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52
852회. 천둔검의 비결이라고?
파천마군 석무해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그는 자신이 당금 무림의 천하십대고수 중에 으뜸이라 여기고 있었다.
지금까지 천하십대고수들이 비무를 통해 우열을 가린 적은 없다.
하지만 드러난 그들의 행적으로-순전히 재미 삼아-대략의 서열이 회자(膾炙) 되었는데, 최고의 자리에는 언제나 석무해의 이름이 있었다.
물론 정파인들은 소림사의 원공선사나 무당파의 태허 진인을 으뜸으로 쳤지만, 그래도 세간에 가장 널리 알려진 사람은 석무해였다.
“어디에서 그런 소리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모두 헛소문이에요.”
연적하는 시치미를 뗐다.
석무해가 오봉십걸 다음으로 그와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천하십대고수들과 자리다툼을 할 생각이 없었다.
상계(上界)인 구주(九州)에서 반신(半神) 소리까지 들은 내가 무림인들의 서열 놀이에 끼면 되나.
석무해가 연적하의 본심을 알았다면 분기탱천했겠지만 그는 다르게 생각했다.
‘나와의 싸움을 꺼리는군.’
천하십대고수의 서열을 두고 총채주와 싸우고 싶지 않은 것이리라.
체면에 연연하지 않는 그의 성정을 생각하면 이해 못 할 바가 아니다.
삼 년쯤 전에 본 그의 무위는 자신보다 한두 수 아래였다.
무신(武神)이 아닌 다음에야 삼 년 동안에 그 간격을 좁힐 수는 없다.
설사 기연으로 그가 천하십대고수의 반열에 들었다 해도 상관없다.
생각해 보면 싸워 보지 않은 천하십대고수들이 더 많았다.
그들과도 아직 손속을 겨뤄 보지 않았는데 연적하와 굳이 겨뤄야 할까?
거기까지 생각하자 살짝 일어났던 투기가 눈 녹듯 스르륵 사라졌다.
“너의 기도를 보니 헛소문만은 아닌 것 같은데.”
석무해는 떠보듯 말하고 연적하의 안색을 살폈다.
연적하의 상태는 이상했다.
삼 년 전의 그는 태산과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마치 바람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종잡을 수 없었다.
무공이 극에 이르러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를 ‘노화순청’ 이나 ‘반박귀진’이라 한다.
그러나 천외천의 경지에 들면 그것조차도 꿰뚫어 볼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연적하는 정말 평범해 보였다.
자신의 눈에 그렇게 보였다면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의 얼굴을 아는 게 아니라면, 병장기마저 소지하지 않은 그를 무림인으로 볼 사람은 없으리라.
“내가 특별하기는 하죠.”
겸손과 담 쌓은 그의 대답에 석무해는 피식 웃고 말았다.
저럴 때 보면 수준이 높지 않은 것 같기도 같다.
“이전에는 검을 가지고 다니더니 맨손이구나? 설마 검술을 포기한 건 아닐 테고.”
석무해가 묘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가 허공에서 검을 꺼내 쓴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소문이라는 게 본래 과장되기 마련이라 귓등으로 흘려들었는데 왠지 마음에 걸렸다.
연적하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답했다.
“검선 여동빈이 쓰던 검을 얻어서 그걸 가지고 다녀요.”
“여동빈의 검? 하지만 너는 빈손이 아니냐?”
“이걸 또 보여 드려야 되나…….”
연적하는 잠시 망설였다.
천둔검을 본 석무해가 또 투기를 불태울까 봐 신경이 쓰여서다.
하지만 저렇게까지 쳐다보니 보여 주지 않을 수도 없었다.
결국 그는 허공에서 천둔검을 꺼냈다.
“이게 여동빈이 쓰던 천둔검이에요.”
석무해는 허공에서 검이 툭 튀어나오자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고색창연한 저 검은 눈속임이 아니라 실재하는 것이었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연적하가 검을 손에 쥔 순간, 마치 벼랑 끝에 선 것 같은 아찔한 현기증이 밀려왔다.
서둘러 정신을 차린 석무해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어느새 양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 있었다.
머리는 과거의 기억으로 연적하를 아래로 보는데 몸은 그렇지 않았다.
보통 사람은 그런 상황이면 얼렁뚱땅 넘어갔을 테지만 석무해는 달랐다.
두려움 앞에서 돌아서면 평생 극복하지 못한다.
천외천의 경지에서 두렵다고 유야무야 넘기는 건 더더욱 좋지 않다.
무공이 정체되는 것은 기본이고 심할 경우 주화입마까지도 생길 수 있다.
마음이 꺾인다는 것은 그처럼 무서운 것이다.
가라앉았던 석무해의 눈에서 투기가 활화산처럼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아무래도 내가 잘못 생각했던 것 같군. 소문이 축소된 것이었어. 그렇지 않나?”
연적하는 부인하지 않았다.
그저 심정적으로 가깝다고 여겨지는 사람과의 싸움이 싫었을 뿐이다.
하지만 살아가다 보면 피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연적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많이 축소됐죠. 내가 천하십대고수와 어깨를 나란히 할 일은 없을 거예요.”
석무해는 푸들푸들 웃었다.
역시나 겸손을 모르는 녀석이다.
천하십대고수를 발아래로 생각한다는 것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다니!
“한 수 겨루어 보면 알겠지. 네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그러시든지요. 아는 사이라고 봐주지 않을 테니까, 선은 넘지 마세요.”
석무해가 눈을 찡그렸다.
배려인지 경고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을 위한답시고 한 말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 저런 소리를 했다면 바로 목이 날아갔을 것이다.
“염두에 두지.”
석무해는 자존심을 부리지 않았다.
아직도 가라앉지 않은 양팔의 소름을 보면 그럴 여유가 없었다.
“따라오거라.”
말과 함께 석무해는 자리에서 일어나 객점 밖으로 나갔다.
애매한 얼굴로 그의 뒷모습을 보던 연적하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객점을 지키고 있던 십이마군들이 석무해를 향해 모여 들었다.
그들을 보던 석무해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태상호법과 계산할 일이 있다. 너희는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거라.”
“예!”
십이마군들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천하십대고수 소리를 듣는 무인 사이에 계산할 일이란 뻔했으니까.
이윽고 석무해와 연적하가 밤하늘을 가르며 사라졌다.
천독미랑이 귀영자군에게 슬쩍 물었다.
“첫째 사형, 몰래 따라가 볼까요?”
“총채주님에게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
“쳇! 따라가지 말라는 소리네요?”
두 사람의 대화에 음풍묘군이 불쑥 끼어들었다.
“첫째 사형, 총채주님이 이기겠죠?”
그러자 귀영자군이 황당한 얼굴로 음풍묘군을 보았다.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태상호법이 운 좋게 천하십대고수의 말석을 차지하게 되었다 해도, 총채주님은 천하제일고수시다.”
“그런데 총채주님의 안색이 너무 허전해 보여서 말입니다. 지금까지 저런 모습을 보여 준 적이 없지 않 습니까?”
“허튼소리.”
귀영자군은 음풍묘군의 말을 일축했다.
십이마군들보다 어린 연적하에게 총채주가 진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북쪽으로 달려가던 석무해는 황하가 앞을 가로막자 비로소 멈춰 섰다.
달빛이 부서지는 황하의 수면을 보던 석무해가 돌아섰다.
“네가 열일곱에 처음 만났으니 벌써 구 년 전이로군. 너의 외모는 그때와 별로 달라지지 않았구나.”
“노안이라고 흉보는 거예요?”
“생사결은 아니겠지만 최선을 다할 것이다. 너도 최선을 다하는 게 좋을 게다.”
“내가 최선을 다하면 총채주님은 아무런 기회도 갖지 못해요. 설마 그런 걸 원하는 건 아니죠?”
“흥! 방자한 놈. 나도 겸손한 사람은 아니지만 네놈은 지나치게 광오하구나.”
고개를 젓던 석무해가 천천히 검을 뽑았다.
노인치고 기골이 장대한 그에게서 태풍과도 같은 투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연적하는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를 응시하기만 했다.
그가 자신의 투기에 조금도 대항하지 않자 석무해는 이를 악물었다.
이런 상황에서 허장성세를 부릴 이유는 없을 테니 저것이야말로 연적하의 본모습일 게다.
천하십대고수의 으뜸이라 불리는 자신의 투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내다니!
그는 구 년 전처럼 자신의 최고 절기인 암천수라검식을 펼쳤다.
쐐애애액-.
석무해의 검이 환상처럼 연적하에게 쏘아져 갔다.
연적하는 허공에서 천둔검을 꺼내 가볍게 휘둘렀다.
쩌엉-!
기기묘묘하게 나아가던 석무해의 검이 단 일 검에 뒤로 튕겨 났다.
석무해의 얼굴이 굳었다.
단 한 번의 검격에 손아귀가 찢어질 것처럼 욱신거렸다.
황당하게도 저 어린 연적하의 내공이 자신보다 위에 있을 줄이야!
마치 철벽이라도 후려친 느낌이다.
그는 다시 한번 연적하를 향해 돌진했다.
차차차창! 차창-!
검과 검이 맞닿을 때마다 어둠 속에서 불꽃이 튀었다.
‘큿! 암천수라검식이 통하지 않는구나…….’
암천수라검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펼쳤지만 연적하는 단 한 걸음도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석무해는 초식으로 그를 압도하지 못한다는 걸 알자 검을 크게 휘두른 뒤에 서너 걸음 뒤로 빠졌다.
“조심해라!”
이윽고 석무해의 검 끝에서 검은 빛깔의 검기가 실처럼 풀어져 나왔다.
검기의 실타래가 연적하의 주위를 둘러쌌다.
구 년 전처럼 암천수라검기의 그물로 그를 가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과거에는 검기가 실처럼 가늘었지만 지금은 손가락처럼 굵직했다.
그것만 보아도 석무해가 얼마나 진지하게 싸움에 임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한순간 연적하의 눈에서 안광이 번득였다.
과거에는 풍화겁륜의 수레바퀴로 검기의 그물을 조금씩 찢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석무해의 최선에 자신도 어느 정도 화답을 해 주고 싶다고 할까?
‘뭐가 좋으려나?’
머릿속으로 수많은 검공을 떠올리던 그의 눈에 천둔검이 보였다.
도가(道家)의 보물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천둔검은 검법이기도 하다.
연적하는 그 속에서 여동빈의 검을 발견했지만, 지금도 도가에서는 검법으로 천둔검을 사용한다.
천둔검법의 요결은 ‘저절로 그러한 대로 놓아두고 인위적인 요소를 없애는 것[無爲而爲]’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초식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언제부터인가 연적하의 무초식은 천둔검법의 요결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것도 좋겠군.’
하늘로 치솟았던 천둔검이 수직으로 떨어져 내렸다.
마치 실타래를 일검에 양단이라도 하려는 듯한 모양새다.
연적하를 둘러싸고 있던 손가락 굵기의 검기들이 가래떡처럼 툭툭 끊어졌다.
퍼퍼퍼퍽-.
대저 검기의 발원지는 인간이다.
오랜 세월 연성한 검기가 강제로 파괴되면서 생긴 반발력이 석무해에게 되돌아갔다.
‘윽!’
석무해의 상체가 가볍게 흔들렸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기절을 하고도 남을 충격이지만 그의 눈은 형형하게 빛났다.
과거 연적하는 풍화겁륜이라는 고절한 수법으로 암천수라검기를 잘라 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수직으로 검을 내리긋기만 했다.
암천수라검기로 만들어 낸 검망(劍網)은 간단히 벨 수 있는 게 아니
천하제일의 법보(法寶)나, 입신(入神)의 내력, 혹은 천의무봉(天衣無縫)한 검공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여동빈의 검이 가진 특별한 공능일까?
어쩌면 이해할 수 없이 강한 내력의 힘인지도 모른다.
‘설마……. 아니겠지.’
천의무봉한 검공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고작 스물여섯 살의 연적하가 벌써 그런 경지에 도달했을 리 없지 않은가.
그런 석무해의 기대는 금방 허물어졌다.
“어때요? 마지막의 무하유(無何有)는 내가 터득한 천둔검의 비결이에요.”
크게 실망한 석무해는 검 끝을 지면으로 내렸다.
“천둔검의 비결이라고? 천둔검은 그 법보를 뜻하는 게 아니었느냐?”
“검법의 구결로도 꽤 쓸 만하다고요. 무하유는 내가 천둔검의 검결에서 터득한 거예요.”
석무해는 연적하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암천수라검기의 검망을 자른 수법에 대한 평가치고 너무 박해서다.
“그보다 더 대단한 수법이 있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맞느냐?”
“당연하죠.”
그 말에 자극을 받았는지 축 늘어져 있던 석무해의 검이 고개를 쳐들었다.
그런 그를 힐끔 보던 연적하가 천둔검을 황하로 던졌다.
황하 수면 위를 날아가던 천둔검이 점점 커지더니 마침내는 강폭의 절반을 덮었다.
연적하가 검결지를 까닥이자 거대한 천둔검이 방향을 틀어 석무해에게 날아갔다.
“이건 하늘과 땅을 포용한다는 포라천지(包羅天地)의 수법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