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932
932회. 소문보다 더 나쁜 것 같습니다
합비.
여강현 석경장.
객청.
정오 무렵.
객정에 세 남자가 앉아 다과를 나누고 있었다.
연적하와 남맹 종사부의 사자 자격으로 방문한 모용각과 백익이다.
“……이에 남맹은 남경으로 진군하여 황궁에서 유명교를 몰아내려 합니다. 남천 대협께서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황실과 나라를 구하는 데 동참하여 주시기를 간곡히 바라는 바입니다.”
긴 이야기를 마친 모용각은 입이 마르는지 찻잔을 집어 들었다.
백익은 숨소리도 내지 않고 연적하의 안색만 살폈다.
조용한 객청에 차 마시는 소리만 났다.
모용각이 찻잔을 내려놓자 고개를 주억거리던 연적하가 물었다.
“남맹에 다섯 개 대가 있죠? 그중 몇 개 대가 남경으로 가나요?”
“일 대, 이 대, 삼 대의 세 개 대가 갑니다.”
연적하가 애매한 얼굴로 모용각을 보았다.
남맹은 오대세가가 중심인 만큼 다섯 개 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중 세 개 대면 전력의 육 할만 동원된다는 소리였다.
“나머지 두 개 대는요?”
그러자 모용각이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당가를 중심으로 하던 오 대는 남천 대협께서 손을 보신 뒤로 제구실을 못 하고 있습니다. 사 대는 남맹의 경비를 위해 남겨 두었습니다. 그들을 제외한 삼 개 대이니 남맹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연적하는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구주에서 대종사 생활을 하는 동안 그의 안목은 꽤나 비범해진 상태였다.
“그것참 이상하군요. 당가가 위축되었다고 해도 다른 남맹의 방파들이 빈자리를 채우고도 남았을 텐데 말이죠. 결국 이런저런 핑계로 사 할이나 되는 전력을 따로 빼 둔 거네요? 유명교주와 천외이선을 제거하면 싹 다 달아날 테니까 그 정도면 충분하다 이거죠?”
“그런 건 아닙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당가를 주축으로 하던 오 대는 제구실을 못 하고 있습니다. 사 대는 남맹을 지키고 있고요.”
모용각이 같은 말을 반복하자 연적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남맹이 유명교주와 천외이선의 상대가 되지 못하지만 그래도 사 할이나 뒤로 빼돌리다니?
이래서는 보여 주기 식에 불과하다.
‘그런 식으로 나를 끌어들이시겠다?’
남겨 둔 사 할의 무력으로는 지금처럼 계속 호천맹의 이권을 잠식해 들어가리라.
남맹이 싸움을 걸면 호천맹도 대응할 수밖에 없다.
결국 눈 가리고 아웅이다.
유명교주와 천외이선을 자신에게 떠넘기고 남맹과 호천맹은 여전히 싸울 터였다.
“호천맹과 이권 분쟁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협조할게요.”
“…….”
연적하의 말에 모용각은 일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대를 따로 남겨 둔 것은 호천맹과의 분쟁에 투입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호천맹과 싸우지 않겠다고 약속하라니?
“남천 대협, 저희 남맹은 그간 호천맹에 양보했던 권리를 되찾아 오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 대협의 말씀은 저희 남맹에 호천맹을 무림의 종주로 인정하라는 것과 같습니다. 그건 제가 답변해 드릴 수 없는 문제입니다만……. 남맹의 어느 누구도 찬성하지 않을 겁니다.”
“뭘 호천맹에 양보를 해요? 남맹이 처음 목표가 합비였잖아요. 그걸 남직례성까지 확장한 것만 해도 엄청난 건데 왜들 욕심을 부려요? 요즘도 남직례성에 있는 방파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모였다고 하잖아요? 호천맹이 남직례성에서 발을 뺀 지 한참 됐는데 뭘 더 양보받으려고 그래요? 나는 뭐 바보인 줄 알아요?”
그러자 백익이 나섰다.
“대협, 물론 저희가 남직례성을 기반으로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도 남맹과 인연을 맺은 방파가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돕는 게 강호의 도의가 아니겠습니까? 지역이 다르다 하여 지인의 도움을 외면하고서 어찌 강호 도의를 논하겠습니까?”
말이란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연적하는 백익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오십 대의 모용각과 이십 대의 백익은 달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넘어갈 연적하가 아니다.
“이름이 뭐라고 했죠?”
“백익입니다.”
“나이가?”
“스물여덟입니다.”
연적하가 스물일곱이니 한 살이 더 많았다.
“동안이시네. 백 형.”
“예.”
“나는 백 형처럼 말을 잘하지 못해. 그래서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내 도움이 필요하면 닥치고 내 말에 따라. 호천맹이 남직례성까지 진출하면 싸워도 돼. 그런 게 아니라면 남직례성 밖에까지 가서 호천맹과 싸우지 마. 그럼 도와줄게.”
“그건 남맹에게 강호 도의를 외면하라는 말씀과도 같습니다.”
“야.”
연적하의 말이 짧아졌다.
돌변한 그의 태도에 백익은 어깨를 움츠렸다.
“예?”
“너 지금 나를 개후레자식으로 만들었어. 알아?”
“제, 제가요?”
“내가 남맹에 강호 도의를 외면하라고 했다면서? 그게 나를 욕한 거 아님 뭐야? 내가 만만해 보이지?”
“아, 아닙니다. 천하의 남천 대협을 어찌…….”
“근데 왜 나를 개후레자식으로 만들고 지랄이야? 이거 사람 면전에서 욕을 하는 대담한 놈이네? 내가 너 같은 놈에게 욕먹으려고 무공을 익힌 줄 알아?”
백익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갔다.
보다 못한 모용각이 그를 위해 변명했다.
“남천 대협, 오해십니다. 백익은 그저 남맹과 인연을 맺은 방파를 외면하기 어렵다고 한 것입니다. 뭐 하느냐? 남천 대협이 오해하게끔 말을 했으면 용서를 청해야지.”
“용서해 주십시오. 정말 저는 그런 뜻으로 드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백익은 이마를 바닥에 박았다.
그제야 연적하는 찡그리고 있던 얼굴을 폈다.
“백 형이 사과를 하니까 받아는 줄게. 말로 흥한 자는 말로 망하는 법이야. 차라리 모용 대협처럼 속이 뻔히 보이는 말을 하면 욕이나 안 하지. 왜 아닌 척하면서 상대를 병신으로 만들려고 그래? 그럼 안 돼. 알았어?”
“예, 예. 감사합니다.”
백익은 감사하다고 인사했지만 속으로는 크게 모멸감을 느꼈다.
‘내가 무공이 약해서 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구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그는 될 대로 되라고 그냥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뒤로 모용각이 몇 번 더 연적하를 설득하려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백익과의 말씨름에서 패한 뒤로 연적하는 논리를 버렸다.
그리고 앵무새처럼 ‘남맹이 호천맹과 싸우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돕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결국 모용각과 백익은 빈손으로 석경장을 떠났다.
남맹은 그 뒤로 다시 사절을 보내지 않았다.
연적하의 태도가 확실해서 이제 공은 다시 남맹으로 넘어온 형국인 까닭이다.
***
하남성.
정주.
호천맹.
남맹과 연적하의 일은 호천맹에도 알려졌다.
남맹을 향한 연적하의 제안은 호천맹에는 예기치 않던 호재였다.
호천맹은 진즉에 남직례성에서 손을 뗀 상태인지라 아쉬울 게 없었다.
호천맹에서도 연적하의 제안과 금의위의 최후통첩을 두고 회의가 열렸다.
백호대 대주인 화산파 무상 진인이 칠파일문 대표들 앞에서 열변을 토했다.
“이것은 우리 호천맹에 둘도 없는 기회입니다. ‘남천 대협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 선언하고, 무인들을 모아 남경으로 가야 합니다.”
그의 말에 대다수 사람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진인의 말씀이 맞소이다. 금의위는 뒤끝이 심한 사람들이오. 우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반드시 후환이 따를 테니 이제는 가야 하오.”
“남천 대협의 중재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한 후에 남경으로 가십시다.”
“우리가 남천 대협의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하면 남맹도 마지못해 따를게요.”
“남천 대협이 왜 우리 쪽 편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손해 볼 일이 없소. 그 제안이 흐지부지 잊혀지기 전에 못을 박아 버리십시다.”
너도나도 한마디씩 하자 총사인 공손일랑 공손기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제야 소란이 가라앉았다.
“문제는 남맹입니다. 남천 대협의 제안에 남맹은 버티기로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남맹이 따를지 의문입니다.”
“그래서 어쩌자는 거요? 이 좋은 기회를 그냥 깔고 앉아 버릴 생각이오?”
무상 진인이 따지듯 말하자 공손기는 불쾌했지만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답했다.
“물론 그렇다 해도 우리는 남천 대협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남경으로 가야 합니다. 황실과 금의위에 우리의 성의를 표시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무상 진인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눈을 찌푸렸다.
결국 자신의 말대로 할 거면서 무슨 말이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공손기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반대가 없으시다면 우리 호천맹은 네 개 대 전부를 남경으로 보낼 생각입니다. 남맹과 달리 우리가 전력을 기울이면 황실도 우리에게 호의적으로 나올 겁니다. 남천 대협과 황실로 하여금 남맹을 남직례성에 주저앉히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그러자 공동파의 월명상인이 물었다.
“남맹의 도발에 대비해 어느 정도는 남겨 두어야 하지 않소?”
남맹에서 눈독 들이고 있는 하남성과 호광성 사업장들을 두고 한 말이다.
“황궁의 일이 끝나기 전까지 남맹의 도발은 무시할 생각입니다. 사소취대(捨小取大)를 위해서 말이지요. 남맹을 남직례성에 주저앉히는 것이 우선입니다. 잠시 잠깐 남맹이 가지고 있으라 하십시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들은 다시 우리에게 돌아올 겁니다.”
“어떻게 그걸 확신하시오?”
“남직례성 외부 지역에서 분쟁이 일어나면 황실에서 주인을 가려 줄 테니까요.”
잠시 생각하던 월명상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전력으로 황실을 도우면 황실에서도 호천맹에 기울어질 게 틀림없었다.
더 이상 이견이 없자 맹주인 화산파 장문인 무극상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의견이 모아진 것 같군요. 호천맹은 남천 대협의 중재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 출정식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이의 있으신 분이 계시면 지금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없습니다.”
“찬성입니다.”
모두가 동의하는 와중에 누군가 말했다.
“그런데 남천 대협의 제안을 보니, 사위와 장인의 사이가 소문보다 더 나쁜 것 같습니다.”
그의 우스갯소리에 중인들이 ‘와아아!’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호천맹은 나름의 계획을 가지고 유명교와의 전쟁에 뛰어들었다.
***
호천맹이 출정식과 함께 남경으로 향하자 천하가 들썩거렸다.
호천맹은 가는 곳마다 ‘남천의 제안’을 널리 알렸다.
그런 노력 덕분에 천하에서 ‘남천의 제안’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천하인들의 이목이 남맹으로 쏠렸다.
사람들은 남맹이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 천하는 다시 평화로워질 거라 믿었다.
어쩌면 그건 당연했다.
마교가 달아나고, 녹림이 순해진 상태에서, 유명교마저 몰락하면 더 이상 사고를 칠 세력이 없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호천맹과 남맹이 합력하면 그야말로 정파 천하가 열리는 셈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남맹이 남직례성에 주저앉아야 하지만 말이다.
남직례성.
합비.
남맹 총단.
“호천맹이 가는 곳마다 남천 대협의 제안을 퍼뜨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천하인들이 우리 남맹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총사 반천일검 모용문의 말에 맹주인 검왕 남궁벽이 탁자를 내리찍었다.
‘콰앙!’ 소리와 함께 탁자가 두 쪽이 났다.
대로한 남궁벽의 모습에 놀란 모용문은 숨을 죽이고 눈치만 살폈다.
남궁벽이 씹어 뱉듯 말했다.
“현재 산동성, 하남성, 호광성, 절강성에 남맹의 방파가 몇이나 되나?”
“백 개가 넘습니다.”
“그걸 다 호천맹에 내어 주어야 한다고? 연적하의 말 한마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