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15
114화. 일단 보류‘삭막하네.’
남궁수의 사무실을 슥 둘러본 후 백수룡의 감상은 딱 그 정도였다.
딱 필요한 가구 이외에는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가 전부였고, 불도 지피지 않았는지 사무실 안인데도 냉기가 돌았다.
아니, 이 냉기는 아무래도 눈앞의 사람 때문인 것 같았다.
백수룡은 어색한 분위기도 풀 겸 입을 열었다.
“손님이 왔는데 차라도 한 잔…….”
“내줄 차가 없다. 용건만 간단히 말하고 내 앞에서 사라지도록.”
남궁수는 냉기가 풀풀 풍기는 말투로 말했다.
사무실에 차가 없다는 게 말이 되나 싶었지만, 오늘은 먼저 아쉬운 부탁을 하러 온 입장인 만큼 백수룡은 그러려니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소영 선생은? 여기서 일하는 거로 아는데 먼저 퇴근했나.”
“용건만. 간단히.”
남궁수의 더 짧아진 말투와 날카로운 눈빛에, 백수룡은 어깨를 으쓱했다.
상대가 이렇게까지 나온다면야 그도 굳이 빙빙 돌릴 생각은 없었다.
“2년 전 천무제. 남궁수 당신이 이 학년 인솔책임자였다고 하던데, 맞아?”
“……그걸 갑자기 왜 묻는지는 모르겠지만, 맞다.”
남궁수는 피곤한지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눈 사이를 꾹꾹 누르며 대답했다.
백수룡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기습적으로 물었다.
“그곳에서 거상웅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
남궁수의 손이 멈추고, 잠시 불편한 침묵이 감돌았다.
다시 눈을 뜬 남궁수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망가져서 돌아왔지. 겨우 그게 궁금해서 날 찾아온 건가?”
“도박 중독에 폭식증까지 걸린 학생인데 ‘겨우 그거’라고?”
백수룡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묻자, 남궁수가 피식 웃었다.
한때는 그도 저랬던 시절이 있었기에.
남궁수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며 얼굴에 자조적인 조소가 맺혔다.
“잘 모르나 본데, 천무학관 학생들의 압도적인 실력을 보고 마음이 꺾이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다.”
“종종 있는 일이라고?”
백수룡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남궁수를 바라봤다.
동시에, 천무제는 자신이 생각하던 것과 상당히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파 후기지수들의 축제 아니었나?’
무림 오대학관의 학생들이 모여서 벌이는 경쟁이 꽤나 살벌하다고 듣긴 했지만, 그래 봤자 정파 애송이들의 축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천무제에 다녀온 학생이 망가지는 게 종종 있는 일이라니…….
“그 당시에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지?”
“내가 왜 말해 줘야 하지? 성가시니 이만 나가도록.”
남궁수는 표정을 굳히며 축객령을 내렸지만, 백수룡은 팔짱을 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 얘기만 들으면 나가지 말라고 해도 나갈 거야.”
“……건방지군. 대체 뭘 믿고 이렇게 까부는 거지?”
한순간 남궁수의 기세가 달라졌다. 그는 무형의 기세를 일으켜 백수룡에게 집중시켰다.
스스스슷.
마치 목덜미에 검이 놓인 듯한 서늘한 감각을 느끼며, 백수룡은 피식 웃었다.
백수룡은 서류가 잔뜩 쌓인 사무실 내부를 둘러보며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여기서 한바탕 날뛰면 서류들 다 날아갈 텐데.”
“…….”
“그거 정리하는 시간보다 나한테 얘기 잠깐 해 주는 게 빠르지 않을까?”
“……하아. 대체 어디서 이런 자가 나타났는지.”
결국 체념한 남궁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후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당시 거상웅은 무공에 열정이 넘치고, 적극적이고, 주변 학생들을 이끄는 학생이었다. 방백현과 함께 청룡쌍절이라 불릴 정도로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
2년 전 천무제를 떠올리는 남궁수의 목소리는 매우 덤덤했다. 그는 지그시 눈을 감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지금과는 다른 의미로 말을 안 듣는 학생이었다. 호기심이 과하게 많았지.”
그리고,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한숨은 꽤 길게 이어졌다.
“천무제 기간 동안, 정해진 시간 외에는 타 학관 학생들 간에 교류를 금한다. 대회전에 쓸데없는 싸움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지. 하지만…….”
“꼭 말을 안 듣고 나가는 몰래 애들이 있지.”
백수룡의 추임새에 남궁수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았다.
당시의 거상웅은 지금과 달리 적극적이면서 활력 넘치는 학생이었고,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숙소에 있으라는 말을 듣지 않은 채 담을 넘었다.
“그때 담을 넘어 밖으로 나간 학생들 대부분은 삼, 사 학년이었다. 이 학년은 거상웅이 유일했지. 밖으로 나간 녀석들은…….”
다시 천천히 눈을 뜬 남궁수가 말했다.
“천무학관 학생들과 싸움이 붙었다.”
‘……천무학관이었나.’
백수룡이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절혼마장을 거상웅에게 사용한 흉수가 천무학관 출신일 확률이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패싸움이 일어났고, 거상웅이 심하게 당하고 돌아온 건가?”
“아니.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였다고 하더군. 하지만 어딘가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고 했다.”
“아까부터 설명이 조금 이상한데 말이지. 직접 본 게 아니야?”
백수룡의 질문에 남궁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내가 인솔 강사였던 것은 맞다. 하지만 천무학관에서 가문의 행사가 있던 탓에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날 당직을 선 강사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게 누군데?”
“찾아가도 소용없다. 너에게 답을 해 줄 사람도 아닐뿐더러, 그 시간에 나가서 술이나 처먹고 있었다더군.”
“…….”
남궁수의 목소리에 은은한 분노가 어려 있었다.
“나중에 거상웅을 붙잡고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물어봤지만,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꾸지람에도 멍한 얼굴로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고. 내가 아는 것은 이게 끝이다.”
흔들리는 등불 아래 비치는 남궁수의 표정은 피곤해 보였다. 또한 무척 씁쓸해 보이기도 했다.
백수룡이 불쑥 물었다.
“그 자리에 있지 않았던 걸 후회하나?”
“…….”
대답하지 못하는 모습이 의외였지만, 그렇다고 백수룡의 남궁수의 말을 전부 믿지는 않았다.
‘남궁세가가 이 일과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백수룡은 자신의 눈앞에서 폭사했던 조막생을 떠올렸다.
‘남궁세가가 후원하는 고아원’에서 자란 조막생은 자신이 탈혼대법에 걸려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 조막생을 청룡학관에 입관시키려 한 사람이 바로 남궁수였다.
‘만약 남궁세가가 혈교와 관련돼 있다면…….’
남궁수 또한 혈교의 인물일 수도 있었다.
방금 한 말이 전부 거짓처럼 보이진 않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거지.’
백수룡은 남궁수와 대화를 나누며 그의 말투, 행동, 표정 변화 하나하나를 면밀하게 살폈다.
남궁수도 백수룡을 빤히 바라보았다.
생각해 보니 이렇게 둘이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조언 하나 하지. 실패작에 목매지 마라. 그 시간에 가능성 있는 다른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실패작?”
“거상웅 말이다.”
이번에는 백수룡의 몸에서 흘러나온 무형의 기세가 남궁수에게 집중되었다.
피부가 따끔거리는 느낌에 남궁수는 피식 웃었다.
“보충반에 모인 문제아들에게 그새 정이라도 들었나 보지?”
“…….”
“네가 그 녀석들을 갱생시키려고 노력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하지만 충고하는데, 쓸데없는 짓이다. 그 시간과 노력을 더 가능성 있는 학생들에게 쏟아라. 예를 들면 독고준이라든가 방백현…….”
“그럼 한 번 더 내기할까?”
백수룡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그가 탁자 위에 자신의 검, 월영을 턱 올려놓으며 말했다.
“나는 그 녀석들을 천무제 우승의 주역으로 만들 거야. 여기에 내 검도 걸 수 있는데. 넌 뭘 걸 수 있지?”
“……정말이지 주제를 모르는군.”
두 사내는 마주 보고 눈싸움을 벌였다.
칼을 뽑아 들지만 않았을 뿐, 싸움이 언제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사나운 분위기였다.
잠시 후, 먼저 입을 연 쪽은 남궁수였다.
“관두지. 더는 너와 쓸데없는 대화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이만 나가라는 소리였다. 백수룡은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듣고 싶은 이야기는 다 들었으니까.
“잠깐.”
몸을 돌린 백수룡이 문을 열고 나서려는데, 뒤에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궁금증에 대답해 줬으니, 나도 질문 하나만 하겠다.”
“해 봐.”
백수룡이 몸을 돌리며 물었다. 남궁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사파 무공의 이해와 실전 대비. 왜 그런 쓸데없는 수업을 가져간 거지?”
남궁수의 수업 중엔 인기 있는 수업이 많았다.
하지만 백수룡은 내기에 승리한 대가로 그중에서도 가장 불필요한, 들어도 그만이고 안 들어도 그만인 교양 수업을 가져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백수룡의 대답은 간단했다.
“검법이니 도법이니 말고, 여러 가지를 가르칠 수 있는 수업을 하고 싶었거든. 그러기엔 교양이 더 낫겠더라고.”
그 대답에 남궁수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백수룡을 바라봤다.
“주어진 시간 안에 하나만 제대로 가르치는 것도 힘들다.”
“넌 그렇겠지. 하지만 난 그럴 능력이 되니까 상관없어.”
“……하!”
그 뻔뻔할 정도로 당당한 말에 남궁수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정말 재수 없군.”
“솔직히 너도 평소에 그런 소리 많이 듣지 않냐?”
“…….”
남궁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실제로 다른 강사들이 자신에 대해서 뭐라고 뒤에서 부르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일 중독자. 완벽주의자. 냉혈한. 재수 없는 인간.
그때는 능력 없는 자들의 한심한 질투라고 생각했는데……. 반대로 당해 보니 기분이 참 이상했다.
불쾌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나오기도 했다.
“……하, 하하.”
남궁수는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백수룡과 대화만 하면 항상 자신이 이상해지는 기분이었다.
그가 실소를 흘리며 말했다.
“이만 나가도록.”
“그 서류 말이야.”
백수룡은 남궁수가 보다가 덮은 책자에 시선을 주었다.
두꺼운 책자에는 학생 한 명 한 명의 무공 특성과 버릇, 거기에 따른 교육지침 등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리고 밤새 그 서류를 뒤적인 남궁수의 손에는 먹물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직접 작성했나?”
“물론이지. 난 내 눈으로 확인한 사실만을 기반으로 학생을 가르친다.”
“열심히 하네.”
“……천무제에서 성과를 내고 싶은 강사가 너뿐이라고 착각하지 마라.”
백수룡은 남궁수가 작성한 두꺼운 서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한번 보고 싶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아직 미완성인 거 같은데 내가 좀 도와줄까? 내가 또 애들은 기가 막히게 잘 보거든.”
그 말에 남궁수가 코웃음을 쳤다. 그가 책을 자신 쪽으로 당기며 말했다.
“이걸 보고 싶은 모양인데, 어림도 없다. 너한테 자격이 생기면 그때 다시 오도록.”
“그 자격이 뭔데?”
남궁수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다른 강사들은 한 번도 보지 못한, 짓궂은 아이 같은 미소였다.
“일타강사가 돼라.”
“호오?”
야심한 밤에 나눈 짧은 대화였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서 더욱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남궁수가 다시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그 전에 풍진호 따위에게 밀린다면 일타강사가 될 꿈은 버리는 게 좋겠지만.”
“그런 기대는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피식 웃은 백수룡은 몸을 돌렸다.
그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는데, 뒤에서 남궁수의 전음이 들려왔다.
[한 가지만 더 알려 주지. 그날 내 대신 당직을 섰다는 선생……. 풍진호였다.]“그냥 말로 하지, 왜 전음으로 해? 개폼 잡기는.”
[……재수 없는 놈.]청룡학관에서 나온 뒤 백룡장으로 돌아가는 길.
“흐음.”
백수룡은 오늘 남궁수와 나눈 대화를 천천히 복기하며, 남궁수에 대한 판단을 수정했다.
지금까지는 일타강사가 되기 위해 가장 먼저 치워 버려야 할 방해물이라고 생각했지만…….
“일단 보류.”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며, 백수룡은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