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Swordsmith RAW novel - Chapter 5
4.
대동보주 대호검 명세기는 호목을 빛내며 검을 잡았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앞으로 나서는 자가 있었다.
대동보주의 등 뒤에서, 마치 그림자가 튀어나오듯이 튀어나온 자, 바람 같은 그 형체로부터 창날이 뻗어나왔다.
섬전일격.
그야말로 벼락이 치는 것 같은 창의 찌름이다. 그 공격이 목계백의 목을 노리고 들어왔다.
본 순간 목에 구멍이 나고 말 쾌속하고 강력한 공격이다.
하지만 목계백은 왼발을 축으로 오른발을 뒤로 빼며 비스듬히 돌았다. 반좌보와 같은 그 가벼운 움직임에 창끝은 목표를 놓치고 말았다.
목계백의 잔상을 뚫은 창날은 곧장 방향을 틀며 옆으로 날을 그었다.
그러나 그 순간 다시 반보(半步)를 거푸 내딛으며 움직인 목계백은 창 주인의 옆구리로 쇄도했다.
창을 회수하는 그 몸을 향해 용악철주를 쑤셔 넣었다.
용악철주(龍握鐵肘).
용의 손아귀가 내지르는 팔꿈치의 일격은 창수의 옆구리를 파고들어갔다. 금성철벽이라도 부숴 버릴 듯한 그 강력한 일격에 창수의 눈이 커지고 숨이 멎었다.
그러나 절체절명의 그 찰나에 창대가 휘돌아 들어왔다.
주인의 몸을 감싸고 휘도는 창대에 목계백의 팔꿈치.
용악철주가 부딪쳤다.
팡, 하는 충돌음과 함께 창수는 회오리처럼 돌며 물러났고 목계백은 주저앉듯 자세를 낮췄다. 휘돌며 물러나는 창날이 머리를 노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방어와 공격의 일격을 피한 목계백은 전질보로 나갔다.
찰나에 거리를 좁히며 나아간 목계백은 물러나는 창수의 가슴 앞으로 파고 들어갔다. 눈을 부릅뜨는 창수를 향해 용악단혼수(龍握斷魂手)를 찔렀다.
칼날 같은 그 손끝은 경악하는 창수의 인후를 파고 들어갔다.
강력함 검격이 날아온 것은 그 순간이었다.
대동보주 대호검 명세기다. 그가 창수의 인후를 노린 일격을 펼치는 목계백에게 검을 휘둘렀다.
육중한 무게를 지는 중검(重劍)은 손목을 내리쳤다.
손을 거두지 않으면 잘려버릴 상황, 목계백은 옆으로 비켜나갔다.
정적이 연강보당 앞을 내리덮었다.
부슬비가 추적주척내리는 가운데 벌어진 돌발적이고 위험한 일장의 격전은 멈췄다.
모두가 멈춰 섰다.
대동보주는 자신의 애병인 대호검을 두 손으로 잡은 채 비속에 서 있었고, 중간 길이의 창을 잡은 서른 초반의 청년은 이를 악문채로 목이 잘린 좌교의의 시신 앞에 멈춰서 있었다.
그리그 두 사람이 시선을 던지는 곳에, 흑의 청년 목계백이 자세를 낮추고 있었다.
대동보주 명세기가 애병 대호검을 중단세로 들어올리며, 그 검극을 목계백에게 겨누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에 따라 장내엔 긴장이 팽배했다.
“네놈.”
내딛던 걸음을 멈추고 검을 겨눈 명세기가 목계백에게 시린 시선을 던지다가 물었다.
“누구냐?”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이지만 모든 걸 포함한 질문이기도 하다. 이 새벽에, 연강막주 좌교의의 머리를 참수해 버린 이 어둠 속에, 대동보의 이름으로 비금도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 곳에, 대장장이들만 있어야 할 연강막에, 대동보주 명세기의 검을 피한 젊은 사내의 정체를 묻는 질문이다.
목계백은 두 주먹을 움켜쥐고 가슴 앞에 모아, 두 다리를 굽혀 신형을 낮춘 모습으로, 언제든 공방에 임할 수 있는 자세로, 시린 눈빛으로 말했다.
“무기를 손질하러 온 자요.”
대동보주 명세기는 분노를 억누른 시선 아래서 솟구치는 의문을 드러냈다.
“하루 이틀 사이 온주 땅에 들고난 자들에 대한 동향을 다 파악하고 있다. 포구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이 온주 땅 모든 곳에 우리의 이목이 있다. 그랬기에 좌교의 형제의 음모를 분쇄한 것이지. 허나 너 같은 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우리의 이목을 속인 자라면 필히 비금도겠지.”
적으로 간주하는 명세기의 말.
그러거나 아니거나 너 같은 놈은, 수상함을 풍기고 위험함을 뿌리는 놈은 죽이겠다는 소리다.
전쟁을 준비하며 이목을 곤두세운 마당인데도 파악하지 못한 자이니 더욱 위험할 수 있는 자.
일단 죽이고 나서 전후를 따져보겠다는 우두머리의 판단이다.
다시 한발을 내딛는 명세기와 옆으로 도는 창수를 보며 목계백은 비웃었다.
“온주 땅에 눈과 귀를 깔았다는 자들치곤 유치하기 짝이 없군. 나귀가 끄는 수레를 타고 온자를 놓치다니 말이야. 거적을 쓰고 행색이 남루한자들은 그냥 못 본 척 했다는 말 아닌가? 그런 정신으로 전쟁을 해?”
걸음을 내딛던 대동보주 명세기는 미간을 찡그리며 멈췄다.
“무슨 소리냐? 네 말은 그럼……”
의문을 드러내던 명세기는 목계백이 말한 것으로 전후를 짐작하고 파악했다. 명색이 한집단의 수령된 자이니 만큼 그 판단과 유추에는 남다른 바가 있는 바, 대동보의 기동에 어떠한 허점이 있는 지를 찾아냈다.
“기찰을 이 따위로 하다니!”
호목을 치뜨고 분노를 드러낸 명세기는 창을 겨누고 멈춰 선 자를 향해 호통 쳤다.
“비격! 네놈은 일을 어떻게 한 것이냐!”
비격이라는 이름으로 호명된 자.
중창을 든 삼십 초반의 사내는 매 눈을 땅으로 깔며 고개 숙였다.
“송구합니다. 기찰은 부보주와 적호단주가 맡았던 관계로 신경 쓰지 않았었습니다.”
명세기의 호목이 불을 뿜었다.
“이런 멍청한 놈들이!”
명세기는 진실로 분노했다.
명색이 온주 땅을 호령하는 대동보다.
이만한 기업을 일구기 위해 지난세월동안 겪은 간난신고를 생각하면 목에 메일 정도다.
이제는 비금도와 일전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구멍이 생긴다.
부보주와 적호단주의 안일함이 저런 수상한 자를 들여놨다.
당장 일벌백계로 팔 하나씩을 자르고 싶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다.
부보주와 적호단주는 충주(衝州)에 갔다. 그곳에 있는 은천장(銀川莊)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서다. 비금도에 첫째 딸을 희생당한 원한이 있는 은천장은 이번 거사를 마다할 리가 없다. 인근 무림인들을 규합해 올 것이다.
쓴 입맛을 삼키며 어금니를 물던 명세기는 다시 목계백을 응시했다.
“네놈의 진실한 정체를 밝혀라.”
명세기의 표정 변화를 응시하고 있던 목계백은 차갑게 대꾸했다.
“이미 말했소.”
“흥, 무기를 손보러 온자라는 말을 믿으라는 거냐?”
“믿고 안 믿고는 자유요.”
태연자약한 목계백의 대응에 명세기의 눈썹이 올라갔다.
“네 놈이 정녕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리겠다는 게로구나.”
살기를 돋우며 다시 걸음을 내딛는 명세기, 그의 자존심을 목계백은 흠집 냈다.
“비금도와 전쟁이라, 이런 오합지졸로 가당치도 않은 짓이로군.”
명세기는 안면을 일그러뜨렸다.
“네 이노옴!”
당장 달려들 듯한 그에게 목계백은 냉정한 현실을 일깨워줬다.
“보주께선 이미 졌소. 나와 같이 정체모를 자가 처마 밑에 스며든 것도 모르고, 더더군다나 수하라는 놈들의 실력은 보니 변변찮고 안일하기 까지 하니, 흉악하고 무자비한 비금도의 악한들과 싸워이기시겠소?”
명세기는 폭발하려는 화를 그 말로서 잊었다.
‘비금도와 싸워 진다? 이대로는?’
보슬비로 한기를 가득 머금은 찬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셨다.
그 상태로 명세기는 수하들을 돌아봤다.
비에 젖은 채 떨고 있는 대장장이들 뒤로 서 있는 대동보의 무사들, 적호단(赤虎團)과 백사단(白獅團)이다.
대동보를 이루는 근간인 두 무력집단, 그들을 보며 명세기는 숨을 내쉬었다.
‘내가 안일하게 생각한 건가? 지금 이 전력에 은천장의 전력을 합치면 비금도를 도모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 자만이란 건가?’
쉰을 갓 넘긴 이날까지 살아오면서 가슴에 새긴 것이 있다면 하나다.
약하면 죽는다.
강호의 밥을 물고 물을 마시면서 그것하나만은 처절하게 영혼에 각인했다.
그렇기에 지는 싸움은 덤벼들지 않았고 이길 수 있을 때까지 기회를 노렸다.
그렇게 이 자리까지 왔다.
그리고 이제는 눈엣가시를 쳐내야 할 때다. 그래서 전쟁을 선포했다.
그런데 저 젊은 놈이 폐부를 찔렀다.
‘만사불여튼튼이라고 했건만, 내가 눈앞의 성과에 집착해 면밀함을 잃었을 수도 있다. 비금도는 알려진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곳, 그런 곳을 도모함에 있어서는 조심하고 더욱 신중해야 함이 마땅한 전략. 연강막을 합병치 않고 여태 내버려뒀던 것처럼 신중하고 치밀해야 하거늘.’
어느새 분노와 의혹보다는 호기심이 어린 눈으로 명세기는 목계백을 응시했다.
“연강막에 인연이 있는 자이더냐?”
그 물음이 나가자마자 비에 젖은 채 떨고 있던 두이가 나서 고했다.
“소, 소인의 외가 쪽 조카가 됩니다요!”
명세기는 두이에게 좁힌 미간을 돌렸다.
“집안의 조카라고?”
허리를 조아리며 두이는 거듭 고했다.
“그렇습니다요. 어릴 적 집을 나가 무예수업을 쌓는다하여 집안의 골칫덩이가 됐던 놈입니다요. 이제 머리가 깨어 제 밑으로 들어와 대장장이질이나 배워볼까하던 참입니다요. 어제 찾아왔습니다요, 거지 꼴이였습죠.”
듣고 있던 명세기도 비격이란 자도 미간을 더욱 좁혔다.
“대장장이가 되겠다?”
명세기의 시선은 다시 목계백에게로 돌아갔다.
“정말로 그러하냐? 너와 같은 자가 대장장이가 된다고?”
대답이 없는 목계백과 두이를 번갈아 보던 명세기는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비격의 공격을 피하고 내 일 검을 피한 자가 대장장이가 된다?”
가득 좁힌 미간을 펴고 다시 목계백을 응시한 명세기는 재차 확인하듯 물었다.
“정말로 연강막의 대장장이가 될 셈이냐?”
고개 숙인 채 누가볼세라 조심하며 연신 눈짓을 해대는 두이, 그를 보던 목계백은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칼을 잡고 강호에 받을 디딘 자, 내 칼이 제대로 쓰일 곳이 찾고 있소이다.”
명세기의 눈에서 반짝하는 빛이 새어나왔다.
“칼을 쓰더냐? 그럼 네 칼을 내가 사면 어떻겠느냐?”
목계백과 명세기의 시선은 보슬비 속에서 차갑고 뜨겁게 얽혔다.
무기와 짐을 챙기는 목계백에게 두이는 안타까운 얼굴로 만류했다.
“정말로 대동보의 전쟁에 참여 할 생각인가? 이보라고, 이건 미친 짓이야. 은천장과 힘을 합친다지만 비금도의 악한들은 지독한 자들이라고? 그런 자들과 전쟁을 하는 거야, 이런 짓에 끼어들려고 십년 만에 돌아온 건가?”
그렇게 말하면서 두이는 자신의 말에 구멍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목계백이란 이름만 알지 실제 출신도 고향도 아무것도 모른다. 단지 십년 전의 인연만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인연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이봐, 정말로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단 말이지. 대동보주는 야심이 큰 자야. 비금도의 일이 아니더라도 또 다른 일을 벌일 자라고. 이번 비금도를 치는 일에는 명분이 아주 그럴듯하지만 실제론 그자의 욕심이 배경이야. 비금도에 있다는 악한들의 금은보화가 우선 목표고 그다음은 은천장에 환심을 사서 접촉하는 것이 둘째란 말이야. 명세기가 온주 땅에서 대동보를 어떻게 키웠는지 아나? 바로 지금처럼, 돈 있고 세력 있는 자들에게 환심을 사며 접근한 뒤에 그들의 뒤통수를 쳐서 다 빼앗은 거야.”
목계백은 엷은 미소로 두이의 불안에 대응했다.
“걱정 마십시오.”
나귀가 하품하는 수레와 목계백의 얼굴을 번갈아 보던 두이는 신경질을 냈다.
“정말 말귀가 안 통하는구만. 이 비루먹은 나귀와 다를 게 없어!”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나귀가 푸릉 하며 콧김을 뿜더니 두이를 물려고 했다.
“엇, 이, 이노무 짐승이?”
놀라며 물러나는 두이에게 목계백은 진심어린 인사를 했다.
“누군가의 걱정을 받아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 군요, 감사합니다.”
진정어린 목계백의 고개 숙임 앞에서 두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대동보주 그자는 자네를 이용하려는 거야. 쓸모가 다하면 버리고 만다고. 그런데도 이렇게 고집을 부리다니, 젊다는 게 그런 거지만 안타깝군.”
나귀의 머리를 툭 치며 수레를 돌린 목계백은 마실 가는 것처럼 인사했다.
“자주 들르겠습니다.”
아침 속으로 멀어지는 목계백의 수레를 보며 두이는 안타까이 손을 흔들었다.
“정말로 그래야 하네. 매일와도 돼.”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있을지, 라는 말은 두이의 입속에서만 웅얼거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