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08
207화. 어림도 없다“으으…….”
“꼼짝도 못 하겠어.”
녹초가 된 학생들은 바닥에 주저앉거나 아예 대자로 드러누웠다.
남궁수와의 실전에 가까운 대련이 그들을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었다.
하지만 가진 걸 모두 쏟아낸 만큼 후련한 기분도 들었다.
남궁수의 등을 바라보는 학생들의 눈빛에 감탄이 어렸다.
‘말도 안 되게 강하잖아.’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한 건 백수룡 선생님 말고는 처음이야.’
‘역시 일타강사…….’
재수 없고, 사람을 무시하긴 해도, 남궁수의 실력은 진짜였다. 학생들도 그 사실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등 뒤로 학생들의 시선을 느낀 남궁수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로 말했다.
“시간이 늦었으니 바로 집으로 돌아가도록.”
남궁수는 그대로 진법을 벗어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끝까지 옷매무새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완벽한 모습.
하지만 학생들의 시야에서 모습을 숨긴 직후, 남궁수는 어지러움을 느끼고 비틀거렸다.
“후우…….”
남궁수는 벽에 손을 기대고 잠시 호흡을 골랐다.
그의 이마에서 식은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뇌기에 가려졌던 안색은 시체처럼 창백했다. 참았던 격통이 몰려오며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천뢰기를 너무 많이 사용했나.’
남궁수가 익힌 천뢰검법은 몸에 큰 무리가 간다. 대성을 이루기 전까지는 감당할 수밖에 없는 부작용이었다.
남궁수는 조금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조금…… 쉬어야겠군.”
다행히 학생들은 끝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남궁수는 비틀거리는 몸에 힘을 줘 중심을 잡았다.
사무실로 돌아가서 잠시 쉰 후에, 밀린 업무를 처리할 생각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잠깐 얘기 좀 할까?”
“…….”
백수룡이었다.
* * *
“여긴 여전히 삭막하네.”
남궁수의 사무실을 둘러본 백수룡이 말했다.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 더미에 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그 외에는 최소한의 가구뿐, 간단한 장식조차 없었다.
학관에서 가장 잘 나가는 일타강사의 방이라기엔 너무나 초라한 모습.
백수룡이 혀를 차며 투덜거렸다.
“돈도 많이 벌면서 좀 꾸며 놓고 살지.”
“용건만 간단히 하고 돌아가도록.”
차갑게 내뱉은 말과 달리, 남궁수는 직접 달인 차를 내주었다.
백수룡은 조금 놀란 표정으로 자신의 앞에 놓인 찻잔을 바라봤다.
“독이 든 건 아니겠지?”
“……쫓아낸다고 순순히 갈 놈이 아니니까.”
“우리가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긴 한 모양이야.”
“시답잖은 이야기는 그만두고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차를 한 모금 마신 남궁수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창백했던 혈색이 점점 돌아오고, 흐트러졌던 자세가 바르게 퍼졌다.
하지만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것만은 숨기지 못했다.
‘아직 고통스러울 텐데, 그걸 참는군.’
남궁수는 놀라울 정도의 인내력으로 고통을 숨겼다.
백수룡도 그 사실을 눈치챘지만 모른 척하며 말했다.
“특강 잘 들었다. 여러모로 인상 깊었어. 학생들에게도 큰 도움이 됐을 거다.”
“……겨우 그 얘길 하려고 날 찾아온 건가?”
“그것도 있고.”
백수룡은 품에서 종이에 싸인 환약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그리고 남궁수 쪽으로 밀었다.
“원기 회복에 좋은 약이다. 가전 비법으로 만든 약이라, 웬만한 약보다 좋을 거야.”
이제는 사라진 혈교의 비법으로 만든 환약이었다. 원기 회복을 돕고 진통제 효과도 있었다.
매일 수십 명이 죽고 다쳐나가는 혈교에서 개발한 약인 만큼, 그 효능은 웬만한 거대 방파의 것보다 좋았다.
남궁수는 백수룡이 준 환약을 마다하지 않고 받았다.
“수업료라고 생각하고 받아 두지.”
“지금 바로 먹는 게 좋을 텐데?”
“독이 있는지 확인한 다음에 먹을 생각이다.”
“뭐?”
백수룡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 순간, 남궁수의 입꼬리가 아주 미미하게 씰룩였다.
나름대로 농담이었던 것이다.
“잘 먹지.”
남궁수는 백수룡이 준 환약을 한입에 삼켰다. 떨리던 그의 속눈썹이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좋은 약이군.”
확실히 두 사람 사이에 흐르던 분위기는 예전과는 달랐다.
남궁수가 백수룡을 동료 강사로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마침 잘됐군. 나도 너에게 할 말이 있었다.”
“할 말?”
차를 한 모금 마신 남궁수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인정하지. 네가 온 이후로 학관의 분위기가 변했다.”
백수룡이 청룡학관에 입사한 이후로, 청룡학관의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공손수의 후원을 받으면서 자금 사정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좋아졌고, 어딘가 주눅 들어 있던 학생들의 표정도 훨씬 밝아졌다.
뿐만 아니었다.
신입 강사의 활약에 자극을 받은 기존의 강사들도, 오랜 권태와 무기력에서 벗어나 새롭게 열의를 다지는 중이었다.
남궁수는 이 모든 변화를 가져온 사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 녀석이 풍진호도 잡아먹었지.’
어떻게 한 것인지 자세한 사정까지는 모르지만, 풍진호가 백수룡의 눈치를 본다는 것은 이제 웬만한 강사들은 다 알고 있었다.
즉, 백수룡이 청룡학관에 끼치는 영향력이 풍진호 이상이라는 의미였다.
아니, 어쩌면 이미 일타강사인 자신 이상일지도 모른다.
“아직은 우스갯소리에 가깝긴 하지만, 올해 천무제에서 청룡학관이 이변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돈다고 하더군.”
“호오.”
백수룡과 그의 제자들이 악인곡에 다녀온 이후로, 청룡신협과 그 제자들에 관한 이야기가 호사가들의 입을 통해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청룡학관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마냥 좋아할 수도 없었다.
“조만간 가게 될 신입 강사 연수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려 할 거다.”
“확인?”
“노골적으로 말하면, 어떻게든 널 망신 주려고 하겠지.”
“…….”
중간고사가 끝난 이후, 머지않아 남궁세가에서 오대학관 신입 강사 연수가 열린다.
그 자리에 무림 오대학관의 신입 강사들도 모두 모일 터.
청룡신협의 소문을 들은 그들은 백수룡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흠을 잡으려 들 것이 뻔했다.
“너에게 견제가 집중될 거다. 그들은 네 명성을 깎아내리는 것이 자신들이 명성을 높이는 거라고 생각할 테니까.”
“이런. 큰일 났네. 먼저 다녀오신 선배님에게 조언이라도 구해야 하나?”
백수룡이 씩 웃으며 물었다. 하지만 진심으로 조언을 구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다.”
남궁수도 조언해 주려고 꺼낸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젠 그도 백수룡이라는 인간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누구든, 섣불리 백수룡을 건드렸다가는 몇 배로 당할 것이다.
“내가 해 줄 조언은 없다. 나 때는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못했다. 남궁세가 안에서 그 직계를 건드릴 만큼 간 큰 자는 없으니까. 아무리 내가 서출이라도 해도 말이지.”
“……너 서출이었냐?”
“모르고 있었나. 별로 중요한 건 아니다.”
남궁수는 정말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가 본론이었다.
“청룡학관의 이름을 걸고 가는 거다. 얕보이지 마라. 웬만한 사고를 쳐도 내가 무마해 줄 테니, 눈치 보지 않고 행동해도 좋다.”
“……그거 다 박살 내고 오란 소리지?”
남궁수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백수룡의 입가에 악동 같은 미소가 맺혔다.
오대학관 신입 강사 연수.
원래도 가서 얌전히 있을 생각은 없었지만, 남궁수가 뒤를 봐준다고 하니 더욱 거리낄 것이 없어졌다.
“내가 할 말은 끝났다. 이만 나가 보도록.”
남궁수는 백수룡에게 축객령을 내린 후, 바로 자신의 책상에 앉아 두꺼운 서책을 꺼냈다.
백수룡은 남궁수가 꺼낸 두꺼운 서책의 제목을 확인했다.
『강의 일지』
팔뚝만 한 두께의 일지는, 손때가 검게 탈 정도로 낡아 있었다.
남궁수는 일지를 휘리릭 넘기더니 무언가를 적어 넣기 시작했다.
백수룡은 거기서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헌원강 : 학습 의욕이 떨어지고 수업 중 집중력이 부족한 모습을 보였으나, 최근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수련에 매진하고 있음. 향후 무공의 큰 발전이 기대됨. 하지만 성격이 포악하고 강사에 대한 태도가 불량한 것은 개선해야 할 부분임. 무공에서 보완할 부분으로는……」
남궁수는 헌원강 외에도 거상웅, 야수혁, 위지천 등 오늘 상대한 학생들에 대해 꼼꼼히 적어 나갔다.
그 양이 어마어마했다.
‘수업이 끝나면 매일 일지를 적는 모양이군.’
백수룡은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말했다.
“하나만 더 묻자.”
“아직 안 갔나.”
남궁수는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백수룡의 시선을 별로 의식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넌 왜 그렇게 성공과 실패에 집착하는 거냐?”
“……사람의 성공과 실패를 나누는 건 내가 아니다. 세상이지.”
남궁수는 여전히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손으로는 바쁘게 무언가를 계속 적어 내려가며 말을 이었다.
“세상은 실패에 가혹하다. 무림인은 더욱 그렇지. 무공의 성취가 목숨과 직결돼 있으니까.”
“그래서 성취가 부족한 학생들을 실패작이라고 부르는 거냐?”
“독기를 심어 줬을 뿐이다.”
“아직 애들이다. 독기를 품는 게 아니라, 절망에 빠져 헤어나지 못할 수도 있어.”
“말 몇 마디에 부러질 녀석이라면, 무공 따위는 배우지 않는 게 낫겠지.”
“……뭐, 네 말에 공감 못 하는 건 아닌데.”
백수룡은 전생에 혈교의 교관이었다.
정파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가혹한 환경에서 훈련생들을 죽일 각오로 훈련시켰던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전생의 그런 경험이 있기에, 백수룡은 남궁수의 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마치 과거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아서, 백수룡은 조금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널 미워하는 학생들도 꽤 많을 거다.”
“학생들에게 잘 보이려고 이 일을 하는 게 아니다.”
남궁수는 작게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들어 백수룡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가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너와 교육이념을 두고 토론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당장 내 방에서 나가도록.”
“그러지.”
백수룡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몸을 돌렸다.
어차피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순 없었다.
남궁수란 인간에 대해서 이만큼 더 알게 된 것으로 오늘은 충분했다.
“맞다. 그런데 보상은 언제 쓸 거야?”
“……나갈 생각이 없나 보군.”
남궁수가 무시무시한 눈으로 백수룡을 쏘아보았다.
백수룡은 곧 나갈 거라며 문고리를 잡고 말했다.
“네가 사천왕 중에 명찰을 가장 많이 뗐거든. 약속은 약속이니까.”
“보상이라면, 소원권 말인가?”
-명찰을 가장 많이 뗀 사람에겐 무슨 부탁이든 한 가지는 들어줄게. 물론 상식적인 선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전제하에.
백수룡은 사천왕에게 보상을 약속했고, 명찰을 가장 많이 뗀 사람은 바로 냉혈수라마왕 남궁수였다.
“지금은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다. 네가 내 방에서 나가는 것 외에는.”
“그럼 그걸로 할까?”
“어림도 없는 소리. 나중에 쓸 테니 달아 두도록.”
“쩝. 아쉽네.”
입맛을 다신 백수룡은 마지막으로 남궁수의 표정을 살폈다.
수많은 사람의 기대를 짊어진 탓에 일타강사의 표정은 지쳐 보였고, 어깨는 무거워 보였다.
백수룡은 반쯤 농담 삼아 말했다.
“고민거리 있으면 언제든지 상담하러 오라고.”
“건방지군. 햇병아리 주제에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건지.”
남궁수는 어이가 없는지 그만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를 향해 씩 웃어 준 백수룡이 문을 반쯤 밀었다.
“그럼 연수 다녀와서 보자고. 그땐 술이나 한잔하지.”
그런데 그 순간, 처음으로 남궁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리지? 이번 연수에는 나도 같이 간다.”
백수룡은 진심으로 당황했다.
“……어? 네가 왜 같이 가?”
“인솔 강사로 간다. 설마 신입 강사들만 남궁세가로 보낼 줄 알았나.”
“아니, 그건 아닌데……. 진짜 같이 간다고?”
백수룡의 떨떠름한 표정을 본 남궁수가 미간을 좁게 모았다.
“그 표정은 뭐지. 내가 같이 가는 게 불만인가?”
“아니, 뭐, 그게, 딱히 불만은 아닌데…….”
뭐라고 해야 할까.
친구들끼리 편하게 놀러 가려는데, 깐깐한 모범생 선배 하나가 감시역으로 따라붙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오가는 길에 맛있는 것도 먹고, 풍류도 즐기려고 했는데…….’
난감한 표정을 짓는 백수룡을 향해, 남궁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풍류라도 즐기면서 갈 생각이었나 보군. 밤낮으로 말을 달려 일정에 딱 맞춰서 갈 생각이니, 꿈 깨도록.”
“젠장…….”
그로부터 며칠 후, 오대학관 신입 강사 연수 날짜가 확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