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17
216화.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녀석남궁세가의 가주전.
남궁세가의 대소사가 대부분 결정되는 그곳에, 남궁세가의 두 거인이 마주 앉았다.
“첫날부터 주작과 청룡이 한판 붙었다고?”
“들었습니다. 다행히 무력 충돌로는 번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쉽구나. 사실 연수보다는 싸움박질을 구경하는 것이 묘미인데.”
“분위기는 이미 전쟁이나 다름없다고 하더군요. 청룡신협과 염화나찰이 이직을 걸고 내기했다던데…….”
“껄껄껄! 올해는 제대로 치고받으려는 모양이구나!”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쪽은 중년의 사내였고, 껄껄 웃는 쪽은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청년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중년인이 청년에게 말을 높이고 있었다.
“아버님. 연수는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습니다. 벌써부터 싸움이 벌어지면 본가도 체면이 구겨집니다.”
중년인에게 ‘아버지’라 불린 청년은 피식 웃더니 술잔을 들었다.
“남의 시선 따위를 두려워해서야 대남궁세가의 가주라고 할 수 있겠느냐?”
“아버님이야 가주직에서 물러나셨으니 편히 하시는 말씀이지요.”
한숨을 내쉰 중년의 사내는 바로 남궁세가의 가주, 철혈검(鐵血劍) 남궁천이었다.
그리고 그 앞의 청년은 남궁세가의 태상가주이자, 무림십존의 일원인 창천검왕 남궁제학이었다.
그야말로 남궁세가를 떠받치는 두 기둥.
두 사람은 내일이면 시작될 신입 강사 연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남궁제학이 물었다.
“그래서, 될성부른 떡잎은 좀 보아 두었느냐?”
“주작학관에서는 사마영, 백호학관에서는 당백호가 단연 출중합니다.”
“염왕이 손녀를 잘 키웠나 보군. 당가의 아이도 제법 괴짜라고 들었다.”
“현무학관은 올해 한 명만 보냈습니다. 무공보다는 술법에 특출한 모양인데, 듣기로는 벙어리라고 합니다.”
“녀석들이야 항상 소수만 보냈지. 그래도 한 명은 심하군.”
남궁제학이 미간을 찌푸렸다.
오대학관 신입 강사 연수는 남궁세가의 큰 연례행사 중 하나였다.
헌데 올해는 천무학관이 참석하지 않았고, 현무학관에서도 고작 한 명만을 보냈다.
그 사실이 영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현무학관주에게는 내가 서찰을 보내마. 그 늙은이가 노망이 난 게 아니라면 내년부터는 그렇게 굴지 못할 것이다.”
“천무학관은 어떻습니까?”
남궁제학은 남궁세가의 태상가주이자, 천무학관의 일타강사이기도 했다.
요즘은 일 년에 몇 번 특강을 할 뿐이지만, 그때마다 창천검왕의 강의를 듣기 위해 학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그 말인즉슨, 그가 천무학관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의미였다.
그런데도 천무학관은 이번 신입 강사 연수에 참석하지 않았다.
“……천무학관이 불참한 것은 관주의 뜻이 아니다.”
“그렇다는 말씀은……?”
“올해 뽑힌 신입 강사. 그 녀석이 거부했다.”
천무학관에선 매년 최대 세 명까지만 신입 강사를 뽑는다.
천하에서 모여든 뛰어난 강사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데, 개중에는 다른 오대학관에서 몇 년씩 경력을 쌓은 강사들도 있었다.
그래서 천무학관의 신입 강사가 되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들 했다.
심지어 올해 뽑힌 신입 강사는 단 한 명에 불과했다.
남궁천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천무결이라는 이름이었지요? 경쟁자들을 모두 탈락시키고 혼자서 시험에 통과했다는.”
“맞다.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내지.”
무림십존의 일원인 창천검왕에게서 ‘대단하다’라는 말이 나왔다. 범인은 상상하기 힘든 괴물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해도 건방지군요. 감히 본가의 행사를 거부하다니.”
“천무결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남궁제학이 말을 이었다.
“차라리 이곳에 오지 않은 것이 다행일 수도 있다. 다른 오대학관에는 그를 감당할 자가 없을 테니까. 본인에게는 이곳에 오는 의미가 없을 것이고, 다른 강사들은 절망만 하게 될 것이다.”
“……그 정도란 말입니까?”
“그 정도다.”
그 순간, 남궁제학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다른 이름이 하나 있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아무튼. 천무학관으로 돌아가면 따로 만나 볼 생각이다. 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남궁천이 이번에는 지나가듯 물었다.
“청룡학관 쪽은 어떻습니까?”
“그걸 왜 내게 묻느냐?”
“천이당 부당주에게 따로 청룡신협을 살펴보라 이르시지 않았습니까.”
“……알고 있었느냐?”
남궁제학이 겸연쩍게 웃자, 남궁천이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남궁세가에 제가 모르는 비밀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설령 아버님께서 내리신 명이라도 말이지요. 이럴 거면 가주직을 도로 가져가십시오. 미련 없이 반납하겠습니다.”
“거참. 너무 타박하지 말거라. 개인적으로 알아보고 싶은 것이 있어 그랬다.”
천하의 창천검왕이 아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했다.
그만큼 가주의 권위를 존중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남궁천도 그 이상은 따져 묻지 않았다. 작게 한숨을 내쉰 그가 물었다.
“그래서 궁금증은 푸셨습니까?”
“도통 모르겠구나. 청룡신협 그 녀석.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는데…… 이번 기회에 자세히 살펴봐야겠다.”
남궁제학의 입에서 백수룡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다소 복잡했다. 단순한 호기심이라기엔 꽤나 진지했다.
천무결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그는 백수룡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너는 그 녀석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몇 달을 지켜보았으니 우리보다는 잘 알 것 아니냐.”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돌아갔다.
그들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남궁수가 공손히 앉아 있었다.
남궁수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백수룡은 뛰어난 강사입니다. 일신의 무공이 뛰어나고, 교육법은 파격적이지만 성과를 증명했으며, 진심으로 따르는 학생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호오. 그리고?”
“학관 내 주요 인물들을 포섭할 정도로 정치력도 뛰어납니다. 인성에는 다소 문제가 있습니다만……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남궁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냉정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온통 칭찬일색이었다.
남궁가주가 놀랍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네 입에서 그 정도로 극찬이 나오는 것은 처음 보는구나. 오대학관의 일타강사들에게서도 단점을 잘만 찾아내던 녀석이.”
“……말씀드렸다시피 인성에는 다소 문제가 있습니다.”
“내 눈에는 그것도 억지로 흠을 잡은 것처럼 보인다만?”
“…….”
남궁수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 모습을 본 남궁제학이 껄껄 웃더니 장난스럽게 물었다.
“해서, 그 녀석이 장담한 대로 올해 청룡학관이 천무제에서 우승할 것 같으냐?”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어렵다?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어렵다?”
“진심이더냐?”
“솔직히 말씀드리면…….”
조부와 부친의 흥미롭다는 반응에, 잠시 침묵하던 남궁수가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말했다.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
남궁세가의 두 거인이 놀란 표정으로 남궁수를 바라봤다.
특히 남궁천은 제 아들의 변화를 느끼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남궁수는 어려서부터 냉정하고 현실적인 성격이었다.
서출로 태어난 자신의 처지를 알기에, 다들 가기 싫어하던 청룡학관에 자청해서 간 녀석이지 않은가.
즉, 스스로 후계자 경쟁에서 발을 뺀 것이기도 했다.
남궁천은 그 사실이 내내 마음에 걸렸었다.
‘그런 녀석이, 이젠 청룡학관을 천무제에서 우승시키겠다고?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고 하는 말이더냐?’
다시 남궁세가의 후계자 경쟁에 뛰어들겠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었다.
남궁수가 비록 서출이라 해도, ‘청룡학관의 천무제 우승’이란 기적을 일궈낸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불쑥 아들을 시험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든 남궁천이 일부러 차갑게 말했다.
“청룡학관의 천무제 우승은 어불성설이다. 청룡학관은 내년부터 천무제에 참가하지 못하게 될 것이고, 다시는 그 자리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
“너는 지금부터 이직을 준비하거라. 내 다른 학관에 자리를 알아봐 주마.”
“…….”
“아비의 말이 들리지 않더냐?”
“죄송하지만 따르기 어렵습니다.”
“뭐라?!”
일순간 남궁천의 몸에서 가공할 기세가 피어올랐다.
창천검왕의 그늘에 가려져 있다고 하지만, 남궁천은 대남궁세가의 가주이자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고수였다.
현 무림을 움직이는, 시대의 거인.
그의 기세를 정면에서 받은 남궁수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큭…….”
“다시 말해 보거라!”
남궁수는 이를 악물었다.
다행히 천뢰검법을 익히며 고통과 압박을 견디는 것에 익숙했기에, 그는 아버지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할 수 있었다.
“지금은 천무제를 준비할 시간도 부족합니다.”
“그래서, 가주의 명을 따르지 않겠다?”
“설령 올해 천무제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고 해도, 청룡학관을 떠날 마음은 없습니다.”
“이놈이 감히!”
푸화아악!
남궁천이 일으킨 기세에 방 안에 돌풍이 몰아쳤다. 방 안의 집기가 사방으로 날아다녔다.
부서진 찻잔이 남궁수의 뺨을 스쳐 핏물이 흘러내렸다.
그때였다.
“그만!”
남궁제학이 손을 휘저어 사나운 기세를 단숨에 일소시켰다.
웃어른으로서 아들과 손자의 다툼에 끼어든 그가 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주는 감정을 가라앉히시게. 너는 이만 물러가 보거라.”
창백해진 인상의 남궁수가 공손히 읍을 하고 가주전을 빠져나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남궁천이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 녀석이 저에게 대든 것은 처음입니다.”
“나도 놀랍구나. 무표정한 얼굴 뒤에 주눅 든 속마음을 숨기던 아이였는데…… 언제 저렇게 변한 것인지.”
방금까지 가주에게 맞서던 남궁수는 놀랍도록 당당했다.
평생 자신의 감정을 내보이지 않던 아이였는데.
무엇이 남궁수가 저렇게 변하도록 만들었을까?
‘설마 이것도 청룡신협의 영향인가?’
남궁제학은 손자가 백수룡에 대해 말할 때 짓던 표정을 떠올렸다.
언제나처럼 냉정하고 차분한 신색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 눈에서는 상대에 대한 굳건한 신뢰가 느껴졌다.
남궁세가에 있을 때는 본 적 없던 눈빛.
“허어…….”
실로 복잡한 심경이었다.
천하제일세가인 남궁세가의 직계가, 본가의 어른들도 아닌 다른 강사에게 영향을 받아 변화를 겪다니.
남궁천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씁쓸한 표정이었다.
“청룡신협이라……. 아버님도 그렇고 요즘 모두가 그에 대해 이야기하니, 정말 용과 같은 사내인 모양입니다.”
“나도 아직 녀석에 대해 잘 모르겠구나. 용인지 이무기인지는 이번 연수를 통해 알게 되겠지.”
“저도 유심히 지켜보겠습니다.”
“적어도 지켜보는 재미는 있을 것이다. 어딜 가나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녀석이니.”
남궁제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따라서 일어서려는 가주에게 손을 저었다.
“따라오지 말거라. 혼자 걷고 싶구나.”
“……알겠습니다.”
가주전을 나선 남궁제학은 뒷짐을 진 채 긴 복도를 휘적휘적 걸었다.
세상은 그를 무림십존의 일원이라며 경원시하지만, 달빛 아래를 걷는 청년의 얼굴에는 평범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근심이 서려 있었다.
사실, 남궁제학은 백수룡에게서 반드시 알아내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 녀석이 내가 찾는 녀석이 맞다면…….’
밤하늘을 올려보는 창천검왕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붉은 혈기가 일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