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53
853회. 호랑이와 여우
거대한 검이 날아오자 파천마군 석무해는 반사적으로 들고 있던 검을 날렸다.
이기어검이 화살처럼 천둔검으로 날아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연적하의 검공을 술법으로 의심하고 있었다.
저런 크기의 검이란 애초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술법으로 만들어진 환영이라면 자신의 이기어검에 관통당하고 말 터였다.
채앵-!
그러나 튕겨 난 것은 그의 검이었다.
검결지를 통해 전해지는 반발력에 석무해의 팔꿈치가 뒤로 밀렸다.
‘헉! 실재하는 검이라고?’
자신의 이기어검은 분명히 물리적인 힘에 의해 튕겨졌다.
저 검이 찌르거나 벨 수 있는 진짜 검이었다니!
튕겨 났던 석무해의 이기어검이 빠르게 천둔검을 향해 날아갔다.
실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달아나지 않고 멍하니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는 저 검에 압살당하고 말 게다.
석무해의 검이 천둔검의 주위를 날아다니며 쉬지 않고 부딪쳐 갔다.
채채채챙-!
그래도 천둔검은 유유히 석무해를 향해 날아갔다.
석무해는 연적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천둔검을 막을 수 없다면 시전자인 그를 공격하는 수밖에 없었다.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의 검술은 이미 천의무봉의 경지에 올라 있으니 초식으로 그를 누르지 못한다.
내공은 말할 것도 없다.
극단적인 수법 외에 그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할 수단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문득 ‘선을 넘지 말라’던 그의 당부가 떠올랐다.
석무해는 다시 거대한 검을 보았다.
살기니 투기니 하는 감정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보여 주기 위험이었던 건가.’
그는 자신이 날려 보냈던 이기어검을 회수했다.
그러는 동안 거대한 천둔검은 석무해의 일 장(약 3미터) 앞에 도달했다.
고오오오-.
검에서 뿜어져 나온 대자연의 기운이 천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문득 석무해는 연적하의 말을 떠올렸다.
-많이 축소됐죠. 내가 천하십대고수와 어깨를 나란히 할 일은 없을 거예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광오 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이었다.
천하십대고수들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저런 검공을 선보일 수 없다.
저건 확실히 인외(人外)의 경지다.
연적하를 천하십대고수들 중에 하나 정도로 생각한 것은 자신의 실수였다.
천둔검이 석무해의 앞에 이르자 연적하는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순간 거대한 검은 환영처럼 허공중에 스르륵 사라졌다.
우두커니 서 있던 석무해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자신의 검을 갈무리했다.
“내 눈으로 보았지만 믿어지지 않을 만큼 대단한 검공이다. 너를 천하십대고수에 비교한 것이 부끄럽구나.”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더 안 보여 줘도 되죠?”
“천도검과 같은 검공이 더 있느냐?”
“천둔검은 여동빈 신선께는 송구한 말이지만 입문 정도밖에 안 돼요.”
“…….”
석무해가 황망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천둔검만 해도 인외의 경지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건만, 입문이란다.
“됐다. 그 정도만 해도 너의 무위가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알겠다. 다행이구나.”
“다행이라고요?”
“최근 하남성에서 활동하는 정체불명의 도적들을 조사하고 있다 들었다.”
“그랬죠.”
“알려 주랴?”
“알아요?”
연적하가 시큰둥한 얼굴로 되물었다.
한채연이 거기까지만 했으면 좋겠다고 한 뒤로 사실상 마음을 접은 상태였다.
그래도 어떤 세력이 그런 짓을 했는지는 궁금했다.
“강호에서 녹림의 흉내를 내면서 그런 천인공노할 짓을 벌일 단체는 거의 없다. 녹림을 아래로 내려다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짓이지.”
“유명교 말고도 그런 문파가 있어요?”
“마교다.”
“마교요?”
연적하가 놀란 눈으로 석무해를 보았다.
무림 단체인 마교가 왜 밑도 끝도 없이 상단을 괴롭힌단 말인가?
“그렇지 않아도 최근 마교 고수들에 대한 목격담이 조금씩 들렸다. 그들이라면 녹림 흉내를 내면서 상단을 공격하고도 남음이 있다.”
“마교가 원래 도적질도 했어요?”
“과거에는 상단을 노리지 않았다. 최근 강호의 흐름이 조금 바뀌고 있음을 아느냐?”
“모르겠는데요?”
“이전에 무림 문파들은 상방과 공생하는 관계였다. 무림 방파가 상방에 제자들을 제공하고, 상방이 그들을 고용해 세를 확장하는 식이었지.”
“지금도 그러고 있잖아요.”
“과거의 상방은 무림 방파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방마다 호위대라는 게 있지. 상방이 자체적으로 자기 구역의 보호를 하는 경우도 많다. 금력이 무력을 손에 넣은 형국이랄까.”
“그게 상단을 공격하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데요?”
“상방을 손에 넣으면 그 상방이 관할하는 지역까지도 얻게 된다. 마교는 강호에 기반이 없다. 그들이 십대상방을 손에 넣으면 칠파일문과의 싸움은 더욱 수월해질 게다.”
“마교가 강호에 진출하기 위해 상방을 노리고 있다는 거네요?”
“맞다.”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적들의 무위가 왜 그렇게 높은지 의아했는데 이제야 알 것 같다.
마교의 고수들이라 생각하니 모든 의문이 풀린다.
“총채주님. 녹림과 마교의 관계는 좋은 편이었나요?”
“마교와 관계가 좋은 문파는 없다. 군림하지 않고 파괴만 일삼는 그들을 누가 좋아하겠느냐.”
“그럼, 녹림은 마교에 저항해 싸웠나요?”
“그때그때 달랐다. 큰 피해를 입고 대항한 적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숨어서 소나기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식이었지.”
“지금은요? 총채주님은 어떻게 할 생각인데요?”
“‘호랑이 없는 곳에 여우가 왕 노릇한다’는 말을 들어 보았느냐?”
“그게 왜 나와요?”
“마교가 호랑이라면 천하십대고수는 여우에 불과하다. 그 문제에 관해서는 나에게 선택권이 없다. 내가 너에게 묻고 싶다. 너는 어찌할 생각이냐? 네가 말한 대로 그들을 죄 다 죽일 것이냐?”
“…….”
연적하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들을 죽이는 것은 쉽다.
지금의 경우 마교도를 죽이지 않고 참아 넘기는 게 더 어려운 일이다.
한채연의 말대로 그만두어도 괜찮을까?
그런 악적들을 죽이는 게 오히려 천리(天理)가 아닐까?
한참을 고민하던 연적하가 말했다.
“좀 지켜보고 결정하려고요.”
“당연히 죽이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군. 심경에 변화가 온 모양이지?”
“철산이의 처가 더 이상 사람을 죽이지 않았으면 하더라고요.”
“이철산이 보살과 혼인을 했군.”
“여하튼 가르쳐 줘서 고마워요. 그래도 어떤 놈들인지 알게 되니 속이 시원하네요. 실은 그거 알려 주려고 부랴부랴 찾아온 거죠?”
“겸사겸사다.”
석무해가 계면쩍은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꽤나 큰 건이라 생각해 찾아왔건만 연적하의 무위를 알고 나니 모든 게 덧없다.
그런 석무해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고 연적하는 피식 웃었다.
생각해 보면 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복수를 도와주었고, 강호에서 입지를 다질 수 있게 해 줬다.
물론 그의 노림수도 있었지만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다.
그가 자신을 총순찰로 임명해 준 덕분에 천지맹에서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다닐 수 있었다.
“여하튼 감사합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네가 녹림의 태상호법임을 잊지 말아라.”
“당연하죠.”
“푸하하핫! 녹림의 태상호법이고 금제일인이니 녹림천하가 도래한 것인가!”
“내가 요즘 상단의 호위로 일하고 있으니 녹림천하는 아닌 듯하네요.”
연적하가 딴지를 걸었다.
가뜩이나 어수선한 세상에 녹림천하라니? 그건 안 될 말이었다.
“말 나온 김에 한마디 해야겠다. 그 일 그만두면 안 되겠느냐? 돈 때문이라면 얼마든지 지원해 줄 용의가 있다.”
석무해가 진지한 얼굴로 연적하를 보았다.
녹림의 태상호법이 상단의 호위로 일을 하고 있다니!
전후 사정이야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남들 보기 부끄러웠다.
“그건 안 되겠는데요? 내가 하겠다고 약속한 일이라서요.”
“끙! 그렇다면 다음에 돈이 필요하면 나에게 사람을 보내도록 해라. 나는 네가 상방과 관계된 일은 가급적 맡지 않았으면 한다.”
“왜요? 녹림천하를 위해서요?”
“아니, 뭐, 꼭 그렇다기보다는. 그래도 태상호법의 체면이 있으니까…….”
석무해가 말끝을 흐렸다.
녹림에게 상방은 토실토실 살이 오른 먹잇감에 불과하다.
녹림의 태상호법이 먹잇감을 지켜 주다니? 그건 녹림을 부정하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석경장의 장주인 연적하는 석무해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연적하는 스스로를 녹림도가 아닌 석경장의 장주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 때문에 녹림의 체면이 구겨진다면 내가 태상호법을 그만둘게요.”
“어이쿠! 아니다. 그냥 해 본 소리이니 신경 쓸 것 없다. 너는 하고 싶은 걸 해라.”
석무해는 괜히 말을 꺼냈다가 본전도 찾지 못하고 서둘러 매듭지었다.
***
잠시 후 연적하와 석무해는 객점으로 돌아갔다.
석무해는 그를 마중 나온 십이마군과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연적하가 안으로 들어가자 심통이 실실 웃으며 다가왔다.
“공자님. 계산은 잘 끝내셨습니까?”
“그냥저냥.”
“그래도 총채주님의 표정이 좋아 보이시던데요?”
“좋기만 하겠어? 새파랗게 어린놈이 나보다 강해져서 돌아왔다고 생각해 봐. 아마 똥 밟은 기분일 거야. 어휴!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네.”
연적하가 과장되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렇기도 하겠네요. 총채주님의 경우 자타가 인정하는 천하제일인이었으니까.”
“들어가서 쉬지 왜 나와 있어?”
“공자님이 총채주님에게 불려 나갔는데 쉬다니요? 제가 의리 빼면 시체 아닙니까?”
“어라? 구주에서 내 뒤통수를 친 건 다른 사람이었나 봐?”
“남자가 지나간 이야기 하는 거 아닙니다. 그게 본심이 아니라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고, 총채주님께서 다른 말씀은 안 하시던가요?”
불리해진 심통이 얼른 말을 돌렸다.
“정체불명의 도적이 누군지 가르쳐 주시더라.”
“누구랍니까?”
“마교.”
“흐음! 역시 그들이었군요.”
심통은 마교 소리를 듣고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의문이 풀려 개운한 얼굴이다.
“죽일 거냐고 해서 모르겠다고 했어.”
“그런데 공자님. 그들이 정말 마교라면 순순히 물러가지는 않을 겁니다.”
“물러가지 않으면?”
“마교는 자기 편 하나가 죽으면 상대편 열 명, 백 명을 죽여 복수하는 자들입니다.”
“나한테 복수라도 하러 온다는 거야?”
연적하가 들뜬 얼굴로 눈을 끔뻑였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당한 사람치고 복수를 시도한 사람이 없어서다.
“공자님에게도 그럴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지금까지는 그랬습니다.”
“고민하지 않게 와 주면 좋겠다.”
그의 오락가락하는 마음을 짐작한 심통이 푸들푸들 웃으며 말했다.
“그들도 머리가 있다면 오지 않을 겁니다.”
심통은 마교도들이 연적하의 무위를 알 때가 되었으니 포기할 거라 믿었다.
“안 오면 말고.”
연적하가 심통을 지나쳤다.
손에 피를 묻힌다는 것은, 상대가 아무리 악인이라 해도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그는 마교도들이 복수 운운하며 찾아오지 않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