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47
346화. 전해 주십시오
“아들이라니……. 저는 혼인을 한 적도 없습니다.”
설신우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갑자기 자신의 아들로 변장하겠다는 백수룡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어차피 빙궁은 모르지 않습니까. 설 대협에게 아들이 있는지 없는지.”
백수룡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자, 비로소 그 뜻을 이해한 설신우가 헛웃음을 흘렸다.
“허…….”
“한번 들어 보십시오.”
삼십여 년 전, 소궁주 경쟁에서 패배한 설신우는 어린 나이에 북해빙궁에서 도망쳤다.
그 후 중원에서 여인을 만나 아들을 낳았으나, 몸이 약했던 아내는 산고를 이기지 못해 일찍 죽고, 본인도 가문을 배신했다는 죄책감으로 마음에 큰 병을 얻었다.
결국 오십이 넘은 나이에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달은 설신우는, 하나뿐인 아들에게 유언을 남긴다.
-북해빙궁으로 돌아가 용서를 구하고, 너는 앞으로 설가의 사람으로 살아가거라.
“어떻습니까?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 아닙니까?”
“……저는 죽은 사람이어야 하는 겁니까?”
“그편이 저들의 동정심을 사기에 더 좋을 테니까요.”
[사도(邪道)로다! 천하의 패륜아가 따로 없도다!]창룡신검이 탄식을 금치 못했으나, 백수룡은 코웃음을 쳤다.
“뭘 모르는 소리. 그렇게 해야 설 대협도 마음이 더 편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설신우는 부정하지 못했다. 실제로 그는 북해빙궁에 자신이 소식이 전해지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백수룡이 설신우에게 물었다.
“혹시 북해빙궁은 죽은 사람의 자식에게까지 연좌제를 적용합니까?”
설신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제가 기억하는 고모님이라면……, 오히려 제 아들을 환대해 줄 겁니다.”
설수련은 궁주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손에 숱한 피를 묻힌 철혈의 여인이었지만, 가문과 혈육만큼은 끔찍이 아끼는 인물이었다.
“그럼 됐네요. 설 대협의 가족관계에 대해서 알려주십시오. 제대로 알고 가야 실수를 안 할 테니까요.”
백수룡의 머릿속에서는 실시간으로 빙궁 잠입 계획이 세워지고 있었다. 아직은 뼈대에 불과했지만, 점점 살을 붙여 나갈 계획이었다.
“…….”
그러나 설신우는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가문에서 도망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가문을 배신하는 데 마음이 편할 리는 없었다.
설신우가 망설이는 기색을 느낀 백수룡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제 와서 혈교와 손을 잡은 가문을 두둔할 셈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다만 한 가지만 묻고 싶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빙궁에 가서 무엇을 하시려는 겁니까?”
설신우는 두려운 얼굴로 눈앞의 청년을 바라봤다.
청룡신협 백수룡.
그의 검이 이미 혈교의 장로를 둘이나 베었다고 들었다.
혈교와 손을 잡은 설가 역시, 그의 검에 피를 흘리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반드시 흘리게 될 것이다.
‘청룡신협을 돕는 것이, 내 손으로 가문의 혈족들을 죽이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설신우가 망설일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설 대협.”
백수룡도 설신우의 표정에서 두려움과 망설임을 읽었다. 그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 스승이신 빙월신녀께서 혈교와 설가의 음모에 희생되었습니다. 나는 제자로서 마땅히 복수를 할 생각입니다.”
“역시…….”
“하지만 복수가 목적의 전부는 아닙니다.”
어설픈 거짓말은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백수룡은 설신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자신이 빙궁에 가서 하려는 일을 명확히 말했다.
“지금은 설가와 혈교가 동맹일지 모르지만, 언제까지 혈교가 빙궁을 내버려 둘 것 같습니까? 놈들은 결국 북해빙궁을 모조리 집어삼키려고 할 것입니다.”
어쩌면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백수룡은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이니까.
“더 늦기 전에 바로잡아야 합니다. 썩은 부분을 도려내고, 북해빙궁을 원래 모습으로 돌려놔야 합니다.”
“더 늦기 전에…….”
북해빙궁은 은사부의 고향이다.
백수룡은 그곳을 혈교가 더럽히게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설 대협이 무슨 걱정을 하시는지도 압니다. 설가가 많은 피를 흘릴까 봐 두려우신 거죠?”
“……솔직히 그렇습니다.”
백수룡은 창룡신검을 빼 들어 바닥에 꽂았다.
절세의 보검은 별다른 힘을 주지 않았음에도 쉽게 바닥을 파고들었다.
“약속드리겠습니다. 제 검은 스승의 일과 직접 관계된 자들, 그리고 저를 해치려는 자들에게만 겨눠질 것입니다. 그 외에는 북해빙궁의 결정에 맡기겠습니다.”
그것이 백수룡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양보였다.
우우웅-!
[나 또한 청룡신협을 지켜볼 것이니,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창룡신검도 함께 설득에 나섰다. 설신우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였다.
‘청룡신협의 말이 맞다.’
이번이 설가의 잘못을 바로잡고, 북해빙궁을 예전으로 되돌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알겠습니다. 전부 말씀드리겠습니다.”
눈빛을 굳힌 설신우는 자신의 가족관계, 설씨 가문의 비밀, 북해빙궁의 문화, 그 외에 신경 써야 할 것들을 가르쳐 주었다.
백수룡은 그 모든 것을 빠르게 습득했다.
배우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가르치는 설신우가 미처 따라가지 못할 지경이었다.
“익숙해지게 연습할 겸, 아버지라고 불러봐도 되겠습니까?”
“……편한 대로 하십시오.”
팔자에도 없는 아들이 생긴 설신우는 심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돌아가서 편히 쉬거라.]“수고하셨습니다.”
설신우는 초췌해진 얼굴로 관주실을 나섰다.
그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기다린 백수룡이 중얼거렸다.
“정보는 이 정도면 충분해. 문제는 변장인데…….”
인피면구로는 눈썰미가 좋은 고수들을 속일 수 없다.
과한 역골공도 마찬가지다.
웬만한 자들은 속일 수 있겠지만, 북해빙궁주 수준의 고수를 만나게 된다면 그 역시 들통날 가능성이 있었다.
사실 얼굴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다행히 설신우가 상당한 미중년인 덕분이었다.
“기본적으로 일맥상통하는 얼굴이니, 근육을 살짝만 움직이면 비슷해질 것 같은데…….”
백수룡은 관주실 한편에 있는 동경 앞에 서서, 미세하게 역골공을 사용했다.
동경 속에 비치는 눈매를 조금 더 날카롭게 교정하고, 자연스럽게 올라가 있던 입꼬리를 일자로 내렸다. 턱 근육을 조금 더 각지게 만들어 인상을 강하게 만들었다.
잠시 후, 설신우와 닮은 냉막한 인상의 청년이 동경 너머에 서 있었다.
“어때? 비슷해 보여?”
[그럴듯하구나.]얼굴은 해결되었다. 하지만 아직 문제가 남아 있었다.
“문제는 머리색이란 말이지.”
북해빙궁 특유의 백발은 평범한 흰머리가 아니다.
윤기가 흐르는 백발은 염색약 따위로는 흉내가 불가능했다. 북해의 핏줄에, 빙백신공이 더해져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물론 백수룡도 빙백신공을 익혔지만, 성질이 더욱 강한 역천신공을 익힌 탓에 머리색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고민은 창룡신검이 해결해 주었다.
[내가 술법사라는 사실을 잊은 것 같구나.]창룡신검이 신령스러운 기운을 내뿜으며 진동하자, 백수룡의 머리카락이 끝에서부터 백발로 물들기 시작했다.
스스스슷…….
잠시 후, 동경에 비친 자신을 본 백수룡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감쪽같은데?”
[술법과 무공은 궤가 다르니, 천하의 어떤 고수도 네 머리색이 가짜임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우우우웅!
은근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진동에, 백수룡은 창룡신검의 검신을 가볍게 쓸어 주었다.
“너 정말 대단한 검이었구나?”
[말하지 않았더냐. 너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이것이 다가 아니다.]“이것 말고도 더 있다고?”
백수룡은 창룡신검이 칭찬에 은근히 약하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예상대로 창룡신검은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술법을 줄줄이 말했다.
[……또한 축지술(縮地術)을 걸어 주면, 빙궁에 도착하는 시간을 오 분지 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안 그래도 방학이 끝나기 전에 청룡학관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하던 차였는데.
걱정을 한시름 덜어낸 백수룡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오늘은 푹 쉬고 내일 출발하자고.”
다음 날, 백수룡은 북해빙궁을 향해 출발했다.
* * *
휘이이이잉-
삭풍이 몰아치는 대지.
휘날리는 눈보라 때문에 시야 확보가 쉽지 않다.
숨을 내뱉을 때마다 새하얀 입김이 흘러나오고, 잠시만 서 있어도 어깨 위에 눈이 소복이 쌓이는 날씨.
“후우…….”
성벽 위.
북해빙궁의 위사들은 털옷을 단단히 여미고, 입김에 손을 비벼 가며 최대한 온기를 유지하려 애쓰고 있었다.
북해는 일 년 내내 눈보라가 그치지 않는 혹한의 땅.
지평선 너머에서 누군가가 나타나는 일은 좀처럼 없다.
그럼에도 위사들은 본연의 임무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빙궁의 규율은 그만큼 엄격했다.
“어?”
위사 중 눈이 밝은 이가 먼저 평소와는 다른 이질적인 것을 발견했다.
지평선 너머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음을 확인한 그가 위사조장에게 보고했다.
“사람입니다!”
수하의 보고에 위사조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교에서 보낸 상단인가? 오늘은 오는 날이 아닌데…….”
“아닙니다. 단 한 명입니다.”
“한 명?”
북해빙궁의 무사들도 밖에 나갈 때는 최소 삼인 일조를 이룬다.
북해의 환경은 그만큼 가혹하고, 조금만 방심해도 길을 잃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혼자서 이곳을 찾아왔다고?
“속도가 상당히 빠릅니다! 금방 도착할 것 같습니다.”
“……나도 보고 있다.”
거리가 있어서 얼굴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의 머리색만큼은 확실히 구분할 수 있었다.
“본궁의 사람이로군.”
새하얀 무복에 눈부신 백발을 휘날리며 달려오는데, 그 속도가 어마어마했다. 금세 이곳에 닿을 듯했다.
“너는 서둘러 안에 보고하라!”
“예!”
위사조장은 숨을 들이마셨다가, 다가오는 자를 향해 소리쳤다.
“멈추시오-!”
잠시 후, 달려오던 자의 속도가 줄어들었다.
위사조장은 비로소 상대의 모습을 제대로 살필 수 있었다.
얼음을 깎아 만든 듯한 미공자였다.
서늘한 눈매와 창백한 피부, 일자로 꾹 다문 입매는 북해빙궁의 고귀한 핏줄임을 증명하는 듯했다.
사박, 사박.
눈 위를 걷는데 등 뒤로 발자국이 남지 않았다. 답설무흔(踏雪無痕)의 경지. 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는 중심을 잡는 것만도 쉽지 않건만, 사내는 평지를 걷는 듯 가벼운 걸음이었다.
“누구……십니까?”
위사조장의 입에서 절로 존대가 흘러나왔다.
상대의 몸짓 하나, 가벼운 걸음에도 귀티가 흘렀다. 척 보아도 신분이 범상치 않은 귀공자임에 틀림없었다.
‘세 가문의 장성한 자식들 중에 저런 분이 있던가? 아니, 있다면 내가 모를 리 없지. 저 사내의 기도는 소궁주님과 비교해도…….’
위사조장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사내를 바라볼 때였다.
“고모할머님께 전해 주십시오.”
자리에 멈춰선 사내가 천천히 뒷짐을 지더니, 고개를 들어 성벽 위의 위사조장을 바라보았다.
“설가의 적통, 설신우의 아들 설룡휘가 왔다고 말입니다.”
사내의 긴 속눈썹에는 하얀 서리가 맺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