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4
84회. 그런데 누구세요?
꽤나 화가 났는지 대력귀의 눈에서 검은 연기가 풀풀 피어났다.
그래도 충격이 컸던지 대력귀는 바로 움직이지 못하고 으르렁거리기만 했다.
연적하도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구천세법을 온몸으로 받아 낸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의천검존조차도 구천세법을 정면으로 상대하지 못했다.
그런데 대력귀로 보이는 저 괴생명체는 구천세법을 맨몸으로 받아 내고도 멀쩡했다.
‘그럼 대체 뭐로 저걸 상대하지?’
아직 구천구검이 남았지만 지금 같아서는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크르르르…….”
충격에서 벗어나고 있는지 대력귀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점점 또렷 해졌다.
움찔.
대력귀의 손가락이 미미하게 움직였다.
그때까지도 연적하는 적당한 수법을 떠올리지 못했다.
다음 순간 대력귀가 벼락처럼 연적하를 향해 몸을 던졌다.
지금까지 막무가내로 천천히 걷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신속한 움직임이다. 그 빛살 같은 속도는 절정고수들의 이형환위에 가까웠다.
연적하는 거의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부지불식간에 그가 펼친 검공은 구천구검의 일 식 현녀강림이었다.
구천세법이 통하지 않아 구천구검으로 넘어간 것이다.
조여 오던 대력귀의 양손이 뒤로 튕겼다.
연이어 번개처럼 뻗어 나간 검 끝이 대력귀의 가슴에 닿았다.
푸욱.
이번에는 검 끝이 한 치(손가락 한 마디 정도)나 파고들었다.
순간 연적하의 눈에서 신광이 번득였다.
무슨 조화인지 검 끝으로 막강한 구천기가 뻗어 나간 것이다.
퍼엉.
검 끝이 대력귀의 가슴에 박힌 것과 구천기가 가슴을 관통한 것은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끄아아악!”
대력귀의 입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구천기는 대력귀의 가슴을 관통하고도 무려 삼 장(약 9미터)이나 더 나아갔다.
콰아아아-.
바로 그때 연적하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갑자기 양미간 사이의 신맥이 화끈거리더니, 무저갱과도 같은 흑암의 동혈이 보인 것이다.
그 속에 대력귀와 똑같은 형상의 검은 괴물이 몸부림치고 있었다.
‘뭐, 뭐지?’
깜짝 놀란 연적하는 검을 거두고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러자 흑암은 홀연히 사라지고 현실세계에서 괴로워하는 대력귀가 보였다.
“끄으으으…….”
대력귀의 입에서 나는 신음 소리가 점점 작아지는가 싶더니 곧 잠잠해졌다.
이제야 비로소 숨이 끊어진 것이다.
스스스스.
다음 순간 검붉은 그의 몸이 재로 변해 흩날렸다.
재 속에서 십여 개의 파란빛 덩어리들이 튀어나와 하늘로 둥실 날아갔다.
“어?”
놀란 연적하가 황급히 손을 뻗었다.
그러나 대력귀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먼지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연적하는 물론 양쪽의 무인들까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다. 시커먼 괴물로 변했던 대력귀가, 이번에는 가루가 되어 사라졌으니 그럴 만도 하다.
싸움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대력귀가 사라진 뒤 아무도 연적하의 앞을 가로막지 않았다. 천외천의 검공을 눈앞에서 보고도 그와 대적할 사람은 없었다.
홍방은 한 사람도 남김없이 개봉으로 돌아갔다.
당연히 소군평과 경천대의 무사들도 남양상방을 떠났다.
남양상방 방주 임원영은 청운관 관주 무산권 소우진에게 백배사죄하고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목숨 걸고 원정을 온 소우진이 고작 말로 끝낼 리가 없다.
결국 임원영은 소우진에게 남양상방의 지분 이 할을 넘기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낭인들은 정산을 받기 위해 양일객점에 다시 모였다.
다들 칼질 한 번 하지 않고 돈을 벌게 되어 희희낙락한 얼굴들이다.
소교가 그들에게 약속한 금액을 지불하는 동안 소우진은 연적하의 자리를 찾아갔다.
“감사합니다. 두 분 덕분에 오늘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소우진이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주위에 낭인들이 가득했지만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청운관의 관주라고 하지만 무림에서 그는 말단이다. 그로서는 칠파이문의 장로들을 만나기도 어려운 게 현실. 당연히 연적하와 같은 고수 앞에서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아, 예.”
연적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소우진이 연적하의 맞은편에 자리한 심통에게 양해를 구했다.
“심 대협, 잠시 앉아도 되겠습니까?”
심통은 무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허락을 받은 뒤에야 소우진은 나무 의자에 엉덩이를 걸쳤다. 그만큼 소우진에게 연적하와 심통은 아득히 높은 곳에 있는 존재였다.
“두 분이 아니었다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전 재산을 다 드리고 싶지만, 딸린 식구가 많아서 그럴 수도 없고. 허허.”
소우진은 어색한 마음에 너털웃음을 흘렸다.
평생 가도 얼굴 한 번 볼까 말까한 고수들을 낭인으로 고용할 줄이야!
연적하와 심통은 멀뚱멀뚱 소우진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 모두 체면치레와 거리가 먼 사람이기에 관심은 돈에 쏠려 있었다.
“육 일 동안 저희가 모시고 계셨으니 약속대로라면 두 분께 각각 천팔백 문을 드려야 하지만……. 벼룩도 낯짝이 있지 제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해서 각각 은자 육십 냥씩 드릴까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십팔 냥이 육십 냥으로 훌쩍 뛰었다.
소우진은 일당으로 은자 열 냥을 부르고 두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사실 그 금액은 칠파이문의 장로들을 모실 때 드는 비용이었다. 소우진으로서는 이 와중에도 나름 후려친 셈이다.
“예.”
연적하는 은자 육십 냥이라는 거금에 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매검(賣劍)을 해 본 적이 없어 아직 자신의 가치를 몰랐다. 그건 한평생 노략질만 해 온 심통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소우진이 뒤쪽을 향해 손짓했다.
기다리고 있던 풍운대 대주 왕인걸이 탁자 위에 목함을 올려놓았다.
“은자 백이십 냥입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강호 도의를 위해 애써 주신 두 분의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언제라도 낙양을 지나실 일이 있으면 청운관에 들러 주십시오.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소우진이 탁자에 닿도록 머리를 숙였다.
“아, 예.”
연적하는 시선을 목함에 두고 건성으로 답했다.
실컷 빈둥거리고 하루에 열 냥이나 받다니 녹림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정산을 끝낸 소우진이 심통에게 물었다.
“저어, 그런데 심 대협. 대력귀는 대협의 손에 죽은 게 아니었습니까?”
“그랬지.”
“허어! 어떻게 그런 일이……. 혹시 유명교의 그 힘과 관계가 있는 걸까요?”
유명교의 힘이라면 초능이다.
정의맹 쪽 문파들은 ‘유명교가 수도사를 제물로 바쳐 초능을 얻는다’고 믿었다.
“모른다.”
심통은 무림의 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는지라 길게 말하지 않았다.
소우진은 궁금한 게 많았지만 더 묻지 못했다.
심드렁한 두 고수의 얼굴을 보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소교가 한창 정산 중일 때 세 청년이 객점으로 들어왔다. 낙양오협이었다.
그들은 감히 연적하의 옆으로 가지 못하고 멀찍이 떨어진 곳에 앉았다.
함께 온 삼대문파 사람들은 남양상방과의 결전 직후 낙양으로 돌아갔지만, 이 세 사람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객점까지 와 본 것이다.
세 청년은 멀찍이서 연적하와 심통을 힐끔거리기만 했다.
청운관의 관주도 설설 기는 마당에 이름 없는 후배들이 먼저 다가갈 수는 없었다.
그사이 낭인들의 정산을 마친 소교가 세 청년의 자리로 다가갔다.
“어머, 아직 출발 안 하셨네요?”
첫째인 황동엽이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대력귀에 대한 새로운 소식이 없을까 해서 와 봤습니다.”
그는 기지를 살려 대충 변명했다.
소교는 그의 말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남양상방에서의 싸움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질 법한 생각이었다.
“아버지께서도 넌지시 물어봤는데 모른다고 하셨대요.”
“역시 그렇군요.”
“그런데 세 분은 연 소협과 어디서 만난 거예요?”
전에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연적하의 무위가 너무 뛰어나니 좀 더 알고 싶었다.
“험, 험, 강호행을 다니던 중에 우연히 만났습니다.”
황동엽은 연적하의 정체를 밝히지 않았다.
스스로 와룡장 출신이라고 한 그를 녹림이라 까발릴 수는 없었다.
그 정도로 그는 연적하의 눈 밖에 나기를 꺼려 했다.
생각이 조금 깊어졌는지 오중산과 손상극도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소교는 ‘흐응’ 하고 콧소리를 내며 세 남자의 표정을 살폈다.
뭔가 있는 것 같은데 당최 입을 열지 않는다.
그녀는 기루처럼 밝히기 불편한 곳에서 알게 된 거라고 막연하게 추측했다.
***
하남성 개봉.
정오 무렵.
두 남자가 도시 중심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있는 사합원(四合院, ‘ᄆ’ 자 형식으로 지어진 주택)을 둘러보고 있다. 풍연초와 탁고명이다.
풍연초가 살던 집을 찾아간 것은 한 달쯤 전이다. 그러나 그의 집은 폐가로 변해 있었다. 그때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찾아온 곳이 바로 이 사합원이다.
“형님, 저 집 같은데요?”
“…….”
풍연초가 복잡한 표정으로 탁고명이 가리키는 집을 바라보았다.
탁고명은 찾아다니던 집 앞에서 의형의 눈치를 살폈다.
형수가 아이 둘을 데리고 나간 게 벌써 오 년 전. 이웃들 말로는 바느 질 솜씨가 좋아 저 집 주인마님이 데리고 갔다는데,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려웠다.
일단 사방원의 규모가 주변에 인심을 베풀며 살 정도로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바느질은 핑계고 느낌상 첩실로 데려간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풍연초의 표정도 어두웠다.
한참 만에 풍연초가 자신 없는 소리로 물었다.
“굶어 죽지는 않은 것 같은데 그냥 돌아갈까?”
“형님, 여기까지 왔는데 그래도 사는 건 보고 가야죠. 그냥 가면 나중에 계속 궁금할 것 같은데.”
“그렇겠지?”
표정을 보니 궁금하긴 한 모양이다.
“까짓것 갑시다.”
머뭇거리는 풍연초를 뒤에 두고 탁고명이 한 발 앞서 걸었다.
탕탕탕.
탁고명이 점잖게 대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안쪽에서 소년의 음성이 들려왔다.
“누구세요?”
“이 집에 바느질 잘하는 임씨 아주머니가 살고 있다는데, 맞느냐?”
탁고명의 물음에 소년이 답했다.
“맞아요. 어머니에게 일감 맡기러 오셨어요? 보통은 아주머니들이 오시던데…….”
중얼거리던 소년이 문을 살짝 열었다.
탁고명은 의형을 위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한숨을 푹푹 내쉬던 풍연초가 마지못한 얼굴로 나섰다.
그는 넋 나간 얼굴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십이 년 전 다섯 살이던 아이는 그새 커서 못 알아볼 정도였다.
남자 둘을 살피던 아이, 풍운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어, 일감을 맡기러 오신 거 아니에요?”
“어머니는 계시냐?”
긴장으로 풍연초의 음성이 가볍게 떨렸다.
“예, 그런데 누구세요?”
풍연초가 머뭇거리고 있을 때다.
대문 옆에 붙어 있는 도좌방의 문이 열리며 중년 여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여자와 풍연초의 눈이 마주쳤다.
임지령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몇 번이나 눈을 깜빡이며 풍연초를 보았다.
십이 년 전 가족들을 버리고 홀로 야반도주한 남편이 돌아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