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09
208화. 남궁세가로짹짹-새벽을 깨우는 새들의 지저귐.
창을 넘어 들어오는 은은한 햇살.
헌원강은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며 천천히 눈을 떴다.
“으음…….”
간밤의 수련으로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익숙해질 만하면 점점 강도가 높아지는 수련 탓에, 하루라도 근육통이 가실 날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만은, 헌원강은 아무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기분 좋게 일어날 수 있었다.
“흐흐흐…….”
눈을 뜨자마자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독한 수련을 못 견디고 드디어 실성한 것일까?
헌원강은 평소보다 일찍 이불을 정리하고 연무장으로 나왔다. 어차피 곧 땀에 흠뻑 젖을 예정이라 대충 마른세수로 눈곱만 뗐다.
잠시 후, 백룡장에서 함께 합숙하는 다른 제자들도 하나둘 연무장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오늘……인가.”
“드디어 이날이 오다니…….”
“꿈, 꿈 아니죠?”
“세상이 아름다워 보여…….”
하나같이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평소와 똑같은 새벽, 똑같은 연무장이었지만, 그들의 눈에만 아름다운 총천연색으로 보이는 듯했다.
“하아. 오늘따라 공기가 따뜻한 것 같구나.”
거상웅은 차디찬 새벽공기에 하얀 입김을 내뱉으며 웃었고,
“흐흐. 오늘 저녁에 술 마십시다. 술.”
야수혁은 제일 어린놈이 벌써부터 술 마실 생각에 흥분해 있었다.
“갑자기 일정이 취소되거나 하진 않겠지?”
여민은 갑자기 찾아온 행운이 날아갈까 노심초사했으며,
“저 밤에 악몽 꿨어요……. 선생님이 저희도 데려간다면서 짐을 싸라고…….”
“너 미쳤냐?!”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훠이! 훠이! 소금 갖고 와 소금!”
위지천은 괜한 소리를 했다가 선배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크흠! 다들 주목.”
평소 같았으면 헌원강이 군기반장으로서 이런 소란을 진정시켰겠으나, 오늘만은 그도 도저히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오히려 가장 헤벌쭉한 표정으로 말했다.
“흐흐흐. 기뻐해라, 제군들. 꿈만 같겠지만 드디어 그날이 왔다. 길고 긴 인내의 시간 끝에, 바로 오늘…….”
꽉 쥔 주먹의 핏줄이 도드라진다. 헌원강이 주먹을 번쩍 치켜들며 비장하게 외쳤다.
“선생님이 신입 강사 연수를 받으러 간다!”
““해방이다!””
다섯 명이 일제히 손을 치켜들며 환호했다.
특히 헌원강은 동연 회장으로 당선되었을 때보다 훨씬 더 기뻐 보였다.
마침내, 백수룡이 신입 강사 연수를 받으러 남궁세가로 떠나는 날이 밝은 것이다.
“선생님은 어제 학관에서 자고 바로 출발한댔으니까, 오늘 새벽부터 자유 수련이다! 오늘은 좀 쉬엄쉬엄하자고! 으하하하!”
백수룡은 전날 밤부터 백룡장을 비운 상태였다.
학생들이 연무장에서 마음껏 “해방이다!”라고 외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눈치 볼 사람이 없자, 헌원강은 아예 덩실덩실 춤을 췄다.
“으하하하! 오늘부터 거의 보름 동안은 자유란 말이야! 자유! 물론 수련은 게을리하면 안 되겠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쯤은 괜찮잖아?”
너무 기쁜 마음에, 헌원강은 선·후배들의 갑자기 조용해졌음을 깨닫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헌원강은 혼자 앞으로 나와서 다른 학생들을 마주 보고 있었고, 자신의 등 뒤에 뭐가 있는지 알지 못했다.
“워, 원강아…….”
“원강 선배…….”
“적당히 해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표정이 변한 학생들이 입술을 모아 헌원강에게 말했다.
‘뒤, 뒤! 이 멍청아!’
다른 학생들이 열심히 신호를 보냈지만, 잔뜩 들뜬 헌원강은 눈치 없이 계속 떠들어 댔다.
“뭘 적당히 해. 지금 이것도 참는 거구만! 어휴. 진짜 속이 다 시원하네. 그동안 갈굼 당한 것만 생각하면, 내가 진짜 이가 갈린다고. 내가 원래는 총명했는데 말이야, 그 인간한테 맨날 뒤통수 맞으니까 요즘 기억력도 나빠졌다니까?”
하긴, 다른 세 명을 합친 것보다 헌원강 혼자 맞은 것이 더 많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다 이유가 있었다.
“연수에 오대학관 강사들이 다 온다며? 이참에 그 인간도 한 번은 망신을 당해 봐야 세상이 넓다는 걸 깨닫고…….”
“깨닫고 뭐?”
“딸꾹!”
뒤에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헌원강이 갑자기 딸꾹질을 시작했다.
“서, 선생님……?”
헌원강은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분명 학관에서 자고 바로 출발할 거라 했던 백수룡이, 팔짱을 낀 채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헌원강이 식은땀을 흘리며 뒷걸음질 쳤다.
“하, 학관에서 바로 출발하신다더니. 여긴 어떻게…….”
“잠깐 짐 챙기려고 들렀는데, 내가 눈치가 좀 없었지?”
“하하하…….”
“원강아. 그리고 얘들아.”
“예, 예?”
백수룡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동시에 그의 발밑에서 원형으로 퍼져 나가는 강렬한 기의 파동.
“몇 시간 비웠다고 쳐 놀고 앉았어? 뭐? 해방?”
백수룡의 눈썹이 위아래로 꿈틀거리고, 목에는 핏대가 돋았다.
이런 것들을 제자라고 믿고 있었다니!
“서, 선생님!”
“그게 아니라…….”
“잠깐만 쉬려고 한 거예요!”
헌원강뿐만 아니라 모두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안일했다. 백수룡이 완전히 떠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거늘!
마지막 순간에 방심한 대가는 컸다.
“해방? 해바아아앙? 좋지. 해방 좋아.”
백수룡은 소매를 걷으며 하얗게 이를 드러냈다.
워낙 잘난 얼굴이라 그것조차 그림이 되었으나, 제자들에겐 지옥에서 올라온 야차처럼 보일 뿐이었다.
백수룡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주 오늘 이승에서 해방시켜 주마.”
양손에 흑룡편과 월영을 나눠 든 백수룡이 제자들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사, 살려 주세요!”
“저희는 그냥 원강 선배가 시키는 대로 했어요!”
“왜 나한테 덮어씌우는데!”
오늘도 평화로운 백룡장.
돼지 멱따는 소리가 담장 밖까지 길게 울려 퍼졌다.
* * *
“금방 온다더니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요?”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 악연호의 질문에, 백수룡은 손바닥을 탈탈 털었다.
그의 손에서 굳은 피로 추정되는 가루가 툭툭 떨어졌다.
“애들 아침 수련 좀 시키고 왔다.”
“형님도 진짜 지독하다니깐…….”
“그, 그거 피 아니에요?”
명일오와 제갈소영은 질린다는 표정으로 백수룡을 바라봤다.
준비성이 철저한 성격의 두 사람은 긴 일정에 대비해 커다란 행낭을 메고 있었다.
반면, 가볍게 행낭을 꾸린 백수룡은 어깨를 으쓱했다.
“보름이나 자리를 비울 텐데 미리 빡세게 굴려 놔야지. 그래서 과제도 하나씩 내주고 왔어.”
아침 수련이 끝난 후, 백수룡은 제자들 한 명 한 명에게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완수해야 할 과제를 내줬다.
-돌아와서 확인했을 때 못하기만 해 봐. 그땐 정말 이승에서 해방시켜 줄 테니까.
단단히 격려(협박)도 하고 왔으니, 자신이 없어도 보름 동안 열심히 훈련할 것이다.
‘나 없는 동안 수업은 일단 청천한테 맡겨 놨고. 갱생문, 악인곡에도 연락해 뒀고. 혹시 놓친 게 있나?’
잠시 생각해 봤지만 없었다. 모든 준비가 완벽했다.
백수룡이 씩 웃으며 말했다.
“가자. 홀가분하게 다녀오자고.”
네 사람은 함께 관주실로 향했다.
노군상에게 인사한 후에 남궁수와 만나서 남궁세가로 떠날 예정이었다.
나란히 걷는 길에 명일오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결국 남궁세가로 가는 사람은 저희뿐인가 보군요.”
“이게 다 수룡 형님 때문이잖아요.”
“내가 뭘?”
놀랍게도 청룡학관에서 오대학관 신입 강사 연수에 신청한 사람은 그들 넷뿐이었다.
악연호가 정말 몰라서 묻냐며 백수룡을 타박했다.
“청룡신협 때문에 다른 오대학관에서 청룡학관을 단단히 벼르고 있다는 소문이 났는데, 갈 용기가 쉽게 생기겠어요?”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백수룡 옆에 있다간 다른 오대학관 신입 강사들의 온갖 견제를 함께 받을 것이 뻔했다.
심지어 며칠 전, 남궁수가 신입 강사들을 불러놓고 경고를 하기도 했다.
-모두 소문은 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연수 중에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본가에서 책임지지 않으니, 각자의 안전은 스스로 지키기 바랍니다.
-그런…….
결국 눈치를 보던 신입 강사들이 하나둘 발을 뺐고, 끝까지 남은 사람은 백수룡, 악연호, 명일오, 제갈소영뿐이었다.
“우리끼리 가면 편하고 좋지. 어디 패싸움하러 가는 것도 아닌데.”
태평한 백수룡에 반해, 다른 강사들은 앞날이 걱정인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하아. 다른 학관 놈들한테 얼마나 시달릴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가끔은 저 태평한 성격이 얼마나 부러운지 몰라.”
“정말 패싸움은 안 할 거죠? 그렇죠?”
그래도 다들 백수룡과 함께 다녀서인지,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가짐이 어느 정도는 장착되어 있었다.
잠시 후, 네 사람은 관주실 앞에 도착했다.
“음? 넷만 가는 줄 알았는데?”
관주실 앞에 두툼한 덩치를 자랑하는 도객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입 강사 동기 중 한 명이었다.
백수룡은 기억이 날 듯 말 듯한 얼굴로 그에게 다가갔다.
“누구더라…… 이름이, 고혁두 맞지?”
“곽두용이다! 어떻게 한 글자도 안 맞냐!”
곽두용이 씩씩거리며 외쳤다. 백수룡은 전혀 미안하지 않은 표정으로 사과했다.
“미안하다. 워낙 오랜만이라 이름을 깜빡했네. 요즘 안 보여서 잘린 줄 알았지.”
“잘리긴 누가 잘려. 당숙, 아니 부관주님 밑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곽두용은 부관주 곽철우와 같은 가문 출신이었다.
입사 당시 연줄로 들어온 것이 아니냐는 수군거림이 조금 있었는데, 백수룡이 온갖 일을 터트리면서 그의 존재는 빠르게 잊혀졌다.
“그런데 네가 여기 왜 있어? 너도 연수에 가려고?”
“신입 강사 연수 같은 행사에 이 몸이 빠질 수는 없지.”
곽두용은 당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과는 어딘가 달라진 그의 모습에, 백수룡은 미간을 살짝 좁혔다.
‘살이 제법 빠졌군. 체격도 단단해졌고.’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썩 나쁜 변화는 아닌 듯했다.
“너…….”
백수룡이 입을 열던 그때, 관주실 안에서 노군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 도착했으면 들어오시게.”
하려던 말을 멈추고, 다섯 명은 함께 관주실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노군상과 남궁수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신입 강사들이 오기 전에 둘이 먼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 같았다.
“짧게 말하겠네.”
노군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신입 강사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더니, 마지막으로 백수룡을 바라봤다.
노군상의 눈은 마치 ‘또 어떤 일을 벌일 것이냐?’ 하고 묻는 듯했다. 그가 씩 웃으며 말했다.
“내가 허락할 테니, 가서 청룡학관을 무시하는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도록 하게나.”
““예!””
신입 강사들은 힘차게 대답했다. 노군상 옆에서 남궁수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본 강사가 동행한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청룡학관을 대표해 남궁세가로 향할 것이다. 이동하는 동안 품위를 지키고 언행을 조심하도록.”
““예!””
신입 강사들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틈만 나면 맞먹는 백수룡을 제외하면, 다들 남궁수를 어려워했다.
“그럼 관주님. 다녀오겠습니다.”
“허허. 잘 부탁하네.”
노군상에게 포권을 취한 남궁수가 몸을 돌려 신입 강사들에게 말했다.
“가지.”
관주실을 나선 남궁수와 신입 강사들은 곧장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그 앞에, 예상치 못한 배웅객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 가서 다 박살 내고 와요!”
“우리한테 하는 것처럼만 하세요!”
“올 때 선물 사 오는 거 잊지 말고요!”
백룡장에 널브러져 있는 줄 알았던 백수룡의 제자들을 필두로,
“악연호 선생님! 다녀와서 꼭 개인 과외 해 주셔야 해요!”
“제갈소영 선생님! 돌아오실 때까지 가르쳐 주신 진법 복습하고 있을게요!”
“명일오 선생님! 다음에 대련 부탁드려요!”
신입 강사들이 각자 한 명 한 명 인연을 맺은 학생들까지.
학생회, 동아리연합회에서도 적지 않은 인원이 그들을 배웅하러 나와 있었다.
“너희가 왜…….”
“이 녀석들…….”
“…….”
신입 강사들은 예상치 못한 학생들의 응원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몇 명은 이미 눈가가 촉촉해졌다.
“자식들. 기특하게, 언제 이런 짓을 꾸몄대.”
피식 웃은 백수룡은 울먹이는 동생들의 어깨를 다독였다.
“잘하고 오자. 애들한테 부끄럽지 않게.”
백수룡의 말에 모두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응원을 받지 못한 곽두용만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그 모습이 불쌍해 보였는지, 몇몇 학생들이 선심 쓰듯 외쳤다.
“곽두용 선생님도 힘내요!”
“으하하하! 고맙다! 내 반드시 청룡학관의 이름을 빛내고 오마!”
그렇게 모두가 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며, 청룡학관 강사들은 보무도 당당히 학관을 나섰다.
목적지는 남궁세가.
강호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올 발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