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14
113화. 무슨 용건이지? 두 사람은 객잔 하나를 잡아서 들어갔다.
거상웅은 수십 인분의 음식을 시킨 후, 나오는 족족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우걱우걱.
-천하제일권객이 되겠다고? 푸하하!
오늘따라 식욕이 더 돋았다. 거상웅은 음식을 닥치는 대로 입안에 쑤셔 넣었다.
-그런 병신 같은 무공을 가지고 말이지?
-하하하! 여기 돼지 새끼가 사람 말을 하네!
젓가락을 든 팔이 덜덜 떨렸다. 아마 오랜만에 탈진할 때까지 무공 수련을 한 영향일 것이다.
거상웅은 아예 젓가락을 내팽개치고 손으로 음식을 입안에 마구 쓸어 담았다.
“……선배. 괜찮아?”
야수혁의 목소리가 들려오다가, 어느 순간부터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았다.
-청룡학관에 다니면 자기 주제를 알아야지.
-분수도 모르는 놈.
으적으적.
거상웅은 떠오르는 치욕과 모멸, 공포를 잊기 위해서 더욱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어치웠다.
-평생 오늘을 기억하게 해 주지. 그 몸뚱이에 새겨서 말이야.
온몸에서 땀이 뻘뻘 나고, 음식이 위에서 역류하기 시작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던 사나운 미소가 떠오른 순간, 거상웅은 발작을 일으켰다.
“우욱! 우우욱!”
“선배? 선배애!!”
넘어오려는 음식을 억지로 삼켰다.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밀려드는 두려움에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한 가지 생각만 들었다.
‘무공을 배우는 게 아니었어. 무공을 배우는 게 아니었어. 무공을 배우는 게……. 무공을…….’
오랜만에 탈진할 정도로 무공을 수련했기 때문일까.
오늘따라 그날의 공포가 더욱 생생하게 떠올랐다
“꺼어억…….”
결국 거상웅의 몸이 옆으로 기울더니 쿵- 하고 쓰러졌다.
“선배! 선배! 이봐! 누가 사람 좀 불러 봐!”
자신을 흔드는 야수혁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거상웅은 서서히 정신을 잃었다.
차라리 이렇게 죽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못난 아들을 걱정하시는 아버지에겐 죄송하지만, 이런 삶을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죽지 않았다.
“정신 차려라.”
들려온 나직한 목소리에, 거상웅은 힘겹게 눈을 떴다.
그리고 흐릿한 눈으로 눈앞에 있는 사람을 바라봤다.
“선생……님?”
백수룡이 무릎을 꿇고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상웅의 상의가 다 찢어져 있었다. 편하게 숨을 쉴 수 있도록 백수룡이 찢은 것이다.
“거상웅. 너…….”
백수룡의 시선은 근육과 지방으로 뒤덮인 거상웅의 거대한 상반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몸에는 자해의 흔적으로 보이는 수많은 흉터들이 있었다.
하지만 백수룡은 그 흉터들 때문에 놀란 것이 아니었다.
‘성격이 왜 갑자기 변했는지 이제야 알겠군.’
거상웅의 왼쪽 가슴, 심장이 있는 위치에 몽고반점처럼 생긴 푸르스름한 반점이 있었다.
‘절혼마장(絶魂魔功).’
혈교의 호법신공 중 하나의 흔적이, 거상웅의 심장 위에 새겨져 있었다.
“이거 누구한테 당한 거냐?”
* * *
“상웅아!”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금룡장주가 의원 안을 둘러봤다.
아들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달려온 모양인지, 그의 머리와 의복이 엉망이었고 온몸에는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아버님. 이쪽입니다.”
거상웅의 옆에 앉아 있던 백수룡이 자리에서 일어나 금룡장주를 맞이했다.
금룡장주는 황급히 다가와 거상웅의 안색부터 살폈다.
안 그래도 하얀 얼굴이 시체처럼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백수룡은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말했다.
“잠들었습니다.”
“다시 발작을 일으켰다고…….”
금룡장주의 ‘다시’라는 말에 백수룡이 미간을 살짝 좁히더니 물었다.
“전에도 이런 발작이 있었습니까?”
“……최근 몇 달 동안에는 없었소. 그래서 말씀드리지 않았던 거고. 의원들도 괜찮아졌다고 했는데. 그런데 왜 이제 와서 또……!”
이를 꽉 악문 금룡장주가 핏발 선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절혼마장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나 보군.’
백수룡은 거상웅이 발작을 일으킨 이유를 알고 있었다.
금룡장주가 오기 전, 거상웅의 몸을 꼼꼼히 살펴보았으니까.
‘심장과 뇌에 마기가 스며들어 있었지.’
절혼마장(絶魂魔功).
혈교의 양대 호법신공 중 하나로, 익히기가 무척 까다롭지만 그만큼 강력한 무공이었다.
절혼마장이 특히 무서운 이유는, 마기를 상대의 몸 안에 침투시켜 상대의 정신을 서서히 망가뜨리는 극악한 마공이기 때문이었다.
그 마기가 매우 은밀하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알아챌 수 없었다.
거상웅의 가슴에 남아 있는 몽고반점 같은 얼룩이 아니었다면, 백수룡도 그 사실을 눈치채는 데 상당히 긴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발작은 언제부터 시작된 겁니까?”
“천무제……. 이 년 전 천무제에 다녀오고 나서 생겼소.”
그 대답에 백수룡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거상웅의 성격이 갑자기 변하기 시작한 것도 이 년 전 천무제 이후.
발작 또한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다면, 천무제가 진행되는 동안 절혼마장에 당했다는 뜻이 된다.
“혹시 천무제에 다녀오기 전이나 후에 무슨 사고가 있진 않았습니까?”
“없었소. 나라고 안 알아보았겠소?”
“…….”
백수룡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무림 오대학관의 최대 축제.
그곳에서 청룡학관의 학생이 혈교의 마공에 당했다.
‘천무제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철저하게 외부와는 격리된다고 들었다. 그렇다는 말은…….’
백수룡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학생. 아니면 강사라는 소리군.”
“뭐가 말이오?”
“아무것도 아닙니다.”
흉수는 오대학관 중 한 곳의 학생, 혹은 강사일 확률이 매우 높았다.
‘혈교 놈들이 오대학관에도 잠입해 있었단 말이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마주하게 되자 백수룡은 생각이 많아졌다.
혈교의 수많은 마공 중에서도 한 손에 꼽히는 절혼마공을 익힌 놈이라면, 혈교 내에서의 지위도 상당히 높을 것이다.
‘천무제에 참석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군.’
백수룡이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금룡장주는 의원을 닦달했다.
“이보게. 내 아들이 왜 아직도 안 깨어나는 것인가?”
“정신적인 충격이 심하셨던 것 같습니다. 강제로 깨우시는 것은 좋지 않으니 기다려 보심이…….”
오랜만에 찾아온 발작의 충격이 워낙 심했는지, 거상웅은 잠시 깨어났다가 곧바로 다시 혼절했다.
그 후 지금까지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때문에, 백수룡은 ‘누구한테 당했냐’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전혀 듣지 못했다.
‘깨어난다고 해서 솔직하게 말해 줄 성격도 아니고.’
그랬으면 진작 금룡장주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했을 것이다 흉수는 왜 거상웅을 절혼마장으로 중독시켰을까?
어쩌다가 우연히 시비가 붙어서?
‘그럴 리가 없지. 놈은 상당한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거상웅을 건드렸다.’
아무리 은밀한 마공이라고 해도, 누군가가 알아볼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백수룡은 잠시 그 이유를 고민하다, 잠든 아들 앞에서 어쩔 줄 모르며 발을 동동 구르는 금룡장주를 보자 어떤 생각에 다다랐다.
‘혹시…… 천하십대상단의 후계자라서?’
순식간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절혼마장은 상대의 심장과 뇌에 마기를 흘려보내 상대에게 공포를 각인시키는 마공.
반대로 말하면, 그 공포를 이용해서 상대를 지배할 수도 있다는 말과 같았다.
‘처음부터 거상웅이 아니라 금룡상단을 노리고 접근한 거라면…….’
거상웅이 점점 음식과 도박에 중독된 것도 어쩌면 계획된 것이 아닐까?
무공을 더 이상 배우지 않고 가업을 잇겠다고 다짐하도록 부추긴 누군가가 있다면?
만약 그렇다면…….
한순간 백수룡의 두 눈이 차갑게 빛났다.
‘혈교의 끄나풀이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을 수도 있겠군.’
안 그래도 살막의 살수가 허무하게 죽어 버린 이후, 혈교의 꼬리를 잡을 만한 단서가 필요하던 차였다.
“아버님. 혹시 주변에…….”
“주변에?”
“……아닙니다.”
백수룡은 금룡장주 주변에 있는 호위들을 확인한 후 말을 아꼈다.
“나중에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선생. 아무래도 이 녀석을 집으로 데려가야 할 것 같소. 다시 무공을 배우게 하겠다는 것이…… 내 욕심이었던 것 같소.”
금룡장주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그는 거상웅이 발작을 일으킨 것이, 자기가 무공을 배우라고 강제로 내몰아서라고 자책하고 있었다.
백수룡 입장에선 절대로 안 될 말이었다.
“아버님.”
백수룡이 다가와 금룡장주의 어깨를 단단히 잡았다.
호위무사들이 흠칫 놀라서 다가오려 했지만, 금룡장주가 눈빛으로 그들을 제지한 다음 물었다.
“왜 그러시오?”
“아버님.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지금부터 상웅 군의 무공과 건강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저에게 맡기십시오.”
“하지만…….”
“오늘 같은 일은 두 번 다시 없을 거라고 약속드리겠습니다.”
금룡장주는 백수룡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믿어도 되겠소?”
“물론입니다.”
“……알겠소. 속는 셈 치고 한 번만 더 맡겨 보지.”
금룡장주는 반각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몇 년은 늙은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냉철한 장사꾼처럼 보이지만, 그는 하나뿐인 아들이 예전 모습으로 돌아올 수만 있다면 자기 목숨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혈교 놈들도 이 사실을 알 테지.’
혈교가 어떤 식으로 거상웅을 이용하려는 것인지, 백수룡은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달리 말하면, 그걸 역이용할 방법도 떠올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아버님.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백수룡은 금룡장주의 도움을 받아 혈교를 끌어낼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 * *
“후우…….”
한숨을 내쉰 백수룡은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그의 앞에는 거상웅이 여전히 정신을 잃은 채 침상에 누워 있었다.
반듯하게 누운 몸에는 긴 장침이 머리와 얼굴, 가슴에 꽂혀 있었는데, 본래 은침이었을 침의 절반은 검게 변색돼 있었다.
“아주 구석구석 심어 놨군.”
방금까지, 백수룡은 거상웅의 몸 안에 깃든 절혼마장의 마기를 샅샅이 찾아내어 전부 몸 밖으로 뽑아냈다.
은침의 검게 변색된 부분은 그 독기를 빨아들인 흔적이었다.
“더 이상 발작을 일으킬 일은 없을 거다.”
백수룡은 거상웅의 투실투실한 뺨을 툭툭 쳤다.
여전히 창백했지만, 그 표정은 처음보다 훨씬 편안해 보였다.
“…….”
아마도 거상웅은 수없이 자책했을 것이다.
알 수 없는 공포심에 무공을 멀리하고, 돼지처럼 먹을 것에 집착하고 도박에 빠져서 하염없이 허송세월처럼 보내던 자기 자신을 말이다.
그것이 마공의 영향이라는 것도 모른 채, 겉으로는 능글맞게 웃으면서 그 속은 서서히 썩어 가고 있었을 것이다.
-누구보다 무공을 배우는 것을 좋아했소.
-어려서부터 천하제일의 고수가 될 거라고 큰소리를 쳤지.
백수룡은 술에 취해 중얼거리던 금룡장주의 모습을 떠올리며, 거상웅의 몸에서 은침을 뽑았다.
“좋은 아버지더라. 앞으로 효도해라.”
“…….”
마기가 사라졌다고 곧바로 옛날로 돌아오는 것은 힘들 것이다.
긴 시간 가져온 공포가 정신에 족쇄가 되었을 테니까.
하지만 거상웅이 그걸 극복해낸다면…….
‘그 누구보다 단단한 정신을 가지게 되겠지.’
그것이 전화위복으로 작용한다면, 녹림투왕의 무공을 익히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응급처치를 끝낸 백수룡은 자리를 털고 밖으로 나왔다.
“몇 시진은 더 있어야 깨어날 겁니다. 깨어나면 절 찾아오라고 전해 주십시오.”
“예.”
백수룡은 문밖에서 대기 중이던 호위무사들에게 그렇게 전한 후 의원을 나섰다.
거상웅이 깨어나면 들어야 할 이야기가 많지만, 그 전에 들러야 할 곳이 있었다.
‘그 녀석이라면 뭔가 더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이 년 전 천무제.
백수룡은 그 당시 현장 책임자를 만나 볼 생각이었다.
청룡학관으로 돌아온 그는 강사 사무실이 모여 있는 건물로 향했다.
대부분의 강사들이 퇴근한 늦은 시각.
하지만 그가 만나려는 이의 사무실에는 환한 불이 켜져 있었다.
‘그 일 중독자가 벌써 퇴근했을 리 없지.’
똑똑.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중에 오도록.”
목소리는 상대가 누군지 확인하지도 않고 돌려보내려고 했지만, 그 정도에 굴할 백수룡이 아니었다.
“실례 좀.”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입구에서부터 잔뜩 쌓여 있는 서류 더미가 보였다.
그리고 그 안쪽에서,
“무슨 용건이지?”
서류 더미에 파묻혀 있던 냉막한 인상의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백수룡의 그의 초췌한 얼굴을 보며 피식 웃었다.
“뭘 좀 물어보려고.”
“우리가 서로 왕래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는 아닌 거로 아는데.”
탁.
남궁수가 보고 있던 서류를 덮으며 서늘한 말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