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Swordsmith RAW novel - Chapter 190
46. 건곤일척(乾坤一擲).
1.
배에서 내려 무영사 영내로 들어오는 동안 목계백과 종패와 함윤과 장효는 상황을 파악했다.
회군을 맞이해 주는 인원들이 흑호단 뿐이다.
녹림대호들과 장강수룡들은 보이지 않는다.
강을 타고 돌아오는 도중에 장강수룡들의 보고는 물론, 접촉과 연락이 전혀 없었기에 예감하던 현실이다.
무엇보다도 흑호단의 표정들이 다르다.
무거운 숨소리와 가라앉아 경직한 표정들은 암울한 두려움에 물들어 있다.
그럴만한 이유가 뭔지는 생각해보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다.
흑호단 밖에 보이지 않는 게 이유다.
그런 상황에 당문의 독귀자들이 진영 내에 상당한 숫자로 보이고 있다.
역시 당문이다. 그들이 핵심 전력이 왔다. 필연코 당문주도 행보했으리라.
그가 명세기와 손을 잡았다. 한자리에 누워 다른 꿈을 꾸는 동상이몽의 연수지만, 그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선 효과적이고 무서운 합세다.
명세기와 당대천은 이미 알고 있다.
영내의 인원변화와 녹림대호들과 장강수룡들의 접촉과 연락이 없었던 점, 영내의 인원변화를 통해 변화된 이 현실이 함정일 수 있다는 것을 이쪽에서 파악하고 있다는 것.
그것을 인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느긋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칼을 쥔 자의 여유다.
맹주전으로 든 종패가 살기를 억누른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우리가 이미 다 파악하고 있고 일전을 불사할 각오로 돌아왔다는 것을 놈들도 알고 있다.”
그렇다. 돌아오는 도중에 모를 수가 없는 상황이다. 장강에 함윤의 수하들이 사라졌으니 당연한 일이다. 기다리고 있다 요소요소에서 맞아 주거나 연락을 취했어야 할 자들이 사라진 상황은 본영에 이상이 생겼음을 말한다.
그런 상황을 확신할 때는 거의 무영사에 가까워졌을 즈음이 되겠지만, 인지한 순간 회군의 방향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돌파하기 위한 행보였다. 물러난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싸움이다. 시간을 벌고 대응방안을 더할 순 있겠지만, 그건 적도 마찬가지다.
명세기와 당대천은 그런 출정대의 인지와 결의를 헤아리면서 기다린 거다.
만일 배를 돌렸다면 그 순간 공격이 시작됐을 터다.
이건 서로가 반은 속고 속아주는 척하며 만들어진 대적형국이다.
이젠 그 마무리를 할 때다.
함윤이 어금니를 악문 채 목소리를 냈다.
“당대천이 궁금해 할 것이야. 과연 우리에게 무엇이 있어 저희가 있는 곳으로 이렇게 들어섰는지. 뭔가 있기에 그럴 것이라곤 여기겠지만, 그게 저희의 힘을 막아낼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겠지. 명세기 역시 그럴테고.”
장효가 뒤이어 입을 열었다.
“본문의 독공으로 자신감을 가졌다고 생각할 것으로 보오이다. 무당산에 파견한 당대문 등의 행적이 사라지고 연락이 없는 것을 당가주가 파악한 상황일터, 그 결과가 우리로 인해서라고 여긴다면 더욱 그럴 것이오. 그러나 수룡왕의 의견대로 요행이나 전술의 실패라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오. 그런 자신감을 만들어주는 게 당문의 무형지독, 당연한 일이오.”
차가운 미소를 입가에 문 목계백이 결론을 뱉었다.
“그 자신감을 부숴버리는 날이 오늘이군.”
종패와 함유과 장효와 목계백은 서로의 눈동자를 훑으며 마음을 주고받았다. 서로에 대한 격려이며 마지막 결의와 전의를 일으켜 세우는 시선들이다.
“팔은 괜찮은 거냐?”
목계백이 묻자 종패는 그답지 않게 미소를 지었다.
“부서진 뼈가 붙어가는 소리가 귀에 들린다. 걱정마라. 검은 오른손만으로 충분하다. 게다가 전화휘복이랄까, 오독문의 비방은 내력을 완치한 수준이 아니다. 더 진전을 시켜줬지. 더욱 깊고 충만해진 느낌이다.”
함윤도 동의했다.
“맞아.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느껴진다. 사실 나는 독을 이용한 비방이라서 걱정을 한 게 사실이다. 그게 창피한 결과다. 오독문에 감사드릴 일이지.”
진심을 담은 함윤의 눈길을 받으며 장효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 말씀들 하시면 부끄럽기 그지없소. 딱히 이름도 붙여놓지 않았던 본문의 비방이외다. 성공확률도 높지 않던 그것이 성공한 이유는 두 분의 노력과 투철한 정신력 때문이오. 본문은 그저 시중만 들었을 뿐이외다.”
고개를 끄덕인 목계백은 세 사람을 다시 현실로 이끌었다.
“이제 당문의 피를 맛보자.”
맹주전으로 가는 발걸음이 이토록 무거울 줄 명세기는 생각하지 못했다. 동행하는 당가주 당대천과 그를 따르는 독귀자들의 무서운 위세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가슴이 답답하다. 흑호단의 표정을 보니 그렇다. 저들과 자신에게 과연 이롭고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인지 혼란스럽다.
‘당문의 해약은 곧 독이야.’
그렇다는 걸 알면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당가주를 불러들인 순간부터 정해진 일이다. 저들이 내준 해약을 먹지 않았다면 지금 이 순간 흑호단도 저렇게 서 있진 못하리라. 그러나 그 해약의 정체를 알 수가 없다.
말은 해약이라 하지만 당문이 만들어 내민 것, 또 다른 독약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걸 거부하거나 안 먹을 수 없었기에 코가 꿰인 상황이다. 물론 당문이 맹호 등을 죽인다는 결론은 바뀌지 않을 터다. 그것만큼은 애초의 목적대로다. 하지만 그 이후엔 당문의 처분을 따라야 한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궁리에 몰리게 됐는지 모를 일이다. 여우 머리를 가진 호랑이라는 소릴 듣고 살았다. 그런데 이제 맞아들인 형국은 바보나 할 짓이다. 뒤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맹호 등을 처치하는 일에 급급해서 만든 족쇄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맹주 위를 뺏겨서인가? 자존심이 상처받는 걸 더이상 참을 수 없어서였나? 맹호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꼴이 진저리 나서? 그것도 아니라면……’
모르겠다. 확실한 건 당가주를 대면한 순간 이 결과가 정해졌다는 거다. 그의 방법과 제안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랬다면 지금 숨 쉬고 있지 않으리라.
‘그래, 주사위는 던졌다.’
마음을 다스리며 명세기는 걸음에 힘을 줬다. 지금은 목전의 일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맹호 등을 처치하는 일이 우선이고 최우선 목표다.
그 일을 해줄 자들과 같이 걷고 있다. 이들의 문제는, 당문의 손에서 벗어나는 문제는 그 이후에 찾는다. 이제까지 고개 숙이고 숨죽이며 살아온 세월이다. 더 하지 못할 일이 없다. 살아만 있다면 결국 때가 온다.
앞서 걷는 대동보주 명세기의 등을 응시하며 방학천은 차가운 살기를 눈동자에 품었다. 더러운 놈이라는 생각이 처음 본 순간부터 떠나질 않는다. 제 욕심을 위해서 동료들을 배신하는 놈, 당장 죽여버리고픈 놈이다.
하지만 그 생각 끝에 드는 건 자신이다. 혈천의 총사로서, 해남파의 문주로서 복수를 꿈꾸고 이끌어 나가던 자신, 그 존재는 사라졌다. 패배한 순간, 죽음을 눈앞에 둔 순간 모든 것을 방기하고 외면했다. 그건 초월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냥 벽에 부딪쳐 포기하고만 좌절이었다.
그 결과로 이제 혈천은 없다. 신명을 바쳐 따르던 그들은 전장에서 죽고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한 결과는 만든 것이 방학천 자신이다. 그런 주제에 명세기와 같은 자를 욕할 자격이 어디에 있겠는가. 우스운 짓거리다. 이젠 당문의 병기가 되어 움직이는 자, 그런 마음을 품을 자격이 없다.
‘그저…… 날 필요로 한 당문을 수단으로 삼아 못다 한 일을 하면 그뿐……’
방학천은 마음속으로 그 마음을 곱씹고 더듬었다. 당문도 이러한 마음을 알고 있을 터다. 그것이면 족한 거다. 방학천의 진심 어린 충성 같은 건 필요없는 거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칼이 되고, 목적만 이루면 된다.
그러한 마음과 결의들이 지금 이곳에서도 펼쳐지고 있다. 맹호와 종패 등이 돌아온 일과 그들을 맞는 명세기와 당대천이다. 양측은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회피하지 않고 대면하려 한다. 피하지 않겠다는 거다. 이 대면 후에 전개될 결과는 전투다. 어느 한쪽이 죽는.
‘맹호.’
방학천은 그 이름을 속으로 부르며 이를 물었다. 과연 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어서다.
백혈맹에서 제거하고자 했던 자가 그다.
그런 자가 종패와 손을 잡고 백혈맹의 뒤통수를 쳤다.
그날 혈천은 와해 됐다.
백혈맹과 혈천은 맹호의 수에 놀아난 거다.
그런 자가 맹호다. 그런데 이곳에 사지라는 걸 알면서도 돌아왔다.
과연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또한 당대천은 무슨 생각인가?
상대를 알고 있으면서도 상관없다는 건가? 그만큼 당문의 힘이 자신 있다는 건가?
그래, 그렇겠지. 당문 일천의 정예와 무형지독과 청광은 무섭다. 그러나 더 무서운 건 바로 방학천 자신이다. 천강독인이 된 존재, 그 무소불위의 힘을 그 누가 당할 것인가.
‘맹호, 종패, 너희의 목을 오늘 베어주마.’
어느새 명세기의 걸음이 맹주전 안으로 접어들었다.
무영사의 대웅전, 백혈맹 좌군이 점거하던 당시 부관승의 집무처소로 쓰이던 장소, 맹주전이라 하기엔 초라하고 격에 맞지 않는 곳이다. 그곳에 명세기와 당가주 당대천과 방학천이 들어섰다. 종패와 함윤과 장효와 목계백은 호수처럼 가라앉은 시선으로, 마음을 감춘 채 그들을 맞았다.
“맹주, 회군을 감축드립니다.”
포권하며 인사하는 명세기의 얼굴엔 진정만이 보였다. 치열한 전투와 회군의 여정을 안타깝게 여기고 감사하는 얼굴이다. 과연 명세기답다.
함윤과 장효와 목계백을 향해 명세기는 거듭 말했다.
“여러분들의 노고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리오이다. 이 명모는 명색이 부맹주라는 자리만 차지하고 하는 일이 없어 못내 죄스럽게 그지 없었소이다. 그러한 차에 본맹과 협력하는 당문의 합류를 맞아 더없이 든든하던 차였소이다. 모두 깜짝 놀라실 것이오. 당문주께서 행차하시었소.”
활짝 웃는 낯으로 명세기는 당대천을 향해 돌아섰다. 당대천은 고개를 까닥했다.
“당대천이오.”
포권조차 없는 당대천의 얼굴을 종패와 함윤과 장효가 힘을 억누른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목계백은 당대천을 보지 않고 그 뒤의 인물을 거론했다.
“혈천 총사가 같이 계실 줄은 몰랐소이다.”
당대천의 눈썹이 꿈틀했다. 자신의 인사에 대한 답사도 아닌 방학천을 거론한 것, 예의를 다하지 않고 반존칭으로 반응한 것, 당대천이란 인물을 없는 자처럼 무시한 것, 일체의 거리낌없는 태도에 대한 노여움이다.
당대천의 반응을 무시하고 목계백은 거듭 말했다.
“혈천 총사를 당문이 잡아갔다는 풍문을 들었소만, 멀쩡한 모습으로 이 자리에 있는 걸 보니 좋은 대접을 받은 모양이외다? 그거참 궁금하기 짝이 없군. 당문의 대접은 무엇이었나? 잡아가서 사위라도 삼으려고 했나?”
그 순간 당대천의 살기가 터져 나왔다.
“죽고 싶은 게로구나! 원한다면 당장 죽여주마!”
자줏빛 기운을 폭발한 당대천의 무복이 펄럭거렸다. 하지만 목계백은 미소 지었다.
“그런 말은 수없이 들었지. 이룬 놈은 아무도 없지만.”
당대천이 걸음을 내디뎠다. 그 순간 목계백은 장도 손잡이를 잡고 말했다.
“피할 수 없는 싸움. 피하려면 돌아오지도 않았다.”
두번째 걸음을 내딛지 않고 멈춘 당대천은 자줏빛 안광을 뿜어내며 목계백을 노려보다가 걸음을 물렸다. 무복을 펄럭거리던 자주색 기운도 사라졌다.
“사설은 집어치우도록 하지.”
그렇다. 이 마당에 마주앉아 서로의 의중을 떠보고 속에 없는 말을 늘어놓을 필요는 없다. 시간 낭비다. 어차피 양측 중의 한 곳은 사라져야 할 상황, 죽음을 놓고 가면놀이할 시간은 지났다. 다 알고 마주한 자리다.
당대천은 언제 분노했는지 알 수 없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본가의 사람들은 어찌 됐느냐?”
차가운 눈빛만 눈동자에 머금은채 목계백은 대답했다.
“죽였다.”
“죽여? 누가?”
대답대신 목계백은 장도를 손바닥으로 탁 쳤다.
당대천은 가라앉은 시선으로 다시 물었다.
“백혈맹은?”
“너희가 바라는 대로 됐지.”
번득이는 빛을 보이는 당대천의 눈동자, 그 변화를 향해 목계백은 선고하듯 뒷말을 던졌다.
“그 바람은 여기가 끝이다.”
변화없는 얼굴로 시선만 던지던 당대천은 장효에게 시선을 돌렸다.
“오독문이 힘이 되어준 모양이군. 놀라운 일이야.”
장효가 응축했던 힘을 드러내듯 입을 열었다.
“당문의 독만이 독은 아니니까.”
“그렇지. 당연한 일이야. 그래서 더욱 놀라워. 본가의 무형지독을 상대로 버틸만한 재간을 만든 게로군. 하지만 완벽하지 않겠지. 너희의 한계가 있으니까. 네 말대로 독은 다 같다. 하지만 오독문과 당문은 다르지.”
장효는 한마디만을 뱉어냈다.
“개소리.”
꿈틀 미간을 뒤튼 당대천은 다시 말을 이었다.
“너희가 출정한 인원만으로 백혈맹을 분쇄했다면 진정 놀라운 일이다. 정말로 그러한 결과를 만든 것인지, 아니면 목숨만 건져 도망쳐 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 돌아온 것만으로도 너희의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뒤틀린 미간과 시선은 다시 목계백에게로 돌아갔다.
“그 결정의 배경이 무엇인지 나는 모르겠다. 진정 승리를 하고 본가의 힘조차 가볍게 볼 만큼의 기세와 준비로서 돌아온 것인지, 어쩔 수 없는 형세로 인해서인지 모르겠다. 이러는 도중에 백혈맹의 대군이 들이칠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지. 그런 계교가 너희의 장점이란 것은 안다.”
당대천의 눈은 다시 자줏빛 안광을 뿜었다.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너희의 속마음이 무엇이고 계교가 무엇인지 상관치 않겠다. 너희가 내 앞에 온 이상 변하는 건 없다. 너희를 죽일 것이다.”
종패가 험악한 안광을 풀어내며 입을 열었다.
“영내의 내 수하들 생사에 대해 묻는 건 부질없는 짓이겠지. 하지만 알아둬라. 너희 당문 독귀신들이 저지른 짓이 너희의 목을 치는 칼이란 것을.”
당대천이 나서고 방학천이 움직이는 순간 목계백이 말했다.
“명세기, 너는 이제 도망가는 게 좋을 거다.”
명세기의 표정이 확 일그러짐과 동시에 안색이 창백해지던 순간, 당대천과 방학천이 움직이고 종패와 함윤과 장효와 목계백이 동시에 칼과 검을 뽑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