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940
940회. 알고도 속아 줬다는 거예요?
금사와 천자마가 진경(眞景)을 결전의 장소로 택한 것은 그곳이 익숙해서다.
기본적으로 진경은 영체(靈體)를 위한 공간.
시공의 제약에서 벗어남은 물론 움직임도 현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다.
금사와 천자마는 구천검령이 은룡과 묵룡의 머리 위로 떨어지자 바로 목표를 바꿨다.
연적하를 향하던 은룡과 묵룡이 수직으로 솟구치며 구천검령을 타고 올랐다.
콰르르르-.
거대한 구천검령에 맞춰 은룡과 묵룡도 크기를 키워 나갔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은룡과 묵룡은 뱀처럼 구천검령을 칭칭 감았다.
천자마가 득의의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부서져라!”
은룡과 묵룡이 전신을 조이자 구천검령에서 ‘빠드득!’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연적하는 예상치 못한 반격에 잠시 당황했다.
금사와 천자마의 힘은 구주에서와 달리 구천검령을 압박할 정도로 컸다.
검령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는 모르지만 강한 힘을 받으면 부서진다.
자신도 구천검령으로 종문의 검령을 깨뜨려 봐서 안다.
저 은룡과 묵룡은 신들이 만들어낸 의형검강이니 그 파괴력도 남다르리라.
구천검령이 얼마나 더 버틸지 모르겠지만 시간을 끌수록 손해임은 분명했다.
멈칫하던 연적하는 검결지를 틀었다.
두 자루 구천검령이 허공에서 천천히 방향을 돌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검신에서는 계속해서 ‘빠드득!’ 소리가 들려왔다.
두 자루 구천검령이 향한 곳은 금사와 천자마였다.
쐐애액- 쐐액-.
구천검령이 날아오자 깜짝 놀란 금사와 천자마는 은룡과 묵룡으로 구천검령을 조이는 동시에, 뒤로 끌어당겼다.
쉬이익-.
구천검령의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하지만 구천검령은 여전히 금사와 천자마를 향해 날아갔다.
빠드드득! 빠드득-!
구천검령의 검신에서 뼈가 갈리는 듯한 기이한 소리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속도도 처음에 비하면 현저하게 느려져 이제는 걸음걸이와 비슷했다.
구천검령이 부서지든지, 금사와 천자마가 검에 꿰어 죽어야 끝나는 형국이다.
잠시 후 구천검령이 금사와 천자마의 일 장(약 3미터) 앞에 도달했다.
금사와 천자마의 얼굴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빠드드득! 빠득-!
뼈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구천검령의 속도가 더 떨어졌다.
그러다 마침내 금사와 천자마의 한 치(30센티) 앞에 도달했을 때다.
빠각! 빡-!
뭔가 부러진 것처럼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구천검령이 멈춰 섰다.
그런데 오히려 금사와 천자마는 모든 걸 내려놓은 표정이었다.
천자마가 씁쓰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완전체가 되었지만 그림자는 별수 없구나.”
“내세에서 뵙겠습니다.”
금사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은룡과 묵룡이 조각조각 갈라져 나갔다.
속박에서 벗어난 구천검령이 금사와 천자마의 몸통을 꿰뚫었다.
파아앗- 파앗-!
진경에서 즉사하자 둘의 몸은 빛의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연적하는 즉시 진경 밖으로 나갔다.
현세에 남아 있던 금사와 천자마의 몸이 모래처럼 흘러내렸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가루가 되어 흩어진 천외이선의 마지막을 보면 도무지 윤회전생 할 것 같지 않았다.
‘그림자니 물화(物化)니 떠들었는데…….’
천자마가 죽기 직전에도 ‘그림자’라고 한 걸 보면 허튼소리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현세의 어디에서도 금사나 천자마의 영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범천욕계왕재천으로 돌아갔나 보군.’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그게 맞았다.
지안에게 깃든 메누아의 원신까지도 끌고 가려던 법칙이 아니던가.
그 강력한 힘을 생각하면 천외이선이 다른 곳에 윤회전생 한다는 건 생각하기 어려웠다.
연적하는 잠시 더 기다려도 아무런 변화의 조짐이 없자 품에서 방울을 꺼냈다.
여전히 방울은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가 막 방울을 깨부수려고 할 때 청류신이 조심조심 다가왔다.
“정말 부수시게요?”
“그래야죠. 이 방울은 분명히 화를 몰고 올 거예요.”
“제가 생각해 봤는데요. 어쩌면 어머니는 다 알고도 방울에 들어간 것일 수도 있겠더라고요.”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유명교주가 알고도 속아 줬다는 거예요?”
“네.”
“아니, 왜요?”
연적하가 황당한 눈으로 청류신을 보았다.
방울에 들어가고 싶어서 속아 준 거라니? 그게 말인지 방귀인지 모르겠다.
“천외이선의 옆에 계속 있다가 연 대협에게 죽임당하면……. 염마왕에게 끌려갈 게 뻔하잖아요.”
“염마왕에게 끌려가느니 방울 속에서 살겠다?”
“그런 게 아니었을까요?”
“내가 방울을 부술 수도 있잖아요.”
“그러게요. 연 대협이 부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셨을까요?”
“흠.”
연적하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팔황신모와 자신의 은원이 애매한 것은 사실이다.
팔황신모는 마녀라는 소문과 달리 기이하리만치 자신에게 잘해 줬다.
자신만이 아니다.
자신의 측근인 심통에게도 관대했다.
그래서 방울에 들어간 것일까?
거기까지 생각하니 방울을 부숴 버리기가 쉽지 않았다.
팔황신모가 그런 기대를 갖게 된 데에는 일정 부분 자신의 책임도 있었다.
고민하던 연적하는 방울을 다시 품에 갈무리했다.
그걸 지켜보던 청류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육명진언을 알려 드릴까요?”
“됐어요. 알고 싶지 않아요. 아줌마도 이제 갈 길 가요.”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청류신은 선뜻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저어, 대협. 유명교와 무림의 영웅들이 저를 팔황신모로 오해하면……. 저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거예요. 당장 갈 곳도 마땅치 않고요. 당분간만이라도 석경장에 머무르는 건 안 될까요?”
“그렇게 해요.”
연적하는 흔쾌히 승낙했다.
유명교 잔당들이 그녀를 팔황신모인 줄 알고 모셔 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합비에 잘나가는 사업장 열 개가 생긴 뒤로 인심이 후해진 연적하였다.
***
취보문 앞.
연적하가 안으로 들어간 지 한 식경(약 30분)쯤 지나자 호천맹주인 무극상인이 심통에게 말했다.
“심 처사(處士). 이 시간이면 남천 대협과 천외이선이 만나고도 남았을 시간이 아닙니까?”
“만났을 겁니다.”
“그런데 너무 조용한 것 아닙니까?”
진경에서의 싸움을 알 리 없는 무극상인은 황궁의 고요함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화가 길어지면 그럴 수도…….”
심통은 ‘진경’을 알고도 너스레를 떨었다.
진짜 천외이선과 연적하의 대화가 길어져서 그런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 남맹의 맹주인 검왕 남궁벽이 한마디 했다.
“대화는 무슨 대화. 남천은 말을 길게 하는 사람이 아니외다. 팔황신모와 천외이선이 꾸민 함정에 빠진 것인지도 모르오.”
그의 발언은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 남천의 무위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한 말인 까닭이다.
생각해 보면 유명교주와 천외이선은 그 이상의 일도 벌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급기야 호천맹과 남맹의 대표들은 황궁으로 진입하느냐 마느냐의 논의에 들어갔다.
화급을 다투는 일임에도 의견은 쉽사리 모아지지 않았다.
“남천 대협이 당했다면 호천맹과 남맹으로는 감당하기 어렵지 않겠소?”
“그래서 어떤 상황인지 확인도 하지 말자는 겁니까?”
“황궁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니 섣불리 단정하지 맙시다.”
“취보문 앞에서 언제까지 시간만 보낼 수는 없습니다. 들어가든지, 돌아가든지 양단간에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돌아가다니요? 그건 그냥 도망가자는 말이나 다름없습니다. 결과를 확인하지도 않고 달아난다면 천하인들이 비웃을 겝니다.”
“유명교주와 천외이선을 상대로 달아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은 아닙니다. 금군도 제압당해 황궁을 내어 준 상태가 아닙니까?”
“어허! 왜들 남천 대협이 당했다고 생각하시오? 노부는 아직 싸움이 시작도 안 됐다고 생각하오만.”
그렇게 호천맹과 남맹이 진입이냐 후퇴냐를 두고 격론을 벌일 때다.
호천맹과 남맹의 머리 위에서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명교주와 천외이선을 처리했으니까 나머지는 알아서들 하세요. 심 노인! 올라와!”
사람들이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남천이 타고 온 하얀 구름이 까마득한 하늘 위에 떠 있었다.
뒤늦게 호천맹과 남맹의 무사들이 ‘와아아!’ 하고 함성을 내질렀다.
심통은 남궁벽에게 묵례를 보낸 뒤 어기충소의 신법으로 날아올랐다.
그의 가공할 경신술을 본 사람들의 입에서 ‘아!’ 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하늘에서 심통을 태운 구름은-지상으로 내려가지 않고-그대로 사라졌다.
호천맹주인 무극상인이 남궁벽을 힐끔 보았다.
여기까지 와서 장인에게 인사도 없이 가 버리다니 과연 독한 사람이다.
남궁벽과 석경장의 파탄 난 관계를 눈으로 확인하니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고 남궁벽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남천 대협에게 바쁜 일이 있나 봅니다?”
“남천은 나와 무관한 사람이니 더 이상 거론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 예…….”
무극상인이 뻘쭘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볼 때다.
돌연 휑하니 비워져 있던 취보문 안에서 금군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곧이어 금군 무장 하나가 호천맹과 남맹의 무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남경에서는 일반인의 무장을 금하고 있으니 호천맹과 남맹은 속히 돌아가시오! 일각(15분) 안에 떠나지 않으면 불온한 뜻을 가지고 있다 여겨 추포할 것이오!”
‘뒷간 가기 전과 다녀오고 난 뒤에 다르다’더니 딱 그 모양이었다.
그러나 무극상인과 남궁벽은 불만을 말하지 못했다.
냉정하게 말해 지금까지 그들이 황실을 위해 한 일이 없는 까닭이다.
멍한 얼굴로 서 있던 무극상인과 남궁벽은 서로에게 묵례를 하고 돌아섰다.
***
운종술의 구름 위.
심통은 연신 뒤를 힐끔거렸다.
연적하는 언법 때문에라도 거짓말과 담쌓고 사는 사람이었다.
‘공자님이 조금 전에 분명히 유명교주와 천외이선을 처리했다고 했는데…….’
그런데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여자는 몇 번을 다시 봐도 팔황신모였다.
또다시 뒤를 돌아보던 심통과 팔황신모의 눈이 마주쳤다.
청류신이 슬며시 웃으며 말했다.
“저 팔황신모 아니에요.”
“거 무슨 말로 우리 공자님을 구워 삶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호락호락한 사람 아닙니다.”
유명교도를 제외하고 팔황신모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심통은 팔황신모를 가까이서 본 사람이었다.
“사실 저 청류신이에요.”
“그런 소리 하지 마십쇼. 내가 청류신과 교주님을 모두 만나 본 사람입니다.”
심통이 믿지 않자 청류신은 그동안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그렇게 해서 팔황신모가 방울에 들어가고, 제가 나오게 된 거예요. 연 대협께서 다 확인하신 일이니까 의심하지 말아 주세요.”
“정말입니까? 공자님?”
심통이 황당한 눈으로 팔황신모와 연적하를 번갈아 보았다.
혼을 바꾸다니? 자기 귀로 들었지만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어 맞아. 그 방울은 내가 가지고 있어.”
“허어! 살다 살다 그런 일은 처음 봅니다. 그쪽이 정말 청류신이라고?”
“예, 당분간 석경장에 머물기로 했으니 잘 부탁드려요.”
청류신이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심통의 입이 쩍 벌어졌다.
완전히 달라진 유명교주의 행동을 보니 정말 청류신이 맞나 보다.
그제야 심통은 청류신의 얼굴을 구석구석 뜯어 보았다.
본래 팔황신모의 몸은 삼사십 대로 보였기에 그녀의 공대가 크게 어색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