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 Agent Reincarnated as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572)
572화. 범의 아가리 (2)
요원들이 김계식의 동선을 추적하는 사이, 강남 모 호텔의 연회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악당을 위한 클래식」의 대본 리딩이 시작되고 있었다.
연우가 캐나다에 간 사이 한 차례 모여 식사도 가졌고, 한국예술대상 시상식이 시작되기 직전 만남을 가지기도 했지만 본격적으로 서로 인사를 나누는 것은 처음이었다.
우선 리케 감독이 마이크를 잡고 캐스팅된 배우들의 면면을 바라봤다.
말없이 얼굴을 쭉 살펴보는 리케 감독의 시선을 받는 배우들은 자신을 바라볼 때 그 눈에서 강대한 아우라를 느꼈다.
리케 감독은 세계 무대에서 단순히 ‘인정받는다’는 수식어로는 오히려 과소평가한 게 되어버리는 급의 거장이다.
‘인정받는’ 것은 이미 수십 년 전에 이루었고, 근 십수 년간은 세계 무대의 정상에 올라 영화예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거물 중의 거물.
‘후우, 그런 감독이 한국에서 영화를 찍는 것도 믿기지 않는데 그 배에 내가 올라타다니.’
단순히 바라보기만 하는 것으로도 배우들로 하여금 혼신의 힘을 바쳐 연기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들었다.
이윽고 리케 감독이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댔다.
“반갑습니다. 칼 요한 리케입니다. 여러분은 내가 심혈을 기울여 고르고 골라 캐스팅한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들입니다. 앞으로 그 자부심을 가지고 촬영에 임했으면 좋겠습니다.”
짝짝─!
리케 감독이 말을 마치자 배우들이 박수를 치며 화답했다.
실시간으로 통역사가 말의 뜻을 전달했지만, 애초에 리케 감독이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기본적인 단어들만 구사하며 말했기에 알아듣지 못한 이는 없었다.
연우는 리케 감독의 말을 들으며 주변 배우들을 둘러봤다.
처음부터 미국 시장을 공략하기로 마음먹고 제작하는 영화였기에 캐스팅된 배우들은 유창하진 않더라도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영어를 할 줄 아는 배우들로 구성했다.
영화 내용상 영어로 연기하는 부분은 없지만, 이미 개봉 이후의 미국 일정까지 고려한 탓이었다.
‘물론 여기 모인 배우들은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진 않을 테지만.’
미소 지은 연우가 리케 감독에 이어서 인사를 시작했다.
“반갑습니다, 선후배님들. 「Classical music for villains」에서 한지우 역할을 맡은 배우 류연우입니다. 얼마 전 저와 새별의 제작 총괄 책임 윤미연 이사님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우리 영화의 촬영 스케줄이 적어도 겨울이 오기 전에 끝나도록 세팅을 해두었다고 하더라구요.”
연우는 윤미연 이사와의 대화를 나누었던 일화를 서두로 말을 시작했다.
영화 제목을 「악당을 위한 클래식」이 아니라 원제로 말한 것은 리케 감독을 배려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포부를 밝히기 위함이었다.
한편, 첫인사에 촬영 스케줄에 대해 언급하는 연우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 배우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반응을 보며 연우가 미소 짓곤 다시 말을 이었다.
“왜 갑자기 촬영 스케줄에 대해 말을 하는지 의아하실 텐데, 그 이유는 바로 오스카(Oscars) 때문입니다. 내년 봄에는 우리 LA에 가야죠. 그게 헛된 망상이나 꿈으로 끝나지 않도록 열심히 연기하겠습니다.”
***
연우의 인사에 다른 배우들이 저마다 반응했다.
예상치 못한 ‘오스카’라는 단어에 눈을 크게 뜨는 이도 있었고, 저도 모르게 입을 살짝 벌린 이도 있었다.
몇몇은 그 포부만으로도 벅차오르는지 상기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제작도 하기 전에 오스카를 언급하는 건 어찌 보면 오만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말하는 이가 무려 류연우이며 이 영화의 감독이 칼 요한 리케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결코 김칫국부터 마시는 일은 아니었다.
물론 모두 그리 생각하는 건 아닌 모양인지 연회장의 외곽, 스탭들의 뒤편에 마련된 간이 의자에 앉아서 대본 리딩 현장을 지켜보던 어느 배우의 스탭들이 조용히 속삭였다.
“역시 어린 나이에 성공해서 자신감이 대단하긴 하네. 아직 촬영도 시작 안 했는데 대뜸 오스카부터 언급하는 건 좀 너무 나간 거 아닌가?”
“에이, 그만큼 열심히 하자는 거지. 포부를 크게 가지면 좋잖아.”
자기들끼리 수군대는 소리에 뒤에 있던 다른 스탭이 고개를 저으며 끼어들었다.
“재준 씨.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야. 이 영화 감독이 리케 감독이잖아.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리케 감독의 영화가 오스카에 초대받지 못한다는 게 오히려 말이 안 되지 않아?”
“어, 그런가···?”
오스카(Oscars).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 시상식이다.
물론 칸, 베를린, 베니스를 일컫는 3대 영화제가 있긴 하지만 ‘시상식’으로 따지자면 오스카가 가장 유명하다.
정식 명칭은 아카데미 시상식이지만 흔히들 오스카라고 부른다.
칼 요한 리케 감독은 그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한 해를 찾는 게 더 빠를 정도로 지난 십수 년간 여러 차례 수상을 거머쥔 단골손님이었다.
“그리고 류연우도 EGOT 중에 이미 E를 수상했잖아.”
에미(Emmy), 그레미(Grammy), 오스카(Oscar), 토니(Tony)를 모두 일컬어 EGOT라고 부른다.
류연우는 그중 「테세우스」로 이미 에미상을 수상한 배우.
“음, 생각해 보면 그렇긴 하지. 에미상도 받았는데 오스카에 초청되는 것도 무리는 아닌가?”
“또 있잖아. 개인이 아니라 작품이 수상한 거긴 하지만 이미 스케치로 황금곰상도 받았지.”
“아, 스케치. 맞다. 그거 주연이 류연우였지.”
따져보면 따져볼수록 오스카 ‘수상’이 아니라 단순히 ‘초청’을 받는다는 정도의 언급은 포부도 아니었다.
그저 담백한 팩트에 가까웠다.
감독과 주연의 라인업을 생각한다면 수상을 노리는 게 아니라 초청을 이야기한 것이 오히려 겸손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
노미네이트나 수상은 몰라도 초청 정도라면 그저 12월 31일 이전에 미국 극장에 걸리기만 하면 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이 대본 리딩 현장이 한층 다르게 보였다.
***
한편, 그 시각.
실시간으로 위치를 추적하던 김계식이 서울로 진입하자 직접 추적하기 위해 이규진이 움직였다.
해외라면 근접 추격이 어렵지만 국내, 그것도 서울이라면 다르다.
서울 내 어느 지역을 가든, 어느 시간대이든 평균 교통량이 엄청나기에 도로가 한적한 외국처럼 백 미터 단위로 떨어져서 미행할 필요는 없다.
차량 두세 대 간격으로 거리를 두고 따라가더라도 상대가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도로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모델의 경차를 탄 이규진이 김계식이 탄 것으로 추정되는 차량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으로 접근했다.
뒤차가 간격을 내주지 않으며 끼어드는 걸 막으려 했지만, 이규진은 경차의 이점을 활용해 머리부터 들이밀었다.
“어허, 좀 끼워줘라. 국가 안보를 위해서.”
비상점멸등을 두 차례 깜빡이며 뒤차에게 미안하다는 시그널을 보내곤 김계식의 차와 같은 차선에 끼어들었다.
“예. 따라붙었습니다.”
– 확인.
김계식은 미행당하거나 쫓기는 상황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는 모양인지 그저 천천히 앞차가 출발하면 따라가고 신호에 걸리면 멈추기를 반복했다.
다행히 신호가 김계식과 이규진의 사이를 갈라놓는 일은 없었고, 두 사람 사이에 낀 차도 같은 방향으로 향하는지 일렬로 가다 서는 것을 반복했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 교차로를 지나치던 김계식의 차가 급히 좌회전하며 방향을 틀었다.
“어? 놈이 꺾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갑작스런 좌회전에 원래 운전 습관이 난폭한 것인지, 아니면 미행을 의심하는 것인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그리고 인이어를 통해 한해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일단 지나쳐서 직진한다. 다음 교차로에서 좌회전해서 다시 따라붙으면 돼.
“알겠습니다.”
김계식의 차량과 교차로에서 갈라진 뒤 이규진은 속력을 높였다.
한 블럭 돌아가면서 따라붙으려면 놈보다 더 빠른 속도로 움직여야 하니까.
***
한편, 교통 CCTV 서버를 해킹해 실시간으로 놈의 경로를 체크하며 오더를 내리던 5층 사무실에선 급히 방향을 좌로 꺾은 김계식의 차량을 마킹하고 있었다.
“방향을 꺾은 뒤로 속도를 내거나 하진 않습니다.”
김수혁의 말에 화면을 바라보던 한해운도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딱히 따돌리려는 의도는 없었나 보군.”
“나쁜 놈은 운전 습관도 나쁜가 봅니다.”
김수혁의 말에 한해운이 피식 웃었다.
“아마도 훈련된 결과일 거다. 지금 당장 미행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평소에 저렇게 급히 꺾어서 방향을 바꾸는 게 몸에 밴 거지.”
몇 분이 흐른 뒤 속력을 낸 이규진이 다시 김계식의 차량 근처로 따라붙었다.
그렇게 따라가기를 이십 분 정도 지났을 무렵.
곧바로 뒤따라가는 이규진은 물론이고 서버를 통해 실시간으로 감시하던 김수혁과 한해운도 고개를 갸웃했다.
“어째 점점 이쪽으로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흐음···. 뭐, 이대로 다음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해서 반포대교를 건너면 서초동 쪽이니까 다른 용무가 있거나 고속버스를 탈지도 모르지.”
한해운은 그 말을 하며 차라리 사옥이 아니라 서초동의 서울중앙지검에 있었어야 했나 싶었다.
검사로서의 한해운이 늘 근무하는 곳이다.
검찰 내부에도 백솔의 끄나풀이 많으니 그들 중 누군가와 접선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지도 몰랐다.
‘한경선인가? 아니면 지윤정?’
요즘 검찰 내부에서 조사를 벌이다 백솔과의 연결고리가 발견된 여러 인물들이 떠올랐다.
“알파베타. 타깃이 안 보입니다.”
서초동에 있는 검찰 내부의 끄나풀에 대해 생각하던 한해운은 화면을 다시 바라봤다.
놈이 교통망의 메인 CCTV가 있는 곳을 벗어났다.
대로에서 벗어나 골목으로 진입했다는 뜻.
‘아직 반포대교를 건너지도 않았을 텐데?’
그리고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 코드 A. 코드 A. 타깃이 본부로 향합니다.
직접 뒤를 쫓고 있는 이규진의 목소리였다.
이 상황에서 본부가 다른 곳을 말하지는 않을 터.
즉,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뭐? 여기로? 람다. 포지션 잡아.”
한해운이 황당한 얼굴로 명령을 내리자 김수혁이 바쁘게 움직였다.
벽면에 붙어 있던 캐비닛의 다이얼을 돌렸다.
딸깍─.
그리곤 체결음과 함께 옆으로 밀자 그 뒤의 비밀 수납공간이 나타났다.
김수혁은 그 안에 비치되어 있던 저격소총을 꺼냈다.
「글로벌 매치」 시리즈에서 쓰던 장난감이 아니다.
김수혁은 곧바로 비상계단을 통해 옥상의 공간으로 올라갔다.
5층 사무실의 비밀 계단으로 새별 사옥의 옥상에 올라가면 일반적으로 옥상 문을 통해 출입했을 때와는 다르게 특별히 숨겨놓은 비밀 공간으로 진입할 수 있다.
겉에서 보기엔 건물의 평범한 옥상 외벽처럼 보이지만, 그 외벽의 안쪽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
김수혁이 몸을 수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면 숨어서 상대를 저격할 수 있도록 건물의 외벽을 따라 작은 구멍을 군데군데 뚫어 일종의 참호를 만들어 놓았다.
「글로벌 매치」에서 토벽을 쌓아 작은 구멍으로 사격을 하던 마르코 반케로의 수비 방법과도 비슷한 구조다.
– 남서쪽 검은 세단. 시야에 명확히 보입니다. 저격 준비됐습니다.
“스탠바이.”
김수혁의 무전에 한해운이 책상 위로 손가락을 까딱이며 생각에 잠겼다.
물론 놈이 건물 근처로 온다 하더라도 갑자기 저격을 해 유혈사태를 일으킬 생각은 없다.
도심. 그것도 대한민국 수도인 서울 한복판에서 저격이란 선택은 정말 극한의 상황일 때나 꺼낼 수 있는 패였지만, 놈이 만약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이리로 오고 있는 것이라면 후발로 따라오는 지원군이 있을 수 있으니 이쪽도 예방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육안으로도, 교통 CCTV로도 김계식의 차량 외에 다른 수상한 차량이 보이진 않았다.
놈이 새별의 정체를 알고 있다면 결코 혼자 오진 않았을 것이다.
그야말로 범의 아가리에 스스로 머리를 집어넣는 꼴이니까.
‘뭐지? 그럼 진짜로 이 근처에 우연히 볼일이 있는 건가?’
– 타깃이 주유소가 있는 쪽 골목으로 들어갔습니다.
– 미행합니까?
연달아 들려온 요원들의 말에 한해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붙어.”
평소라면 더 이상 미행하지 말라고 했을 테지만, 놈이 목전까지 도달했다.
비록 놈이 새별 사옥으로 향하다가 이전 골목에서 차의 방향을 꺾었지만, 목전에 놓인 칼의 날이 서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으니 반드시 목적을 확인해야 한다.
– 사옥에서 백 미터 정도 떨어진 병원 건물의 유료 주차장에 차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몇 초 지나 다시 메시지가 들려왔다.
– 차에서 내리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놈이 맞습니다. 그리고 비무장 상태입니다. 심지어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는데요?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말입니다.
무전을 들은 한해운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파주 별장에 유배되어 있던 놈이 심심해서 이곳까지 트레이닝복 입고 산책하러 왔을 리가 있겠는가.
“···이 새끼. 대체 뭐야? 여긴 왜 온 거지? 그것도 혼자서.”
정말로 범의 아가리에 스스로의 머리를 집어넣으러 왔을 거라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 (계속)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