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65
264화. 지존을 배알합니다
「조만간 무림맹주가 그곳으로 갈 것 같습니다.」
“……무림맹주가 온다고?”
서찰의 내용을 확인한 백수룡은 미간을 좁혔다. 그의 머릿속에 무림맹주에 관한 여러 풍문이 떠올랐다.
권왕 야율황.
무림십존의 일원이자 현 무림맹의 맹주로, 혈교의 잔존 세력을 박멸하는 것을 자신의 숙명이라 여기는 사내.
예전에 제갈소영에게 듣기로는, 한번 화를 내면 집무실의 물건이 남아나질 않는다고 한다.
그녀의 친언니가 무림맹에서 일하고 있는데, 무림맹주의 개차반 같은 성격 때문에 머리카락이 빠질 지경이라고…… 아무튼.
“날 만나러 온다고? 설마…….”
무림맹주로서 청룡신협의 실력을 직접 검증해 볼 생각인 걸까?
그렇다면 이쪽에서 먼저 사양이었다.
‘맹주와 싸워선 안 돼.’
권왕은 십존을 말할 때도 늘 앞쪽에 언급되는 절세고수였다.
세간의 평가는 창천검왕과 동급.
아직 백수룡이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아니, 싸워서 이기느냐 지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권왕은 오십 년 전 혈교와의 전쟁에 참전했던 고수다. 창천검왕이 그랬던 것처럼 의심받을 수도 있어.’
절세고수의 감각은 통찰의 영역에 이르렀다고들 말한다.
혈교와 관련된 흔적을 한 번도 보인 적 없었는데도, 창천검왕 역시 백수룡의 정체를 의심했었다.
-나는 네가 혈교의 첩자라고 생각했다.
그와 비슷한 고수로 평가받는 무림맹주도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물론 그때보다 백수룡의 경지도 깊어졌으니 더 잘 숨길 수 있겠지만, 백수룡은 약간의 위험부담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은 만나고 싶지 않은 상대인데…….”
뒷 내용은 다음 장으로 이어져 있었다. 백수룡은 종이를 넘겼다.
[아직 무림맹주의 정확한 목적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만, 아마도 청룡학관 시찰 겸 청룡신협을 만나 보려는 것 같습니다.]“이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백수룡은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맹주의 주목적이 청룡학관 시찰이라면, 맹의 공식적인 업무라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자신과도 이야기만 나눌 확률이 높았다.
물론 안심하기에는 이르지만…….
“맹주쯤 되는 인물이 함부로 주먹을 휘두르고 그러진 않겠지.”
어느 정도는 희망사항이기도 했다.
[아직 정확한 일정은 잡히지 않았지만, 맹주의 급한 성정으로 보아 사흘 안에는 출발할 것으로 보입니다. 변동사항이 있으면 다시 전달 드리겠습니다.]서찰의 내용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백수룡은 서찰을 한 번 더 읽은 후 삼매진화로 태워 버렸다. 그리고 손바닥에 남은 잿더미를 툭툭 털어 내며 중얼거렸다.
“무림맹주라. 왠지 거창한 행차가 될 것 같은데…….”
무림맹주가 움직이는 건 큰 사건이었다.
학관에서도 맹주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할 텐데, 그것 때문에 학사 일정이 또 밀린다면 곤란했다.
당장만 해도 일학기 기말고사가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뭐, 학관주님이 알아서 잘 하시겠지.”
자리에서 일어난 백수룡은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드르륵.
새벽부터 연무장에서 땀 흘리며 수련하던 제자들이 동시에 그를 돌아봤다.
다들 백수룡이 어떤 말을 해 주기만 기다리는지, 눈이 초롱초롱했다.
백수룡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만하고 씻어라. 밥 먹자.”
““네!””
잠시 후, 식사를 마친 백수룡과 제자들은 청룡학관으로 향했다.
임시 휴관이 끝나고, 그들은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오가는 길에 만난 학생들이 그들을 보고 반갑게 아는 체를 했다.
“백수룡 선생님!”
“저희도 나중에 지도 대련 부탁드려도 될까요?”
“위지천 네가 추혼검객을 꺾었다며? 진짜야?”
“상검연은 언제부터 다시 나올 거야? 검화 선배가 얼마나 섭섭해하는 줄 알아?”
그들을 바라보는 눈빛에서 예전과는 달라진 대우가 느껴졌다.
망나니, 문제아로 불렸던 학생들이 이제는 동경과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은 어느새 인파에 둘러싸였다.
“훠이! 훠이! 비켜, 이 새끼들아! 우리가 니들처럼 한가한 줄 알아?”
보다 못한 헌원강이 인상을 쓰며 앞으로 나서자 길이 열렸다. 헌원강이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선생님은 바쁘니까 만나고 싶으면 우리한테 번호표를 받으라고. 흐흐. 뭐라도 성의를 보이면 좀 빨리 만나게 해 줄 수 있긴 한데…….”
야비하게 손바닥을 비비는 헌원강의 뒤통수로, 천벌이 떨어졌다.
따악!
“아악! 왜 때려요!”
“성의를 보여? 네가 산적이냐?”
“……선생님. 요즘엔 산적들도 저렇게 야비한 짓은 안 해요.”
“음. 미안하다. 산적들한테 사과하마.”
그들은 평소처럼 티격태격하며 청룡학관으로 향했다.
강의실로 들어선 백수룡은 오랜만에 만난 학생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임시 휴관으로 쉴 때는 좋았지? 이제 기말고사가 얼마 안 남았으니 죽었다고 복창해라.”
곳곳에서 탄식이 터졌다.
“벌써요? 별로 배운 것도 없는데요?”
“원래 그런 거다. 남은 기간에 더 집중해서 열심히 하자. 알았냐?”
““네!””
학생들의 힘찬 대답이 강의실을 가득 메웠다.
다들 남궁세가를 구한 청룡신협의 소문을 들었기에, 그런 고수가 자신들을 가르쳐 준다는 사실에 의욕을 불태웠다.
하지만 그것이 비명으로 변하는 데는 일 각도 걸리지 않았다.
“끄아아악!”
“사, 살려 주세요!”
“남궁세가에서 돌아오더니 더 사악해졌어!”
“이쯤 되면 우리랑 사파랑 다를 게 뭐지……?”
퇴근한 후에는 백룡장으로 돌아와 손님을 받았다.
처음 며칠보다는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청룡신협을 찾아오는 호구들, 아니 손님들이 적지 않았다.
가끔씩 찾아오는 진상 역시 여전했다.
“청강문의 대제자 청일소요! 내 오늘 청룡신협을 꺾어 청강문의 절세신공을 온 천하에 알릴 것이오!”
“……백수룡입니다. 편할 때 들어오시면 됩니다.”
“듣던 대로 오만방자하구려! 하긴 무인이 혀가 길어서 무엇하겠는가! 옛 성현들께서도 이르시기를…….”
“혀는 그쪽이 긴 것 같습니다만? 언제 시작하실 건지?”
“……문답무용! 차하앗!”
자칭 절세신공을 익혔다는, 이마에 영웅건을 두른 청년 청일소가 어설픈 보법을 밟으며 달려들었다.
쨍강!
결과는 다른 무인들과 같았다.
한 합에 도가 반으로 쪼개지자, 놀란 청일소가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본문의 보도가……!”
애초에 문파의 보도였으면 한 합에 부러지지도 않았겠지.
백수룡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여기서 나가서 좌측 큰길로 올라가시면 위지철방이라고 있습니다. 거기 가면 지금 부러진 도보다 괜찮은 도가 있을 겁니다.”
“남은 돈이 한 푼도 없단 말이오!”
“……어쩌라고?”
“크흠. 내 나중에 갚을 테니 돈을 좀 빌려주시면 안 되겠소?”
‘뭐 이런 진상 새끼가…….’
다행히 속으로만 한 말이라 청일소는 듣지 못했다. 그는 백수룡이 가만히 있자 고민하는 거라 생각했는지, 다시금 뻔뻔하게 부탁했다.
“그리고 돌아갈 여비도 좀 챙겨 주시오. 청룡신협을 만나려고 먼 길을 왔단 말이오.”
백수룡도 더 이상 참지 않았다. 그는 한쪽에서 수련 중이던 헌원강을 불렀다.
“원강아. 손님 가신다. 밖에 모셔다드려라.”
“예! 형님!”
이럴 때는 헌원강의 진가가 드러났다.
잠시 뚝딱뚝딱하더니,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청일소가 헌원강에게 질질 끌려가며 울부짖었다.
“청룡신협 이노옴! 내가 본문의 절세신공을 완성하는 날! 오늘의 치욕을 갚으러 돌아올 것이다!”
“문밖에 소금도 뿌려라. 아주 왕창 뿌려. 오늘 장사, 아니, 손님맞이는 이만 끝내야겠다.”
……그렇게 대체로 평화롭고, 가끔 진상을 상대하는 일상이 한동안 반복되었다.
백수룡은 하루에 한 시진만 자면서 바쁜 나날을 보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본인의 무공도 수련하고, 틈틈이 개방과 하오문에서 보낸 보고서를 읽으며 무림의 정세를 살폈다.
‘조만간 혈교도 움직임이 있을 거야. 그 전에 대비해야 한다.’
위지열이 찾아온 것은 백수룡이 하오문에서 보낸 보고서를 한창 읽고 있을 때였다.
똑똑.
“시간 좀 내줄 수 있겠나?”
“어르신? 들어오십시오.”
위지열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날이 갈수록 풍채가 좋아지고 얼굴이 밝아졌다.
도망자 신세에서 벗어나,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하면서 생긴 변화였다.
“내가 바쁜 사람을 방해한 건 아닌가?”
“괜찮습니다. 앉으시죠.”
“맨손으로 오기 좀 그래서 술을 가져왔다네.”
“좋지요.”
두 사람은 마주 앉아 술을 몇 잔 주고받았다. 이렇게 보는 것은 백수룡도 오랜만이었다.
“철방에 손님 좀 그만 보내게나. 만들어 둔 무기가 전부 거덜 났어. 이젠 주문도 못 받을 지경이라니까.”
위지열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백수룡도 피식 웃었다.
“사람을 좀 더 뽑으시죠.”
“안 그래도 제자를 몇 놈 두려고 하네. 눈여겨 봐둔 놈들도 있고.”
“그렇습니까?”
백수룡은 위지열이 운영하는 철방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위지열이 부담을 가질까 봐, 일부러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어쩐 일로 이 시간에 찾아오셨습니까? 일이 바쁘실 텐데요.”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위지열이 씨익 웃었다.
“자네와 함께 축하할 만한 일이 있어서 찾아왔다네.”
“설마…….”
백수룡은 기대감 어린 시선으로 위지열이 들고 있던 길쭉한 목함을 바라봤다.
검 하나가 들어가기에 딱 맞는 길이였고, 사실 위지열이 처음 들어올 때부터 신경이 쓰이고 있었다.
꿀꺽.
침을 삼킨 백수룡이 물었다.
“드디어 완성된 겁니까?”
고개를 끄덕인 위지열이 씨익 웃으며 목함을 열었다. 그 순간, 목함 안에서 은은한 푸른 빛이 퍼져 나왔다.
파아앗-
빛이 가라앉은 자리에는 검 한 자루가 나신을 드러낸 채 누워 있었다.
은빛 검신 전체에 은은한 푸른빛이 스며들어 있었고, 승천하는 용 한 마리가 검신을 따라 검봉을 향해 새겨져 있었다.
“검집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네. 원래 만들어 둔 것이 있었지만, 자네가 얼마 전에 가져다준 독각마룡의 뿔로 다시 만들 생각이야.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게야.”
“이게 바로…….”
백수룡은 목함에서 검을 들어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좌우의 균형이 완벽했고, 검신의 굵기나 길이도 적당했다. 스스로 내뿜는 예기는 살이 베일 듯 날카로웠다.
“형태와 길이는 월영과 비슷하네. 월영을 제법 오래 썼으니, 익숙한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리 만들었지.”
“무게는 더 무겁군요.”
“자네의 무공이 고절하니, 파괴적인 무공도 잘 펼칠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네. 운철이 들어가서 더 무겁기도 할 것이고.”
백수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더 무거워진 것은 그도 마음에 들었다. 입가에 절로 웃음이 맺혔다.
“평생의 숙원을 이루신 겁니까?”
이 검이 혈마검을 뛰어넘는 신검이냐는 질문이었다.
위지열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맺혔다.
“그야, 직접 부딪쳐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겠지.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신할 수 있네. 자네가 앞으로 누구와 싸우든, 검 때문이란 핑계는 댈 수 없을 것이야.”
“그거면 충분합니다.”
백수룡의 입가에도 흐뭇한 미소가 맺혔다.
조심스럽게 검신을 손으로 쓸어내리자 기분 좋은 서늘함이 느껴졌다.
‘빨리 휘둘러 보고 싶군.’
무기를 보고 이런 생각이 든 건 처음이었다.
그때, 위지열이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검신에 피를 한 방울 떨어뜨려 보겠나?”
“예?”
“검이 주인을 처음 인식하는 과정이라네. 우리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비기지.”
긴장한 위지열의 표정이 조금 이상했지만, 백수룡은 시키는 대로 피 한 방울을 검신 위에 떨어뜨렸다.
툭…….
핏방울은 검신에 새겨진 용에 스스슷 스며들더니, 순식간에 용의 형상 전체가 붉게 물들었다.
우우우웅-!
검이 스스로 울기 시작했다. 꽉 잡고 있지 않으면 놓칠 정도로 마구 요동을 쳤다.
그렇게 한동안 요사스러운 기운을 내뿜던 검은 이내 천천히 잠잠해졌다.
“허허허허…….”
그 광경을 본 위지열이 멍하니 헛웃음을 흘렸다. 그는 자신이 만든 검과 백수룡을 번갈아 바라봤다.
“처음부터 운명이었던 겐가…….”
“어르신?”
위지열이 의자에서 일어나선, 갑자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털썩.
백수룡이 당황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르신? 왜 이러십니까?”
“위지가의 마지막 가주 위지열이, 혈마신교의 지존을 배알합니다.”
“…….”
바닥에 오체투지한 채 극상의 예를 취하는 노인의 앞에서, 백수룡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