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96
896회. 사고를 치고 온 건 아니겠지?
호광성.
황강.
단풍현 백수하.
다시 구름을 타고 라전현(남맹의 숙영지)으로 돌아가던 중에 심통이 소리쳤다.
“공자님! 저기 저 사람들 남맹 아닙니까?”
“남맹이라고? 숙영지는 아직 일각(15분)쯤 더 가야 할 것 같은데?”
연적하는 목을 길게 빼고 구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과연! 남맹의 고수들이 강을 따라 걷고 있었다.
“맞네, 맞아!”
잠시 후 하얀 구름 한 덩어리가 남맹 행렬 후미에 살며시 내려앉았다.
연적하와 심통은 시치미를 뚝 떼고 이 대에 합류했다.
하지만 주인 없는 말을 끌고 가던 이 대에서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
청운검 남궁천이 연적하에게 슬그머니 다가갔다.
“어딜 다녀왔느냐?”
“잠시 바람을 좀 쐬고 왔어요.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출발 전에 네가 없어서 한바탕 소란이 났었다. 내가 별일 아닐 거라고 둘러대기는 했다만. 아버지가 많이 궁금해하셨다.”
연적하가 뻘쭘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이건 검왕 남궁벽을 찾아가 보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아직 적당한 변명거리를 찾지 못해서 지금 당장은 곤란했다.
“아아.”
결국 그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끝내 연적하가 부친에게 가 보겠다는 말을 하지 않자 남궁천이 물었다.
“설마 그 짧은 시간에 사고를 치고 온 건 아니겠지?”
“사고요?”
“마교를 찾아갔다든지 하는 일 말이다.”
“형님. 그렇지 않아도 길눈이 어두운 제가 누굴 찾아다녀요?”
거짓말은 아니다.
교주에게 오라고 했지 그를 찾아간 적은 없으니까.
남궁천이 미심쩍은 눈으로 연적하를 힐끔거렸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길눈이 어두운 그가 마교를 만나고 왔을 것 같지는 않았다.
연적하는 남궁천이 반신반의하자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이 강은 뭐예요? 분위기가 있네.”
“양자강의 지류인 백수하다.”
“무한 주변에는 강도 많고 호수도 많네요.”
“사람이 살기에 적당한 곳이지.”
두 사람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때다.
선두에 있던 총사 반천일검 모용문이 말 머리를 돌려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연 대협. 맹주님께서 찾으십니다.”
“…….”
순간 연적하의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걸렸다.
올 것이 왔다.
“형님, 잠깐 다녀올게요.”
“어, 그래.”
남궁천이 조금 당황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며칠 전부터 부친과 연적하는 물과 기름처럼 서로 따로 놀았다.
그러다 결국 연적하가 심통을 데리고 말없이 숙영지를 이탈하기까지 했다.
연적하도 그럴 테지만 맹주인 부친의 속도 좋지는 않을 터였다.
선두로 이동하는 중에 모용문이지 나치듯 말했다.
“출발 전에 연 대협을 찾느라 작은 소란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것 때문에 부르시는 것 같습니다.”
“아, 예.”
“구천노도 선배도 보이지 않던데. 어디 급하게 다녀오신 모양입니다?”
“답답해서 바람 좀 쐬고 왔어요.”
“총사부의 말 상태가 좋지 않아 쉬엄쉬엄 움직였는데……. 혹 그것 때문은 아니겠지요?”
그러자 연적하가 모용문에게 고개를 돌렸다.
“총사님.”
“예?”
“내가 바보로 보여요?”
“그, 그럴 리가요. 제가 어찌 감히 천하의 남천 대협을 바보로 보겠습니까?”
“내 앞에서 말 상태가 나쁘네 어쩌네 하면 총사부의 말을 다 풀어 줄 거예요. 두 발로 뛰어다니기 싫으면 뻔한 소리 하지 마요. 두 번 말 안 해요.”
“…….”
모용문은 찔끔 놀라 입을 꾹 다물었다.
세간에 알려진 연적하의 성질머리를 생각하면 그러고도 남을 게 분명해서다.
잠시 후 연적하는 맹주이자 장인인 검왕 남궁벽과 말 머리를 나란히 하고 섰다.
“저를 찾으셨다고요?”
“어, 그래. 우리가 예정보다 빨리 이동해서 놀라지는 않았느냐?”
“예, 금방 찾았어요.”
“다행이구나. 다음에 자리를 비울 때는 이 대 사람들에게 살짝 귀띔이라도 해 주면 좋겠다. 이 대 사람들이 너를 찾는다고 마음고생을 조금 했거든. 그 말을 해 주려고 불렀다.”
“그럴게요. 미리 말씀드리지 않고 자리를 비워서 죄송해요.”
“괜찮다. 구름을 타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사람인데 답답했겠지”
눈치가 보인 연적하는 괜히 헛기침만 해 댔다.
어딜 갔었냐고 물을 줄 알았는데 엉뚱한 이야기만 하니 외려 답답했다.
결국 그가 먼저 물었다.
“어디 갔었냐고 안 물어보세요?”
“말해 주기 곤란하다면 묻지 않겠다.”
“우연히 호천맹 무한 지부 사람들을 만났어요. 목련산으로 가는 중이라고 하더라고요.”
“목련산?”
잠시 생각하던 남궁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지금쯤이면 호천맹 본진이 목련산에 도착했겠구나.”
하지만 담담하던 남궁벽의 얼굴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들을 쫓아온 마교의 부대 하나를 없앴어요. 어지간하면 참으려고 했는데 사람을 잡아먹으려 하더라고요. 그런 것들을 살려 두면 안 되잖아요.”
“부대라면 그 수가 몇이나 되더냐?”
“오십 명쯤 됐어요.”
“네 말대로 한 부대구나. 잘했다.”
고작 오십여 명이 괴멸된 정도로 흔들릴 마교가 아니다.
그러니 아직은 대세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터였다.
“그랬더니 마교 교주가 찾아오더라고요.”
순간 남궁벽의 얼굴이 굳었다.
“그를 죽였느냐?”
“네.”
“교주가 혼자 오지는 않았을 테고, 마교 본진은?”
“그들은 살려 주면 다시는 강호를 침략하지 않겠다고 해서……. 보냈어요.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사람을 죽일 정도로 제가 독하지 못하잖아요.”
“허면 마교는 천산으로 돌아갔느냐?”
“돌아가겠죠?”
연적하는 말을 얼버무렸다.
그가 아무리 뻔뻔해도 ‘마교를 목련산으로 보냈다’는 말은 하기 어려웠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모용문이 끼어들었다.
“맹주님. 정말 마교가 돌아갔다면 우리도 합비로 돌아가야 하지 않습니까?”
연적하가 마교 교주를 죽였다는 말이 선뜻 와 닿지 않았지만, 그와 같은 고수가 거짓말을 할 리 없으니 전쟁은 끝났다고 봐야 했다.
그는 연적하를 힐끔 보았다.
마교 교주를 단신으로 쳐 죽였다니 놀라울 뿐이다.
한편으로 ‘왜 그런 중대사를 혼자서 결정했느냐?’ 따지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찍힌 터라 그에게 무슨 짓을 당할지 알 수 없어서다.
그때 남궁벽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하아! 강호 도의를 위한 행동이었겠지만 이번 일은 아쉽게 됐구나. 남맹의 부흥을 위한 천금 같은 기회였거늘.”
그러자 연적하가 도발적으로 말했다.
“숙부님은 남맹의 부흥을 위해서 동도들이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하세요?”
깜짝 놀란 모용문이 남궁벽을 대신해 나섰다.
“연 대협. 맹주님의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순간 울컥한 연적하가 모용문을 쏘아보았다.
“아니면 뭔데요? 아까는 말의 상태가 나쁘다고 헛소리를 하시더니, 말해 봐요. 내가 마교를 물리쳐 줬는데 뭐가 아쉽다는 거죠?”
“저는 마교와의 싸움을 자양분 삼아……. 남맹의 기틀을 세울 수도 있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모용문은 그간 알게 모르게 해 온 일이 있어서 호천맹의 호 자도 꺼내지 않았다.
“그래요? 호천맹과 마교의 싸움에 어부지리(漁父之利)를 얻으려고 했던 건 아니고요? 총사님은 사람이 좀 솔직해 봐요. 요리조리 빠져나갈 생각만 하지 말고.”
연적하의 폭언에 모용문은 화가 났지만 참았다.
자신에 대한 그의 독설이 대부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마저 아니라고 부인했다가는 제멋대로인 연적하에게 무슨 짓을 당할지 몰랐다.
모용문은 맹주의 일에 나섰다가 본전도 건지지 못하고 슬쩍 물러났다.
자연스럽게 선두가 멈췄다.
모용문은 눈치껏 남맹의 고수들을 맹주와 연적하에게서 떼어 놓았다.
그렇게 했지만 두 사람의 어색한 분위기를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다.
한참 만에 굳게 닫혀 있던 남궁벽의 입이 열렸다.
“무림세가들은 정의맹과 천지맹을 위해 헌신했지만, 단 한 번도 주인이었던 적이 없다. 우리는 언제나 칠파일문의 손님이었지. 무림세가가 흥할 때는 귀빈의 대우를 받았지만, 몰락할 때는 외면당했다.”
그 부분은 연적하도 인정했다.
남궁세가가 유명교에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자 칠파일문은 숙소조차 내주지 않았었다.
저 유명한 남궁세가가 그런 대접을 받았으니 다른 무림세가는 말할 것도 없으리라.
“남궁세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칠파일문은 우리를 돌아보지 않았다. 너도 알다시피 우리는 자력으로 일어났다. 연이가 아니었다면 남궁세가는 아직도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게다. 나는 그것이 칠파일문의, 아니 세상의 진면목임을 알았다. 그래서 남궁세가가 주인이 되는 남맹을 만들었다. 지금 남맹의 주인은 칠파일문이 아니라 무림세가다.”
연적하는 속으로 ‘정확히는 남궁세가겠지요’라고 중얼거렸다.
실제로 그가 만나 본 남맹 사람들은 모두 남궁세가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호천맹과 남맹은 강호의 종주가 되기 위해 다투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 이 싸움에서 호천맹이 이기면 남맹은 와해되어 과거처럼 손님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반대로 남맹이 이긴다면 호천맹이 손님이 되겠지.”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그런다고 사람을 죽인다면 마교나 유명교와 다를 바가 없지 않나요?”
“내가 죽이는 게 아니라, 호천맹이 죽기를 자처했다. 세세토록 호천맹을 지탱해 나가기 위해서는 그들에게도 명예가 필요하니까.”
“그거야 맹주를 비롯한 칠파일문 장문인들의 생각이겠죠. 호천맹에 속한 군소 문파 사람들은 이유도 모른 채 죽어 나가는 거잖아요.”
연적하는 얼마 전에 만났던 천검문을 떠올렸다.
강간당하기 직전의 유소운과 잡아 먹힐 뻔했던 무한 지부 사람들…….
과연 그들이 원해서 자발적으로 그 자리에 갔을까?
아니다. 호천맹 맹주와 칠파일문의 욕심에 그런 꼴을 당하게 된 것이다.
남궁벽이 복잡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적하야. 너에게는 세상과도 맞서 싸울 힘이 있으니 옳고 그름만으로 판단해도 된다. 하지만 보통의 무인들이 그렇게 해서는 하루도 살아남기 어려울 게다. 삼류무사가 절정고수의 패악질을 보고 나무란다면 어찌 되겠느냐? 그는 죽고 말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알면서도 모른 척, 보고도 못 본 척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모용문과 내가 어부지리를 얻으려고 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
연적하는 반박하지 못했다.
숙부의 말처럼 남맹이 처한 상황에서 그것은 당연한 선택일 수도 있었다.
“남맹에 너와 같은 고수가 있다면, 나는 정도만 걸을 수 있다. 천이를 통해 ‘남맹을 위해 일하겠느냐?’고 물어봤던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너는 거절했지. 네가 없는 남맹이 얼마나 오래갈 것 같으냐? 호천맹의 극렬한 견제가 시작되면 십 년도 버티지 못할 게다. 그래서 호천맹에 희생이 따를 것을 알면서 수수방관한 것이다. 나는 그렇게라도 남맹의 수명을 늘리고 싶었다.”
“그건 흔히들 말하는 차도살인지계와 다를 바가 없잖아요. 말은 그럴싸하지만 결국 마교의 칼로 호천맹 사람들을 죽이겠다는 거라고요.”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숙부님! 생각할 수도 있는 게 아니라 그런 거라고요. 나는 숙부님이 어제까지의 동도들을 죽일 정도로 독한 분인 줄 몰랐어요. 아무리 남궁세가가 홀대를 당했다고 해도 너무하신 거 아닌가요?”
“홀대? 내가 그깟 홀대받은 일로 남맹을 세운 줄 아느냐!”
‘홀대’라는 말에 울컥한 남궁벽이 언성을 높였다.
연적하가 자신을 그런 소인배로 보고 있었다는 게 너무 답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