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Swordsmith RAW novel - Chapter 53
2.
“희생자들을 수습하라! 부상자들을 한곳으로 모으고 돌봐라!”
남궁여강의 외침과 창룡대주의 독려 속에서 전장은 빠르게 수습되기 시작했다.
사망자들을 한곳으로 모이고 부상자들을 군막 안으로 이동시켰다.
그 분주한 움직임 속에서 남궁륜은 주요인물들과 긴급한 회의를 가졌다.
“원시천존.”
도호를 서두로 입을 여는 태현자의 낯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했다.
“혁리세가의 태상가주가 암살되었다는 소식은 정녕 뜻밖입니다. 혹시라도 잘못된 정보이거나, 혁리세가의 농간에 의한 것일 확률은 없겠습니까?”
남궁륜은 은발야와 오세명, 호일도와 중소문파 문주들에게 시선을 던지며 고개를 저었다.
“농간과 흑막이 있다고 보기엔 너무 큰일이외다. 우리가 보고 겪었다 시피 혁리세가는 오히려 기습했소이다. 일천에 달하는 진천경혼단 기마대와 그들에게 협력하는 무림문파들이 합세한 대군이 급습한 것이오. 그들의 기세는 우리를 압도했소이다. 우리에겐 아주 불리한 상황이었소.”
남궁륜의 미간에 내천자가 선명히 그려졌다.
“그런데 그들이 퇴각했소이다. 우리가 뒤쫓아 간다면 전세가 역전될 수 있는 상황인데도 등을 돌리고 달려갔소. 그 자체가 우리를 끌어들이려는 함정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음이외다. 당장의 유리함을 버리고 굳이 유인해서 얼마나 더 큰 유리함을 얻으려했는지 모르지만 그건 아닐 게요.”
“원시천존…… 그렇다면 정말로 혁리장천이 피살당했다는……”
너무 엄청나고 믿기지 않는 이야기라서 태현자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다른 이들 모두가 그랬다.
이 무슨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인지는 모르지만, 혁리장천은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 거의 확실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일을 설명 할 수 없다.
혁리명이 저렇게 돌아갈 일이 없는 것이다.
중소문파의 문주 중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 기회를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혁리세가 놈들이 등 돌려 돌아가는 마당에 뒤를 쫓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늘이 준기회가 아닌가 합니다만.”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돌발적이라서다.
계획하고 예상하지 않은 일이 터진 것이다. 그 흐름에 편승하자면 내막부터 알아야 한다.
“혹시, 남악권사께서 성공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입을 연 대동보주 명세기를 응시한 남궁륜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갤 저었다.
“그 친구가 아니야. 시간상으로 맞지 않아. 게다가 그 친구가 했다면 이름이 나왔겠지. 지금 항주에 퍼진 소문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자객이라 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자객, 그가 대체 누구란 말인가?
누구이길래 혁리세가에 침입해 혁리장천을 죽였단 말인가?
그 이유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태현자가 자신을 드러내는 상징처럼 도호를 시작으로 입을 열었다.
“원시천존. 대동보주께서 하신 말씀처럼 분명 기회인건 분명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허나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보이지 않는 자들입니다. 우선은 풍림암의 광법대사와 그 제자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들은 전면전에서 물러났을 수도 있지만, 음양이군의 부재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태현자의 눈은 그 자신의 검과 같은 빛을 냈다.
“그들은 분명하게 혁리세가의 손임을 자처했습니다. 그런 그들이 습격의 무리 중에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뭔가 다른 계획이 있지 않나 하는 의혹이 생깁니다. 그것이 만약 혁리세가의 암수라면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남궁륜은 미간에 그린 내천자를 더욱 더 깊게 만들며 침음했다.
자신도 음양이군의 부재가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다.
풍림암의 광법대사는 분명 한발 뒤로 물러났음이다.
그러나 그건 돌아선 것이 아니다.
이미 체면을 구긴 그가 소림을 등에 업고 나타날 것은 뻔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건 시간이 걸린다.
그에 대한 대비는 눈앞에 있는 무당 태현자로 해결됨이다.
‘무당에 전갈을 보냈다고 했으니, 며칠 안으로 무당인사들이 도착하겠지.’
소림의 문제는 그것으로 해결이다.
그러나 소림과 무당이 도착하기 전에 마무리를 지어놔야 한다.
혁리세가의 숨통을 끊어놓은 마당이면 그들이 와도 서로의 체면 찾기로 끝이 날 것이다.
일을 그리 만들어야 한다.
그러자면 지금의 이 일은 절호의 기회다. 어쩌면 다시없을 기회다.
‘어차피 항주로 치고 들어가기로 했던 마당.’
어금니를 사려 물고 결심을 세운 남궁륜 좌중의 인물들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기호지세라. 애초에 우리가 결행하려던 일을 해야 함이 마땅한 순리인 것으로 판단하오. 설혹 혁리세가가 함정을 팠다고 한들, 우리에게도 남악권사가 삼백별동대를 이끌고 들이쳐 간 마당이니, 그에 조응하기 위해서라도 움직임이 옳소. 위기는 곧 기회. 접전을 통해 우리무사들의 기세도 자별한 마당, 전의가 흩어지기 전에 적을 뒤쫓아 가 숨통을 끊읍시다.”
남궁륜이 결론을 내리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모두가 눈동자에 전의만 곤두세웠다.
“자, 결행합시다.”
남궁륜이 일어서자 모두가 일어나 군막을 나갔다.
곧바로 명령이 하달되고 전열이 갖춰졌다.
애초의 오백기마대가 선두로 나서서 서호를 빠져나갔다.
급습을 받아 빠진 인원들을 채운 오백의 기마대는 질풍처럼 달렸다.
그 뒤를 남은 병력과 무림의용군들이 이어지는 파도처럼 좇았다.
* * *
정문으로 달려 들어간 혁리명은 말을 멈추지 않고 본전을 지나 별원 앞에까지 달렸다.
너무 급히 고삐를 잡는 바람에 말이 울부짖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 위에서 솟구쳐 나가 별원 문 안으로 착지했다.
회랑을 달려 다섯 개의 문을 지나 침실에 도착했다. 그곳에 부친의 시신이 있었다.
“이, 이게……”
너무나 참혹한 부친 혁리장천의 모습에 혁리명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냥 부들거리기만 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경련하며 시신 앞에 무릎을 꿇었다.
머리통이 뭉개진 시신, 피와 골수를 흩고 절명한 부친의 육신, 그 앞에서 끊어지는 호흡을 겨우 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
겨우 그 한마디를 뱉어내고 혁리명은 부친 혁리장천의 몸에 손을 댔다.
이미 식어버린 육신엔 생전의 온기가 없었다.
경계를 달리해버린 차가움만이 있었다.
손끝을 통해 들어온 그 차가움은 점점 뜨거움으로 변했다.
부들거리는 몸과 마음을 달구고 불태우는 화기, 분노로 이글거렸다.
“이 원한을…… 반드시 갚겠습니다……”
이가 으스러지는 듯한 소리와 더불어 낸 혁리명의 목소리는 뜨거운 숨과 함께 실내를 울렸다.
그 처절한 결의가 죽은 자의 원혼을 달래는 듯, 곳곳에 켜둔 등불 빛들이 와르르, 떠는 것처럼 흔들렸다. 대답하듯이.
무릎을 세워 일어선 혁리명은 별원을 나가 소리쳤다.
“태상가주께서 운명하셨다! 자객의 손에 돌아가셨다! 이 일에 가담한 자들의 구족을 멸하고 말 것이다! 남궁세가의 이름을 이 땅에서 지워버릴 것이다!”
별원 앞에 모여든 진천경혼단 무사들은 함성을 내질렀다.
격노의 함성이며 전의를 다시 세우는 함성이다.
그런데 그 속으로 누군가 급히 다가왔다.
“가주.”
참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자는 조장중의 한명이다.
“무슨 일이냐?”
시퍼런 빛을 뿌리는 혁리명의 눈을 차마 마저 보지 못하고 조장은 고했다.
“공자께서 부상을 입으셨습니다.”
눈썹을 뒤트는 혁리명의 앞으로 들것이 왔다.
그 위에 혁리검천이 누워 있었다.
어깨에서 피를 흘리고 왼쪽정강이가 잘려나간 모습으로.
“이, 이런!”
부친을 살해당한 충격과 분노에 새로운 분노가 더해진 혁리명은 어절 줄을 몰라 했다.
또 다시 격노에 싸여 전신을 부들거리기만 했다.
“남궁세가, 이죽일 놈들이……”
부들거리는 혁리명에게 들것에 누워 있던 혁리검천이 목소리를 던졌다.
“아버지……”
치욕과 분노로 이를 악문 혁리검천은 자신을 이 꼴로 만든 자들을 고했다.
“은천장주 은발야와 춘추검 오세명, 파랑검 호일도, 그 세 놈입니다. 그놈들을 잡아다 주십시오. 그것들의 껍질을 벗기고 심장을 씹겠습니다.”
아들 혁리검천의 처절하고 간곡한 부탁에 혁리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잡았다.
“염려마라. 네 앞에 그놈들을 잡아다 주마.”
아들과 시선을 교환하고 현실로 돌아온 혁리명은 격노를 냉정으로 바꾸고 명령했다.
“남궁세가 놈들이 들이칠 것이다! 맞아 줄 준비를 해라!”
진천경혼단은 함성으로서 대답했다.
* * *
“우리가 무엇을 하면 되는가?”
무천룡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목계백이 아닌 흑전문주 용인성이 했다.
“남궁세가가 노리는 곳이 혁리세가의 본가 말고 항주전장과 항주제일루가 될 것임을 알고 계실 겁니다.”
용인성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황금흑전반점에 들어온 자가 다름 아닌 남악권사 무천룡이기 때문이다.
삼백무림의용군은 다른 장소에 대기 중이지만 이 사람은 목계백과 같이 왔다.
이렇게 남악권사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동안 파악한 바에 의하면 혁리세가는 모종의 준비를 했습니다. 남궁세가에서 공격해 올 때를 대비한 준비로 판단합니다. 그들은 등잔 기름을 대량으로 모았습니다. 필시 화공을, 함정으로서 준비하지 않았나 합니다.”
무천룡이 미간을 좁혔다.
“화공?”
목계백이 생각을 밝혔다.
“공격예상지점을 이미 비웠을 겁니다. 중요한 문서나 재산 등은 안전한 곳으로 이동조치 했고, 그 안에다 함정을 준비한 겁니다. 남궁세가의 창룡대가 들이치면 불로 제압한다는 계획인 겁니다. 일종의 고육지책입니다.”
그렇다. 항주전장과 항주제일루를 포기하는 대신 남궁세가의 전력을 깎겠다는 계산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적을 물리친다면 이득이라는, 전장과 주루는 다시 짓겠다는 포석이다.
빼앗겼을 경우를 생각까지 한 결정이다.
무천룡은 좁힌 미간으로 목계백을 응시했다.
“접전이 벌어지기를 기다리는 건가? 양측이 상잔하도록 조율한다는 것인가?”
목계백은 담담만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공격하는 측도, 방어하는 측도, 모두 피할 수 없는 비수가 될 겁니다.”
말없이 목계백의 눈동자를 응시하던 무천룡은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
“시작하지.”
* * *
항주제일루, 항주에세 제일 큰 곳이고 가장 화려하며 유서 깊은 곳이다.
때 아닌 흉흉한 분위기로 인해 불이 꺼진 이곳에, 남궁세가와 혁리세가의 전쟁이라는 우환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진 이곳에, 일단의 기마대가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남궁세가의 창룡대다. 그들이 도적처럼 들이쳤다.
선두에서 창룡대주가 소리쳤다.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죽여라! 혁리세가의 주구들, 그들에게 협조하는 자들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베어라! 이곳은 이제 남궁세가의 땅이다! 이곳을 거쳐 혁리세가로 진격한다! 후위는 무림의용군에게 맡겨라!”
말을 탄 채로 창룡대는 항주제일루 안으로 들이쳤다.
하지만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기녀들도 없었고 하인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 안을 창룡대가 난장판으로 만들며 휘저었다. 이백오십의 기마대가 만드는 난장판이었다.
지금 항주전장에서는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을 터였다.
남궁여립이 이끄는 나머지 반의 이백오십 창룡대가 유린중인 것이다.
목표한 두 곳을 점거하고 획득한 후에 후속 병력들에게 맡기고 혁리세가로 진군하는 계획이다.
창룡대주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 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여긴 비었다! 놈들이 숨어 들어간 혁리세가로 쳐들어간다!”
명령을 내린 창룡대주가 주루 밖으로 나갈 때였다.
새벽어둠을 가르며 불화살이 날아왔다.
그것이 주루 앞마당 한 가운데 있는 우물 속으로 들어갔다.
화살이 들어간 우물에서 불기둥이 솟구쳤다.
그 빛이 주루를 환하게 밝혔다.
그 직후 수많은 불화살들이 날아왔다.
주루 여기저기를 파고든 불화살들은 기름이 든 항아리를 깨트리며 불을 붙였다.
불길은 기름먹인 주루의 벽과 기둥과 전각들에 옮겨 붙으며 삽시간에 불지옥을 만들었다.
“나가라! 밖의 인원들은 접근하지 마라! 적들을 찾아 도륙해라!”
다급한 지시를 내리며 창룡대주는 말배를 차고 주루 대문으로 튀어나갔다.
그 순간 봤다.
항주제일루를 둘러싼 주변의 크고 작은 전각들 지붕위에서 불화살을 날리는 적들을.
이것은 계획된 함정이었다는 걸 알았다.
“죽일!”
이를 갈던 창룡대주는 그 순간 놀라운 광경을 목도했다.
화살을 날리는 지붕위의 적들이 쓰러지는 광경이다.
그들의 등에 또 다른 화살들이 박혀 있었다.
배후에서 누군가 공격했다는 소리다. 그게 누군지 곧 알았다.
“창룡대는 스스로를 돌봐라!”
지붕위에서 외치는 사람은 그였다, 남악권사 무천룡이었다.
“주루 안의 동료들을 구하라!”
창룡대주는 허둥거리는 창룡대에게 외쳤다.
주루 밖에서 화살 공격을 받던 창룡대는 주루 안에 갇힌 형국인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허둥거렸다.
그 순간 어둠저편에서 그들이 달려왔다. 무천룡과 같이 갔던 삼맥무림의용군이다.
그들이 나타나 주루의 담장 중 취약한 곳을 부쉈다.
마치 약점을 알고 있던 것처럼, 손에는 담을 부술 장비들도 갖고 있었다.
삼백무림의용군의 도움으로 주루 안의 창룡대도 대부분 피해 없이 나왔다.
그들의 모습을 살핀 창룡대주는 지붕위의 무천룡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추후에 다시 감사의 절을 올리겠습니다!”
냉막한 눈빛을 뿌린 무천룡은 단호하게 외쳤다.
“안내자를 붙이겠다! 협조를 받아 혁리세가로 진격하라!”
별동대 속으로부터 한사람이 튀어나왔다.
먼저 말을 달려나가는 그의 뒤를 좇아 창룡대주와 창룡대는 다시 말을 달려갔다.
혁리세가를 향해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