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63
162화. 혈마인가? 백수룡이 구음마녀의 빙정을 수습하고 돌아왔을 때, 악인곡에는 반가운 손님들이 도착해 있었다.
“형님!”
가장 먼저 달려온 이는 악연호였다.
주인을 만난 강아지처럼 헐레벌떡 달려온 악연호는 백수룡의 모습을 보더니 놀라서 입을 떡 벌렸다.
“세상에, 꼴이 이게 뭐예요? 찢어지고 터지고 그을리고……. 옷에 있는 물기는 또 뭐야?”
“그럴 일이 좀 있었다.”
백수룡의 몰골은 처참할 정도였다.
기관진식이 가득한 지하에서 혈수귀옹과 목숨을 건 사투를 벌였고, 동굴을 나와서는 곧바로 구음마녀와 싸웠다.
게다가 구음마녀의 탁기를 빼내는 것과 동시에 정면으로 무시무시한 냉기를 감당했으니, 단정했던 청색 무복은 이제 걸레로도 쓰기 힘든 지경이었다.
“너 혼자 온 건…… 당연히 아니겠지.”
멀지 않은 곳에서, 칼날 같은 기세를 풍기며 성큼성큼 걸어오는 매극렴이 보였다.
“이 녀석……!”
노기가 충천한 얼굴로 다가온 매극렴은, 백수룡의 거지만도 못한 꼴을 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많이 다쳤느냐?”
“보기보다 괜찮습니다.”
백수룡은 씩 웃으며 대꾸했다.
오히려 매극렴의 옷에 난 베인 흔적들을 보고 놀랐다.
하나같이 요혈을 노린 흔적인 게 예사롭지 않았던 것이다.
‘매극렴을 이 정도로 몰아붙였다고? 대체 누가…….’
혈수귀옹과 구음마녀를 제외하면, 악인곡에 그만한 고수는 거의 없을 텐데.
그 의문을 해결이라도 해 주듯 매극렴이 입을 열었다.
“악인곡 입구에서 벽안귀라는 자와 검을 섞었다. 범상치 않은 고수더구나.”
“벽안귀라면…….”
푸른 눈동자를 요사스럽게 빛내던 악인곡 문지기의 얼굴이 떠올랐다.
백수룡은 벽안귀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빠서 그냥 지나쳐오긴 했지만, 놈의 무공이 내가 예상한 그게 맞다면…….’
백수룡이 매극렴에게 물었다.
“그래서, 놈을 죽이셨습니까?”
“백 합쯤 나누어도 승부가 나지 않자 도망치더구나. 놈뿐만 아니라 함께 있던 두 놈도 마찬가지였다.”
매극렴은 놈들을 쫓을까 했으나, 납치된 위지천을 찾는 것이 우선이기에 곧장 악인곡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잘하셨습니다. 놈들은 이곳 지리를 잘 알아서 추격이 쉽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벽안귀는 도망치기 전에 비장의 한 수를 남겨 놓았다.
그것도 매극렴이 아닌 백수룡에게 말이다.
“헌데, 벽안귀 그자가 내게 네 별호를 알려주더구나.”
“예. 별호요?”
그 순간, 싸늘한 감각이 백수의 등줄기를 훑어 내렸다.
매극렴은 하나뿐인 외손자의 사타구니를 싸늘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옥면음랑. 스스로를 방중술과 색공의 대가라고 소개했다던데?”
그 순간, 백수룡은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나며 작게 중얼거렸다.
“……벽안귀 이 개새끼.”
그 모습을 본 매극렴의 두 눈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이놈! 대체 밖에 나가서 행실을 어떻게 하고 다니는 게야! 옥면음랑? 아비 놈 별호는 옥면공자더니, 아들놈은 한술 더 뜨는구나!”
옥면공자와 옥면음랑.
하필이면 원수 같은 사위 놈과 비슷한 별호라서 더 열이 뻗치는 매극렴이었다.
그가 검을 뽑아 들며 성큼 백수룡에게 다가갔다.
시선은 여전히 백수룡의 사타구니에 고정돼 있었다.
“진작 저것부터 잘라 버렸어야 했는데…….”
“하, 할아버님. 전부 오해입니다. 제가 다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 그 별호는 제가 지은 게 아니라 원강이 놈이…….”
“닥쳐라! 내 네놈의 거시기를 잘라 무림의 질서를 바로 세울 것이다!”
“제 거시기랑 무림의 질서가 무슨 상관인데요!”
아무리 역천신공이 7성에 이르러도, 외할아버지의 노기를 감당하기란 어려웠다.
“당장 이리 오지 못해!”
“살려 주십시오!”
두 사람의 짧은 추격전은 마지막으로 남궁수와 거상웅이 도착하면서 끝났다.
“백수룡.”
미간을 찌푸리며 다가오는 남궁수의 뒤편으로, 포박된 악인곡의 악인들이 줄줄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남궁수를 본 백수룡이 혀를 차며 물었다.
“옷 갈아입고 왔냐?”
“……무슨 소리지?”
남궁수의 깔끔한 백의는 핏방울은커녕 먼지 하나 찾아볼 수 없었고, 머리 모양도 단정했다.
청룡학관에서 악인곡까지 전력을 다해 경공을 펼쳤을 텐데, 어떻게 저럴 수 있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남궁수가 차가운 표정으로 물었다.
“위지천은 어디 있지?”
“지금 만나러 가려던 참이다. 나도 방금까지 싸우다 왔거든.”
“…….”
“왜? 뭐?”
백수룡이 빤히 쳐다보자, 남궁수가 화를 꾹 참는 표정으로 말했다.
“청룡학관으로 돌아가면 큰 질책과 비난을 받게 될 거다. 특히 학부모회에서는 널 당장 해고하라고 압박할 터.”
“그래서, 지금 날 자르겠다고 협박하는 거냐?”
백수룡이 눈살을 찌푸리며 묻자, 남궁수는 코웃음을 쳤다.
“천만에. 누가 널 해고시키려고 하면 내가 막을 생각이다.”
“뭐?”
“누구 좋으라고 해고를 하나.”
생각지도 못했던 남궁수의 말에, 백수룡은 물론이고 악연호과 매극렴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남궁수의 눈빛이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이런 짓을 저질러 놓고 관둔다? 아니, 몇 배로 일해서 갚게 해 주마. 앞으로 죽을 각오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할 거다.”
“어, 뭐……. 안 그래도 열심히 할 생각이긴 한데.”
잘못했으니 일해서 갚으라는 남궁수의 논리에, 백수룡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튼, 이 자식도 정상은 아니야.’
그때, 선생님들 눈치에 뒷전으로 밀려나 있던 거상웅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혼자 악인곡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탓에, 후배들을 많이 걱정한 듯 보였다.
“선생님. 다른 애들은요?”
“지금 찾으러 가려던 참이다.”
백수룡은 강사들, 거상웅과 함께 마의의 거처를 찾아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 마의에게 전음을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의. 네가 내게 충성하기로 한 것은 함구하도록.] [……예. 주군.]혈마안에 마음이 꺾인 마의는 백수룡에게 무조건적인 충성을 맹세했다.
잠시 후 마의의 집 안으로 들어가자, 침상에 누워 있는 학생들과 그들을 치료 중인 마의가 보였다.
마의는 백수룡을 보자마자 두 손을 번쩍 들었다. 그는 백수룡의 눈을 똑바로 마주치지도 못했다.
“사, 살려 주시오! 무조건 항복하겠소.”
혈수귀옹이 부재한 상황에서 마의의 항복은 그 의미가 컸다.
악인곡에 남아 있던 악인들 대부분은 마의를 따라 항복하거나 도망쳤고, 일부 저항한 자들은 강사들에 의해 모조리 제압당했다.
백수룡은 침상에 누워 있는 제자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다들 부상은?”
“뭐, 이 정도쯤이야.”
“침 좀 바르면 나아요.”
“저희보단 여민 선배가…….”
사내 녀석들의 부상도 결코 작지 않았지만, 다행히 전부 약을 쓰고 잘 쉬면 나을 수 있는 부상이었다.
문제는 여민이었다.
백수룡은 가장 먼 침상에 누워 있는 여민에게 다가갔다.
“…….”
안 그래도 하얀 얼굴이 시체처럼 창백했다.
마의가 그의 옆에서 눈치를 보며 말했다.
“생명의 위기는 넘겼지만 선천지기가 많이 상했습니다. 흡성대법에 당한 듯한데…… 깨어나더라도 예전처럼 건강하긴 힘들 겁니다.”
“…….”
백수룡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민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는 백수룡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주위를 슥 둘러본 백수룡이 매극렴에게 말했다.
“할아버님. 잠깐 전부 데리고 나가 주실 수 있겠습니까?”
“나가라고? 네가 이 아이를 치료라도 하겠단 말이냐?”
백수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하지만 치료 중에 이 아이가 감추고 싶은 비밀이 드러날 수 있어서, 치료 과정을 남에게 보일 수 없습니다.”
백수룡의 말은 정중하면서도 단호했다
무림인들은 온갖 비밀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었고, 그것을 서로 캐묻지 않는 게 예의였다.
매극렴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보아하니 너도 뭔가 기연을 얻은 듯한데……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자꾸나.”
“예.”
잠시 후, 모두가 나간 것을 확인한 백수룡은 품에서 빙정을 꺼냈다.
구음마녀가 여민에게 남긴 선물.
하지만 이걸 그대로 여민에게 복용시키면 그건 영약이 아니라 극독으로 작용할 것이다.
꿀꺽.
백수룡은 빙정을 한입에 삼켰다.
빙정은 입에 넣은 즉시 입안에서 녹아내리더니, 온몸이 얼어붙을 듯한 한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큽!”
빙정은 상상했던 것보다 더 강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백수룡은 곧바로 역천신공의 기운을 끌어올린 후, 오른 손바닥을 여민의 장심에 올렸다.
휘몰아치는 북풍한설의 기운과 천하에서 가장 강맹한 역천신공의 기운이 몸 안에서 서로를 제압하기 위해 싸우기 시작했다.
몸 안에서 마치 두 마리의 용이 뒤엉켜 싸우는 기분.
백수룡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나 혼자 욕심을 부렸다간 큰일 날 뻔했군.’
백수룡은 역천신공의 진기를 움직여 빙정의 기운을 유인했다.
그 음기를 둘로 나누어 하나는 자신의 단전에, 하나는 여민의 단전에 쌓았다.
“후우우우…….”
백수룡의 입에서 새하얀 김이 새어 나왔다. 머리와 눈썹에 서리가 맺히고, 주변 온도가 급격히 낮아졌다.
쩌저저적…….
그렇게 약 반 시진이 흐른 후, 백수룡은 여민의 단전에서 손바닥을 떼고 바닥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몸 안에 움튼 빙정의 기운을 추스르기 위해서였다.
‘빙백신공은 이론으로만 알았지, 전생에도 익혀 보지 못했는데…….’
애초에 빙공은 익히는 게 무척 까다로운 무공이다.
빙정을 흡수한 것은 백수룡에게나 여민에게나 엄청난 기연이었다.
청룡학관으로 돌아가서 본격적으로 빙공을 수련한다면, 빠른 시간 안에 그 경지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후우.”
잠시 후, 백수룡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는 호흡이 한결 편안해진 여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잠재력은 다섯 중에 가장 떨어진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가장 뛰어날지도 모르겠군.’
물론 그 잠재력을 깨우는 데는 본인의 노력과 재능, 그리고 스승의 가르침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백수룡은 씩 웃으며 잠든 여민의 머리를 흐트러뜨렸다.
“각오해라. 앞으로는 경공 수련에 빙공 수련도 추가할 테니.”
착각일까?
그 순간 여민이 눈썹을 움찔한 것처럼 보였다.
“짜식.”
백수룡은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의 미소는 어딘가 공허해 보였다.
그는 여민의 얼굴에 겹쳐 보이는 구음마녀의 얼굴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걱정 말고 편히 쉬도록. 복수는 내가 대신할 테니까.”
구음마녀의 평온했던 마지막 미소를 떠올리며, 백수룡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네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말이야.”
* * *
악인곡을 수습하는 데 며칠이 걸렸다.
가까운 금룡상단 지부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부상자들을 수습하고, 포박한 악인들을 가까운 관아로 이송했다.
“허어! 열 명도 안 되는 숫자로 악인곡을 점령했단 말입니까?”
거상웅의 호출에 달려온 금룡상단의 지부장은, 악인곡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듣고는 놀라서 되물었다.
단일 문파는 아니지만, 악인곡은 현 무림에서 악명을 떨치는 사파 세력 중 하나였다.
십대악인 중 둘이나 악인곡에 살고 있었기에 무림맹도 쉽게 이곳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런데 열 명도 안 되는 무인들이 악인곡을 박살 냈다고?’
‘심지어 저들 중 다섯은 약관도 안 된 후기지수가 아닌가!’
금룡상단에서 온 무사들과 일꾼들은 청룡학관 강사들과 학생들을 힐긋거리며 수군거렸다.
조만간 그들의 입을 통해 조만간 강호에 믿기 힘든 소문이 퍼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정작 그만한 일을 이뤄낸 사람들에게선 큰 감흥이 없어 보였다.
“눈치가 빠르고 무공이 강한 놈들은 모두 미리 내뺐소. 쭉정이만 잡은 셈이지.”
매극렴은 솔직하게 말했지만, 그마저도 금룡상단 사람들에게는 지나친 겸손으로 비칠 뿐이었다.
모든 정리가 끝난 후, 매극렴은 늘어난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도 이제 가자.”
“먼저 가십시오.”
걸음을 멈춘 것은 백수룡이었다.
그는 의아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일행에게 멋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놓고 온 물건이 생각나서요. 할아버님. 먼저 가시면 금방 따라가겠습니다.”
“……빨리 따라오너라.”
매극렴은 뭔가 눈치를 챈 것 같았지만, 모른척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수룡은 제자리에 서서 일행의 뒷모습이 작아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잠시 후, 그의 뒤쪽에서 작은 기척이 느껴졌다.
백수룡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나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라도 있는 모양이지?”
“역시 눈치채고 있었군.”
“그렇게 노골적으로 쳐다보는데 모를 수가 있어야지.”
그제야 몸을 돌린 백수룡은 자신을 부른 상대를 바라봤다.
“벽안귀. 나한테 무슨 용건이지?”
그는 악인곡 문지기들의 수장이었던 벽안귀였다.
며칠 전에 보았던 모습과 달리, 벽안귀의 뺨에는 최근에 생긴 것으로 보이는 검상이 남아 있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벽안귀가 새파란 눈동자를 요사스럽게 빛내며 말했다.
“당신. 혈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