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933
933회. 원하는 대로 해 주마
남맹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유명했다.
천하십대고수인 검왕 남궁벽과 그의 사위인 남천 연적하 덕분이다.
처음에는 누구도 남맹을 호천맹에 비교하지 않았다.
호천맹이 정파 연합이라면 남맹은 합비에 생긴 지역 모임인 까닭이다.
그러나 유명교와 마교에 대한 남맹의 발빠른 대처 이후 평가가 바뀌었다.
사람들은 남맹을 유명무실한 호천맹의 대안으로 인식했다.
그 뒤로 비교조차 되지 않던 남맹은 모든 면에서 호천맹을 앞섰다.
자연히 남직례성뿐 아니라 천하의 방파들이 남맹에 가입하기를 원했다.
실제로 가입한 방파도 백여 개가 넘었다.
당가가 있는 사천성과 팽가가 있는 북직례성에서도 가입 문의가 잇달았다.
그런 남맹에 남천 연적하의 제의는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부르르 떨던 검왕 남궁벽이 장승처럼 서 있는 총사에게 시선을 돌렸다.
“호천맹이 지지부진할 때 세를 확장해 이제 겨우 천하 경영의 기반을 닦았는데……. 손을 떼라고? 총사의 생각은 어떻소? 정말 우리가 호천맹에 모든 것을 내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시오?”
“…….”
반천일검 모용문은 쉽게 답하지 못했다.
맹주가 물어보지 않은 지역, 이를 테면 당가와 팽가가 자리한 사천성과 북직례성에도 남맹에 가입하겠다는 방파가 줄을 섰다.
그런 곳까지 합치면 남맹 산하의 방파는 백오십 개가 넘어간다.
남천 연적하가 보는 것과 달리 이미 남맹은 남직례성의 경계를 넘어선 지 오래였다.
계속된 남궁벽의 시선에 모용문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남천 대협이 아직 남맹의 위상을 몰라서 그렇게 말한 것 같습니다. 남맹에 속한 방파의 규모를 알면 그런 말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우선 남천 대협에게 남맹의 위상을 제대로 알리고……. 그후에 남천 대협의 제안을 손보는 방향으로 나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남천의 제안을 어떤 식으로 손보겠다는 것이오?”
남궁벽이 관심을 표시하자 모용문의 주장도 선명해졌다.
“지금은 절대적으로 남맹에게 불리한, 남맹이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입니다. 현재 상태에서 더 이상 호천맹 산하의 방파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정도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이미 군소 방파를 빼앗긴 호천맹에서 그 제안을 받아들이겠소?”
“호천맹의 반응은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남천 대협이 생각을 바꾸는 게 중요하지요. 처음 남천 대협의 제안도 우리를 고려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리 있는 말이라 남궁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호천맹과 남맹은 남천과 황실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다.
“허면 석경장에 누구를 보냈으면 좋겠소?”
“맹주님. 저희 총사부에서는 더 이상 석경장에 쓸 패가 없습니다.”
“그건 무슨 소리요?”
“저와 남천 대협의 관계는 아시니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모용각과 백익은 남천 대협을 두려워해서 대화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석경장에 보낼 사람이 없다는 거요?”
“그렇습니다. 맹주님이 직접 남천 대협과 조율을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
남궁벽이 눈을 찌푸렸다.
총사부의 사람들만큼이나 자신도 연적하와 관계가 좋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자신에 대한 반감으로 그런 편파적인 제안을 한지도 모른다.
연적하만 그런 게 아니다.
자신도 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다.
남맹의 일로 쌓였던 감정이, 이번의 얼토당토않은 제안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그런 자신에게 연적하를 만나라니?
남궁벽의 눈치를 살피던 모용문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최근 맹주님과 남천 대협을 견원지간(犬債之間)이라 말하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남맹의 입지를 위해서도 그런 소문을 가라앉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맹주님께서 석경장을 방문해서…….”
“남천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간도 쓸개도 빼라 이거요?”
“맹주님의 기분은 십분 이해합니다. 하지만 맹주님과 남천 대협의 관계가 나쁘다는 소문이 돌아서 남맹에 좋을 게 없습니다. 남맹을 위해서라도 개인적인 감정은 잠시 내려 두셨으면 합니다.”
“총사도 못하면서 나에게 하라는 거요?”
“그래도 맹주님은 남천 대협보다 웃어른이시라 그를 설득할 수 있지 않습니까? 저와 총사부 사람들은 석경장에 가 봤자 그에게 휘둘릴 뿐입니다.”
그 말에는 남궁벽도 반박하지 못했다.
연적하의 눈 밖에 난 사람이 어떤 대접을 받는지 잘 알아서다.
자신도 장인이 아니었다면 총사부 사람들과 같은 대우를 받았을 터였다.
떨떠름한 표정을 하고 있는 남궁벽에게 모용문이 말했다.
“서두르셔야 할 겁니다. 호천맹이 남직례성에 도착하기 전에 매듭을 지으시려면.”
“알고 있으니 재촉하지 마시오. 나도 남천과의 만남이 유쾌하지는 않으니.”
“아무쪼록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현재의 상태에서 더 받아들이지 않겠다가 최선이라면, 차선은 뭐요?”
“차선이 있겠습니까?”
모용문이 무덤덤한 얼굴로 남궁벽을 보았다.
연적하의 뜻은 분명했다.
‘남맹은 남직례성만 가지라’는 것이다.
그러니 가(可)든지 불가(不可)든지 둘 중 하나로 결론이 날 터였다.
남궁벽도 모용문의 질문에 담긴 뜻을 알아차렸다.
“과연 그렇겠군.”
남궁벽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당금 천하에 연적하의 뜻을 거역할 사람은 없다.
비록 자신이 그의 장인이지만, 자신 또한 그가 반대하면 하지 못한다.
그는 연적하가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를 바랐다.
만약 그가 자신이 쌓아 올린 공든 탑을 무너뜨리면…….
그때는 지금처럼 어정쩡한 관계의 단절이 아니라, 의절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합비.
여강현 석경장.
객청.
이른 아침, 연적하와 남궁연, 그리고 남궁벽이 마주 앉았다.
그윽한 다향(茶香)이 객청에 가득했지만 차를 마시는 사람은 없었다.
남궁벽이 슬쩍 운을 뗐다.
“적하의 나이가 몇이지?”
“스물일곱입니다.”
“허어!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여섯 살에 처음 보았는데 벌써 이십일 년이 지났다니. 세월 참 빠르군.”
“그러네요.”
연적하의 대답 뒤로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성격상 돌려서 말하지 못하는 남궁벽이 단도직입적으로 치고 들어갔다.
“네가 모용각과 백익에게 한 말 때문에 찾아왔다.”
“…….”
연적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없으면 찾아오지 않는 장인이니 그럴 거라 생각은 했었다.
“남맹에 남직례성에만 있으라고 했다지?”
“예.”
“혹 남맹의 규모를 알고 있느냐?”
“모르는데요?”
“남직례성의 남맹 방파 숫자는 의미가 없으니 차치하고. 남직례성 주위의 산동성, 하남성, 호광성, 절강성에 있는 남맹 방파만 해도 백다섯 개다. 사천성과 북직례성에서 가입을 요청한 문파까지 치면 백오십 개가 넘는다. 네 말대로 하면 남맹은 무려 백오십 개의 방파를 잃게 되는 셈이다.”
“…….”
연적하는 생각보다 많은 숫자에 일순 놀랐다.
남맹의 짧은 역사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이제 네가 한 제안이 얼마나 현실에서 동떨어진 것인지 알겠느냐?”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너의 제안은 호천맹만을 위한 것이다. 네 제안을 따르면 남맹은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된다. 네가 원하는 것이 남맹의 일방적인 피해가 아니라면, 다시 생각했으면 한다.”
“저는 어느 쪽의 편도 들 생각이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네 제안대로라면 남맹만 큰 피해를 입고 말 것이다.”
“장인어른께서는 제가 어떻게 해 주기를 바라십니까?”
“남맹은 남직례성 이외의 지역에서 더 이상 세력을 확장하지 않겠다. 대신 남직례성 밖에 있는 백오십 개 방파를 남맹의 것으로 인정해 주었으면 한다.”
곰곰 생각하던 연적하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왜냐?”
“그 백오십 개 방파가 상권을 두고 호천맹 산하의 방파와 싸우면 또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니까요. 그냥 남직례성으로 만족하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한두 개도 아니고, 무려 백오십 개나 되는 남맹 산하의 방파를 호천맹에 바치라고?”
“어차피 그 방파들은 호천맹에 속해 있었잖습니까?”
“그들이 자발적으로 남맹에 가입했다. 나는 단 한 개의 방파도 힘으로 빼앗은 적이 없단 말이다.”
“하지만 그 방파들이 힘으로 주변 상권을 빼앗고 있잖아요. 그래서 호천맹과 계속 싸움이 나는 거고요. 그건 장인어른이 금지한다고 막아지는 게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백오십 개나 되는 방파를 호천맹에 바치라는 게 말이 되느냐?”
“장인어른, 남맹이 남직례성에 있으면 천하가 평화로워집니다. 왜 자꾸 분란거리를 만들려고 하세요?”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천하무림의 종주였던 호천맹은 썩었다. 그래서 대안으로 생겨난 게 우리 남맹이고. 남맹이 순리라는 말이다. 너는 정녕 무력으로 순리를 거스르려 하느냐?”
“…….”
남궁벽의 논리에 밀린 연적하는 반박하지 못했다.
유명무실해진 호천맹을 대신해 남맹이 득세한 것은 맞는 말이었다.
그때 남궁연이 연적하를 대신해 나섰다.
“아버지, 남맹이 남직례성에 자리를 잡은 것까지는 순리가 맞아요. 하지만 아버지가 천하를 탐하는 것까지 순리라고 하지 마세요.”
“천하가 칠파일문의 것이라는 소리냐?”
“그 칠파일문이 만든 정의맹에 오대세가도 한 축을 담당했다는 건 잊으셨나요?”
“하지만 우리 무림세가는 들러리에 불과했다.”
“그러니 순리라는 말을 쓰시면 더더욱 안 되죠. 주인 대접 받고 싶은 아버지의 욕심에 남맹을 만드신 거잖아요. 남맹이 남직례성을 벗어나면 호천맹과 싸울 수밖에 없어요. 그걸 순리로 포장하지 말라는 거예요.”
“지금 나에게 천하의 주인이 호천맹임을 인정하라는 것이냐? 남맹의 방파들을 버리면서까지 그래야 한다고?”
남궁연을 보는 남궁벽의 눈에서 시퍼런 광망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남궁연은 무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아버지가 마음을 비우면 천하는 평화로울 거예요. 천하를 위해 백오십 개 방파쯤 내어 주실 수 있잖아요?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남맹은 내 인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오십 개의 방파는 나의 살과도 같다. 그걸 떼어 내 호천맹에 주라는 소리가 그리도 쉽게 나오느냐? 너희는 석경장이 가진 열 개의 사업장을 너희의 경쟁자에게 그냥 내어 줄 수 있느냐?”
“그것이 무림의 평화를 위한 거라면요.”
남궁연은 지체 없이 답했다.
남궁연의 단호한 태도 앞에 남궁벽은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뒤이어 딸과 사위에 대한 배신감이 밀려왔다.
마지막으로 이런 소리나 듣고 있어야 하는 자신의 무기력함에 분노했다.
그렇게 절망, 배신감, 분노에 떨던 그는 침통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는 천하보다 내 가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천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너희가, 천하를 위해 나에게 희생하라 하는구나. 원하는 대로 해 주마. 다만 너희가 나의 인생을 부정했으니, 너희와 나는 더 이상 가족이 아니다. 이후로 다시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윽고 남궁벽은 잡을 틈도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떠났다.
깜짝 놀란 연적하가 황급히 일어나 장인의 뒤를 따라갔다.
그로부터 일각(15분)쯤 지났을까?
홀로 객청으로 돌아온 연적하가 무너지듯 마루 끝에 걸터앉았다.
“누님. 우리가 장인어른에게 좀 심했던 거 아니에요?”
솔직히 자신은 장인이 ‘석경장이 가진 열 개의 사업장을 경쟁자에게 내어 줄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속으로 ‘아니요’라고 답했다.
그걸 왜 그냥 내어 준단 말인가?
‘안 주면 무림이 멸망한다’고 해도 그걸 내어 주지는 않을 것이다.
고작 사업장 열 개로 망할 무림이면 그냥 망하는 게 낫지 않은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