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931
931 회. 우리는 ‘욕망’이었습니까?
남경.
황궁.
무영전.
깊은 밤.
‘태상정일강림신주(太上正一降臨神況)’를 암송하던 천자마의 몸이 한 차례 진동했다.
이윽고 그의 전신에서 칠색 광망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쿠웅-!
뒤이어 일어난 영기의 파동이 황궁을 한차례 울리고 천천히 소멸했다.
한참 만에 천자마가 눈을 번쩍 떴다.
그의 얼굴에 마치 득도를 한 사람과도 같은 희열이 떠올랐다.
황궁 뒤뜰을 산책 중이던 금사가 유령처럼 천자마 앞에 나타났다.
“왕이시여. 황궁에서 크나큰 영기의 파동을 느꼈습니다. 어떤 성취가 있으셨습니까?”
“얼마 전 인간의 글을 읽었다. 장주라는 사람이 꿈에 나비가 되었는데, 나비처럼 훨훨 날아다니는 것이 꽤나 좋았던 모양이다. 나비는 자신이 장주임을 끝내 알지 못했지. 그러다 갑자기 꿈에서 깨니 자신은 나비가 아니라 장주였다. 장주는 그것을 물화(物化)라 했다.”
“물화요?”
“스스로 장주가 되기도 했다가, 나비가 되기도 했다가 한다는 소리라고 생각한다.”
“그것과 왕의 성취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나는 그 글을 쓴 인간이 상계의 존재임을 확신한다.”
“…….”
대번에 천자마의 말을 알아들은 금사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 인간도 왕과 저처럼 상계에서 하계로 왔다는 것입니까?”
“그러하다.”
‘“왕들의 하늘’에 그와 같은 인간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어찌 상계가 ‘왕들의 하늘’ 하나뿐이겠느냐.”
“아! 그 장주와 상계의 존재가 같다는 것이 물화입니까?”
“전에 너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느냐?”
“어떤 부분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상계(왕들의 하늘)에서 죽임당할 때 내가 빛으로 만들어진 두 갈래 길을 보았다 하지 않았느냐?”
“아!”
금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납니다. 왕께서 더 밝게 빛나는 길로 가려 했지만 다른 길로 빨려들어 갔다고 하셨습니다. 왕의 의지는 다른 길을 원했지만……. 항거할 수 없는 힘이 왕을 현세로 이끌었다고.”
“하계에 온 뒤로 나는 우리가 불완전한 존재들이며, 너와 나를 포함해 상계(왕들의 하늘)의 신들이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예,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림자가 곧 물화였음을 알게 되었다.”
“헉! 정녕 또 다른 하늘에 우리의 진체(眞體)가 있었습니까?”
“꼬리가 몸통을 흔들자 창조신이 꼬리를 몸통에서 떼어 내 감옥에 가두었다. 우리가 왕들의 하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가 꼬리라는 말씀이십니까?”
금사가 황망한 눈으로 천자마를 보았다.
상계의 신인 자신들이 한낱 꼬리에 불과하다니? 그럼 몸통은 대체 뭐란 말인가?
“그렇다. ‘욕망’이라는 꼬리가 몸통을 좌우하자 신이 우리를 떼어 영원한 감옥에 가두었다. 이제 우리가 누구인지 알겠느냐?”
“‘욕망’입니까.”
“그러하다. 조금 전 나는 네 번째 하늘에서 ‘욕망’이 거세된 줄도 모르고, ‘조율자’로 불리며 무미건조한 삶을 살고 있는 너의 진체를 만났다.”
예상치 못한 말에 금사는 눈을 끔뻑였다.
천자마가 네 번째 하늘에서 자신을 만났다는 것도 놀랍지만 ‘조율자’라니?
“그는 저와 같았습니까?”
“장주와 나비가 같더냐?”
다르다는 말이다.
금사는 ‘지금의 나와 다른데 어떻게 알아보았느냐?’고 물으려다 말았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천자마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으니 만났다고 했으면 만난 것이다.
“왕이시여, ‘왕들의 하늘’이 영원한 감옥이라면, 우리에게 희망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왕들의 하늘’에서 죽어 하계로 왔다. 처음에 나는 이곳에 우리의 분신이 있어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우리가 ‘왕들의 하늘’에서 빠져나온 것을 설명하기 어렵다.”
“우리가 ‘왕들의 하늘’에서 나오게 된 다른 이유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게 무엇인지 모르지만 연적하와 관계된 것은 틀림없다.”
“우리가 죽으면 ‘왕들의 하늘’이 아니라 진체로 돌아간다는 말씀이십니까?”
“십중팔구는 그럴 것이다.”
“왕의 말씀대로 된다면……. 연적하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겠군요.”
그러자 천자마가 씁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죽음이 유쾌한 경험은 아니지.”
고개를 주억거리던 금사가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면 유명교주의 ‘태상정일강림신주’가 참으로 대단한 것 같습니다.”
“인간이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간 따위가 만들 수 있는 진언이 아니야.”
“그것 역시 상계의 존재가 남긴 것일까요?”
“그럴 것이다.”
“상계의 존재들이 왜 그런 것들을 하계에 남겨 두는지 모르겠습니다.”
“상계로 가는 단초를 제공하기 위함이 아니겠느냐.”
“인간을 위한 배려였군요.”
“그게 그들의 유희인지도 모르지.”
천자마의 얼굴에 냉소가 어렸다.
당장 그 ‘태상정일강림신주’로 유명교주가 벌인 일만 봐도 인간을 위한 것이라 보기 어려운 까닭이다.
죽음이 유쾌한 경험이 아니라고 했지만, 자신들의 미래를 알게 된 천자마와 금사는 변했다.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버리고 무영전 밖으로 돌아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생활이 바뀌자 괴로워진 사람은 황제다.
황제는 천외이선과의 만남을 피해 거처를 이리저리 옮겨 다녀야 했다.
그 지경이 되자 금의위 지휘사 모양은 호천맹과 남맹에 최후통첩을 보내고, 석경장에도 하루가 멀다 하고 특명 사자를 보냈다.
***
합비.
남맹.
천추각.
금의위가 보낸 최후통첩에 남맹 지휘부는 오대세가 대표를 대회의실로 불러 모았다.
남맹 총사 반천일검 모용문이 침중한 어조로 말했다.
“금의위로부터 ‘유명교와 전면전을 벌이지 않으면 무림의 단체를 불법으로 규정하겠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호천맹에도 동일한 내용이 전해졌다고 합니다.”
오대세가 대표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까지 소극적이던 금의위가 왜 갑자기 발등에 불 떨어진 것처럼 난리인지 모르겠다.
선우세가의 가주 환우검 선우담이 가볍게 손을 들었다.
“총사. 금의위가 왜 그렇게 서두르는지 아는 바가 있소?”
“무영전에 틀어박혀 있던 천외이선이 그들의 거처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황제가 그들과의 조우를 염려하여 피해다니다 보니 마음이 급해진 것이지요.”
“천외이선의 외부 활동이 시작됐다는 거요?”
거듭된 선우담의 질문에 오대세가 대표들이 술렁거렸다.
천외이선이 황궁 밖으로 나오면 호천맹과 남맹도 유명교와의 전쟁에 대비해야 하는 까닭이다.
모용문은 소란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차분하게 말했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닙니다. 천외이선은 황궁 내에서만 활발히 돌아다닌다 합니다. 예를 들면 산책을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팽가 원로 팽무안이 확인하듯 물었다.
“무영전에 처박혀 지냈듯 황궁 밖으로 나오지 않을 거라는 말씀이오?”
“그건 장담할 수 없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들이 황궁 밖으로 나오지 않는 지금의 상황이, 비정상적인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천외이선이 황궁 밖으로 나와도 놀랄 일은 아니라는 소리다.
좌중이 다시 한번 술렁거렸다.
“천외이선이 나오면 끝장나는 거 아닙니까?”
“그들의 무위면 합비까지 한 식경(약 30분)도 안 걸릴 겁니다.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한 식경도 안 걸린다면 대책이 소용 있겠소?”
“이 기회에 남맹의 종단을 북직례성으로 옮기는 것은 어떻습니까?”
팽무안의 말에 소란이 한순간 잠잠해졌다.
사실상 지금의 남맹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 정도가 최선이었다.
듣고 있던 검왕 남궁벽이 손바닥으로 가볍게 탁자를 쳤다.
그 소리에 오대세가 대표들의 시선이 남궁벽을 향했다.
“팽 대협, 금의위에서 무림의 단체를 불허하겠다는데 총단을 북직례성으로 옮기자는 겁니까? 그때는 정말 역도 소리를 듣게 될 겝니다. 총단을 옮기자느니 하는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마십시오.”
팽무안은 멋쩍은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답답해서 해 본 소리에 다른 사람들이 잡자기 조용해질 줄은 몰랐다.
맹주의 말대로 지금 총단을 옮기며 버티었다가는 역도로 몰릴 게 분명했다.
조용해진 팽무안을 대신해 귀혼산수 당기로가 나섰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오늘날 남천 대협 외에 누가 천외이선을 막을 수 있습니까? 남맹이 전력을 기울인다 해도 상대가 되지 못할 겝니다.”
남궁벽이 인상을 찡그렸다.
이제는 남천의 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그래도 총단을 옮기는 것은 안 되오. 천외이선은 언제고 사라질 존재들이오. 그들이 사라지고 나면 황실에서 우리를 그냥 둘 것 같소?”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소나기가 들이칠 때는 아무 데라도 일단 피해야지요.”
당기로의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들은 나중 일이야 어떻게 되든 일단 천외이선과 거리를 두고 싶었다.
그래서 다급한 마음에 한마디씩 했다.
“옳으신 말씀이오. 말이 그렇지 황실에서도 남맹을 역도로 몰지는 못할 겁니다. 당장 맹주께서 남천 대협의 장인인데 그럴 수는 없지요.”
“옮깁시다.”
“일단 살고 난 뒤에 다음 일을 도모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종단을 옮기자는 의견이 계속 나오자 남궁벽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탁자를 후려쳤다.
콰앙-!
장터처럼 소란스럽던 천추각이 한 순간 무덤처럼 고요해졌다.
“여러분이 총단을 옮기겠다면 나는 맹주를 그만두겠소. 우리 남궁세가와 함께 남직례성을 지킬 가문만 남고 모두 나가 주시오.”
남궁벽이 그렇게까지 말하자 당기로는 얼른 말을 바꿨다.
“맹주님, 아무래도 오해를 하신 것 같습니다. 제 말은 총단을 옮기자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이 있으면 듣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역도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종단을 옮길 수는 없지요.”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한마디씩 던졌다.
“저도 그런 뜻으로 한 말이었습니다. 남맹은 남직례성 방파들이 만든 것인데 북직례성으로 갈 수는 없지요.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당연하지요. 이름부터가 남맹 아닙니까? 맹주님, 오해를 푸십시오.”
총단을 옮기자는 말은 한순간 활활 타오르다가 이내 사그라들었다.
그제야 굳어 있던 남궁벽의 얼굴이 펴졌다.
세가들의 대표와 남궁벽의 눈치를 살피던 모용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여러분, 천외이선은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합비에 남천 대협이 있는 한, 천외이선도 감히 합비로는 오지 못할 겁니다.”
뒤늦게 남천을 떠올린 오대세가 대표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들어 보니 총사의 말이 맞았다.
황도(남경)와 합비의 거리가 가까운 건 사실이지만 호들갑을 떨지 않아도 됐다.
합비에 석경장이 있기 때문이다.
설사 천외이선이 합비에 온다 해도, 그들의 목표는 남맹이 아니라 석경장일 게 분명했다.
“문제는 황실입니다. 남맹과 호천맹이 유명교와 싸우지 않으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징계를 내릴 겁니다. 같은 징계를 받아도 규모가 작은 남맹이 더 큰 피해를 입게 될 테지요. 그래서 말씀인데, 이러면 어떻겠습니까?”
모용문은 잠시 말을 끊고 맹주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맹주의 무덤덤한 얼굴을 보니 노기를 가라앉힌 것 같았다.
무림세가 대표들에게 나가라고 할 때는 가슴이 철렁했었다.
“먼저 남맹이 유명교와의 전면전을 선포하고 남경으로 진군하는 겁니다. 그런 다음 남천 대협에게 협조를 요청하면, 반드시 응할 거라고 봅니다. 남맹이 남천 대협과 손잡으면, 호천맹은 자연히 개밥의 도토리 신세가 되고 말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