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Swordsmith RAW novel - Chapter 51
4.
항주에서 흑로(黑路)라고 부르는 곳은 위험하고 더러운 곳으로 유명하다.
온갖 하류인생들이 몰려든 곳으로 항주의 치부가 이곳이다.
환락과 유흥으로 땅 위의 극락이라 불리는 항주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동전이란 앞면이 있으면 뒷면이 있듯이, 그 화려함 뒤에 숨은 얼굴이다.
어둡고 검은 거리 흑로.
안으로 들어가면 거미줄처럼, 미로처럼 얽힌 골목들로 인해 외부인은 길을 잃고 만다는 곳.
은퇴한 창기와 배수(소매치기), 팔 잘린 도박꾼, 다리 부러진 광대, 노래할 수 없는 늙은 가객, 부모 없이 버려진 고아들, 상처입고 버려진 모든 인생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바로 그 흑로 안으로 목계백은 말을 달려 들어갔다.
“워어.”
흑로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목계백은 말을 세웠다.
붉은 갈기를 휘날린 말은 잘 훈련된 몸짓으로 멈춰 섰다.
말에서 내린 목계백은 여인을 받아 내렸다.
머리에 씌운 두건을 벗기고 자신도 진천경혼단의 옷을 벗었다.
목계백은 흑로의 어둠 속에 대고 나직하지만 분명하게 말을 던졌다.
“황금을 흑전에 묻기 위해 왔다.”
흑전의 암어가 날아가자 이내 반응이 나타났다.
흐릿한 불빛만이 띄엄띄엄 보이는 흑로의 안쪽에서 그림자들이 다가왔다.
셋이다. 그들 중의 한명, 팔이 없는 늙은이가 긴장과 경계가 어린 눈빛으로 물음을 던졌다.
“황금이 얼마나 되오?”
목계백은 주저 없이 답했다.
“항주를 메울 만큼.”
팔 없는 늙은이가 고갯짓을 하자 다른 그림자들이 움직였다.
한 명은 말고삐를 잡고 빠르게 어둠속으로 사라졌고 다른 한 명은 바로 뒤돌아 뛰었다.
혼자 남은 팔 없는 늙은이는 정중하게 목례하더니 돌아섰다.
팔 없는 늙은이의 뒤를 따라 목계백은 걸었다.
두려움과 긴장으로 굳어 있는 여인의 팔을 잡고, 지그시 힘을 주어 안심하라는 의지를 전하면서, 앞서 걷는 늙은이가 들어가는 허름한 판옥집으로 들어갔다.
그 집의 내부에서 지하로 파놓은 비밀통로를 시작으로, 미로 같은 곳을 이동했다.
토굴을 지나고 주루의 지붕을 걷고, 다시 노름판의 가로질러, 기억하기도 힘든 과정을 거친 후에 도착한 곳은 예상대로 황금흑전반점이었다.
용인성 휘하의 직속부하들이 맞아줬고 곧바로 그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비격과 모금량의 의문과 긴장에 들어찬 시선을 받는 순간 용인성이 다가왔다.
비밀출구 앞에까지 와서 목계백을 맞은 그는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간 일은? 뭘 하고 온 거냐?”
묻던 용인성은 목계백의 뒤로 여인이 같이 들어온 걸 보고 미간을 가득 좁혔다.
“이 여인은……”
비격과 모금량에게로 걸어가며 목계백은 말했다.
“혁리장천을 죽였다.”
순간 비격과 모금량과 용인성은 얼어붙었다. 그러다가 용인성이 우르 어깨를 털며 물었다.
“지, 지금 뭐라고 한 거냐? 누, 누굴 죽였다고?”
용인성의 집무서안 위에 놓인 찻잔을 들어 마신 목계백은 여인을 가리켰다.
“그 늙은이에게서 구해온 여인이다. 진짜 증인을 찾은 거지.”
말하는 목계백과 여인을 번갈아 보던 용인성은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얼굴로, 지금 내가 듣고 있는 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단 얼굴로 멍한 시선만 던졌다.
머릿속에는 목계백이 떠날 때 한 말이 맴돌았다.
“규, 균형을 깬다는 말이…… 이거였냐?”
겨우 그 말을 뱉어냈던 용인성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니, 믿을 수가 없어. 혁리세가가 어떤 곳인데? 혁리장천이 어떤 인물인데? 그곳에 들어가서, 별원에 침입해서 그 늙은이를 죽였다고?”
용인성은 정말로 믿을 수가 없었다.
혁리세가의 내부 도면을 구해 달라고 했을 때부터 불안했다. 그곳에 침투한다는 것은 자살행위와 같으니까.
그래도 목계백이란 자라면, 놀람을 주며 나타나 새로운 의지를 갖게 한 이자라면 뭔가 할 수도 있겠더니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혁리장천을 죽이는 게 아니었다. 기껏해야 그 가문의 마구간에 불을 지르는 정도였다.
그런데 혁리장천을 죽였다는 거다.
흑전이 수십 년을 하지 못했던 일을, 꿈만 꾸던 일을 목계백이 했다는 거다.
마실 나가듯이 휙 나갔다 들어와서 죽였다고 말하고 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믿을 수 있나?
믿을 수 없다는 용인성의 눈을 향해 목계백은 다시 여인을 가리켰다.
“모든 걸 지켜 본 증인이 여기 있다.”
용인성의 시선이 여인에게로 확 돌아갔다. 그게 무서웠는지 여인은 움찔했다. 그런데 용인성이 아닌 비격이 어느새 다가가 여인에게 물었다.
“혁리장천이 죽는 걸 봤습니까?”
여인은 두려움 가득한 시선으로 비격과 모금량과 용인성을 보다가 목계백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곤 입술을 잘근 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허.”
모금량이 입에서 경악하는 탄성이, 아니 어처구니없다는 탄식이 새어나왔다.
비격은 충격을 받은 눈으로 목계백을 돌아봤고, 용인성은 몸을 부들거렸다.
“도, 도대체 어떻게?”
충격으로 말을 잇지 못하는 용인성에게 목계백은 찢어진 옷가지로 말아온 검을 던졌다.
“혁리장천의 검이다.”
얼결에 받아든 용인성은 눈을 부릅떴다가 옷가지를 서둘러 풀어냈다.
“헛!”
검갑에 드러난 비상하는 용을 보고 용인성은 숨을 집어 삼켰다.
“요, 용화검!”
천하삼십대 명검에 들어가는 혁리세가의 검, 혁리장천의 검, 그것을 손에 잡고 보며 부들거리다가 침을 삼켰다. 그리곤 천천히 검을 뽑았다.
찬연한 검광이 실내를 채웠다. 명경지수와 같은 검신은 진정 아름다웠다.
“정말이구나. 정말이야……”
감탄인지 탄식인지 모를 소리를 중얼거리며 용인성은 이제 받아들였다.
목계백이 혁리장천을 죽였다는 건 진실이다.
그랬으니 이검이 여기 있는 거다.
혁리장천의 손에서 떠나지 않았던 용화검은 이제 주인을 잃었다.
비격은 용화검의 시린 빛을 보다가 목계백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혁리장천을 죽일 수 있었지?”
가슴속의 충격과 동요를 억누르며 묻는 비격의 심정, 그것은 모금량도 같았다.
죽은 자가 혁리장천인 것이다.
그는 자전도객 허관웅과는 차원이 다른 자다. 혁리세가의 태상가주다.
수십 년간 강호에 무명을 날린 고수 중의 고수다.
그의 제천무류검은 남궁세가의 제왕검형에 비견된다.
그를 상대할 자는 강호에 그만큼 무명을 날린 자들 외에는 없을 것이다.
여전히 담담한 얼굴로 목계백은 다시 또 한 잔의 차를 마셨다.
“혁리장천도 사람이야. 사람은 죽게 마련이지.”
그것으로 답을 한 목계백은 용인성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혁리장천이 죽었다는 걸 알려야 한다.”
소문을 퍼트리라는 거다. 지금 바로, 그것도 온 항주사람들이 알도록.
더불어 남궁세가 측에서도 알도록. 균형이 깨진 이 충격이 뒤흔들도록.
“알았다.”
용화검을 갈무리한 용인성은 바로 측근을 불러 지시했다. 지시받은 자가 나가고 나자 크게 심호홉을 하며 자신을 진정시키더니 물었다.
“이제 뭘 할 거냐?”
대충 예상을 하면서도 묻는 거다. 그걸 알기에 목계백은 짧게 답했다.
“두 가문이 서로를 죽이려고 물고 뜯은 후에, 지쳐 주저앉을 때를 기다려 목에 비수를 꽂아야지. 물론 그 비수를 손에 쥔 자는 우리가 될 것이고.”
“비수라고?”
눈빛을 번득이며 용인성이 여인을 돌아봤다. 비격과 모금량도 그랬다.
세 남자의 시선을 받자 여인은 목을 움츠렸다. 눈은 아직도 떨고 있었다.
“혁리장천이 혀를 잘랐다.”
목계백의 한마디에 용인성과 비격과 모금량은 흠칫했다.
“혀를 잘랐다고?”
“왜?”
동시에 묻는 비격과 모금량을 담담히 보며 목계백은 사건을 거론했다.
“희롱하며 유희를 즐기다가 실증이 나면 죽인 거다. 그동안 변사체로 발견된 여인들은 그런 거야. 혁리검천 놈과 혁리장천, 조손이 만든 일이다. 중간에서 가주 혁리명도 함께 했을지 모르지. 혁리세가가 다 한 거야.”
비격과 모금량과 용인성은 이제 확실히 이해했다.
그래서 목계백은 진짜 증인이라고 한 것이다.
혁리장천의 손아귀에서 직접 살아있는 피해자를 구해왔다.
이 여인과 더불어 남궁세가의 흉악을 밝힐 여인도 확보했다.
두 여인이 두가문의 추악하고 끔찍한 진면목을 밝힌다면 비수가 된다.
그건 두 가문이 서로에게 혐의를 씌우고 힘으로 승부하는 것과는 다르다. 저희들의 사리사욕을 위해 상대를 치기 위한 흉계로서 저지른 죄악이다.
진실이 상관없어진, 이긴 자가 진실이 될 것인 두가문의 전쟁은 참 얼굴을 드러내게 된다.
그나마 강호에 대고 외치던 대의명분을 상실하게 된다.
당연히 두 가문에게 합력하던 강호인들은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모두가 무거운 숨을 내쉬던 그 때에 용인성의 수하가 들어와 보고했다.
“남궁세가에서 별동대를 움직였습니다. 남악권사가 지휘를 맡았다 합니다.”
용인성은 눈을 치뜨며 확인했다.
“정확한 것이냐?”
“정확합니다. 무림의용군에 지원한 형제가 보낸 전갈입니다. 별동대에 참여해 출발하면서 비서를 떨궜습니다. 그걸 다른 형제들이 보냈습니다.”
그동안은 외부와 차단되어 방법이 없었지만, 별동대가 되어 나오면서 기회가 생겨 했다는, 주변을 맴돌던 자들이 받아 비응전서를 날렸단 소리다.
용인성의 시선이 돌아오자 목계백은 놔두고 갔던 자신의 장도를 잡았다.
“무금을 불러야겠군.”
* * *
새벽어둠 속으로 말을 달리며 무천룡은 뒤를 돌아봤다.
접전 중에 통지를 하고 모은 무림의용군 삼백 명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빛을 냈다.
대의를 수호하려는, 정의감에 불타는 저들의 눈엔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결의가 있었다.
특히 안휘검문주 조두량은 아주 믿음직했다.
‘빠져나오는 건 성공했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스스로에게 각오를 일깨우며 무천룡은 말고삐를 움켜잡았다.
서호대루 옆 임시마구간에서부터 말을 끌고 은밀히 움직이기란 사실상 어려웠다.
하지만 창룡대의 지원으로 그걸 해냈다. 그들이 집중적으로 막은 덕분이다.
‘금아. 아비가 네 원한을 갚으러 간다.’
양딸 무금의 얼굴을 떠올리며 무천룡은 이를 악물었다.
황룡사가 불타는 속에서 산화한 그 최후가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얼마나 뜨거웠을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감히 상상도 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아비가 구해주러 오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가슴이 찢어진다.
원한을 품고 사는 딸의 마음을 더 어루만져 주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
버리라고만 하지 말고 직접 나설 것을…… 이젠 기회가 없다.
‘네 원수가 누구인지 물어라도 볼 것을. 미안하구나. 네 마음도 못 헤아리고 아비노릇을 한다는 허울로 원한을 털어내라고만 종용한 내가 부끄럽고 미안하다. 기다려라. 아비가 곧 네 원수를 갚고 곁으로 찾아가마.’
말을 달리며 무천룡은 한줄기 눈물을 흘렸다.
태어나서 한 번도 흘려보지 않은 눈물이다.
무인이 되고부터는 잊었던 슬픔이다.
그런데 이제 눈물을 흘리고 슬픔에 젖는다. 털어낼 수가 없다.
딸 무금에게는 그렇게 원한을 털어내라고 말했으면서, 정작 이 슬픔의 격랑에 흔들리고 있다.
어찌 그러지 않을 수 있나.
십육 년이다. 그 긴 시간을 함께 했다.
아비와 딸로서 천지신명에게 인연을 고하고,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남악권을 수련하게 했다.
지쳐 주저앉아 울면 엄하게 호통을 쳤고, 눈물 흘리며 잠이 들면 애처로워 뺨을 쓰다듬었다.
엄격하고 강하게 키워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차라리 원수가 누군지 물어 직접 죽여 버리고 무금에겐 나은 인생을 살게 했어야 했다.
그걸 못했다.
무금도 입을 다물고 원수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제 손으로 죽이고자 결심한 것이다.
그걸 알기에 더욱 엄격하게 가르치고 훈도했다. 그 아이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게 어인 허망한 끝인가.
결국 딸을 원한만 품고 죽게 만들었다. 남궁세가로 가지만 않았어도 없었을 일이다.
무천룡은 후회를 씹었다.
가슴이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눈앞에는 딸 무금의 얼굴이 어른댔다.
여섯 살이던 아이가 커나가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처음 달거리를 시작해 놀라 울던 그날, 아비의 생신날이라고 제 손으로 닭을 잡다 놓쳐 뛰어다니던 날, 마을을 약탈해간 화적 놈들 소굴로 혼자 뛰어들어 박살을 내던 날, 그 모든 날들이 꿈만 같았다.
‘내 반드시 혁리장천의 심장을 부수리라!’
부드득 이를 갈아 부치던 무천룡은 그 순간 칠절편 위홍의 목소리를 들었다.
“앞을 막은 자들이 있습니다!”
과연 길 저편에 그림자 몇이 보였다. 그걸 본 무천룡은 거칠게 명령했다.
“누구든 우리 앞길을 막는 자들은 죽여라!”
명령을 내린 무천룡이 제일먼저 말을 달려갔다. 그런데 뜻밖의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무금의 소리였다.
“아버지! 저 금이에요!”
죽었다던 딸 무금이 부르는 소리가 분명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