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64
163화. 악인곡을 재건해라“혈마?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지?”
백수룡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자, 벽안귀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맺혔다.
“시치미 뗄 생각 마. 네가 혈수귀옹과 싸우면서 적발적안으로 변하는 것을 본 놈이 있으니까.”
“적발적안?”
백수룡은 생전 처음 들어 보는 이야기인 것처럼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가 어깨를 으쓱이며 되물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천하에 수많은 무공이 있지만, 적발적안으로 변하는 최상승의 무공은 하나뿐이지.”
벽안귀의 청안이 요사스럽게 빛났다.
자신의 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훑어 내리는 그 시선과 마주하며, 백수룡은 한 가지 사실을 확신했다.
‘이 녀석. 청안마공을 익혔군.’
처음 벽안귀를 봤을 때도 ‘혹시나’ 하는 의심을 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위지천을 구해야 한다는 목적이 있어, 딴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지금 다시 보니…….’
역천신공의 경지가 7성에 이르면서, 백수룡은 상대의 기운을 더욱 예민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특히 그것이 혈교에서 흘러나온 마공이라면, 상대가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그의 기감을 피해갈 수 없었다.
‘이런 곳에서 청안마공의 계승자를 만나다니.’
운명이란 것이 참 짓궂다고 생각하며, 백수룡은 피식 웃었다.
“그래? 무슨 무공인데?”
“역천신공. 혈교의 지존인 혈마만이 익힐 수 있는 절세신공이다.”
“…….”
“다시 묻겠다. 너는 혈마인가?”
묻고 있었지만, 벽안귀는 이미 백수룡을 혈마라고 거의 확신하는 듯했다.
하지만 백수룡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난 혈마가 아니다.”
“계속 발뺌을 할 셈인가!”
번쩍!
벽안귀의 새파란 눈동자에서 형형한 안광이 쏟아졌다.
확실하다. 청안마공이다.
상대의 무공을 확인한 백수룡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진해졌다.
그것을 자신에 대한 조롱이라고 여긴 벽안귀가 사나운 기세를 피워 올렸다.
“혈마여. 다른 놈들은 몰라도 내 눈은 속이지 못한다.”
“네가 뭐라고 생각하건, 아닌 건 아닌 거야.”
“그럼 이대로 무림맹에 가서 알려도 상관없겠군? 청룡학관 강사 백수룡이 역천신공을 익힌 당대의 혈마라고 말이야.”
비릿한 미소를 지은 벽안귀의 협박에, 오히려 백수룡의 입가에 더 큰 웃음이 맺혔다.
“무림맹?”
그는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뎌 벽안귀를 향해 걸어갔다.
스스스슷…….
보란 듯이 백수룡의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점점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벽안귀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역시 넌!”
누군가에게 역천신공을 들키는 것.
항상 걱정해 온 일이지만, 최소한 이 자리에서는 아니었다.
그래서 일부러 적발적안을 보여 주었다.
“악인곡 출신의 마두가 지껄이는 소리를 무림맹이 믿어줄까? 그 자리에서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익명으로 밀고하는 방법도 있지. 네가 조사받게 만드는 것쯤은 어렵지 않아. 무림맹이 네 과거를 모두 털면 혈교와 연관된 증거를…….”
피식.
백수룡은 같잖다는 듯 웃었다.
“마음대로 해 봐. 난 혈마가 아니라서, 털어서 나올 먼지가 하나도 없으니까.”
백수룡의 과거를 캐 봤자 나오는 건, 청룡학관의 원조 망나니였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야반도주 정도가 다일 것이다.
그가 환생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한, 그와 혈교를 연결할 증거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물론 벽안귀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끝까지 거짓말이군!”
그의 청안이 요사스러운 빛으로 일렁였다.
백수룡은 상대의 청안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나도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벽안귀와 늘 함께 다니는 염라부, 낭아도의 기척이 상당히 먼 거리에서 느껴졌다.
지금 이 대화 내용을 둘에겐 모르게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무슨 배짱으로 혼자서 나를 찾아온 거지? 이 거리에서 날 도발하고도 도망칠 자신이 있나? 아니면…….”
푸화악!
백수룡이 무복이 펄럭이며 막대한 기파가 터져 나왔다.
악인곡에 처음 도착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기도.
자신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기세에 벽안귀의 표정이 굳었다.
‘혈수귀옹과 싸우며 부상당한 줄 알았는데…….’
어째서 더 강해져 있단 말인가.
벽안귀의 표정을 읽은 백수룡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제 발로 무덤을 찾아온 건가?”
역천신공은 혈교 무공의 정점.
그 기운은 혈교에서 파생된 모든 무공을 짓누르고, 억압하며, 강제한다.
7성에 이르러 대성의 경지에 진입한 역천신공의 기운이라면, 동급의 고수들조차 식은땀을 흘리게 만들 수 있었다.
하물며 그보다 약한 자는 백수룡과 얼굴을 마주 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크윽…….”
청안마공 또한 혈교의 무공.
역천신공의 기운을 접한 벽안귀가 창백해진 안색으로 뒷걸음질 쳤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우뚝 멈춰섰다.
주르륵.
꾹 다문 벽안귀의 입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심령을 옥죄는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혀를 깨문 것이다.
눈에 핏발이 선 벽안귀가 내공을 끌어올렸다.
“혈마여! 오늘에야 원수를 갚을 날이 왔구나!”
“원수?”
벽안귀는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그냥 죽어줄 생각도 없었다.
원수를 만났으니 최소한 발악이라도 해 보고 죽으리라!
우득, 우드득.
청안마공을 전력으로 끌어올린 벽안귀의 몸에 핏줄이 불거지더니, 근육이 부풀어 오르고 푸른빛의 강렬한 기가 그의 몸을 휘감았다.
백수룡은 작게 감탄했다.
‘이 정도면 혈수귀옹과 싸워도 밀리지 않겠는데.’
벽안귀의 무공은 백수룡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하지만 그를 놀라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죽어라!”
고함을 지른 벽안귀가 벼락처럼 짓쳐들었다. 어느새 뽑아 든 검을 위에서 아래로 휘둘렀다.
콰아앙!
검격이 꽂힌 자리에 커다란 구덩이가 생겼다.
백수룡은 보법을 밟아 옆으로 피했다.
이형환위와 같은 움직임이었으나, 벽안귀의 시선은 정확히 그를 쫓았다. 검이 곧바로 따라왔다.
“네놈을 죽여 오랜 친구들의 원수를 갚겠다!”
두 눈으로 푸른 안광을 줄기줄기 뿜어내며 달려드는 벽안귀의 모습에서, 악인곡 정문을 지키던 때의 여유로움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콰앙! 콰앙! 쾅쾅쾅!
두 고수가 맞붙은 일대에서 폭약이라도 터진 듯한 굉음이 연달아 터졌다.
벽안귀의 검에 맺힌 강기는 일대의 지형을 바꿔 놓을 정도로 파괴적이었다.
반면 백수룡은 최소한의 강기만을 일으켜서 방어에 집중했다.
그는 벽안귀의 푸른 눈동자를 깊이 들여다보았다.
눈동자 속에 맺힌 거대한 분노와 고통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대충 알겠군.”
“으아아아아!”
광증에 시달리던 구음마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혈교가 만든 시설에서 강제로 빙백신공을 익히다 생긴 광증.
어딘가에, 그와 같은 피해자들이 더 있으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벌써 또 다른 피해자를 만나게 될 줄이야.
백수룡이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긴, 그런 녀석들이 흘러들어오기에 악인곡만큼 좋은 곳도 없겠지. 너도 혈교에서 도망친 건가?”
“닥쳐! 닥치란 말이다!”
벽안귀의 공격이 강해질수록, 반대로 그의 피골은 상접해져 갔다.
청안마공을 지나치게 끌어올린 부작용이었다.
벽안귀의 코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이대로 방어만 하고 있어도 스스로 자멸할 것이 뻔했다.
하지만 백수룡은 그러지 않았다.
“일단.”
구음마녀는 스스로 평안을 선택했기에 말리지 않았지만, 벽안귀는 결코 죽으려 드는 얼굴이 아니었으니까.
“진정하자고.”
서걱.
벽안귀의 검에 머리카락 몇 올이 베였다. 간격을 일 보 좁힌 대가였다.
채앵!
연이은 공격은 검으로 쳐 냈다. 이를 악문 벽안귀가 두 눈에서 푸른 안광을 쏟아냈다. 안구가 타 버릴 것처럼 뜨거웠다.
특수한 훈련을 받아 만들어진 청안은 상대의 신체 움직임을 읽고 투로를 예측하며, 기의 흐름을 읽고 상대의 강함을 측정한다.
청안마공을 대성하면 예지에 가까운 신안을 얻게 되는데, 기습을 대비하는 데 있어서는 천하에서 최고를 다툴 만한 무공이었다.
“하지만 대성을 이루려면 멀었군. 이루더라도 내겐 소용없고.”
백수룡은 벽안귀의 품으로 파고들며 손을 뻗었다.
벽안귀가 곧장 호신강기를 둘렀지만 소용없었다.
역천신공의 기운이 닿자, 벽안귀의 호신강기가 녹아내렸다.
“무슨!”
“상성이란 거지.”
백수룡은 경악한 표정의 벽안귀의 얼굴을 손으로 잡아서 그대로 바닥에 처박았다.
콰아앙!
“커헉!”
바닥에 처박힌 벽안귀가 피를 토했다. 단순히 힘으로 때려눕힌 것이 아니었다. 백수룡은 역천신공을 그의 몸 안에 흘려 넣어 청안마공을 흩어놓았다.
“알고 있나? 청안마공은 혈마를 곁에서 호위하는 그림자들에게 가르치던 무공이다. 그래서 몇 가지 제약이 걸려 있지.”
백수룡의 두 눈에서 혈마안이 빛을 발하자, 벽안귀의 청안이 빛을 잃기 시작했다.
“으으…….”
“너와 나의 무공은 완전한 상하 관계에 있다. 청안마공을 익힌 너는 역천신공을 익힌 나를 이길 수 없다.”
“닥쳐, 나는 너를, 죽일 거다……!”
벽안귀는 남은 내공을 모조리 끌어올렸다.
동귀어진도 각오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천적을 만난 청안마공의 기운은 더 이상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백수룡이 차분한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를 혈마라 부르고, 죽이려고 하는 걸 보니 넌 혈교를 무척 증오하는 것 같군. 하지만 다시 말하는데, 나는 혈마가 아니다.”
“개소리! 역천신공을 익혀 놓고 혈마가 아니란 말이냐!”
벽안귀가 피를 토하면서 외쳤다. 그의 두 눈에 분노로 이글이글 타올랐다.
반면, 백수룡은 차분하게 그를 내려봤다.
“내가 진짜 혈마였으면, 왜 너를 지금까지 살려 두고 이런 거짓말을 하겠어?”
“끝까지 나를 기만하려는 것이겠지!”
짜악!
뺨을 얻어맞은 벽안귀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생각을 하고 입을 열어라. 내가 그렇게 할 일이 없어 보이나?”
“…….”
백수룡의 서늘한 목소리에 벽안귀가 침묵했다.
잠시 후, 이성이 조금 돌아온 그가 물었다.
“……정말 혈마가 아니라고?”
“나는 혈마가 아니야. 하지만 역천신공은 익혔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역천신공은…….”
“무공이야, 구결만 알면 누구나 익힐 수 있는 거지.”
“…….”
“어떻게 역천신공을 익혔는지는 말해 줄 수 없다. 하지만 이건 알려줄 수 있어.”
백수룡의 입가에 사나운 미소가 맺혔다. 그의 몸에서 가공할 살기가 뿜어졌다.
“나는 혈교에 너만큼이나 큰 원한을 가진 사람이다. 놈들을 만나는 족족 죽여 왔고, 앞으로도 죽일 예정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놈들의 본거지를 찾아서 싹 불태워 버릴 생각이야.”
적발적안의 사내가 혈교를 멸하겠노라 말하고 있었다.
그의 등 뒤로 피처럼 붉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 이질적인 광경을 벽안귀를 멍하니 바라봤다.
백수룡의 스산한 웃음에서는 무림을 불태우고도 남을 분노가 느껴졌다.
“내가 혈마라면 너를 설득하지 않아. 그냥 죽여 버리거나 교로 잡아가서 고문했을 거다. 저기서 달려오는 놈들도 마찬가지고.”
멀리서 염라부와 낭아도가 경공을 펼쳐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무척 초조했다.
“벽안귀!”
“놈! 멈춰라!”
싸우기 전에 기막을 펼쳐 소리를 차단하기는 했지만, 두 사람의 싸움이 워낙에 흉험했던 탓에 터져 나온 기파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스스스슷…….
백수룡의 적발적안이 다시 흑발흑안으로 돌아왔다.
굳이 다른 녀석들에게까지 보여 줄 필요는 없으니까.
그가 벽안귀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상황 파악이 안 될 정도로 바보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저 둘에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소. 죽이지 마시오.”
벽안귀의 말투가 바뀌었다.
고개를 끄덕인 백수룡은 그의 팔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멀리서 그 모습을 본 염라부와 낭아도도 경공을 멈추고 천천히 걸어왔다. 괜히 백수룡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너희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지.”
백수룡은 벽안귀에게 시선을 돌려, 염라부와 낭아도를 바라봤다.
오랫동안 악인곡의 문지기로 살아온 사내들이 의문 어린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악인곡을 재건해라.”
백수룡의 말에, 세 사내가 눈을 부릅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