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976
976회. 호천맹이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심통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당운망에게 말했다.
“나에게는 월아와 금아가 있지 않느냐. 뭐, 네가 정히 싫다면 내가 받아들일 수도 있다만.”
“누가 싫다고 했느냐? 갑작스러운 일이라 그런 거지.”
당운망이 얼른 변명을 했다.
자신이 약당 당주라면 심통은 총관과도 같았다. 정식으로 임명받은 게 아니라 하는 일이 그랬다.
심통이 청하면 연적하와 남궁연은 거의 들어주었다.
하물며 한채연과 하소백은 오봉십걸.
의동생들의 궁색한 삶을 본 연적하가 어떻게 나올지는 안 봐도 훤했다.
“그래서 어쩌겠다고?”
심통의 채근에 당운망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만 된다면 나야 좋지!”
월아와 금아에 비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심통이 하소백을 돌아보았다.
“어찌하겠느냐? 너희가 허락한다면 공자님께 정식으로 말씀드리마.”
“저는 좋아요. 석경장에 가고 싶어요. 그런데 채연 언니의 생각을 들어 봐야 해서…….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여기 계실동안 채연 언니의 의중을 확인해 볼게요. 그런데 언니가 철산 오라버니 죽은 뒤로 매사에 의욕이 없어서 뭐라고 할지 모르겠네요.”
“그래라.”
심통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집이 좁아 장시간 머물 수 없으니 오래 걸릴 일은 아니었다.
“저는 다과를 준비하러 이만 가 볼게요.”
심통과 당운망에게 꾸벅 인사를 올린 하소백이 몸을 돌려 집 옆에 딸린 부엌으로 쏙 들어갔다.
그녀가 보이지 않게 되자 당운망이 심통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이봐. 저 두 사람 말야. 자네가 좀 아는 사람들인가?”
“당연한 소리를. 오봉산채에서부터 봤으니 많이 알지.”
“의술은 머리가 좀 따라 줘야 해서 하는 말인데…….”
그러자 심통이 당운망의 말을 끊었다.
“당가야.”
“왜?”
“네가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냐? 네가 거절하면 내가 받는다니까? 여기에 설명이 더 필요하냐?”
“아, 내 정신머리 봐라. 무조건 약당으로 받아야지. 암. 방금 내가 한 말 잊어버리거라.”
당운망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지금은 의술이 문제가 아니다. 약당에 ―월아와 금아가 심통에게 하듯― 자신의 수발 들어 줄 사람을 들이는 게 더 급했다.
잠시 후 연적하가 밖으로 나오자 심통이 슬쩍 그에게 다가갔다.
“공자님.”
“왜?”
“한채연과 하소백 말입니다.”
“응?”
“한채연이 출산한 뒤로 하소백만 상방에 나갔다고 합니다.”
“알아. 애기를 키워 줄 사람이 없으니 그랬겠지.”
“그래서 말인데요. 아까 공터에서 했던 이야기가 기억 나십니까?”
“무슨 이야기?”
“왜 당가가 약당에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 그런데?”
“한채연과 하소백을 약당에 들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조금 전에 하소백에게 슬쩍 운을 띄워 봤는데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한채연이 거절하지 않으면 가겠다고 하더군요.”
“그런 일이 있었어?”
“예, 공자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솔직히 이런 집보다는 석경장이 백배 낫지 않습니까?”
“나야 당연히 좋지.”
“그럼, 공자님이 가모님에게 허락을 받아 주십쇼.”
“알았어. 두 사람이 왔으면 좋겠다. 지안이 친구도 생기고.”
“어련하시겠습니까.”
심통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요즘 연적하는 뭘 해도 결론은 지안이를 위한 것이었다.
다행히 남궁연은 반대하지 않았다.
매사에 의욕이 없다던 한채연도 제안을 고맙게 받아들였다.
자주 아픈 딸을 생각하면 석경장의 약당이 최선인 까닭이다.
한채연과 하소백은 집을 정리한 뒤에 석경장으로 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석경장의 식솔이 더 늘어났다.
한 시진(2시간) 후, 석경장 식솔들은 한채연과 하소백의 집을 나섰다.
한채연과 하소백은 아기를 안고 공터까지 따라 나왔다.
이두마차에서 의동생들에게 손을 흔드는 연적하의 표정은 밝았다.
의동생들을 돌볼 수 있게 된 것도 좋지만, 식구가 늘어나면 자신이 떠난 빈자리도 크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아서다.
‘이런 게 일석이조(一石二鳥)지.’
아니, 지안이 친구까지 생겼으니 일석삼조(一石三鳥)인가?
***
팔월 보름.
남직례성.
남경.
굳게 닫혀 있던 무극문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무극문도와 호천맹 지원부대가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돌풍처럼 남경 일대를 휩쓸고 다녔다.
가장 먼저 이백여 명의 남맹 지원부대가 머무르던 남포문이 박살 났다.
남맹 지원부대와 남포문도 절반이 죽었다.
남포문이 불에 탔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양자강 너머로 꽁지가 빠지게 달아났다.
그게 시작이었다.
무극문과 호천맹 지원부대는 그 기세를 몰아 남맹 산하의 유명 방파들을 깨부쉈다.
천지문, 쌍도문, 충검문, 은월문, 비룡방, 천조방은 물론 그간 은밀히 남맹을 돕던 개방의 남경 지부까지 밟았다.
닷새 만에 남맹 소속의 남경 방파들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무극문과 호천맹의 실력행사(實力行使)에 놀란 군소 방파들이 하나 둘 무극문으로 돌아섰다.
무극문.
해가 지자 무극문 앞마당 곳곳에 모닥불이 피워졌다.
밤중임에도 마당을 오가는 사람이 많았다.
무극문과 호천맹 지원부대가 조를 짜서 번을 선 까닭이다.
호천대 대주 철아함이 뒷마당의 모닥불로 다가갔다.
번을 서던 호천대원들이 그에게 묵례를 보냈다.
“오셨습니까? 대주님.”
“어, 별일 없나?”
그간의 전투로 친해졌는지 철아함의 말투는 자연스러웠다.
“예, 조용합니다. 우리에게 그렇게 밟혔으니 한 번쯤 도발을 해 올 만도 한데 말이죠.”
“도발할 여력도 의지도 없을 거야. 남경의 군소 방파들이 호천맹으로 갈아탔으면 말 다한 거지.”
“그냥 이대로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철아함이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그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싸움보다 평화가 더 좋았다.
“아마 그렇게 될 거야. 지금 남맹에는 판세를 뒤엎을 힘이 없으니까.”
“남천 대협 쪽은 어떻습니까? 남맹이 궁지에 몰리면 그쪽으로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글쎄. 검왕이 자기 입으로 의절을 선언했는데 그렇게까지야 하겠나. 천하십대고수의 자존심이 있는데. 혹시 모르니까 검왕이 다른 마음을 품기 전에 총사부에서 움직일 거야.”
“총사부에서요?”
“남맹과 담판을 짓겠다는 소리를 들었거든.”
“남경이 거지반 호천맹 손에 떨어졌는데 여기서 무슨 담판요?”
“이문사방을 넘기라고 하지 않겠어?”
“남경이 아니라요?”
“이 사람아. 여기서 호천맹이 남경을 갖게 되면 남맹과는 두고두고 원수가 돼. 그렇게 되면 우리만 손해라고. 매일 밤을 지금처럼 보낼 거야?”
“그건 그렇습니다만……. 이미 손에 들어온 남경을 내어 주고 이문사방만 갖는다니 좀 아쉽네요.”
“처음부터 호천맹의 목적은 이문사방이지 남경이 아니었잖아.”
“젠장! 그런 거치고는 너무 싸움이 거창하지 않았습니까? 이건 뭐 거의 정사대전 수준이었던 것 같은데.”
“남맹이 그럴 정도로 대단했던 거지. 그럼, 다음 교대까지 수고들 해.”
“예, 대주님. 들어가십시오.”
호천대 무인들이 꾸벅 머리를 숙였다.
철아함은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자리를 떠났다.
***
합비.
남맹.
다음 날, 남경에 주둔하던 호천맹 사자가 남맹을 방문했다.
남궁세가에서 정양 중인 검왕 남궁벽을 대신해 총사인 반천일검 모용문이 그를 만났다.
“어서 오시오. 바쁘신 분들이 이곳까지는 어쩐 일이시오?”
비꼬는 듯한 모용문의 인사에 호천맹 사자, 공손찬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 그만 수습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서 찾아뵀습니다.”
“수습이라니? 우리 쪽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모용문은 짐짓 허세를 부렸다.
일의 수습이 목적인 공손찬은 딴지를 걸지 않았다.
“그러지 마시고 이쯤에서 타협을 보시지요. 계속 싸워 봐야 양측이 피를 흘리기밖에 더 하겠습니까?”
“이미 그쪽에 모두 빼앗겼는데, 무슨 타협을 하자는 거요?”
“호천맹은 남경에 뜻이 없습니다.”
“그러신 분들이 왜 남경의 방파들을 죄다 접수하셨소?”
“이문사방을 제외하고 모두 돌려 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애초에 우리 호천맹은 무극문을 돕기 위해 나섰던 것일 뿐, 남경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뜻밖의 제안에 모용문은 멈칫했다.
이미 남맹은 영혼까지 탈탈 털린 상태였다.
그런데 남경의 방파들을 도로 돌려주겠다니?
“이문사방은 왜 빼셨소?”
“그건 본래 무극문이 관할하던 방파이기 때문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좋은 말씀 잘 들었소. 하지만 나는 일개 총사에 불과하오. 맹주님께 말씀드려 보리다.”
“아무쪼록 좋은 쪽으로 결론이 나기를 바랍니다.”
말을 마친 공손찬이 느긋하게 차를 마실 때다.
모용문이 불쑥 말했다.
“문득 지난해의 일이 떠오르는구려.”
“지난해요?”
공손찬이 의아한 얼굴로 모용문을 보았다.
최근 몇 년은 워낙 다사다난(多事多難)해서 상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유명교가 득세할 때 호천맹이 숨죽이고 있던 게 기억나시오?”
“…….”
명예롭지 못한 일인지라 공손찬은 답하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모용문은 계속해서 말했다.
“지금 돌아보면 남직례성을 떠나 천하를 누비던 그때가 우리 남맹의 전성기였소.”
“확실히 그런 적이 있었지요.”
공손찬은 승자의 여유로 적당히 장단을 맞춰 주었다.
“그때 우리는 산동성, 하남성, 호광성, 절강성에 백다섯 개의 방파를 가지고 있었소. 사천성과 북직례성까지 치면 백오십 개가 넘었소. 귀하는 우리가 그 많은 방파를 왜 포기했는지 아시오?”
“알고 있습니다. 남천 대협께서 남맹에 ‘남직례성을 벗어나지 말라’고 했지요. 그때의 일은 유감스럽지만……. 천하의 안녕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조치였다고 생각합니다.”
“뭐, 그렇다고 치십시다. 그날 우리가 느낀 상실감이 어땠을 것 같소?”
“물론 컸겠지요.”
“알면 됐소.”
모용문이 사자를 앞에 두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홀로 남겨진 공손찬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의 주제에서 한참 벗어난― 맥락 없는 말이었다.
‘그게 뭐 어쨌다고?’
***
합비.
남궁세가.
의사청을 빠져나온 모용문은 바로 남궁세가로 달려갔다.
“맹주님. 오늘 호천맹 총사부의 공손찬이 남맹을 방문하였습니다.”
검왕 남궁벽이 무심한 눈으로 모용문을 보았다.
할 말이 있으면 그냥 하라는 눈빛이다.
“이문사방을 무극문에 넘기면 남경의 방파를 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호천맹이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남맹은 무극문과 호천맹에 패했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남경은커녕, 이문사방도 되찾지 못합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요?”
“맹주님과 남천 대협과의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 소리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것 같은데.”
“예,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노파심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남천 대협은 황제조차도 어려워하는 존재입니다. 저는 맹주님께서 그의 권위를 인정해 주었으면 합니다.”
“하! 내가 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 같소? 그랬다면 편지를 쓰지도 않았을 것이오!”
남궁벽이 발끈하자 모용문은 슬쩍 눈을 내리깔았다.
하지만 그의 입은 쉬지 않았다.
“네, 쓰셨지요. 하지만 최근 올라온 보고에 의하면……. 편지를 본 남천 대협과 십전무후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들의 심기를 거슬려서 좋을 게 없지 않습니까?”
“허어! 하다 하다 이젠 나에게 사위와 딸의 심기까지 신경 쓰라는 거요?”
“이왕 관계를 개선하실 생각이시면……. 조금 더 마음을 여시라는 뜻에서 드린 말씀입니다.”
“총사의 그런 말이 더 내 마음을 닫게 만든다는 것은 아시오?”
“헛! 송구합니다.”
모용문은 급히 사과했다.
검왕의 뻣뻣한 태도를 보는 게 짜증이 나지만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