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13
112화. 누구한테 당한 거냐해가 뜨지도 않은 어스름한 새벽.
백룡장 연무장에는 흑의무복을 차려입은 세 명의 낯선 학생이 일렬로 서 있었다.
“환영한다. 제군들.”
“…….”
평소 이 시간이면 누군가의(주로 헌원강의) 비명이 울려 퍼지던 연무장일 텐데, 오랜만에 불편한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오늘부터 너희는 매일 이 시간에 집합해 새벽 훈련을 받게 될 것이다.”
붉은 영웅건을 이마에 둘러멘 백수룡이, 자리에 모인 새로운 어린양들을 둘러보며 새하얀 건치를 드러냈다.
세 마리 어린양은 아직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대체 내가 왜 여기에…….”
전날 금룡객잔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백룡장으로 짐을 옮긴 여민은 아직도 현실감이 없는 표정이었고,
“끄응. 망할 아버지…….”
새벽에 아버지에게 쫓겨난 거상웅은 오랜만에 입은 무복이 몸에 꽉 끼는지 불편한 표정이었으며,
“……나는 왜?”
거상웅과 하나로 묶여서 딸려온 야수혁도 황당한 표정이었다.
“자자, 주목.”
짝!
손뼉을 쳐서 시선을 집중시킨 백수룡이 말했다.
“너희는 이번 학기 동안 이곳 백룡장에 머물며 합숙을 하게 된다. 기숙사 사감이신 학생주임 선생님께도 미리 말씀드려 놨으니 걱정하지 말도록.”
보충반 문제아들을 모아서 합숙시키겠다고 했을 때, 매극렴은 우려를 표했다.
-그 녀석들을 말이냐? 하나하나도 감당하기 힘들 텐데…….
-하나같이 개성이 강한 녀석들이라 기숙사 생활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수련을 시켜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잠시 백수룡을 빤히 바라보던 매극렴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구나. 자신이 있다면 한번 해 보거라.
자신 있냐고?
‘당연히 있지.’
청룡학관에서야 알아주는 문제아들이지만, 과거 혈교에서 진짜 미친놈들도 가르쳐 본 경험이 있는 백수룡에겐 사춘기를 겪는 청소년들의 반항 정도로 보일 뿐이었다.
‘기숙사가 아니니까 내 마음대로 다룰 수도 있고 말이지.’
매극렴에게 말한 ‘자유로운 분위기’란 학생이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에게 해당하는 말이었다.
백수룡의 입가에 히죽거리는 미소가 맺혔다.
“그렇게 됐으니 잘들 부탁한다.”
그 웃음을 본 순간 세 명의 안색이 변했다.
‘아무래도 X 된 것 같은데.’
‘무희 일 관두고 여길 온 게 정말 잘한 짓일까…….’
‘난 기숙사 구경도 못 해 봤는데? 이렇게 확정이라고?’
제자들의 표정에서 그 생각들이 뻔히 읽혔기에 백수룡은 피식 웃었다.
“너무 긴장할 것 없다. 첫날부터 무리하게 새벽 훈련을 시키진 않을 테니까. 우선 서로를 충분히 알아간 다음에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해야지.”
“…….”
“또한 안타깝게도 나에겐 종일 너희를 봐줄 시간이 없다. 이래 봬도 번듯한 직장이 있는 사람이거든.”
학기가 시작되면 새벽, 그리고 퇴근 이후가 백수룡이 보충반 학생들의 무공을 봐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다행이다…….’
‘휴…….’
하지만 궁하면 궁한 대로 방법이 있기 마련이었다.
다행히 백룡장에는 학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백수룡에게 무공을 배운 경험자가 둘이나 있었다.
“한동안 너희들의 훈련 일정을 도와줄 녀석을 소개하마. 숙련된 조교 앞으로.”
“앞으로. 흐흐흐…….”
기다렸다는 듯 앞으로 나선 헌원강이 건들거리며 웃었다.
어디서 구해 왔는지 머리에는 백수룡과 똑같은 붉은색 영웅건을 맨 모습.
비열하게 아랫입술을 혀로 스윽 핥은 헌원강이 입을 열었다.
“환영한다, 신입들. 이곳은 너희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지옥이다. 들어올 때는 너희들의 의지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나갈 땐 아니다. 참고로 이 선배님에게 반항했다간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빠악!
어김없이 날아든 흑룡편이 헌원강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백수룡은 머리를 부여잡은 헌원강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적당히 해라, 적당히. 감투 하나 쓰니까 좋아 죽지 아주?”
“끄응……. 신입들은 초장부터 기강을 잡아야 한다니까.”
“그 기강을 왜 네가 잡는데?”
“내가 여기서 선배니까…….”
“근데 이게 왜 아까부터 은근슬쩍 혀가 반 토막이야?”
동네 파락호들처럼 표정을 구기며 옥신각신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한쪽에 얌전히 있던 위지천이 웃음을 터트렸다.
“풋!”
그러다 자신에게 모두의 시선이 쏠리자, 어깨를 움츠린 위지천이 모기만 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잘 부탁드립니다…….”
입관시험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던 사람이 맞나 싶은, 여전히 검을 휘두를 때 빼고는 소심한 위지천이었다.
“야. 위지천.”
야수혁은 그런 위지천을 사나운 눈으로 쏘아봤다.
흠칫한 위지천이 물었다.
“왜, 왜?”
위지천과 야수혁.
둘 다 올해 입관한 일학년이었지만, 덩치만 보면 애와 어른처럼 보였다.
야수혁이 두 눈에 이글거리는 승부욕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수석이라고 잘난 척하지 마라. 내가 금방 따라잡아 줄 테니까.”
“미, 미안…….”
그 말을 들은 헌원강이 낄낄거렸다.
“뭐래 이 애송이가. 네가 위지천을 따라잡아? 나한테도 못 이기는 자식이.”
“……선배는 빠지십쇼.”
“안 빠지면 네가 어쩔 건데? 또 한 번 붙어볼까?”
“……하라면 못 할 줄 알고?”
살벌한 기세를 일으키며 당장이라도 한판 붙으려는 헌원강과 야수혁의 뒤통수로, 어김없이 흑룡편이 날아왔다.
따악! 따악!
“꾸엑!”
“꿱!”
이번에는 강도가 좀 셌는지, 두 녀석 다 바닥에 대자로 뻗었다.
“앞으로는 싸움박질할 거면 내 허락받고 해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백수룡은 제자들끼리 으르렁거리는 것을 무조건 나쁘게 보지는 않았다.
‘경쟁 상대, 그리고 목표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
위지천, 헌원강, 야수혁.
셋 다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데다 무공에 대한 욕심과 승부욕도 강했다.
지금이야 위지천이 셋 중 제일 강하고, 그다음이 헌원강, 야수혁의 순서이지만, 천무제가 개최될 때쯤엔 그 순위가 바뀌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저 나이대에는 하루하루 성장하는 속도가 예측이 안 될 정도니까.’
셋을 둘러 본 백수룡은 고개를 돌려 여민을 바라봤다.
여민은 바닥에 쓰러진 두 사람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런 멍청이들이랑 합숙이라니…….”
짙은 화장을 지운 여민은 생각보다 순하게 생긴 얼굴에, 긴 머리를 뒤로 대충 모아서 질끈 묶은 모습이었다.
‘이 녀석에겐 따로 동기를 부여해 줄 필요가 없겠지.’
여민은 무희 일을 관두고 백룡장으로 들어왔다.
아직 적응이 덜 돼 어색해하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지만, 돈을 벌겠다는 확실한 목표가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무공을 수련할 것이다.
‘문제는 역시 저 녀석인데…….’
백수룡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거상웅을 향했다.
“흐아암-.”
거상웅은 이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은 아버지에 의해 억지로 와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물론 백수룡은 ‘거상웅을 어떻게 할까’에 대한 계획도 어느 정도는 세워 두었다.
일단은…… 죽기 직전까지 굴릴 생각이었다.
“자, 잡설은 여기까지 하고. 지금부터 본격적인 새벽 훈련을 시작해 볼까?”
백수룡은 긴장한 학생들에게 안심하라며, 최대한 선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무 걱정할 것 없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가볍게 몸만 풀 거야.”
“휴우…….”
“다행이다…….”
“흐아암.”
순간 신입 세 명의 표정이 밝아졌다.
하지만 그 말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걸 알기까지는 일각도 걸리지 않았다.
* * *
“하아……. 하아…….”
“무, 물 좀…….”
“차라리 죽여…….”
“거짓말쟁이…….”
“여기가…… 어디요……?”
바닥에 털썩털썩 드러누운 학생들이 사방에서 곡소리를 냈다.
다들 온몸이 후들거려서 일어날 수도 없었고, 빙빙 도는 하늘은 노랗게 보일 지경이었다.
질긴 흑의무복은 땀에 절고 흙투성이가 되어 몇 배로 무겁게 느껴졌다.
“어린놈들이 엄살은.”
백수룡은 쓰러진 제자들 사이를 걸어 다니며 흑룡편의 끝으로 그들의 뭉친 근육을 꾹꾹 눌렀다.
“아악!”
“끄아악!”
처음에는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던 학생들의 표정은 곧 점점 편안해지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잠시 후, 새벽 수련에 익숙한 헌원강과 위지천이 가장 먼저 몸을 일으켰다.
백수룡이 그들에게 말했다.
“난 씻고 출근할 테니 애들 밥 좀 챙겨 줘라. 오늘은 첫날이니까 이것저것 알려 주고.”
드르륵.
흑룡편을 짧게 접은 백수룡은 몸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여민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물었다.
“선생님은…… 무슨 괴물이야?”
백수룡도 한 시진 동안 제자들과 함께 훈련했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모습은 처음과 거의 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위지천이 피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선생님도 처음엔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언제부턴가 새벽 훈련이 끝났는데도 호흡도 안 거칠어지시더라고요.”
“무공을 배우는 건 우리인데, 이상하게 저 양반이 제일 강해지는 것 같다니까.”
헌원강은 “그래도 언젠가 꼭 한 방 먹여 줘야지…….”라고 투덜거리다가, 백수룡이 힐긋 뒤를 돌아보자 흡! 하고 입을 다물었다.
새로 온 세 사람이 보기엔 헌원강과 위지천도 충분히 괴물처럼 보였다.
그들보다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벌떡 일어나서 몸을 풀고 있었던 것이다.
“다들 아침 먹으러 가자고.”
헌원강이 모두를 일으켜 세우려는데, 거대한 손 하나가 그의 손을 밀어냈다.
그는 거상웅이었다.
“너희끼리 가라.”
“상웅 선배. 밥 안 먹어?”
헌원강은 자신보다 한 학년 선배에게도 거침없이 반말을 썼다.
다행히 거상웅은 그런 것에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난 따로 먹으련다. 여기서 먹으면 내 밥값 감당 못 할걸.”
그흐흐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거상웅은 몸에 묻은 흙먼지를 탁탁 털어내며 몸을 돌렸다.
“어딜 가려고?”
“저녁까진 돌아오마.”
“그냥 같이 먹지?”
거상웅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백룡장을 나섰다.
“젠장……. 같이 갑시다!”
잠시 망설이던 야수혁이 거상웅의 뒤를 황급히 따라갔다.
“야 일학년! 넌 또 어디 가!”
대문 너머로 사라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헌원강은 쯧쯧 혀를 찼다.
“하여간 누가 문제아들 아니랄까 봐 말은 더럽게 안 들어요.”
* * *
“너까지 따라올 필요는 없는데.”
“젠장. 누군 좋아서 따라가는 줄 알아?”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따라오는 야수혁을 보며, 거상웅은 큭큭 웃었다.
“내기 때문이냐?”
“…….”
두 사람은 어제 누가 더 많이 먹는지로 내기했고, 진 사람은 사흘 동안 이긴 사람의 몸종이 되기로 했다.
내기에서 이긴 거상웅은 그럴 필요 없다고 했지만, 야수혁은 굳이 그를 따라다니며 종을 자처하고 있었다.
“종놈아. 그럼 이것 좀 들고 따라와라.”
“빌어먹을…….”
거상웅은 허리춤의 두툼한 전낭을 야수혁에게 맡겼다. 야수혁은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젠장. 종노릇 끝나면 패 버리겠어.”
“그 실력으로?”
“……당장은 말고.”
그 대답에 거상웅은 그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야수혁을 보고 있으면 과거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항상 자신감과 활기가 넘쳤으며, 세상이 자신의 것만 같았던 시절.
무공을 배우는 데 열의가 넘쳤고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때.
……천무제에 가기 전.
-고작 그 실력으로?
이 년이나 지났는데도 여전히 선명한 얼굴을 떠올린 거상웅은 쓰게 웃으며 말했다.
“밥이나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