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41
340화. 만약 사부들을
‘이건……. 술법이 만들어 낸 환상인가?’
백수룡은 주위를 둘러봤다.
불과 며칠 전에 들렀던 고서점이었다.
그러나 선반이며 책장, 꽂혀 있는 책들의 배치가 전부 달랐다. 물건들이 그때 보았던 것들만큼 낡지도 않았다.
‘오래전의 고서점이로군. 은사부와 문율이 만나던 시절의.’
백수룡은 당황하지 않고 상황을 파악했다.
처음 이런 일을 겪었다면 당황했겠지만, 전에 자신이 쓴 일기를 발견하고 꿈에서 전생을 체험했던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
‘그때와 비슷한 상황이야.’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의 백수룡은 이 꿈의 주인공이 아닌, 실체가 없는 존재라는 것이었다.
목소리를 낼 수도 없고, 무언가를 만지거나 느낄 수도 없었다. 그저 흘러가는 장면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은예린과 문율의 모습을.
끼익…….
고서점의 문이 열리고 한 여인이 들어온다.
흑립에 면사로 얼굴을 완전히 가린 은예린이었다. 옷을 보고 여인이라는 사실만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어서 오십시오.”
고서점에서 책을 정리하던 문율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두 사람의 첫 만남. 은예린의 입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무 늦었나요?”
“아닙니다. 마음대로 구경하십시오. 손님이 오셨으니, 저도 책을 더 읽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
은예린은 고서점 안을 둘러보다가 아무 책이나 꺼내어 읽었다.
잠시 그러고 있을 때, 가까이 다가오는 그림자에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경계하며 물었다.
“……뭐죠?”
“이렇게 어두운 곳에서 책을 보시면 눈이 나빠집니다.”
호롱불을 들고 온 문율이었다.
그 가당찮은 호의에 은예린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문율을 바라봤다.
그러나 문율은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녀의 면사를 뚫어 볼 재주는 없었다.
“난 무림인이라 괜찮아요.”
“그래도 불이 있다면 더 편하게 읽을 수 있을 테지요. 여기 두고 가겠습니다.”
“…….”
호롱불을 내려놓고 물러나려던 문율은 은예린이 읽던 책을 보더니 활짝 웃었다.
“그 책은 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심금을 울리는 연인의 이야기이지요. 비슷한 책을 찾으신다면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천천히 읽다 가세요.”
때론 아무것도 아닌 행동 하나, 말 하나에 감정이 싹트기도 한다.
별것 아닌 짧은 대화였지만, 은예린의 시선은 고서점의 병약해 보이는 서생에게 오래도록 머물렀다.
자신에게 호롱불을 가져다주고, 본인은 책에 코를 박고 있는 꼴이 퍽 우스웠다.
‘은사부의 감정이 전해지는군.’
백수룡은 관객의 마음으로 그들의 모습을 바라봤다. 입가에는 어느새 미소가 맺혀 있었다.
“……다음에 또 올게요.”
“살펴 가십시오.”
고서점을 나선 은예린은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올려다본 하늘에는 초승달이 떠 있었다.
차갑게만 느껴지던 밤바람에 한 줄기 간지러운 바람이 섞여 있는 듯, 그녀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상한 사람이야.”
은예린은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자신이 이 고서점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찾아오게 되리라는 것을.
배경이 바뀌었다.
여름날의 호수였다. 한적한 날에 뱃놀이를 나온 두 사람은 호칭이 바뀌어 있었다.
“예린! 내 뒤에 숨으시오!”
“하아…….”
은예린이 면사를 잠시 벗고 있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녀의 미모를 보고 다가온 왈패들이 지저분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아, 아무 걱정 마시오! 저자들이 당신에게 손끝 하나 대지 못하게 하겠소!”
연모하는 여인을 지키기 위해 앞으로 나선 문율의 팔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싸움이라고는 해 본 적 없는 얇은 팔로 검을 들고 있는데, 검의 무게를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힘겨워 보였다.
“크하하하! 저런 놈도 꼴에 사내라고!”
“우리도 같이 좀 놀자는데 왜 그리 겁을 먹었을까?”
“사내구실도 제대로 못 할 것 같은 놈한테 저런 미인이 가당키나 한가!”
대낮부터 술에 취한 왈패들이 낄낄거리며 다가왔다.
안색이 창백해진 문율이 다가오지 말라며 경고했지만, 그들은 병약한 서생을 조롱하고 위협했다.
“잡것들이.”
싸늘하게 표정을 굳힌 은예린이 손을 휘젓자, 무시무시한 한기가 왈패들을 휩쓸었다.
싸아아아-
순식간에 왈패들의 몸에 서리가 맺혔다. 경악한 표정으로 덜덜덜 몸을 떨었다.
“꺼져.”
놈들을 죽이지 않은 것은 정인 앞에서 잔인한 손속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으, 으아아아!”
왈패들이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며 도망쳤다. 문율이 놀란 얼굴로 은예린을 돌아봤다.
“예린……?”
“무림인이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
“하, 하지만 이렇게 고수라는 말은 안 했소.”
고작해야 왈패들이었다. 진짜 고수와의 싸움을 봤다면 문율은 아마 졸도했을지도 모른다.
은예린이 눈을 샐쭉하게 뜨고 물었다.
“당신은 내가 무림인이라 싫어요?”
“그럴 리가 있소. 당신이 그 무엇이라도 좋소.”
그 대답에 마음이 조금 풀린 것일까, 은예린이 놀잇배에 오르며 말했다.
“……노는 당신이 저어요. 설마 무림인이라고 나한테 시킬 생각은 아니죠?”
“물론이오! 내 여인에게 험한 일을 시킬 사람으로 보이시오?”
“말은 잘해…….”
하지만 결국 노는 은예린이 저었다.
몇 장도 가지 못하고 헥헥대는 정인을 보고 웃음을 터트린 그녀는, 내공으로 바람을 일으켜 천천히 호수를 돌았다.
다시 배경이 바뀐다.
두 사람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계절마다 온갖 명소를 함께 다니고, 맛있는 것을 먹고, 유람을 다녔다.
“너희들은 맨날 그렇게 붙어 다니면 지겹지도 않냐?”
“은예린! 오랜만이다! 한판 붙자!”
종종 젊은 시절의 풍월화공과 검노의 모습도 나타나기도 했다.
흐뭇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백수룡은 문득 깨닫는 바가 있었다.
‘이건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니구나.’
문율은 백수룡의 기억 속에 있는 은예린을 만나게 해 달라고 했다.
정확히 어떤 술법인지는 모르지만, 문율은 백수룡의 기억을 빌려 은예린의 모습을 이곳에 구현해 냈다.
‘이건 문율의 꿈이야. 그리고 내 꿈이기도 해.’
문율이 마지막으로 꾸는 꿈.
백수룡은 여기에 자신의 염원을 담았다.
이곳에서라도 은사부와 그의 정인이 원했던 행복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꿈에 투영시켰다.
우우우웅-!
꿈의 세계가 진동했다.
문율의 얼굴이 이쪽을 향하며,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는 것이 보였다.
“어떻게…….”
이곳이 아무리 자신의 꿈이라고 해도, 술법을 익히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간섭할 수 있단 말인가?
문율은 알지 못했다. 백수룡이 전에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고, 그때 꿈을 다루는 방법을 익혔다는 것을.
그 순간, 다시 한번 배경이 바뀌었다.
“하하하하!”
산천초목을 울리는 쩌렁쩌렁한 목소리였다.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우리 빙신이가 혼례를 치르다니! 이 오라버니가 빠질 수 없지!”
맹사부였다. 어깨에 집채만 한 호랑이를 짊어지고 온 그가 바닥에 호랑이를 내려놓았다.
“혼례 선물이다! 예로부터 호랑이 거시기가 정력에 얼마나 좋냐 하면…….”
“무식한 놈. 혼롓날까지 그러고 싶으냐.”
광마 사부가 혀를 차며 말을 잘랐다.
날카로운 인상은 여전했으나, 헌원세가의 무복을 당당히 입고 온 그는 비단이며 예물을 잔뜩 짊어지고 있었다.
“가문에서 예물로 필요한 것들을 좀 가져왔다.”
“허허. 내 선물만 초라해지는군.”
검존 사부도 왔다. 그의 곁에는 자신을 똑 닮은 청년이 함께 있었다.
“별것 아니고, 산에서 나물을 좀 캐 왔네.”
검존 사부가 보자기를 열자, 맹사부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 그건 하수오 아니오? 오백 년은 묵은 것 같은데?”
“허허. 그런가? 어쩐지 영기가 느껴지더라니.”
은사부의 혼롓날.
아침 일찍 그녀의 집에 모인 사부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무척이나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그때, 맹사부가 이쪽을 돌아보더니 소리쳤다.
“애송아! 이리 안 오고 뭐 하냐!”
“……어? 나 말이오?”
백수룡은 어느새 자신도 꿈속에 들어와 있음을 깨달았다.
“그럼 여기에 너 말고 애송이가 또 있단 말이냐?”
맹사부가 벼락처럼 손을 뻗더니, 우람한 팔뚝과 겨드랑이 사이에 백수룡의 머리를 넣고 장난스럽게 압박했다.
물론 본인에게나 장난이었다. 백수룡은 진심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커헉! 사, 살려 주시오 맹사부!”
“크하하하! 이 사부의 근육 맛이 어떠냐! 그러게 평소에 머리 근육을 단련했어야지!”
“머리 근육이라니, 말 같잖은 소리를 진짜……!”
그때였다.
“시끄러워 죽겠네, 정말.”
붉은 혼례복을 곱게 차려입은 은사부가 방에서 조신하게 걸어 나왔다.
그 모습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그녀는 다른 사부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부끄러운 듯, 얼굴을 조금 붉히고 있었다.
“히야! 어여쁘구나! 우리 막내가 본색을 숨기고 드디어 시집을 가다니, 이 오라버니는 정말이지…….”
“제발 저 입 좀 막을 수 없어?”
“천하에 누가 있어 저 주둥아리를 막는단 말이냐.”
“허허. 곱구나. 고와.”
짝!
백수룡이 박수를 치자 떠들던 사부들의 시선이 그에게 모였다. 백수룡이 씩 웃으며 말했다.
“자, 신랑이 기다릴 테니 어서 갑시다.”
세 명의 사부, 그리고 백수룡은 은예린을 사인거에 태우고 신랑의 집으로 향했다. 천하에서 가장 믿음직한 가마꾼들이었다.
“하하하하! 동네 사람들 나와 보시오! 빙월신녀 은예린이 오늘 시집을 가오! 다들 나와서 덕담 한마디씩 해 주시오!”
“이 미친놈아. 제발 조용히 좀 해라.”
“강호 공식 미친놈이 뭐라는 게야?”
“사부들은 오늘 같은 날까지 싸워야겠소?”
“허허! 날이 아주 좋구나.”
맹사부와 광마사부는 옥신각신 다퉈댔고, 백수룡은 그들을 말리고, 검존 사부는 허허롭게 웃었다.
모두가 바랐던 미래였다.
다 함께 혈교를 탈출한 후,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 살다가, 은사부의 혼롓날에 다시 모이는 것.
백수룡이 웃으며 중얼거렸다.
“……비록 꿈이라도, 이렇게라도 다시 보니까 좋군요.”
저 멀리, 신랑이 기다리고 있었다.
혼례복을 차려입은 문율이 상기된 표정으로 새색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백수룡에게 말했다.
“……혼례라니. 감히 꿈꿔 보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괜히 끼어들어서 꿈을 방해한 것은 아닙니까?”
“그럴 리가요. 이곳은 저 혼자만의 꿈이 아닙니다. 그리고…….”
문율은 사인거를 메고 온 녹림투왕, 광마, 검존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제가 모르는 시간 동안, 예린에게 좋은 인연들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기쁜 마음입니다.”
“…….”
혼례를 지켜보는 내내 맹사부가 훌쩍이고, 광마 사부가 팔짱을 낀 채 한숨을 쉬었으며, 검존 사부는 신랑에게 덕담을 하랬더니 바람을 피우면 거시기를 자르겠다는 협박을 하며 허허 웃었다.
“다 같이 서십시오! 그림에 방해되니 병기는 모두 내려놓고, 이쪽을 보고 웃으십시오!”
혼례에 참석한 풍월화공이 그 풍경을 그림으로 남겼다.
은사부와 문율이 가운데에 서고, 다른 사부들이 뒤에 섰다. 백수룡은 맹사부와 광마사부 사이에 섰다.
“……내가 다 진이 빠지는군.”
그렇게 혼례가 모두 끝난 후, 백수룡은 사부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사부들. 바쁜 와중에 혼례에 참석해 주어 고맙소.”
사부들의 모습이 흐려지고 있었다. 그들은 저마다 백수룡에게 익숙한 모습으로 그를 바라봤다.
“크하하! 다음에 또 보자꾸나!”
맹사부는 누구보다 호탕하게 웃었고,
“혼자 무리하지 마라.”
광마 사부는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으며,
“잠시나마 불러주어 즐거웠단다.”
검존 사부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인자하게 웃었다.
스스스슷…….
이내 사부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백수룡은 눈을 감았다. 조금이라도 그들의 모습을 더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어서였다.
“예. 사부들.”
또다시 배경이 바뀌었다.
혼례를 치른 은예린과 문율은 평범한 사람들처럼 함께 늙어 갔다.
은예린은 자신을 닮은 딸을 낳았다.
두 사람은 어느덧 중년이 되었고, 장성한 딸이 혼례를 치렀다. 은사부는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두 사람은 노인이 되었다.
은예린은 할머니가 되었고, 문율은 꿈으로 들어오기 전에 보았던 모습에 점점 가까워졌다.
‘꿈이 끝나 가고 있구나.’
백수룡은 꿈이 끝나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이 꿈이 끝나는 순간이, 문율의 생명이 다하는 순간이라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고맙구나.”
은사부의 주름진 눈가에는 뇌옥에선 본 적 없었던 행복이 가득했다. 그녀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백수룡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사람에게 내 말을 전해 주어서, 그리고 그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해 주어 정말 고마워.”
문율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제자와 둘이 대화를 나누라고 자리를 비켜 준 걸까?
백수룡은 쓸데없는 배려를 한다고 생각하며 대답했다.
“고맙긴, 뭘. 더 빨리 오지 못해서 미안하오.”
“너에게 마지막으로 잔소리를 좀 하고 싶은데.”
백수룡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은사부는 내게 잔소리할 자격이 충분하지.”
은사부는 잔잔히 웃으며 말했다.
“과거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지금 네 삶에서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구나.”
“……말도 안 돼.”
이것은 꿈이다.
그러니 지금 은사부가 하는 말은, 백수룡의 마음속에 있는 말이어야 한다.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 거요?”
과거에 얽매이지 말라니, 혈교와 관련된 모든 것을 청산할 때까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저 말은 자신의 무의식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자신에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설마, 정말 은사부요? 술법으로 이곳에 은사부의 혼을 불러온 거요?”
“…….”
은사부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백수룡은 혼란스러웠다. 생각해 보면 아까 사라진 사부들의 말도 묘하게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크하하! 다음에 또 보자!
-혼자 무리하지 마라.
-잠시나마 불러주어 즐거웠단다.
이 술법은 도대체 뭘까.
단순히 자신의 기억을 토대로 꿈을 만들어 낸 걸까?
아니면……. 자신은 정말 사부들을 만났던 걸까?
멍해져 있는 백수룡에게, 은사부가 다시 말했다.
“스승이 물었으면 대답을 해야지.”
백수룡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노력은 해 보겠소.”
“……그래. 일단은 그거면 되었다.”
“은사부. 내 말에 대답해 주시오. 지금 이 술법. 만약 사부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 순간, 백수룡은 꿈에서 깨어났다.
그의 앞에, 문율이 가만히 눈을 감은 채로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