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42
341화. 중증이군, 중증이야
문율은 평온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어르신?”
백수룡은 멍한 얼굴로 문율을 바라봤다.
방금 전까지 두 사람의 일생을 다룬 긴 꿈을 지나왔다. 갑자기 돌아온 현실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어르신? 괜찮으십니까?”
지금 이것 또한 꿈이 아닐까 의심하며, 백수룡은 조심스레 문율에게 손을 뻗었다.
툭.
백수룡의 손이 어깨에 닿았지만, 문율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노인의 굳은 입가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맺혀 있었다.
“어르신……!”
백수룡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가 두 팔로 문율의 어깨를 흔들며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제가 만난 사람이 진짜 은사부였습니까? 그것만 대답해 주십시오!”
문율은 죽었다.
아무리 어깨를 흔들어도 그가 다시 깨어날 일은 없다.
백수룡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쉽게 미련을 떨치지 못했다. 평소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내게 그런 꿈을 보여 주고, 이렇게 가 버리면 어쩌라는 겁니까…….”
전생에서 그렇게나 바랐던 것.
꿈속에서 보았던 사부들의 행복한 미소.
지금껏 꾸었던 꿈 중에 가장 행복한 꿈이었으나, 백수룡은 더 이상 웃을 수 없었다.
결국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기 때문이었다.
“진짜 사부들인 줄 알았다면, 묻고 싶은 것들이 있었는데…….”
힘없이 중얼거리던 백수룡은, 문율의 오른편에 빙백환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빙백환 아래에, 문율이 남긴 서찰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오랫동안 짝을 잃었던 물건입니다. 다시는 떨어지지 않도록 잘 보관해 주십시오.」
은사부에게 정인의 징표로 받았던 빙백환을, 그녀의 제자인 백수룡에게 남긴다는 유언이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놀랍게도 서찰에 쓰여 있는 글씨가 스르륵 사라지더니, 그 위로 새로운 글이 나타났다.
「역천의 운명을 타고난 이여. 저는 그대의 전생을 보았습니다.」
“…….”
백수룡은 놀라지 않았다.
기억을 읽게 해 달라고 했을 때, 어느 정도는 짐작했던 일이었으니까.
「예린이 왜 내게 돌아오지 못하였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대가 스승들을 위하는 마음이 얼마나 애틋한지 보았습니다. 내게 예린의 유언을 전하기 위해 얼마나 고민했을지, 감히 짐작해 볼 수 있었습니다.」
서찰에 적힌 필체는 단정하고 부드러웠다. 마치 문율의 성격을 보여 주는 듯했다.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나, 내게 남겨진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하여 그대가 예린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이렇게 몇 글자 적어 남기려 합니다.」
“……설마,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내게 양보한 겁니까?”
정인과 함께 보낼 수 있는 마지막 시간.
문율은 그 시간의 일부를 백수룡에게 양보했다.
백수룡이 은사부와 짧게나마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이 얼마나 바보 같은 사내란 말인가.
「가장 궁금한 것은 이것이겠지요. 우리가 꾸었던 꿈, 그것은 기억을 매개로 망자의 혼백을 잠시 불러오는 역천의 술법입니다.」
백수룡의 눈이 부릅떠졌다. 저도 모르게 손에 쥐고 있던 서찰의 일부가 구겨졌다.
“그런 거였으면……!”
왜 미리 말해 주지 않았단 말인가. 문율에게 조금 원망스러운 마음마저 들었다.
「사실 술법이 성공할 확률은 높지 않았습니다. 술법을 함께하는 자와 망자 간의 인연이 깊을수록, 함께한 시간이 길수록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이 술법은 제게도 도박이었지요.」
“그런…….”
백수룡은 네 사부들의 무공을 이었고, 십 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보냈다.
최후의 순간마저 함께했으니, 그 인연은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깊다고 할 수 있었다.
「평생에 단 한 번만 펼칠 수 있는 술법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다렸지요. 하하. 기다린 보람이 있더군요. 예린과 혼례를 치르고 행복한 일생을 살았으니, 나는 더 이상 여한이 없습니다.」
“그래 봤자 꿈 아닙니까. 당신도 정말 어지간히 답답한 사람이군요.”
백수룡은 고개를 들어 문율을 바라봤다. 노인의 입가에 맺힌 미소는 진심 어린 행복을 담고 있었다.
「짧은 만남을 아쉬워 마십시오. 내게는 이것이 마지막이지만, 그대는 이번이 끝이 아닐 것입니다. 언젠가, 다시 스승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또 만나게 될 거라고?”
문율이 남긴 글에는 훗날 반드시 그리될 거라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단순히 바람이나 소망이 아닌 예언처럼 느껴졌다.
「역천의 운명을 타고난 이여. 하늘과 통하게 된 이 순간에도, 나는 그대의 앞날을 볼 수 없습니다. 다만 어렴풋이 알 수 있는 것은, 머지않아 그대에게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순간이 오리라는 것입니다.」
역천(逆天)의 운명.
남궁세가에서 만났던 현천신녀도, 죽어 가던 어미 은호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대체 역천의 운명이 무엇이기에…….’
단순히 역천신공을 익혔다고 해서 역천의 운명이라고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랬다면 역대 혈마들이 모두 역천의 운명이었을 테니까.
‘내가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환생했기 때문에? 아니면 내 체질 때문에? 선택이라는 건 또 뭐지?’
이런저런 추측을 해 볼 뿐,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순간이 오면 기억하십시오. 그대의 곁에 있는 사람들을, 또한 그대의 곁에 있었던 사람들을…….」
푸스스스-
백수룡의 손에 들려 있는 서찰이 먼지로 변해 흩어지기 시작했다. 남겨진 술법의 힘이 다하고 있었다.
「부디, 그대가 운명의 주인이 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서찰이 완전히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자리에 덩그러니 남은 것은 빙백환뿐이었다.
“…….”
백수룡은 복잡한 눈빛으로 문율이 남긴 빙백환을 바라봤다.
은사부의 정인을 찾으려 함도 있었으나, 애초에 빙백환을 찾기 위해 나선 여정이었다.
그러나 정작 목적을 이룬 지금, 백수룡은 복잡한 심경으로 빙백환을 수습했다.
“오늘 해 주신 조언, 명심하겠습니다.”
문율에게 애도를 표한 백수룡은 그가 남긴 빙백환을 오른 손목에 채웠다.
우우우웅-!
일 갑자가 넘는 세월 동안 떨어져 있던 빙백환이 한 쌍을 이루자, 서로 공명하듯 새하얀 기류가 백수룡의 몸을 휘감았다. 일순간 백수룡의 무복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화아아악!
북풍한설의 차가운 바람이 백수룡의 몸을 휘돌다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새하얀 기류가 그의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스으읍……. 후우우…….”
백수룡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겉으로 보기에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의 경지가 신물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만큼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다만 역천신공으로 인해 불안정했던 몸 상태가 다소 안정적으로 변한 느낌은 있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편안한 기분이었다.
백수룡이 빙백환의 기운을 온전히 수습하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곁에는 풍월화공과 검노가 있었다.
두 사람은 씁쓸한 표정으로 문율을 바라보고 있었다.
“……녀석. 이렇게 갔구나.”
“마지막은 행복해 보여서 다행일세.”
두 사람은 덤덤히 문율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검노가 문율의 주검을 안아 들고 어딘가로 향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풍월화공이 고개를 돌려 백수룡에게 물었다.
“꿈속에서 만난 두 사람은 행복해 보이던가?”
“예.”
“……다행이군.”
* * *
문율의 장례는 간단하게 치러졌다.
백수룡은 그 자리에 참석했고, 이틀 더 풍월화공의 장원에 손님으로 머물렀다.
검노와 비무 중에 얻은 빙백신공의 깨달음을 정리할 시간도 필요했고, 풍월화공에게 받아야 할 것도 있었다.
“자, 완성되었네.”
백무흔과 매약빙이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고, 백수룡이 그 뒤에 서 있는 모습의 가족 초상화.
완성된 그림을 본 백수룡은 기분 좋게 웃었다.
“외조부께서 무척 좋아하실 겁니다.”
족자를 말아 끈으로 단단히 묶은 후, 길쭉한 목함에 담아서 행낭 안쪽에 잘 넣어 두었다. 이만하면 돌아가는 길에 상할 일은 없을 터였다.
그런데 백수룡이 예상치 못한 선물이 하나 더 있었다.
“자, 이것도 가져가게나.”
“이건…….”
초승달 아래에서 신월빙백무를 추는 백수룡과 빙월신녀가 함께 그려진 그림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선물에, 백수룡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이걸 제가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꽤 마음에 들어 하셨던 거로 아는데…….”
지난 며칠 동안, 백수룡은 몇 시진이고 멍하니 이 그림을 바라보던 풍월화공을 보았다.
“생각해 봤는데, 자네가 가져가는 것이 맞아. 빙월신녀 은예린의 하나뿐인 제자가 아닌가.”
풍월화공은 미련을 떨치며 족자를 말아 백수룡에게 건넸다.
같은 그림을 하나 더 그려 볼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 순간에 받은 영감을 재현해 낼 자신이 없어 그만두었다.
“마음 바뀌기 전에 가져가게.”
백수룡은 더 고민하지 않고 족자를 받아 들었다.
“평생의 가보로 간직하겠습니다.”
“……어디다 팔기라도 하면 내 당장 청룡학관으로 쫓아갈 테니, 그리 알아두게.”
“청룡학관에 오시면, 그땐 외조부님까지 해서 네 명 다 그려 주실 수 있습니까?”
“뭐라? 이놈이……!”
농담을 주고받던 두 사람이 피식 웃었다.
짧게 맺은 인연이었지만, 그 깊이는 결코 얕지 않았다.
빙월신녀 은예린을 기억하는 사람들.
백수룡에게 그 사실만으로도 두 사람은 특별했으며, 지난 며칠 동안 깊은 교분을 나누었다.
그때, 선선히 웃다가 돌연 표정을 진지하게 굳힌 풍월화공이 말했다.
“조심하게. 빙궁은 위험한 곳이야.”
풍월화공은 백수룡이 빙궁으로 갈 예정이라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그는 깊은 우려를 표했다.
과거, 빙월신녀에게 생사신의의 거처에 대한 정보를 알려 준 출처가 바로 빙궁이었다.
“빙궁은 혈교와 야합했을지도 모르네. 확실한 증거는 찾지 못했지만, 나는 여전히 그들이 의심스러워.”
처음 백수룡이 찾아왔을 때, 풍월화공이 그를 의심했던 이유였다.
“예. 조심하겠습니다.”
백수룡도 이제 그런 가능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더 확인해 봐야겠지.’
만약 빙궁이 혈교와 손을 잡았거나, 최악의 경우 혈교에 흡수되었다면……. 그에 대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빙궁으로 쳐들어갈 생각은 아니었다. 일단 그들이 봉문한 이후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였다.
하지만 그 전에.
“우선 현무학관에 먼저 가 볼 생각입니다.”
“스승님을 만나 뵐 거라고 했지?”
“예.”
섬서 현무학관의 주인이자,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술법가 중 한 명으로 명성을 떨치는 현천신녀.
‘역천의 운명. 그게 정확히 뭔지 알아야겠어.’
백수룡은 그녀를 만나 물어볼 생각이었다.
그 자세한 사정까지는 모르는 풍월화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이라면, 자네가 묻고 싶은 것에 어느 정도 답을 주실 것이야.”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풍월화공은 현천신녀에게 술법을 배운 제자 중 한 명이었다.
현무학관이 무림에 세워지기도 전의 이야기였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검노 어르신. 가 보겠습니다.”
백수룡은 마중을 나온 검노에게도 인사를 했다.
검노가 무뚝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운을 빌겠소.”
꿈속의 혈기왕성한 청년이었던 검노를 떠올린 백수룡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다음에는 검으로 한판 붙죠.”
“……좋지.”
검노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풍월화공의 장원을 나선 백수룡은, 처음 그곳을 찾아왔을 때와 비교하면 한결 홀가분해 보이는 걸음으로 떠났다.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풍월화공이 중얼거렸다.
“저 모습을 보니, 또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군.”
“중증이군, 중증이야.”
검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