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48
347화. 북해빙궁 (1)
북해빙궁의 궁주전.
평범한 신분으로는 드나들 수조차 없는 그곳에서, 한 여인이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궁주. 아직도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이오?”
웅혼한 공력이 담긴 목소리에 궁주전의 높은 천장이 진동했다.
감히 궁주를 아랫사람처럼 대하는 여인의 언행을 지적하려던 무인들조차, 그녀의 막대한 공력에 경악해 입술만 잘근 깨물 뿐이었다.
“이리 우유부단해서야. 조만간 교의 사절단이 올 것이오. 그것이 사실상 최후통첩이라는 것을 정녕 모른단 말이오?”
궁주전 안에는 북해빙궁에서 내로라하는 고수들, 각 가문을 대표하는 원로들이 대부분 모여 있었다.
그러나 지금 언성을 높이는 여인은 그중에서도 특출난 존재감을 지니고 있었다.
북해의 무인들이 흔히 입은 두꺼운 털옷 대신, 화려한 붉은 궁장(宮裝)을 차려입은 여인.
빙백무후 설수련.
북해빙궁의 전대 궁주로서, 피비린내 나는 내전 끝에 스스로 옥좌에 오른 인물이었다.
‘폐관 수련 이후로 더 강해졌다더니. 늙기는커녕 더 젊어졌구나.’
‘이제 누가 있어 저 여인을 막을 수 있을지…….’
‘정녕 본궁이 설가의 손에 넘어가는 것인가?’
북해빙궁에는 그녀에게 불만을 가진 무인이 적지 않았으나, 감히 겉으로 그런 기색을 드러내는 자는 없었다.
타고난 기개가 바위 같은 몇 명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전대 궁주께서는 목소리를 낮추십시오. 이 자리에 있는 무인들 중에 귀머거리는 없습니다.”
웬만한 사내보다 큰 키에, 목덜미에서 찰랑거리는 칼단발.
북방의 대장군을 연상시키는 은발청안의 여인.
현 북해빙궁주 은휘령이 옥좌에 앉아 설수련을 내려다보며 위엄있게 말했다.
그러나 그녀를 올려보는 설수련의 입꼬리는 부드러운 호를 그렸다. 마치 가소롭다는 듯이.
“귀머거리가 아닌데도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니, 내 목소리가 저절로 높아지는 것이 아니겠소?”
“본궁의 운명이 걸린 일을 어찌 쉽게 결정한단 말입니까.”
“때를 놓치면 땅을 치고 후회할 것이오. 교의 제안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이득이 될지 생각하셔야지.”
“전대 궁주께서는 본궁이 혈교의 명령을 받드는 조직인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현 궁주께서 이처럼 내게 편견을 가지고 있으니, 옳은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오?”
전 궁주와 현 궁주.
북해빙궁에서 가장 강한 두 여인의 눈빛이 허공에서 사납게 부딪쳤다. 둘 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그러나 궁주전에는 두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중원 무림은 평화에 찌들어 있습니다. 감히 본궁의 무인들을 막아서지 못할 것입니다.”
“교에서 저희에게 중원의 비옥한 땅을 약속했습니다. 이 혹독한 땅을 벗어날 기회입니다.”
“그동안 교에서 받은 지원을 생각하면 제안을 무시하기는…….”
설수련의 뒤에 서 있는 자들이 은휘령을 압박한다.
각각 한 가문을 대표하는 고수들일진대, 전대 궁주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혀를 놀리는 모습이 간신배들을 방불케 했다.
‘저들에게는 누가 궁주란 말인가.’
은휘령은 조용히 이를 악물었다.
전대 궁주인 설수련으로부터 궁주직을 넘겨받은 지 올해로 스무 해가 지났다.
그러나 설수련은 권력을 내려놓지 않았다.
북해빙궁에는 공식적으로 태상궁주라는 직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태상궁주라 불리며 상왕(上王)처럼 군림하고 있었다.
은휘령은 자신의 자리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참담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부러질지언정 결코 꺾이지 않는 굴강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중원 무림을 침공하는 것은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북해빙궁의 명운이 걸린 일이니만큼, 최대한 신중하게 결정할 것입니다.”
은휘령의 전신에서 빙백신공의 한기가 일어나 시끄럽게 떠드는 자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이런 답답한!”
설수련의 몸에서도 한기가 피어올랐다. 북해의 추위에 익숙한 북해빙궁의 고수들조차 어깨를 바르르 떨 정도의 막강한 한기였다.
쩌적, 쩌저저적-!
설수련과 은휘령이 일으킨 한기가 중간에서 부딪치며 공기가 얼어붙었다. 은휘령의 눈꼬리가 사납게 치켜 올라갔다.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반란이라도 일으킬 생각입니까?”
북해빙궁에서 궁주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수십 년 전 빙월신녀와 함께 빙백환이 사라진 이후로 권위가 많이 추락했으나, 여전히 전통을 따르는 많은 가문이 궁주에게 충성했다.
때문에 아무리 전대 궁주라고 해도, 대놓고 궁주에게 맞설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북해빙궁이 또다시 내전에 휩싸일 테니까. 설수련도 그것은 원치 않았다.
설수련이 기세를 누그러뜨리며 살포시 웃었다.
“반란이라니. 답답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기세가 일어난 것이니, 궁주는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지 마시오.”
“…….”
예전 같았으면 저런 행동조차 용납하지 않고 벌했겠지만, 은휘령은 무섭게 쏘아보는 것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만큼 현재 북해빙궁에서 설가의 위세는 대단했다.
설수련은 궁주전에 모인 이들을 둘러보았다.
마치 자신이 이곳의 주인인 것처럼.
“삼십오 년 전, 중원의 무인들이 본궁을 습격한 날을 모두 기억할 것이오. 궁주도 당시에 동생을 잃지 않았소?”
은휘령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합니다. 어찌 잊을 수 잊겠습니까.”
당시 소궁주 후보들 중에서도 여러 명이 죽었다.
은휘령은 천운으로 적의 공격에서 살아남아 소궁주가 되었으나, 그녀의 어린 동생은 실종되었다.
‘하연아…….’
동생의 시체라도 찾기 위해 눈을 파헤치고 다녔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했다.
“우리는 많은 형제를 잃었소. 내전으로 약해져 있던 본궁에, 중원의 가증스러운 무인들이 보물을 탈취하기 위해 침략했지.”
복면을 쓴 흑의인들이 북해빙궁을 습격했던 날.
당시 궁주였던 설수련은 빙궁의 정예 무인들을 이끌고 침략자들을 모두 격퇴했다.
하지만 북해빙궁은 큰 피해를 입었고, 중원 무림에 대한 증오가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
“예전부터 중원은 우리를 오랑캐로 취급하였소. 척박한 땅에서 살아간다고 하여 우리를 미개하다 여겼고, 자신들보다 열등한 종자로 보았지.”
설수련의 말은 빙궁 무인들의 분노를 자극했다. 과거에 혈육을 잃은 이들의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놈들에게서 핏값을 받아 낼 때입니다!”
“중원 놈들에게 북해의 무인들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 주어야 합니다!”
“궁주님! 결단을 내려 주십시오!”
설수련을 따르는 주전파가 궁주전에 있는 인원의 절반이 훌쩍 넘었다. 궁주에게도 부담이 되는 숫자였다.
“……혈교는 위험한 무리입니다.”
그 말에 설수련이 피식 웃었다.
“그것도 중원 무림의 평가일 뿐이지.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교의 지원을 받았소. 하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았지. 개종을 요구하지도, 북해의 무공이나 보물을 달라고 하지도 않았단 말이오.”
“…….”
모두 사실이었다.
비록 혈교가 지원한 자금 대부분이 설가로 흘러 들어가긴 했지만, 봉문한 북해빙궁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한 데는 분명 혈교의 도움이 있었다.
“궁주. 교에서 무언가를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오. 그들이 중원을 침공할 때 동맹으로서 함께하는 것!”
중원인들이 알게 되면 경악할 이야기.
단일 세력으로는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보다 크다고 평가받는 북해빙궁이었다.
그런 그들이 오랜 봉문을 풀고 혈교와 함께 중원을 침공한다?
무림에 두 가지 재앙이 동시에 떨어진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교는 우리에게 중원의 북쪽 땅을 약속했소. 북해보다 훨씬 비옥하고 기름진 땅. 우리가 승리한다면, 더 이상 이 혹독한 땅에서 살아갈 필요가 없소. 궁주. 결단을 내리시오.”
북해빙궁의 참전 여부를 최종 결정하기 위한 회의.
전 궁주인 설수련을 위시한 주전파는 참전을 주장했고, 현 궁주인 은휘령은 보수적인 입장이었다.
“반대로 패배한다면, 본궁은 모든 것을 잃게 될 겁니다.”
그 답답한 대답에 설수련은 혀를 찼다. 이미 몇 번이나 반복된 대화였다.
“이토록 소심한 줄 알았으면 그대에게 궁주직을 물려주지 않았을 텐데…….”
쿠웅!
묵직한 진각과 함께, 백발백염의 노인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그의 전신에 서릿발 같은 기세가 흘렀다.
“아무리 전 궁주라 하여도, 그 이상의 무례는 용납할 수 없소이다!”
대장로 한송백.
한씨 가문의 가주로, 이곳에서 두 여인 다음으로 큰 발언권을 가진 인물이었다.
이십 년 전 설수련이 궁주직을 은휘령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한송백을 중심으로 전통을 중시하는 빙궁의 원로들이 압박을 가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설가의 위세가 지금만큼 크지 않았다.
‘눈엣가시 같은 인간.’
설화련은 한송백에게 눈을 흘겼다. 그러나 그녀의 입매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대장로. 손자의 지병에는 차도가 있나요?”
“……그대가 신경 쓸 일이 아니오. 이 자리에서 나올 이야기도 아니고.”
하얀 눈썹을 꿈틀거리는 한송백의 얼굴에 수심이 엿보였다. 설화련은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저 늙은이도 조만간 무너지겠구나.’
여전히 고집을 부리며 은휘령에게 힘을 실어 주고 있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설가, 은가, 한가.
북해에서 가장 세력이 큰 세 가문의 균형은 무너진 지 오래였다.
이제 설가의 힘은 은가, 한가를 합친 것을 능가했다.
‘언제든 힘으로 찍어누를 수 있지만, 최대한 북해의 전력을 보존하고 싶어서 참아 주고 있는 것일 뿐이란다.’
은휘령과 한송백을 바라보는 설수련의 입매에 맺힌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참으로 곤란하군요. 궁주와 대장로가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설수련이 다시금 저들을 압박하려 할 때였다.
“태상궁주님!”
궁주전 밖에서 설수련을 찾는 급박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녀의 고운 아미가 찌푸려졌다.
잠시 후, 궁주전의 문이 열리고 설가의 무인이 들어와 무릎을 꿇었다.
“회의 중에 무슨 일이냐?”
“죄송합니다. 잠시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네 눈엔 지금 이 자리가 무슨 자린지 보이지 않느냐?”
“그것이…….”
입술을 달싹이며 전음을 보내려는 설가의 무인에게, 은휘령이 엄중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궁주전에서, 그것도 궁주 앞에서 전음을 나눈다라……. 이것을 나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여도 되겠나?”
은휘령의 싸늘한 목소리에 설가의 무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설수련이 짜증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으니 말해 보거라.”
“설룡휘라는 자가 태상궁주님을 찾아왔습니다.”
“……누구?”
처음 듣는 이름에 설수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이어진 무인의 설명에 그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본인이 설신우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저희가 보기에도 본궁의 핏줄이 맞는 것 같습니다.”
“설신우…….”
설수련은 오래전에 가문에서 도망친 조카를 떠올렸다.
후계자 경쟁에서 패배한 날, 야반도주를 선택한 한심하고 멍청한 녀석.
‘그 아이의 아들이 나를 찾아왔다고? 이제 와서?’
당혹스럽기는 했으나, 회의를 중단할 만큼 중요한 사안은 아니었다.
“일단 본가에 데려가서 기다리라고 전해라. 회의가 끝난 후 내가 직접 확인해 볼 테니…….”
“저, 그것이……. 지금 소궁주님과 시비가 붙었습니다.”
“설무걸 그 망종 같은 놈이!”
일순간 설수련이 살기를 드러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설가의 무인이 덜덜 떨며 말을 이었다.
“성벽 밖에서 소란이 일어나자, 소궁주님께서 직접 확인해 보겠다고 나서신 모양입니다. 그 과정에서 말다툼이 생겨서…….”
“하아. 사고를 쳐서 근신을 명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소궁주 설무걸.
설가의 후기지수로, 무공에 대한 재능은 발군이지만 그 성정이 안하무인인 것으로 유명했다.
‘신우의 아들이라 주장하는 자가 크게 다쳤을 수도 있겠군.’
그자가 조카의 아들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설수련은 그리 순진한 여인이 아니었다.
하지만 소궁주의 행실은 중요한 문제였다.
그렇지 않아도 소궁주의 행실에 대한 말이 많았다. 설무걸은 그녀의 눈에도 지나치게 자유분방하고 오만한 성향이 있었다.
“……알았다.”
한숨을 내쉰 설수련이 은휘령을 돌아보며 말했다.
“궁주. 이 사안은 조만간 다시 이야기하지요.”
몸을 돌린 설수련은 곧장 궁주전을 빠져나갔다. 궁주의 허락도 받지 않았으나, 누구도 그 태도를 지적하지 못했다.
“궁주님. 저희도 나가 보지요.”
“예.”
은휘령도 한송백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벌써 소문이 퍼졌는지, 이미 많은 북해의 무인들이 성벽 위에 몰려들어서 바깥을 구경하고 있었다.
“어찌 저럴 수가……!”
“우리가 헛것을 보는 게 아니지?”
북해빙궁에서 보기 힘든 소란이었다. 웅성거리는 무인들의 목소리에 당혹스러운 감정이 가득했다. 은휘령은 지면을 박차고 높이 도약했다.
휘익!
단숨에 인파를 넘어선 그녀는 빙궁의 가장 높은 첨탑 위에 사뿐히 내려섰다.
그리고 도저히 믿기 힘든 광경을 목도했다.
“이 무슨…….”
그녀가 보게 된 것은,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고 있는 북해빙궁의 소궁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