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Swordsmith RAW novel - Chapter 54
3.
항주전장을 둘러싼 어둠을 밝히며 들이친 이백오십 기마대, 남궁여립이 이끄는 창룡대는 서호대루에서 기습을 당했던 격노를 토해냈다.
그런데 그 분노를 받아주고 항주전장을 사수해야 할 혁리세가의 병력이 없었다.
“이놈들이 도망을 가?”
마상에서 검을 뽑은 채 남궁여립은 눈썹을 곤두세웠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에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혁리세가가 항주전장이라는 대표사업장을 포기하고 물러났다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다.
전장이라는 특성상 알맹이만 빼 가면 그만이지만, 이걸 포기함으로써 미치는 대외적 심리적 영향은 대단히 크다.
그러함에도 이들은 했다. 살을 주고 뼈를 깎겠다는 거다.
‘함정?’
순간적으로 그 생각을 한 남궁여립은 그것들을 봤다. 불화살이다.
“모두 전장에서 나와라! 물러서라!”
외쳤지만 늦었다.
주변의 가옥과 건물들에서 날아온 불화살들은 항주전장을 삽시간에 불가마로 만들었다.
내부로 들이쳐 뒤지던 창룡대들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갇혔다.
운 좋게 빠져나온 자는 불덩이다.
‘화공을 준비해뒀었구나!’
눈을 부릅뜬 남궁여립은 불덩이가 되어 쓰러지는 창룡대를 보고 이를 악물었다.
“대형을 갖춰라! 적의 후속공격이 있을 것이다!”
전장 밖에 남아 있던 백 오십 명의 창룡대는 즉시 말에 올라 전열을 갖췄다.
그 순간에도 불화살들은 계속 날아왔고, 불지옥이 된 항주전장 안에서 나오지 못한 창룡대들이 아우성을 쳤다.
그중엔 온몸이 불이 붙은 채로 담장을 넘어 나온 자도 있었고, 월창을 부수고 추락하는 자도 있었다.
남궁여립의 예상대로 후속공격이 이어졌다. 섬전 같은 화살공격이 날아왔다.
그 때문에 불이 붙어 나오는 창룡대를 돌아볼 시간 같은 건 없었다.
“이 길을 뚫고 나간다!”
선두에서 외치며 남궁여립은 말배를 찼다.
흥분한 전마는 콧김을 뿜으며 달려 나갔다. 그 뒤를 백오십 기마대가 밀물처럼 달렸다.
항주전장 앞의 이 길을 벗어나려는 움직임이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제지당했다.
히히힝!
남궁여립의 전마가 울음을 토하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마상을 차고 오르며 허공을 돌아 착지한 남궁여립은 전마의 다리가 잘려나간 것을 봤다.
‘은형철사(隱形鐵絲)!’
그것이다. 말이 달려 나가는 길을 가로질러 묶어놓은, 보이지 않는 칼날이다.
끊어지지 않는 저것의 특성상 말이라는 육중한 체구의 짐승이 달려가 부딪치면 잘리게 마련이다.
혁리세가는 이 거리에 덫을 만들었다.
“멈춰라!”
남궁여립이 소리쳤지만 소용없었다.
전력으로 질주하던 창룡대는 서로 간의 간격이 좁았고, 선두로 달리던 남궁여립의 말이 쓰러지는 것을 시발로 연쇄적으로 쓰러졌다.
남궁여립처럼 도약한 자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자들은 말과 함께 고꾸라졌다.
그중엔 은형철사에 갈라진 자도 있었다.
이를 악문 남궁여립은 배후공격을 짐작했다. 이젠 말에서 내렸기 때문이다.
“주변의 암습을 대비하라!”
그게 시작을 알리는 명령이라도 되는 것처럼, 좌우 양편 거리의 어둠속으로부터 습격자들이 나타났다.
기다란 과(戈)를 든 자들이다.
쓰러지지 않은 후미의 창룡대에게 접근한 그들이 낫과 같은 창날을 휘둘렀다.
말 다리를 노린 그 공격으로 남은 기마대는 와해되며 접전이 시작됐다.
“당황하지 마라! 방어대형을 갖추고 반격하라! 지원이 곧 도착한다!”
남궁여립은 외치며 검을 휘둘렀다.
좌우 양쪽에서 비호처럼 나타난 혁리세가 무사들, 진천경혼단이 분명한 자들은 극(戟)을 찔러댔다.
길이가 일장(3m)에 가까운 장병이다. 말다리를 자른 자들이 든 과처럼 낫과 같은 날이 옆으로 돌출해 있지만 이것은 끝으로 창날도 달린 무기다.
“익!”
부상당한 어깨를 갈퀴처럼 그으려는 극의 날의 검으로 받아친 남궁여립은 이를 악물었다.
거리 양편에서의 공격, 장병의 이점을 살린 혁리세가의 기습에 부하들이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극의 창날에 찔리고 그것을 피하면 낫에 걸려 베어지고 있다. 목이 걸린 부하는 그대로 잘려나갔다.
‘이대로는!’
치를 떨며 검을 움쳐 잡은 남궁여립은 찔러 들어오는 극을 잡고 상대에게로 쇄도했다.
그 순간 다른 극들이 뻗어 나왔다.
검으로 걷어내고 도약하며 발로 밟았다. 그 탄력을 이용해 허공으로 솟구쳐 거리를 좁혔다.
“죽어라 개자식들아!”
극을 찔러대는 진천경혼단의 머리 위에서 떨어지며 남궁여립은 창궁무애검을 뿌렸다.
시릿한 검광이 분산하는 대가지처럼 벌어지며 검극을 뻗어냈다.
그 공격을 피하지 못한 극수 세 명이 미간과 가슴이 갈라져 쓰러졌다.
성난 호랑이가 된 남궁여립은 당황한 극수들의 옆으로 들이치며 검을 휘둘렀다.
“남궁세가의 검이 왜 무서운지 알려주마!”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는 남궁여립에게로 검을 든 진천경혼단 무사들이 몰려들었다.
접전이 벌어지는 항주전장의 상황을 지붕 위에서 지켜보던 목계백은 신호를 보냈다.
건너편 지붕에서 신호를 받은 비격이 다시 또 모금량에게 신호를 보냈고, 흑전의 사람들이 무천량일행에게 방향을 알려주며 신호했다.
‘이제 움직여도 되겠어.’
목계백은 지붕을 박차고 달렸다.
접전이 벌어지는 항주전장 앞 거리를 향해서다.
남궁여립이 이끄는 이백오십 창룡대는 이제 기마대의 이점을 잃었다.
일백은 항주전장 안에서 갇혀 타고 있고 나머지 일백오십은 혁리세가의 공격을 받고 있다.
그 접전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혁리세가의 기습대는 지금 보이는 이백여명 외엔 없다.
양측 다 피해를 입고 있지만 남궁세가의 창룡대가 막심하다.
남은 자들은 남궁여립과 오십 여명 정도다.
접전지역의 바로 앞에서 도약해 몸을 날린 목계백은 장도와 함께 내려앉았다.
오척장도가 수직을 그리는 선 안에서 혁리세가 무사 하나가 갈라졌다.
정확하게 두 쪽으로 갈라진 그 육신은 땅에 쓰러져서도 팔다릴 퍼덕였다.
“적이다!”
창룡대를 공격하던 혁리세가의 진천경혼단이 방향을 돌려 목계백을 공격했다.
그들이 찔러내는 기다란 극을 향해 목계백은 서슴없이 전진했다.
일격탄 이격살.
한 칼질에 극을 잘라버린 장도는 두 칼질에 목을 날렸다.
그야말로 폭풍 같은 기세, 양떼를 유린하는 맹호와도 같은 그 무위에 진천경혼단들은 질려 물러나기 시작했다.
어김없는 결과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목계백이 장도가 섬광을 뿌리면 누군가의 병기가 잘리고 몸이 쪼개졌다.
“검수들이 나서라!”
누군가 외치자 극수들의 앞으로 검수들이 나왔다.
장병의 이점을 살리지 못하지 접전에서 단병검수들이 대응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목계백이 장도를 치고 들어가면 검과 검수의 몸이 동시에 갈라졌다.
“동료가 왔다! 힘들을 내라!”
남궁여립이 소리쳤다. 진천경혼단을 베어 넘기는 목계백을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목계백인지 구분하지는 못했다.
그냥 고수가 나타나 도와주는 형국이라고만 판단했다. 게다가 들어오는 검을 막기에 바빴다.
남궁여립의 눈을 흥분과 환희로 물들인 것은 그때였다.
“혁리세가의 악적들을 모조리 죽여라!”
창노한 외침을 터트리며 말을 달려오는 사람은 남악권사 무천룡이었다.
말 등을 박차고 도약한 그가 진천경혼단 속으로 착지하며 권을 뿌리는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그의 뒤로 삼백별동대가 달려와 공격을 시작했다.
삽시간에 전황은 역전됐다.
혁리세가의 진천경혼단은 수세에 몰리며 퇴각을 결정했다.
남궁여립이 이끌던 애초의 병력이 오십여 밖에 남지 않았으니 성공한 셈이다.
이쯤에서 물러간다고 해도 손해 볼 것이 하나도 없다.
진천경혼단은 자신들이 나왔던 골목의 어둠속으로 흩어졌다.
신속하고 냉정한 판단과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퇴각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 골목의 어둠속에는 흑전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고기 잡는 그물을 던졌다.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나 걸음이 잡힌 진천경혼단에게 무천룡과 삼백 별동대가 가차 없는 살수를 퍼부었다.
잠시 만에 진천경혼단은 전멸했다.
흑전사람들이 그물을 회수하고 마지막 확인을 하며 산자들의 숨통을 끊었다.
그사이 남은 사십여 명의 창룡대와 남궁여립은 무천룡에게 인사했다.
“남악권사 어르신께 감사드립니다. 천추의 한을 남길뻔 했습니다.”
깊게 고개 숙이는 남궁여립을 향해 무천룡은 차가운 시선을 던졌다.
“너를 내가 살렸다고 보느냐?”
남궁여립은 고개를 들었다.
“예?”
무천룡은 냉막한 표정으로 남궁여립에게 물었다.
“네 아비가, 아니 네 집안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미간을 좁히며 남궁여립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무천룡은 발을 들어 땅바닥을 굴렀다.
팡, 하는 그 소리와 울림이 모든 이들의 몸은 흔들었다.
“아직도 내가 눈 뜬 장님으로 보이느냐!”
무천룡의 기세와 말에서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깨달은 남궁여립은 시린 눈빛을 냈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모르겠으나, 잠시 후면 무림의용군이 도착할 것입니다. 궁금하신 점이나 의문이 있으시다면 잠시 후에 직접 여쭤보시는……”
“가증스러운 놈! 제 아비를 닮아 능구렁이와 같구나! 네 아비라고 진실을 말하겠느냐?”
남궁여립은 눈동자에 칼을 세웠다.
“어르신,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호, 지나쳐? 네 놈과 네 아비 놈을 구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고, 네놈들이 꾸민 극악하고 파렴치한 짓은 지나치지 않다는 것이냐?”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네놈이야 말로 함부로 말하지 마라! 우리는 이제 모든 진실을 알고 있음이다!”
대머리에 붉은 핏대를 세우는 남악권사 무천룡의 기세와 분노에 남궁여립은 위기를 직감했다. 별동대가 여기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도대체 무슨 오해를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어떻게든 수습하려는 남궁여립의 노력을 목계백이 자르고 나섰다.
“오해는 없다. 진실이 있을 뿐이지.”
남궁여립은 목계백의 얼굴을 알아보고 기함했다.
“너, 너는?”
검은 무복을 입고 나타난 자, 진천경혼단을 무섭게 도륙하던 고수, 그는 다름 아닌 목계백이었던 것이다. 황룡사에서 불타죽었다고 알려진 자.
“놀라지 마라. 정말로 놀랄 일은 이제부터 일어날 일이다.”
침을 삼키며 남궁여립은 겨우 입을 열었다.
“그, 그게 무슨 소리냐?”
“그렇게 좋은 머리로 짐작이 안 되나? 초희라는 여인을 납치 해다가 능욕하고 처참한 모습으로 숨만 붙게 해놓은 자가, 그 여인에게 혁리검천이 한 짓으로 알도록 꾸민 자가, 가증스럽게 증인으로 그 여인을 내세운 놈이.”
남궁여립은 창백하게 질린 낯빛을 순간적으로 보였다가 반응했다.
“무슨 헛소리냐!”
목계백은 오척장도를 휙 뿌리며 말했다.
“사향 냄새는 나지 않도록 지웠겠지. 초희란 여인에게 접근할 때에 그것으로 들통 날수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을 테니까. 여인을 납치해 능욕하며 속삭이던 목소리는 변성을 했었을 테고. 하지만 그건 못 지웠을 거야.”
목계백은 성큼 성큼 남궁여립에게로 다가갔다.
“저놈을 죽여라!”
남궁여립이 발악처럼 소리치자 나은 사십 여명의 창룡대가 검진을 발동하며 앞을 막았다.
그걸 본 무천룡도 별동대를 움직여 공격대형을 갖췄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목계백이 손을 들어 거부를 보였기 때문이다.
창룡대를 향해 다가가며 목계백은 남은 말을 했다.
“네 가슴을 열어봐야겠다.”
전의의 칼날을 눈동자에 세우는 창룡대를 향해 목계백은 성난 맹호처럼 달려갔다.
용악폭전도.
오척장도가 만들어 내는 광기의 칼부림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스물다섯 근의 장도가 그어대는 칼날의 궤적 안에서 부딪치는 모든 것이 잘려나갔다.
그 휘두름에는 시퍼런 빛이 있었다.
칼에 어린 그것은 도기(刀氣)였다.
도깨비의 광란 같은 그 칼 빛에 창룡대는 도륙이 나 넘어갔다.
남악권사 무천룡은 얼어붙었다.
비격은 석상이 됐고 모금량도 눈을 부들거렸다.
안휘검문주 조두량과 칠절신편 위홍을 비롯한 삼백 별동대는 눈을 부릅뜨고 숨을 죽였다.
경악과 충격에 휩싸인 그들의 눈앞에서 목계백의 칼부림은 끝이 났다.
창룡대는 모두 갈라지고 남궁여립만이 남았다.
경악을 숨기지 못하고 뒤로 물러난 남궁여립은 담벼락에 등을 부딪쳤다.
“네, 네놈!”
주춤 거리는 남궁여립에게 목계백은 담담히 말했다.
“네 가슴을 열어라.”
남궁여립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목계백은 다시 말했다.
“내가 해주마.”
오척장도가 다시 날을 세우는 순간, 남궁여립은 검을 내밀며 튀어나왔다.
그런데 그 검에서 희뿌연 빛이 터졌다. 아니 그런 것처럼 보였다.
검이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 변화를 남악권사 무천룡이 바로 알아봤다.
“제왕검형이다!”
남궁세가를 있게 한 검.
궁극의 검공으로 강호의 추앙을 받는 검.
누구도 뛰어넘지 못한다는 검.
바로 그 검이 남궁여립의 손으로부터 터져 나왔다.
목계백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걸렸다. 동시에 오척장도가 울음을 토했다.
제왕검형의 장엄한 검세가 채 피어나기도 전에, 목계백의 칼이 사선을 갈랐다.
“헉.”
외마디 숨소리를 낸 남궁여립이 휘청거렸다.
그가 손에 쥔 검이 나뭇가지처럼 잘려 떨어졌다. 그 직후 그의 가슴이 열렸다.
옷이 갈라진 그 가슴에 십자의 흉터가 분명히 보였다. 그 가슴이 사선으로 벌어졌다.
허물어진 남궁여립의 몸을 차갑게 응시하던 목계백은 돌아서며 말했다.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남악권사 무천룡과 현장의 모든 이들은 서둘러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