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Swordsmith RAW novel - Chapter 144
35. 운명이 엇갈리는 밤.
1.
먹장 같은 어둠이 내린 관도를 따라 도착한 숙압호 옆 대유장의 접전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무섭게 공격하는 호인량의 추적대가 정문을 파훼했다.
좌우 측의 담장도 붕괴해 내부는 불길 속의 혼전이 진행 중이다.
그 속에서 날뛰는 호인량과 흑혈승들의 모습이 선연히 보인다.
종패는 맹호의 모습을 찾으며 혼전을 살피다가 명령했다.
“장원의 적을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도보로 이동해 온 지군 병력 이만이 우레와 같은 함성을 지르며 밀려나갔다. 애초에 비하면 많이 희생당한 숫자지만 그래도 아직 이만이다.
저들이 칼질 한 번씩만 해도 이만번이다. 장원의 적들은 짓밟힐 것이다. 하지만 피곤하다. 여태 이동해온 피곤이 쌓였다. 빨리 끝내고 쉬어야 한다.
“적들의 목을 베고 한잔 술로 피곤을 씻자!”
격려의 외침을 던진 종패는 대검을 세우고 장원을 향해 달려갔다. 그 뒤를 녹림대호들이 언월도를 잡고 따라 달렸다. 그건 칼의 물결이었다.
“죽이지 말고 사로잡아라!”
호인량은 다급히 소리쳤다. 마음속의 불안이 커지고 있어서다.
맹호가 보이지 않아서다. 흑호단의 흔적이 없어서다. 그러니 알아봐야 한다.
별기군의 수장이 분명한 저 공동파 출신 놈을 죽이기 전에 알아내야 한다.
휘하 무사들에게 둘러싸여 물러나고 있는 별기군 수장을 향해 흑혈승들은 흑혈섬을 던졌다.
죽음을 만들어내는 검은 선이 그어졌다.
그것이 허공이 그어질 때마다 갈라진 모든 것들처럼, 별기군 수령호위대가 갈라졌다.
“엄폐물을 찾아라!”
별기군 수장은 소리쳤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허무하고 무책임하며 바보 같은 소리인지를 그 자신도 안다. 대유장 내부에 지금 성한 것이 없다.
다 불타고 있다. 사방에서 난전이 진행 중이다. 그나마도 일방적인 도살이다. 엄폐물이라면 지금 그 자신이 방패로 삼은 수하들의 몸뿐이다.
흑혈승들의 괴력난신과도 같은 공격 속에서 무사들은 속절없이 갈라지며 쓰러졌다.
이십여 명이던 그 숫자가 잠깐만에 다섯으로 줄어들었다.
그들도 거듭된 흑혈섬의 비상으로 다섯 개의 머리가 동시에 떨어져 나갔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의 별기군 수장은 검을 움켜쥔 채 부들거렸다.
“이, 이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없는 그의 외마디들이 부들대는 입술을 타고 나오다가 흩어졌다.
그 대신 이빨이 입술을 터트렸다.
붉은 피가 턱을 파고 흘러내렸고, 검을 세운 그의 몸에서 최후의 기력이 퍼져 나왔다.
“이것이 나의 검! 공동의 검이다!”
푸른 아지랑이 같은 기운을 검 끝으로 풀어내며 별기군 수장은 앞으로 달려나갔다.
물러나던 걸음을 버린 그 움직임은 호인량을 향해서다.
적의 수장이 분명한 그를 향해 최후의 힘을 내서 동귀어진하겠다는 의지다.
호인량은 차가운 비웃음을 터트렸다.
“더러운 공동파놈이!”
마주 나가는 호인량의 검에서 유성의 검광이 피어났다.
해남의 쾌검이다.
그 빛이 뻗어나오는 별기군 수장의 검을 스치듯 부딪치더니 아래로 흘러갔다.
별기군 수장과 호인량은 서로 스쳐 지나갔다.
위치가 바뀌었다.
그런데 별기군 수장의 균형이 무너졌다. 땅을 딛어야 할 다리가 떨어져 나갔다.
“크아악!”
바닥에 뒹굴면서야 비명이 터져 나왔다.
별기군 수장은 왼 다리가 잘린 채 버둥거렸다. 그 모습을 살기 어린 비웃음으로 보며 호인량이 다가갔다.
“흑호단은 어디 있느냐? 부관승을 데리고 온 맹호, 그놈은 어디 있나?”
호인량의 물음을 들었지만 별기군 수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비명을 터트렸던 것도 수치스럽다 생각했는지 안면이 붉게 달아올라 분노만 드러냈다.
“죽여라!”
“호, 이제 와서 호기를 부리는 게냐? 수하들을 다 죽인 놈이?”
“개 악적놈들……!”
그 순간 호인량의 검이 다시 검광을 뿌렸다.
그 빛은 별기군 수장의 팔을 잘랐다. 그러나 이번엔 비명이 들리지 않았다.
수장은 몸만 부들거렸다.
“흥. 대단한 기백인데? 좋다. 네놈의 그 용기를 제대로 시험해 보마.”
호인량은 뒤로 물러서며 눈짓했다.
그 지시에 맞춰 혈천 무사들이 별기군 무사들을 잡아왔다.
전투는 이제 끝났다.
조금 전에 들이닥친 혈천 지군의 대병력이 밀고 들어와 대유장을 쓸어버리듯이 청소하는 중이다.
생포한 별기군 무사들은 쓰러진 수장의 앞에 무릎이 꿇렸다.
공포에 부들거리기도 하고 이를 악물며 분해하기도 하고 체념을 드러내기도 하는 그들의 뒤에 혈천 무사들이 바싹 붙어섰다. 그리고 검을 치켜세웠다.
“무,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당황한 수장이 묻는 순간 호인량의 짧은 지시가 떨어졌고 검이 떨어졌다.
검날이 지나간 별기군 무사의 머리도 떨어졌다. 그게 수장의 앞으로 굴러갔다.
부릅뜬 눈동자를 아직도 부들거리는 그 얼굴에 불빛이 어른댔다.
“이 개만도 못한 놈들이!”
수장이 욕을 하는 순간 호인량의 지시가 떨어지며 두 번째 머리가 굴렀다.
“모른다! 나는 몰라!”
발악처럼 소리친 수장은 호인량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거듭 소리쳤다.
“나는 그들이 어디 있는지 몰라! 좌군총사가 어디로 갔는지 모른단 말이다!”
호인량은 힘줄이 곤두선 미간으로 별기군 수장을 응시하며 방금 들은 말을 곱씹었다.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그렇다. 그게 정답이다.
흑호단은 이 안에 없다. 놈들은 이미 빠져나간 거다.
그럴 시간도 없이 포위했다고 생각했지만 오판이다.
맹호라는 그놈은 애초에 여기 있을 생각이 없었던 거다.
이곳으로 온 것은 다른 의도다.
이 결과는…… 유인이다.
‘우리로 하여금 별기군을 공격하게 하였다. 왜지?’
놓쳤다는 분노와 의문을 씹는 호인량에게 명확한 결과가 보고됐다.
“말들의 숫자가 부족합니다. 흑호단의 타고 왔을 말들의 숫자만큼 빕니다.”
수하의 보고로 확신한 호인량은 부드득 이를 갈며 명령했다.
“추적한다! 놈들이 갈 곳은 한 곳뿐이다!”
다시 기마대를 꾸려 추적에 나서는 호인량을 보며 종패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바라보기만 했다. 저자의 의도를 막을 생각도 없고 막는다고 들을 자도 아니다. 이대로 결과만 지켜보면 된다. 바로 이곳처럼.
‘맹호, 두 개의 칼 사이에서 춤을 추는 너는 과연 대단하구나.’
새삼 감탄이 인다.
추측에 불과하지만, 맹호는 이곳을 노렸다. 별기군을 목표로 한 거다.
그 일을 해주는 자로 호인량을 이용했다. 혈천 지군을 이용했다.
그 결과가 이거다.
대유장은 불타 사라졌고 별기군은 전멸했다.
이걸 맹호가 의도했고 만들었다. 그렇게 추측한다. 아니 그렇다.
‘호인량은 어찌할 생각인가?’
밤이 깊어 달빛이 은은한 가운데 호인량과 기마대는 북으로 달려갔다.
* * *
두 시진을 넘게 달려 말들은 지칠 대로 지쳤다. 손으로 밀어도 쓰러질 정도다.
그런 말들이 쓰러지기 전에 백구산(白龜山)으로의 흔적을 확실하게 만들었다.
앞서 간 태웅 등의 흔적을 지우고 의도적으로 낸 흔적이다.
누하를 지나 우군진영인 여주(汝州)로 가기 중간이라 딱 좋은 지점이다.
서른 마리의 말을 숲 속에 매어둔 후 목계백은 조승과 하대구를 비롯한 흑호단 서른 명과 눈을 맞췄다.
“여기서 쉰다.”
전의와 투지로 불타는 수하들에게 목계백은 이어 말했다.
“우리도 지쳤지만 적은 더 지쳤다. 우리는 기다리지만 적은 뒤쫓느라 다급하다. 이제부터의 싸움은 체력의 싸움이고 의지의 싸움이다. 우리가 이긴다. 우리 계획대로 될 거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모두 조심해라.”
당부의 눈빛을 던지고 돌아서려는 목계백은 하대구가 불렀다.
“대주.”
멈춰서 고갤 돌린 목계백에게 하대구가 불안한 간절함으로 말했다.
“다 같이 싸우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조승도 강렬한 눈빛으로 동조의 말을 꺼냈다.
“그렇게 하시죠. 대주 혼자서 그러지 마십시오.”
“맞습니다. 대주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적의 숫자를 생각하면……”
“나도 너희를 못 믿어서가 아니다.”
이어나온 하대구의 말을 자른 목계백은 엷은 미소를 입가에 피워냈다.
“이 산에서의 일은 나 혼자가 좋다. 기다려라.”
지시를 내리고 목계백은 돌아섰다. 범처럼 산을 올랐다.
낮에 보면 흰 거북과 같다는 백구산의 암석들도 이 밤엔 어둠 속에서 검었다.
그 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뒤에 남은 숲 속의 흑호단은 안전할 것이다. 흔적을 산 안으로 남겼고 이제부터 혈천의 이목을 유인할 것이기에 그렇다.
‘산이 아닌 초입의 숲 속에 숨어 있을 거라곤 생각 못 하겠지.’
암석지대와 수풀지대가 혼재한 산은 도보가 아니면 이동할 수 없는 지형이다. 혈천의 기마대가 도착한다 해도 그들은 말을 이용할 수 없다.
이 산에 오르자면 두 다리로 해야 한다. 그들을 유인해 결론을 만들 것이다.
조승가 하대구와 흑호단의 걱정을 안다.
서른 명이 다해 싸워도 죽겠다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산에 들어서면 숫자가 의미 없다.
특히나 기마대는 그렇다. 그걸 이용해서 치명적인 손상을 적에게 입히고 빠져나가야 한다.
그 일을 함에 있어 서른은 많다. 어둠 속의 이 일은 혼자가 좋다.
‘이제 오는구나.’
산 저편 관도에서 횃불의 행렬이 달려오고 있었다.
* * *
“말 발굽자국들이 산 안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수하가 살핀 결론을 호인량도 의심치 않았다.
흑호단은 또 산으로 들어갔다. 관도로 이어진 길엔 발자국 흔적이 없다.
백여 필에 달하는 흔적이 산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상하다. 저 산은 말이 소용없는 암산이다.
“모두 횃불을 꺼라!”
호인량의 지시에 혈천기마대 이천은 횃불을 즉시 껐다.
흑호단이 화살 공격을 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렇다.
불을 쥐고 있는 건 죽여달란 소리와 같다.
검을 뽑아든 호인량은 백구산을 무섭게 노려보며 명령했다.
“더 이상의 실수는 없다! 모두 죽을 각오로 임하라! 산을 올라 놈들의 수급을 벤다!”
* * *
횃불을 끈 채 산을 오르는 혈천무사들을 목계백은 어둠 속에서 응시했다.
암반의 틈 사이로 난 공간에 들어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기척을 죽였다.
중첩된 대열을 형성해 산을 오르는 적들은 백구산을 거의 다 감쌌다.
확산의 마장에서 당한 일을 생각했는지 아주 조심스러운 행보다.
‘우리가 하마 해서 말과 같이 이 비탈을 도보로 넘어갔다 여기겠지.’
암반 틈 사이로 더욱 몸을 집어넣으며 목계백은 기다렸다. 혈천무사들이 바로 옆을 지나가고 머리 위의 암반을 밟고 가는 동안에도 기다렸다.
이 무리를 이끄는 수령이 누구인지를 파악하면, 그때가 움직일 때다.
귀식대법으로 모든 기척을 죽이며 기다리던 목계백은 그들을 보고 눈을 빛냈다.
‘흑혈승들.’
그들이다. 확산에서 서른을 죽었건만 그만한 숫자가 또 왔다.
애초에 일백 명 가량의 숫자로 등장했던 자들이니 저건 남은 전부다.
저들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바로 저자, 흑혈승들과 같이 움직이는 자가 수령이다.
‘역시 해남파.’
하늘빛 무복의 인물을 응시하며 목계백은 종패를 다시 떠올렸다.
그가 지금 어디에 있을까가 궁금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을 곧 털어버렸다.
지금은 해야 할 일만 생각하고 그것에만 집중해야 할 때다. 이 일을 해내야만 선행한 태웅일행을 비롯해 숲에 남은 수하들의 퇴로를 확보한다.
장도의 손잡이를 움켜잡았던 목계백은 문득 손을 풀었다.
오른팔에 남은 비구에서 비도를 꺼냈다.
왼팔 비구는 부서졌고 오른팔의 비구 속엔 비도가 세 개밖에 남지 않았다.
그걸 양손에 잡고 장도는 허리춤에 끼었다.
검은 날 빛을 번득이는 비도는 흑혈승들의 암기와 비슷했다. 그걸 쥐고 마음속으로 목계백은 숫자를 셌다. 흑혈승들이 다가오는 걸 세는 숫자다.
마침내 유효거리 안에 들어왔다고 판단한 순간 목계백은 튀어 나갔다.
암반 밑에서 유령처럼 솟구친 그림자, 목계백은 아래쪽으로 달리며 비도를 던졌다.
어둠 속에 스며들어 간 비도는 흑혈승 둘의 미간을 파고들었다.
그들이 반응하며 흑혈섬을 던지려는 순간 이미 그들 사이를 헤집었다.
허리의 장도를 뽑아 휘두르는 목계백의 공격에 흑혈승들의 몸통이 잘려나갔다.
경악할 속도와 파괴력의 그 공격은 흑혈승들 일곱을 삽시간에 베고 한사람에게로 쇄도했다.
무리의 수령인 해남무인 호인량에게다.
“맹호다! 놈을 잡아라!”
소리친 호인량이 검을 뻗어내고 마주 달려왔다.
그를 보며 목계백은 하나 남은 비도를 던졌다.
마주 달리던 짧은 거리를 격하고 날아간 그 비도를 호인량이 검으로 걷어내는 순간, 목계백은 왼손을 재차 뻗어냈다.
용악단혼수의 장력이 날아갔다.
그걸 안 호인량도 혈뢰인을 마주 발출했다.
어느새 두 사람의 거리는 눈썹을 알아볼 만큼의 지척, 장력이 중간에서 충돌하는 순간 동시에 검과 장도를 휘둘렀다.
불꽃이 피어났다.
그 불꽃 속에서 호인량의 장도가 잘려 나왔다.
경악하는 그의 얼굴에 불꽃을 만든 장본인, 오척장도가 섬광으로 내려앉았다.
부들, 경련을 보이는 호인량의 얼굴 앞에 목계백은 멈춰 섰다.
“잘 가라.”
마지막 인사를 하고 호인량에게서 돌아선 목계백은 흑혈섬을 날리는 흑혈승들에게로 달렸다. 그 뒤에 남은 호인량의 머리가 사선으로 갈라졌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