 게요. 문제는 녹림과 연적하요. 특히 연적하는 우리도 감당하기 어려운 고수가 아니오? 그가 복수하겠다고 천명했으니 보통 일은 아니외다.”
방천각이 척진경을 힐끔 보았다.
“검마께서는 마교 이문의 문주들이 연적하를 상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시오?”
척진경은 ‘무광곡성문’의 문주 초혼귀마 요진갈과 ‘마도단천문’의 문주 수라혈제 금언무를 떠올려 보았다.
그들은 ‘악의 근원’이라는 마교 육문의 주인답게 백두마군들보다 고수였다.
인신공양으로 초능을 얻은 백두마군과 고대로부터 이어진 마교 육문의 문주들은 애초에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
백두마군들에게 마교 육문의 문주들은 유명교 교주처럼 경외의 대상이었다.
“연적하는 유명교주의 상대가 되지 못했소. 마교 이문의 문주들은 유명 교주와 비슷하거나 더 뛰어날 수도 있소. 그러니 연적하가 날뛰어 봐야 마교 이문 문주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게요.”
하지만 방천각은 척진경의 의견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연적하는 아직 유명교주와 승패를 가린 적이 없소. 그러니 상대가 되지 못했다는 말씀은 그저 지레짐작에 불과하지 않소?”
“검마께서도 유명교 내부에 떠도는 소문을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하오. 지난 이 년간 십전무후 남궁연과 연적하가 강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소. 그건 그들이 유명교주의 술법에 당했기 때문이오.”
“어찌 소문으로 우열을 가릴 수 있겠소?”
“소문이라……. 악불께서는 연적하가 유명교주에게 적월을 잡아다 바쳤다는 걸 벌써 잊으셨소? 연적하가 유명교주보다 강했다면 그런 일을 했겠소? 그 안하무인의 성격에?”
“…….”
적월의 일을 떠올린 방천각은 더 이상 딴지를 걸지 않았다.
확실히 그건 유명교주의 우월적 지위를 보여 준 것이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강상피가 말했다.
“허면 우리가 걱정할 일은 없는 게 아니오? 마교 이문의 문주들이 더 강하다면 연적하가 무슨 지랄을 해도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에 불과하니.”
적진경은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방천각은 암암리에 한숨을 내쉬었다.
마교 이문의 문주들이 더 강할 텐데 왜 이렇게 찜찜한지 모르겠다.
***
하남성.
숭현.
황가장.
초저녁.
마도단천문의 문주 수라혈제 금언무는 대청마루에 앉아 차를 마셨다.
맞은편 담장 위로 보이는 설산이 일품이다.
저 풍경에 꽂혀 황씨들을 죽이고 눌러앉았는데 볼수록 잘한 것 같다.
물론 오래 머물 생각은 없다.
낙양에 있는 금와상방을 취하면 그다음은 정주나 개봉으로 가야 하니까.
그가 설산을 보며 감상에 잠겨 있을 때 발소리와 함께 호법인 귀도비마 뇌공이 나타났다.
“문주님.”
“무슨 일이냐?”
“마을에서 기이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기이한 소문? 설마 벌써 황씨들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돌고 있느냐?”
“아닙니다.”
“아니야?”
“예,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뇌공은 선뜻 본론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금언무가 이 소식을 듣고 대로하면 그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몰라서다.
“무엇이기에 그처럼 뜸을 들이느냐?”
“그게……. 연적하라는 놈이 녹림에 이상한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연적하?”
“예, 본래 녹림의 총순찰이었는데 십두마병을 척살한 공으로 태상호법이 된 놈입니다.”
“그놈이 뭐라고 했기에?”
“송구합니다만. 하남성에 정체불명의 도적 떼가 나타났는데 그 정체를 알아내라고 했답니다.”
금언무는 피식 웃었다.
녹림의 도적들이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난 줄로 알고 발칵 뒤집힌 모양이다.
“그게 뭐 이상하다고. 우리가 누군지 모르니 제 밥그릇을 빼앗길까 봐 그러는 게지.”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허면 또 뭐라고 했기에?”
“저희 마도단천문의 파천대가 낭산에서 상단 호위들을 죽이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금언무의 얼굴에서 미소가 걷혔다.
감히 녹림 따위가 마도단천문이 벌인 일에 대해 왈가왈부한다고 생각하니 불쾌한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는 왈가왈부 정도가 아니었다.
“호위들 중에 연적하의 의동생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서론이 길군.”
“헉! 송구합니다. 연적하가 의동생의 죽음과 관계된 사람을 모두 죽이겠다고 했답니다. 녹림에도 경고하기를 정체불명의 도적들과 관계하면 다 죽인다고.”
“흐흐흐.”
금언무의 입에서 어딘가 뒤틀린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의 웃음에 뇌공의 얼굴은 더욱 굳었다.
문주의 전신에서 흘러나온 살기가 황가장 전체를 진득하게 적셨다.
“연적하라는 놈은 지금 어디 있느냐?”
“상단 호위들과 함께 개봉으로 가고 있다 들었습니다.”
“녹림의 도적이 상단 호위와 어울린다고?”
“남궁세가의 여식과 혼례를 치르면서 녹림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런 놈이 녹림에 명을 내렸고?”
“워낙 무위가 출중해서 총채주인 파천마군이 아낀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멋대로 구는 것이겠지요.”
“상단과 함께 개봉으로 가는 중이라? 잘됐군. 파천대가 벌인 일로 시작됐으니 마무리도 맡겨야겠지? 파천대에게 연적하의 머리를 가져오라 해라.”
“그런데 문주님.”
뇌공이 복명복창하지 않자 금언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마교에서 육문의 문주는 황제보다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다.
그런 문주의 명에 ‘그런데’라니?
금언무의 한쪽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뭐냐?”
“최근 연적하에 관한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함께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계속해 보아라.”
금언무는 일단 말을 들어 본 후에 뇌공의 처벌 수위를 정할 생각이었다.
“놈이 태산만 한 검을 부리고, 구름을 타고 다닌다 합니다.”
예상을 한참 뛰어넘은 황당한 말에 금언무의 분노가 한순간 녹아내렸다.
“크하하핫! 뇌공아, 뇌공아. 너는 마도단천문의 호법이나 돼서 그런 허튼 소문에 겁을 집어먹었느냐?”
“목격자가 한둘이 아니라고 하니 한 번쯤 확인을 거치는 것도…….”
“흥! 무광곡성문의 문주가 들으면 배꼽 잡을 소리를 하는구나. 태산만 한 검이니, 구름을 타고 다닌다느니 하는 건 모두 환술이다. 우리 마도단천문은 환술조차 베어 버리는 극강의 도법을 추구한다. 그래도 신경이 쓰이면 네가 파천대와 동행을 하든지. 너의 혼천도법이라면 환술 아니라 환술의 할아비라도 베어 버릴 테니.”
뇌공은 내키지 않았지만 문주의 제안을 거역하지 못했다.
겨우 풀어진 그의 기분을 자극하고 싶지 않아서다.
그날 저녁, 파천대와 마도단천문의 호법인 귀도비마 뇌공이 황가장을 떠났다.
***
낙양을 출발한 금인상방의 상단은 한동안 탑하(課河)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했다.
연적하는 이틀 내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상태는 처음 이철산의 시체를 목도한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곁에 심통이라도 있었다면 기분이 풀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심통은 녹림에 연적하의 명을 전파하기 위해 잠시 떠나 있는 상황.
상단 사람들은 그를 어려워해 다가가지 못했고, 덕분에 그는 이틀 내내 감정을 홀로 삭여야 했다.
해거름 무렵.
선두의 마차들이 느려지는가 싶더니 이내 멈춰 섰다.
연적하가 탄 짐마차도 덜컹하고 돌멩이 하나를 타고 넘은 뒤 멈췄다.
멍하니 앉아 있는 연적하를 향해 호위대주 태산검 하후찬이 말을 달려왔다.
“남천 대협!”
연적하는 의욕 없는 눈으로 하후을 보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이 길목을 막고 있습니다. 죽산에서 만났던 자들과 비슷한 것 같아…….”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웅크리고 있던 연적하가 벌떡 일어났다.
“도적인가요? 죽산에서 만났던 자들과 비슷하다고요?”
“아직 말을 섞어 보지 않아 도적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들에게서 느껴지는 음험한 기운이 죽산과 비슷해 대협께 먼저 왔습니다.”
“가 보죠.”
연적하가 마차를 밟으며 선두로 쭉쭉 날아갔다.
마침내 마차의 선두에 도착한 연적하는 크게 한 걸음 더 내디뎠다.
쉬이익-.
단숨에 호위대까지 뛰어넘은 그는 정체불명의 사람들 앞에 표표히 떨어져 내렸다.
파천대 대주 시산혈도 유해가 호법인 귀도비마 뇌공에게 고개를 돌렸다.
“호법님. 마차에 달린 깃발을 보니 금인상방의 상단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정말 연적하라는 애송이가 있겠습니까?”
“없을 거라 생각하느냐?”
“하남성 분위기가 이전과 달라졌다는 걸 느끼고 녹림으로 튀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너는 연적하가 허언을 했다고 생각하느냐?”
“눈치가 있는 놈이라면 항거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 테니까요. 그걸 모른다면 백번 죽어도 할 말이 없겠지요.”
“지금 하나가 뒤쪽으로 달려갔으니 곧 알게 되겠지.”
뇌공의 시선이 상방의 마차를 향했다.
잠시 후 한 남자가 길게 늘어선 마차 지붕을 툭툭 밟으며 달려왔다.
추호의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는지 극히 가벼우면서도 단호한 움직임이다.
마지막 마차를 박차고 허공으로 떠오른 그는, 무려 십여 장(약 30미 터)의 거리를 한걸음에 뛰어넘어, 파천대 앞에 떨어져 내렸다.
그 가공할 신법에 놀란 유해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연적하는 정체불명의 사람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모두 열둘.
선두의 두 사람 중에 중년 남자는 심통보다 아래고, 노인은 심통보다 위였다.
저 정도 고수라면 녹림이든, 천지맹에서든 한번은 보았을 텐데 모두가 낯설었다.
마침내 연적하의 입이 열렸다.
“당신들. 죽산이나 낭산에서 상단을 공격한 무리들과 관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