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26
125화. 사파 무공의 이해와 실전 대비 (4)빈민가를 한 바퀴 둘러본 두 사람은 다 무너져가는 허름한 객잔에 들어섰다.
“여긴 어릴 때부터 단골인 집이다.”
허리가 심하게 굽은 노파가 객잔의 주인이었는데, 청천은 노파가 벙어리이고 귀도 거의 들리지 않는다 말해 주었다.
“할머니! 저 왔습니다!”
청천이 객잔이 울리도록 쩌렁쩌렁하게 소리치자, 노파가 답답할 정도로 천천히 고개를 돌려서 두 사람을 돌아봤다.
“…….”
노파의 자글자글한 눈가에 주름이 짙어지더니, 천천히 몸을 일으켜 느릿한 움직임으로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백수룡이 답답한 표정으로 물었다.
“주문은 안 받고 어딜 가는 거야?”
“여긴 어차피 소면밖에 안 돼. 미리 말해 두는데 맛도 더럽게 없다. 하지만 양은 많지. 여기 앉도록.”
청천은 먼지가 쌓인 탁자를 소매로 직접 슥슥 닦아 내고 자리에 앉았다. 한두 번 와 본 모습이 아니었다.
백수룡은 그 맞은편에 앉아 혀를 찼다.
“너도 참 궁상맞게 산다.”
남창 같은 대도시의 포두는 월봉이 적지 않다.
거기에 더해, 여기저기서 뒷돈까지 받아 챙긴다면 부수입은 월봉 이상으로 짭짤할 터였다.
“뒷돈은 좀 받아 챙기냐?”
“아니.”
청천은 무뚝뚝하게 고개를 저었다.
백수룡은 그럴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허 노인의 그 많은 유산에 관심이 없던 것만 보아도, 청천에겐 물욕이라는 게 거의 없었다.
‘청렴결백의 화신 같은 놈.’
자세히 보니 관복도 허름하기 짝이 없었다.
처음 임관하고 받은 옷을 기우지도 않고 계속 입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돈 벌면 옷도 사 입고 좋은 것도 사 먹고 그래라. 가난뱅이 포두라니. 범죄자들이 우습게 보는 거 아니냐?”
“인상이 무서워서 괜찮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세상 무표정하게 하는 청천의 모습에, 백수룡은 자기도 모르게 큭큭 웃었다.
“여기 술은 없나?”
어떻게 보면, 청천은 이곳에 와서 백수룡이 사귄 첫 친구라 말할 수 있는 녀석이었다.
그러나 술을 먹자는 말에 청천의 표정이 살짝 흐려졌다.
“술은…….”
“뭐, 업무 중이라 안 되는 거면 다음에…….”
“죽엽청이 있는데. 비싸다.”
“……내가 살 테니까 시켜.”
“금방 가져오지.”
청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술을 가지러 갔다. 백수룡이 그 뒤에 대고 말했다.
“저 할머니가 가져오려면 한세월은 걸릴 테니까 아예 여러 병 가져와.”
잠시 후, 주방에 들어갔던 노파가 소면 그릇을 들고 나타나 두 사람의 식탁 위에 느릿느릿 내려놓았다.
백수룡은 소면을 딱 한 입만 먹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더럽게 맛없네.”
“대신 양이 많지.”
한 젓가락을 크게 집어서 우물우물 삼킨 청천이 흐뭇하게 웃었다. 그로서는 드물게 보이는 미소였다.
“……어이가 없네. 뭘 맛있는 집에라도 데려온 것처럼 뿌듯하게 웃고 있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백수룡은 청천이 가져온 죽엽청을 자신에 잔에 따르고, 청천의 잔에도 따랐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술잔만 주거니 받거니 했다.
“…….”
벙어리에 귀머거리인 노파는 그들의 옆 탁자에 망부석처럼 앉아, 흐린 눈으로 노을 지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소면을 반쯤 비운 청천이 불쑥 본론을 꺼냈다.
“이곳 빈민가는 크게 3개의 사파 세력이 장악하고 있다.”
“아까 말한 적호방, 대웅방, 철두파?”
청천은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빈민가에서 영역 다툼을 벌이는 세력들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가장 세력이 큰 곳은 적호방이다. 일 년 전에 방주가 바뀌면서 확 커졌지. 최근 빈민가 세력을 통일하겠다며 분란을 일으키는 주범이기도 하다.”
적호방주가 바뀐 이후 적호방은 나름의 규율을 갖춘 채 무림 문파를 흉내 내고 있다고 했다.
“놈들은 하나같이 팔에 시뻘건 호랑이 문신을 한 것이 특징이다. 숫자만 많지, 대부분 실력은 별 볼 일 없지만…… 적호방주만은 상당한 고수다.”
“상당히가 어느 정도인데?”
“멀리서 딱 한 번 봤지만……. 나는 못 이길 것 같더군.”
“호오?”
그 대답에 백수룡은 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청천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녀석. 이제는 일류를 넘어 절정을 거의 넘보는 수준인데.’
부작용이 없는 혈우마공의 구결을 백수룡에게 전해 받은 이후로, 청천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부단히 수련하며 종종 백수룡을 찾아와 무공에 대한 지도도 받았다.
그 덕에 이제는 고수라고 해도 될 정도로 무공에 큰 성취를 보였다.
“그럼 적호방주란 놈은 최소 절정이라는 소리야?”
“……아마도.”
절정의 고수가 빈민가의 삼류 사파 문파에 눌러앉아 있다…… 뭔가 뒤가 구린 놈일 가능성이 컸다.
청천이 이어서 말했다.
“행여나 학생들이 혈기를 못 이겨 적호방주에게 덤벼들지 않도록 주의를 시키는 게 좋을 거다.”
“그래야지.”
백수룡은 청룡학관의 학생들에게 사파 무인들과의 실전을 경험하도록 해 줄 생각이었지만, 상대가 절정고수쯤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절벽에서 민다고 무조건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자칫하면 재능을 꽃피워 보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죽을 수도 있다.
……과거, 백수룡은 그런 경우를 너무 많이 보았다.
“그 부분은 유념해 두지. 적호방 말고 다른 곳은?”
“두 번째로 규모로 큰 세력은 대웅방이다. 은퇴한 낭인들이 모여서 만든 곳이지.”
“낭인들?”
“정확히는 과거 낭인이었던 삼 형제가 두목이고, 나머지는 그들의 부하라고 봐야 한다. 낭인이었다가 흘러들어온 자들도 있고, 아닌 자들도 있으니.”
스스로를 거력삼웅(巨力三熊)이라고 칭하는 삼 형제가 바로 대웅방의 두목들이라고 했다.
셋 다 오십을 넘겨, 낭인 일을 계속하기에는 부담이 되는 나이였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듣기로는 셋 다 실력이 일류는 된다고 하더군.”
“제대로 자리를 못 잡고 여기까지 흘러들어온 거구만.”
나이든 낭인들의 흔한 결말 중 하나였다.
돈도 별로 모으지 못하고, 오랜 객지 생활로 건강도 나빠지고, 제대로 된 일거리도 얻지 못해 빈민가나 뒷골목으로 흘러들어와 왈패들을 거느린 두목이 되는 경우.
‘복만춘은 운이 정말 좋은 경우지.’
지금은 백룡상단의 총관으로 일하고 있는 복만춘.
그 역시 은퇴한 낭인이었고, 은퇴 이후에는 허 노인의 호위무사 일을 했었다.
요즘은 금룡장주와 종종 식사를 함께하며 금과옥조 같은 조언을 듣는다고 하니, 은퇴한 낭인 중에서 그보다 성공한 인생이 있을까 싶었다.
“거력삼웅이라……. 총관을 통해서 한번 알아봐야겠네.”
늙어서 은퇴한 낭인이라지만 그들이 가진 실전 경험은 결코 녹록지 않다.
객사하지 않고 이십 년 이상 버텼다는 것만으로도, 거력삼웅은 곰보다 여우에 더 가까운 자들일 것이다.
“……만만히 봤다간 학생들 쪽에 사상자가 생길 수도 있다.”
“이 정도면 딱 좋아. 너무 쉬우면 의미가 없거든.”
청천의 우려 섞인 목소리에 백수룡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절벽에서 등을 밀 생각은 없지만, 최소한 그렇다고 느낄 정도까지는 밀어붙일 생각이었다.
“이런, 벌써 술이 다 떨어졌군. 할머니! 여기 술 좀 더 주세요!”
“…….”
백수룡의 외침에 벙어리 노파가 눈을 끔뻑이더니, 나무늘보처럼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 모습을 본 청천이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됐다. 내가 가져오지.”
죽엽청을 몇 병 더 가져오며 청천이 말했다.
“철두파 이야기를 안 했군. 셋 중에서 가장 세력이 약한 놈들이다.”
“모양 빠지게 이름부터 철두(鐵頭)파가 뭐야.”
백수룡이 작게 혀를 찼다.
아무리 사파라도 문파 이름을 지을 땐 그럴듯하게 짓기 마련인데, 철두파는 이름부터 무식한 티가 줄줄 흘렀다.
“무식한 놈이긴 하지.”
청천이 피식 웃더니 백수룡의 술잔을 채웠다.
어느새 허름하고 좁은 객잔 안을 독한 주향이 가득 채웠다.
조금 뜸을 들인 청천이 입을 열었다.
“철두파 두목은 유일하게 이곳 토박이다.”
“토박이? 그럼 아는 사이냐?”
“……어느 정도는.”
철두파는 두목의 이름이 철두로, 태어나자마자 길가에 버려진 것을 거지 왕초가 주워 길러서 어려서부터 동냥질을 시켰다고 한다.
거지 왕초는 아이에게 이름도 지어 주지 않았는데, 어려서부터 머리가 쇠처럼 단단해 때리기 좋단 이유로 ‘철두’라 불렀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이름이 되었다.
“독한 놈이다. 자길 키워 준 거지 왕초를 때려죽이면서 스스로 왕초가 됐고, 동냥질을 관두고 패거리를 모아서 철두파를 만들었다.”
그가 한때 거지였다는 말에, 백수룡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 철두라는 놈. 개방이랑 연결돼 있는 건 아니고?”
“아니다. 세상 모든 거지가 개방도는 아니지.”
“그건 그래. 사실 이런 동네는 개방보다는 하오문의 영향력이 더 크기도 할 테고.”
개방과 하오문은 중원 최대의 정보 세력들로, 앙숙은 아니지만 경쟁자라 할 수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개방은 정파이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정보를 팔지 않지만, 하오문은 돈만 된다면 누구에게 어떤 정보든 제공한다는 점이었다.
때문에 하오문은 종종 사파로 분류되기도 했다.
“아무튼 철두파는 철두를 중심으로 이곳에서 나고 자란 거친 놈들이 모인 곳이다. 문파라고 할 수도 없고…… 패거리에 가깝지.”
“무공 실력은?”
“무공은 빈약하지만 싸움 실력만은 타고난 녀석이다. 어떤 면에선…… 안타까운 놈이지.”
“호오.”
백수룡이 눈을 빛냈다.
즉, 변변찮은 무공을 익혔지만 타고난 감각과 실전 경험으로 단련된 싸움꾼이란 소리였다.
‘그런 녀석이 기회만 잡으면 순식간에 고수가 되기 마련인데.’
백수룡은 ‘철두’라는 이름, 그리고 이곳 토박이라는 특징을 머릿속에 잘 새겨 넣었다.
들어 보니 빈민가에 있는 사파 세력들 하나하나가 만만치 않은 놈들이었다.
하지만 그건 백수룡에게 무척 만족스러운 소식이었다.
그의 입가에 즐거움 가득한 미소가 맺혔다.
“청룡학관 애송이들한테도 제대로 된 경험이 되겠어.”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난 녀석들에게, 진짜 살기가 무엇인지 알려 줄 상대가 이곳에 잔뜩 있었다.
잠시 후. 청천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나는 이만 복귀해야겠다. 할 일이 쌓여 있어서.”
“먼저 가. 난 좀 더 둘러보고 갈 테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청천이 노파에게 가서 큰 목소리로 말했다.
“할머니! 잘 먹었습니다. 계산은 저 녀석이 할 겁니다.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
노파는 주름진 얼굴에 미소를 띠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청천이 돌아간 후에도, 백수룡은 혼자 객잔에 남아 생각을 정리했다.
“적호방, 대웅방, 철두파라…….”
이런저런 생각과 계산으로 그의 눈빛이 깊어질 때였다.
“싸움이다!”
멀리서 고함이 들려온 방향으로 백수룡의 고개가 돌아갔다.
객잔 밖이었다.
꽤 먼 거리였지만, 내공으로 안력을 돋우자 사내들이 모여서 난투를 벌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가려져서 잘 안 보이네.”
작게 중얼거린 백수룡은 경공을 펼쳐 단숨에 객잔 지붕으로 올라갔다.
휘익!
벙어리 노파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올려봤다.
노파에게 싱긋 웃어 준 백수룡은 싸우고 있는 패거리들에게 다시 시선을 주었다.
“호랑이 문신한 놈들이 적호방일 테고…… 상대는 한 명인가?”
한 사내가 적호방 패거리에 둘러싸여 싸우고 있었다.
“으아아아!”
짧게 머리에 온몸에 흉터가 가득한 사내였는데, 키는 작지만 몸이 차돌처럼 단단해 보였다.
“호오.”
적호방 패거리는 칼이며 도끼를 휘두르며 싸우고 있는 반면에, 사내는 겁도 없이 맨손으로 싸우고 있었다.
피잇!
적호방의 쇠붙이는 몇 번이나 사내의 몸을 스치며 지나갔고, 그때마다 핏물이 튀었다.
그러나 사내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난전을 유도해 적들이 서로를 방해하게 만들고, 그 틈을 파고들어서…….
콰직!
머리로 받아 버렸다. 안면이 함몰된 적호방 패거리 중 하나가 뒤로 넘어지고, 그렇게 생겨난 빈틈으로 파고든 사내는 몸을 낮췄다가,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며 다른 상대의 턱을 머리로 받아 버렸다.
“커허억!”
턱이 박살 난 상대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이빨이 우수수 뽑혀 나가고, 그렇게 튄 피가 짧은 머리 사내의 이마와 얼굴을 흠뻑 적셨다.
사내가 배고픈 맹수처럼 포효했다.
“덤벼! 다 죽여 버릴라니까!”
“이야…….”
꽤 먼 거리였지만, 백수룡은 사내가 뿜어내는 살기에 감탄했다.
흉험하고 농도 짙은 살기.
세밀한 초식 같은 것은 없지만, 상대를 반드시 죽이고야 말겠다는 살의, 악의, 독기.
사내의 실력과 상관없이, 피부가 저릿저릿해지는 기분이었다.
“청룡학관 애송이들이 저걸 좀 배워야 하는데…….”
백수룡이 감탄하는 와중에도, 짧은 머리의 사내는 자신을 포위한 적호방과 목숨을 건 사투를 벌였다.
“끄악! 철두 이 미친 새끼!”
“놓치지 마! 오늘은 반드시 죽여!”
그러나 적호방의 염원과 달리, 결국 포위망을 뚫어낸 사내는 냅다 도망치기 시작했다.
“……저 녀석이 철두라고?”
적호방이 그 뒤를 우르르 따라갔지만, 뒤쫓는 속도를 보건대 금방 따돌릴 것 같았다.
“제법이네.”
백수룡은 팔짱을 낀 채로 멀어지는 철두를 바라보다, 객잔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노파에게 다가가며 말을 걸었다.
“할머니가 보기엔 어때요?”
“…….”
“적호방, 대웅방, 철두파. 셋 중에 누가 이 거리를 장악할 것 같아요?”
“…….”
노파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백수룡의 목소리가 너무 작았던 탓이다.
거의 귀머거리에 가까운 노파는 결코 들을 수 없을 정도로.
하지만 백수룡은 개의치 않고 계속 말했다.
“아니면, 아예 새로운 세력이 이 거리를 접수하는 건 어떨까요?”
“…….”
마치 귀가 잘 들리는 사람에게 말하는 것처럼, 무척이나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면서.
“언제까지 시치미를 떼시려고 그러지?”
백수룡은 자신의 말을 못 알아듣는 척 연기 중인 노파를 바라보며 웃었다.
“밖에 나가서 여기가 하오문의 지부라고 소문이라도 내고 오면 입을 열려나?”
“……어떻게.”
그 순간 흐리멍덩하던 노파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노파는 평소 거의 말을 하지 않은 탓에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십 년 넘은 단골도 모르는 걸 눈치챘지?”
청천이 소개해 준 허름한 객잔, 이곳은 하오문의 비밀 지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