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78
177화. 상검연 (4)유이란은 비무대 위에 마주 선 소년을 보며 감탄했다.
‘굉장해.’
위지천은 무인, 아니 또래의 보통 남자들과 비교해도 체구가 작았다.
키는 여자인 자신과 비슷했고, 팔다리도 가늘었다.
아마 몸무게도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어쩐지 조금 억울했다.
“나 꽤 날씬한 편이야.”
“……네?”
“네가 너무 마른 거야.”
“죄송합니다…….”
유이란의 뾰족한 눈빛에 위지천은 이유도 모르고 사과부터 했다.
말 몇 마디에 쩔쩔매는 위지천의 모습을 보며, 유이란은 “풋.” 하고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남이 싫은 소리를 하면 일단 사과부터 하는 성격이라니. 착해도 너무 착했다.
‘하지만 그렇게 착해 빠진 녀석이…….’
검파에 손을 올린 순간, 위지천의 기세가 돌변했다.
답답할 정도로 순해 보였던 표정이 차분하게 가라앉았고, 허둥지둥하던 몸짓에서 빈틈이 사라졌다.
마치 한 자루의 잘 벼린 명검이 자신을 겨누고 있는 기분.
꿀꺽.
유이란은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긴장했다고? 내가?’
유이란은 긴장을 풀기 위해 가벼운 농담을 건넸다.
“내가 선배니까 삼 초를 양보해 줄까?”
“아니요. 괜찮습니다.”
“……농담이었어.”
방금까진 자신과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소심했으면서, 검과 관련된 일에는 저토록 단호한 대답이라니.
유이란은 또 웃었다.
수많은 남자들이 그녀에게서 보고 싶어 했지만,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진심 어린 미소.
‘역시 굉장해.’
이상하게 위지천 앞에서는 자꾸만 웃게 된다.
그녀가 엷은 미소를 띤 채 물었다.
“시작할까?”
“네.”
선공을 취한 것은 유이란이었다. 그녀는 위지천이 후배라고 얕보지 않았다. 신중하게 검을 들었다.
휘익!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유이란은 발검과 동시에 위지천의 어깨를 찔렀다. 섬전 같은 찌르기가 공간을 관통했다.
사락.
위지천은 보법을 밟아 공격을 피하며 검혼을 뽑았다. 한때 천하제일검수의 애검이었던 검이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우웅- 검명이 울려 퍼졌다.
“!!”
검명에 놀란 유이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나 이어지는 그녀의 검초에는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다.
챙!
최초로 검과 검이 부딪쳤으나 소리는 크지 않았다. 충돌의 순간 둘 다 검을 빠르게 거두었고, 머릿속에서 이어질 검초를 그렸다.
유이란은 깃털처럼 가벼운 움직임으로 위지천의 공격을 피해 물러났다. 살짝 굽혀졌던 무릎을 펴며 바닥을 힘껏 박찼다. 탓! 폭발적인 도약으로 단숨에 둘 사이의 공간을 없앴다.
그에 맞서 위지천은 대각선으로 반보 이동했다. 눈동자로는 유이란의 움직임을 쫓고, 팔은 시시각각으로 검의 궤도를 수정했다.
채채채챙!
검과 검이 부딪치며 불꽃이 튀었다.
둘 다 힘으로만 승부를 보는 유형은 아니었다.
밀어붙이는 힘보다는 부드러움과 기교, 정해진 초식보다는 임기응변과 상상력이 천하에 드물게 뛰어났다.
세상은 그런 무인들을 천재라 부른다.
두 천재가 보여 주는 아름다운 검무에, 관중들은 순식간에 매료당했다.
“우와…….”
“기교는 검룡보다 검화가 한 수 위라더니…….”
“그걸 다 따라가는 위지천은 대체 뭐야?”
“눈으로 좇기도 힘들어. 둘 다 말도 안 되는 괴물이야.”
모르고 보면, 마치 미리 합을 맞추고 펼치는 두 사람의 합동 검무 같기도 했다.
한 치의 오차라도 있으면 상대의 몸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길 수도 있는 검무.
그렇게 수십 합을 교환하던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멈춰 서서 거리를 벌렸다.
“…….”
“…….”
약간의 침묵 후, 유이란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몸은 충분히 풀었지?”
수많은 학생들이 경악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가운데, 위지천은 그 어느 때보다 생기 넘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두 사람은 조금 전의 짧은 공방으로 확신했다.
오랜만에 전력을 다해도 되는 또래의 검수를 만났다고.
그 사실이 두 사람을 똑같이 미소 짓게 했다.
유이란은 독문무공인 비류검법(飛流劍法)의 기수식을 취하며 물었다.
“내 별호가 뭔지 아니?”
“검화(劍花)라고 들었어요.”
위지천의 대답에 유이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의 입가에는 씁쓸한 미소가 맺혔다.
“난 그 별호를 좋아하지 않아. 왜냐면…….”
“선배의 검과 아무 상관도 없는 꽃이 들어가서죠?”
“……어떻게?”
어떻게 알았느냐는 유이란의 물음에, 위지천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선배의 검은 꽃처럼 아름다운 게 아니니까요. 빠르고 격렬하고 거친 검이에요. 마치 세찬 격류를 상대하는 기분이에요.”
“너…….”
그 잠깐 사이에 자신의 검을 파악한 듯한 위지천의 말에, 유이란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맞아. 내 검이 아름다워서 검화라고 불린다면 상관없어. 하지만 순전히 외모 때문에 지어진 별호라서, 그렇게 불리는 건 좋아하지 않아.”
“…….”
위지천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조용히 있었다.
유이란도 이런 넋두리를 할 생각은 아니었다.
평소 같았으면 이런 이야기,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위지천에게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 주고 싶었다.
그녀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괜찮아. 졸업 전에 갖고 싶은 걸 빼앗을 거니까.”
“……네?”
“별호 말이야.”
위지천이 당황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별호를 빼앗는다니?
유이란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검룡(劍龍). 청룡학관에서 가장 검을 잘 다루는 후기지수에게 붙은 별호가 검룡이야. 몰랐니?”
“아……. 몰랐어요.”
위지천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검룡’이라는 별호를 누가 가졌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검룡(劍龍) 독고준.
명실상부 청룡학관 최강의 후기지수이자, 최고의 검수.
유이란은 지금 독고준에게서 검룡의 별호를 빼앗아 오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위지천은 독고준의 검을 떠올리며 말했다.
“독고준 선배는 강해요.”
입관 시험 때 부딪쳐 본 독고준의 검은 절대로 부러지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함, 그리고 압도적인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때도 강했는데, 지금은 백수룡 선생님의 지도를 받아 더 강해졌다고 들었다.
물론 유이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알아. 지난 삼 년 동안 여러 번 도전해 왔으니까. 내 승률은 삼 할 정도밖에 되지 않아. 지금 실력으로는 검룡을 빼앗을 수 없어.”
“……삼 할도 대단해요.”
위지천은 진심으로 그렇게 말했다.
다들 입관 시험 당시 위지천이 독고준과 막상막하의 실력을 보였다고 알고 있지만, 끝까지 싸웠으면 분명 자신이 졌을 것이다.
그때 실력으로는, 열 번 싸웠으면 열 번 다 필패였다.
‘지금 싸운다면 이길 수 있을까?’
위지천은 자신할 수 없었다.
자신도 그동안 최선을 다해 수련해서 강해졌다지만, 독고준도 그만큼 강해졌을 테니까.
위지천의 심각한 표정을 본 유이란이 빙긋 웃었다.
“딴 이야기가 길었네. 다들 지루해하겠어.”
유이란은 검을 들어 위지천의 명치를 겨눴다.
첫 공격에 어깨를 겨눴던 것은 경고의 차원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츠츠츳……!
그녀의 전신에서 맹렬한 기세가 피어올랐다.
“널 꺾고 독고준에게 다시 도전할 거야. 이번에야말로 검룡의 별호를 빼앗겠어.”
널 이기면, 왠지 독고준에게도 닿을 수 있을 것 같거든.
유이란은 뒷말을 삼켰다.
그녀에게 위지천은, 마주 선 것만으로도 검에 대한 온갖 영감을 불어넣는 존재였다.
그러니 웃을 수밖에.
“각오해.”
유이란은 활짝 핀 꽃처럼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신형이 전과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로 쏘아졌다.
까앙-!!
묵직한 검격을 막아 내며 위지천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큭!”
하마터면 이번 일격으로 손바닥이 찢어질 뻔했다. 손을 타고 오르는 검력에 몸의 균형이 흔들렸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정신 똑바로 차려!”
유이란은 위지천이 반격할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맹렬하게 몰아붙였다.
까가가가강!
그녀가 익힌 비류검법(飛流劍法)은 한번 공격이 시작되면 끊이지 않고 면면부절 이어지는 것이 특징이었다.
쏟아지는 검을 막던 상대는 어느새 수세에 몰려 스스로 패배를 인정하거나, 목을 내놓거나. 둘 중 하나였다.
‘단순히 빠르기만 한 검법이 아니야.’
검초 하나하나가 다음 공격을 상정한 궤적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튕겨내면 튕겨낸 힘까지 이용해서 더 빠르고, 더 치명적이고, 더 피할 수 없도록 퇴로를 막으며 쳐들어온다.
위지천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막기만 해서는 이길 수 없어.’
반면, 유이란은 검을 휘두르며 커다란 해방감을 느끼고 있었다.
또래 중에 이토록 마음껏 검을 휘두를 수 있는 상대가 있었던가.
물론 독고준이 있었지만, 위지천은 독고준과는 달랐다.
독고준은 몸의 중심을 단단히 보호한 후, 호시탐탐 유이란의 검을 깨뜨릴 기회를 엿보다가 일검에 승부를 냈다.
독고구검은 그게 가능한 강검이었으니까.
그 탓에 유이란도 마음껏 비류검법을 펼칠 수 없었다. 상성이 좋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넌…….”
저도 모르게 감탄사가 새어 나온다.
위지천은 유이란의 검초에 하나하나 반응하며 쳐 내고 있었다. 조금 반응이 느리더라도, 결국은 검과 검이 닿는다.
비류검법의 유일한 계승자였기에, 유이란은 저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반응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어.’
유이란은 감탄을 넘어 경악했고, 결국은 인정했다.
‘일 년만 지나면 청룡학관에는 더 이상 네 적수가 없을 거야.’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유이란의 검이 더욱 빠르고 거칠어졌다.
상대가 재능을 측정할 수 없는 천재라도 해도, 검에 있어서만은 절대로 지고 싶지 않았다.
‘올해 검룡이 되는 건 나야!’
하지만 소녀는 몰랐다.
위지천이라는 천재를 만나면서, 자신의 검술 또한 진일보하고 있다는 것을.
“크윽!”
위지천은 쏟아지는 유이란의 검을 막는 것도 버거웠다.
하지만 동시에, 소년은 아주 생경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으득.
이를 악문 위지천은 없는 빈틈을 억지로 만들기 위해 유이란의 검초 속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푸확!
위지천의 어깨에서 핏물이 터졌다. 신중하게 대련을 지켜보던 남궁수가 움찔했다. 급히 다가가려던 그는 이내 걸음을 멈췄다.
소년의 강렬한 눈빛 때문이었다.
‘검으로는 절대 지고 싶지 않아.’
위지천은 평소 백룡장의 선배들에게 승부욕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넷 중 한 명만 검수가 있었어도 그런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위지천은 눈을 부릅뜨며 유이란을 노려봤다.
“절대 안 져!”
그 순간, 한 줄기 빛의 궤적이 격류의 흐름을 베어 버렸다.
촤아아악!
유이란은 검을 거두며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조금만 늦었어도 베였을 것이다.
“후우……. 후우…….”
겨우 유이란을 떨쳐낸 위지천이 거칠어진 호흡을 정돈했다. 무복 곳곳이 찢어져 핏물이 배어나고 있었다. 얼굴도 창백했다.
“…….”
몰아붙일 기회였지만, 유이란은 위지천이 숨을 다 고르도록 기다렸다.
당장 승부를 내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이 대련을 통해 얼마나 더 배울 수 있느냐, 더 위로 올라갈 수 있느냐가 중요했다.
잠시 후, 숨을 고른 위지천이 입을 열었다.
“선배님. 저도 참가할게요.”
답지 않게 단호한 표정, 유이란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참가해? 뭘?”
위지천은 대답 대신 무극검의 기수식을 취했다.
우우웅-!
수십 년에 걸쳐 각인된 무공에 검흔이 반응하며, 검명이 더욱 강해졌다.
시대를 풍미한 절대자의 무공이 소년의 몸에서 발현되었다.
“허억!”
“흡!”
칼날 같은 기세가 공간을 장악하며 퍼져 나갔다. 대련을 지켜보던 관객들이 마치 자신이 검에 베인 것처럼 소스라쳤다.
하지만 가장 놀란 사람은 남궁수였다.
대련 내내 차분한 표정을 유지하던 남궁수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져 있었다.
“저 검법은 대체…….”
천하제일검가라는 남궁세가에서 검법을 배운 남궁수였다.
검을 보는 눈이라면 누구 못지않다 자부했지만, 위지천의 검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종류였다.
자신이 모르는 절세의 검법이라니…….
위지천이 씩 웃으며 말했다.
“별호 뺏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