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51
350화. 검증된 방법
새벽이 다 되어서야 설룡휘는 자신의 방을 안내받았다.
“이 방을 쓰시면 됩니다.”
수십 명이 써도 될 만큼 큰 방, 어느 것 하나 귀해 보이지 않은 물건이 없었다. 주인이 손님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 말해 주는 듯했다.
“필요한 것이 있으실 땐 언제든지 종을 흔드시면 됩니다.”
“알겠다.”
“혹 목욕 시중이 필요하시면…….”
“필요 없으니 물러가거라.”
시비가 공손히 허리를 숙이고 물러났다.
설룡휘는 잠시 방 안을 둘러보다가 침상에 걸터앉았다. 엿듣는 기척은 없었다.
“후우……. 진이 다 빠지는군.”
방금 전까지 연회에 참석하고 온 참이었다.
설수련에게 설가의 어른들을 한 명씩 소개받으며 눈도장을 찍고, 그들 앞에서 설룡휘를 연기해야 했다.
순간의 실수가 끔찍한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
아무리 백수룡이라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그래도 꽤 유익하긴 했어.”
백수룡은 뻣뻣해진 목을 좌우로 풀었다.
냉담하게 굳어 있던 입매에 가벼운 미소가 맺혔다. 표정이 바뀐 것만으로도 인상이 크게 변했다.
[……연기를 잘도 하더구나. 나는 몇 번이나 조마조마하였거늘.]침상 한쪽에 올려 둔 창룡신검이 부르르 떨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백수룡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백수룡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거? 방법이 다 있지.”
사람의 기질은 바꾸기 쉬운 것이 아니다. 타고난 성정과 자라난 환경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주변을 늘 관찰하고 분석하는 백수룡의 성격은, 무심하고 담대한 설룡휘와는 크게 달랐다.
그럼에도 백수룡은 무리 없이 설룡휘를 연기할 수 있었다.
여기엔 한 가지 비법이 있었다.
“아는 사람 중에 설룡휘와 딱 맞는 성격이 하나 있거든.”
차갑고, 무심하고, 필요한 말만 하며, 미간을 좁히는 것 외에는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사내.
“그 녀석이라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까 생각하면서 연기했지.”
무림 최고의 명문가라고 할 수 있는 남궁세가의 삼공자.
평소 남궁수를 눈여겨본 백수룡이었기에, 그를 흉내 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 자식. 원수를 갚겠다고 또 이상한 짓을 하고 있진 않겠지?’
잠시 남궁수를 떠올린 백수룡은 고개를 저어 잡생각을 털어냈다.
“아무튼, 오늘 보니 설가에서 설수련의 권력은 절대적이야.”
[나도 그리 보았다.]밤이 깊은 시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설수련이 설룡휘를 환영하는 연회를 열자 설가의 주요 인물들이 빠짐없이 모두 참가했다.
-신우의 아들이다. 앞으로 무걸을 대하듯 대하거라.
그녀의 한마디로 설룡휘의 신분이 결정되었다. 반발하는 사람은 없었다.
설수련과 동년배로 보이는 설가의 원로들조차 설룡휘를 살갑게 대했다.
오히려 그들이 더 설수련의 눈치를 보는 듯했다.
“그중에 마공을 익힌 자들이 있었어.”
설가의 수뇌부 중 일부에게서 마공을 연성한 흔적이 느껴졌다.
나름대로 숨기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백수룡의 눈을 속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리석도다. 혈교와 거래한 것만으론 부족했단 말인가…….]청룡신검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 소궁주를 함정에 빠뜨린 것도 모자라, 손대선 안 될 마공까지 익히다니. 그녀는 무인들의 어리석음이 이해되지 않았다.
“인간의 욕심에는 끝이 없으니까.”
백수룡은 전생에 마공을 익힌 무인들을 수없이 보았다. 정신력이 굳건한 자들도 마공의 유혹을 뿌리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최후는 대부분 비참했다.
백수룡은 고급스럽게 꾸며진 방 안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내 눈에는, 이곳은 이미 혈교나 다름없어 보여.”
설수련은 북해빙궁의 주인이 되기 위해 혈교와 손을 잡았겠지만,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결국 혈교가 북해빙궁을 집어삼키게 될 것이다.
[그래서, 어찌할 생각이더냐?]“썩은 부분은 전부 도려내야지. 설수련, 설무걸, 마공을 익힌 설가의 고수들. 혈교와 관련된 자들 전부. 다 쳐내면 얼마나 남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해야지.”
백수룡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단순히 복수만이 목적이 아니다.
부활하는 혈교를 막지 않으면, 이번 생에도 자신의 주변 사람들이 고통받게 될 것이다.
“아까 연회장에서 있었던 일. 전부 기억해 뒀지?”
[물론이다. 눈을 감아 보거라.]화아아악!
창룡신검이 술법을 펼치자, 연회장에서 보았던 광경이 백수룡의 눈앞에 다시 한번 재현되었다.
[네 의지대로 시점을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방법은…….]‘알고 있어.’
꿈을 여러 번 다루다 보니 익숙해졌다. 백수룡은 술법 속에 펼쳐진 연회장을 가로질러 설수련에게 다가갔다.
설수련은 얼굴이 말상인 중년 사내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사내는 다소 초조한 표정이었다.
-조만간 본교의 사절단이 도착할 것입니다. 답변은 준비된 것입니까?
-계속 궁주를 압박하고 있으니, 조바심 내지 마시오.
-만약 빙궁이 본교와 함께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린다면…….
-그럴 리 없다고 말하지 않았소. 날 못 믿는 게요?
-……아닙니다. 다만 은휘령의 고집이 워낙에 세다 보니…….
-염려할 바가 못 되오. 북해의 무인들은 교와 함께 중원으로 진격할 것이오. 내가 친히 그들을 이끌 것이오.
-……태상궁주님만 믿겠습니다.
연회 중에는 여기저기 인사를 하러 다니느라, 설수련을 시야에서 놓칠 수밖에 없었다.
그 대신, 백수룡은 창룡신검에게 연회장 안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술법으로 기록해 달라고 부탁해 두었다.
-외람되지만, 설룡휘라는 공자는 설가의 핏줄이 확실합니까?
-확실하오. 내 혈육이오.
-저 공자가 빙궁과 본교의 관계를 알면, 문제를 일으키진 않을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사내에게, 설수련이 화사하게 웃었다.
-그 부분은 교에서 준 귀한 차를 마시게 했으니, 걱정할 것 없소.
-……그렇다면 안심입니다.
-당신은 걱정이 너무 많아서 탈이오. 내가 어련히 했을까 봐.
-하하…….
백수룡은 설수련과 대화 중인 말상 사내의 얼굴을 자세히 기억해 두었다.
‘혈교에서 심어 둔 놈이군.’
설가에 적어도 한 명 정도는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혈교가 그만한 자금과 물자를 지원해 주면서 그냥 구경만 하고 있을 리 없으니까.
-교의 분위기는 요즘 어떻소? 근래에 좋지 않은 소식이 간간이 들리던데.
-사소한 잡음일 뿐이지요. 대계를 준비하는 데 문제는 없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에선 더 이상 건질 것이 없었다.
정말 중요한 이야기는 전음으로 나누거나, 장소를 옮겨 따로 이야기했을 것이다.
백수룡은 그들 외에도 연회장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대화, 행동을 모두 세세히 살폈다.
덕분에 연회장에 직접 있을 때는 보지 못한 것들도 볼 수 있었다.
‘좋아. 이 정도면 됐어.’
잠시 후, 술법에서 깨어난 백수룡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런데 그의 눈을 본 창룡신검이 부르르 떨며 기함했다.
[네 눈빛이…… 사악하게 빛나고 있도다!]백수룡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결정했거든.”
수십 년간 북해에 군림해 온 설가를 어떻게 무너뜨릴지, 그 계획이 머릿속에 구체적으로 떠올랐다.
* * *
설룡휘가 북해빙궁에 도착한 지 닷새가 지났다.
그 시간 동안, 설룡휘는 두루두루 여러 사람을 만나며 친교를 맺었다.
처음에는 설룡휘를 경계하던 이들도 조금씩 마음을 풀었다.
“설룡휘 그 친구. 예의가 참으로 바르지 않습니까?”
“저도 어제 대화를 좀 나눠 봤습니다. 무척 인상 깊더군요.”
“실로 본가의 홍복입니다.”
“조금 늦게 온 것이 아쉽긴 합니다만…….”
“그토록 고강한 무공에 올바른 품행마저 갖췄으니……. 충분히 소궁주가 되었을 그릇인데…….”
몇몇은 선을 넘은 발언을 하다가 주변의 눈총을 받았다.
“쉿! 소궁주 귀에 들어가면 어쩌려고 그런 말을 하는 게요.”
“제,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못 들은 것으로 해 주십시오.”
“근신 중인 소궁주가 이를 갈고 있다는 풍문이 있습니다.”
“흡……!”
그러나 여론은 점점 더 설룡휘에게 유리하게 흘렀다.
특히 그동안 설무걸에게 핍박받아 온 젊은 무인들은 불만이 많았다.
“설룡휘 형님이 소궁주였다면 더 좋았을 텐데…….”
“이건 불합리합니다. 둘이 소궁주 자리를 놓고 비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설무걸이 잘도 받아들이겠다. 결과가 뻔한데…….”
정작 설룡휘 본인은 설수련에게 했던 것처럼 대놓고 소궁주 자리에 욕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눈치가 빠른 자들은 설가의 후계자 구도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름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전례가 있으니, 못할 것도 없긴 하지.’
‘태상궁주께서 마음만 먹으신다면야…….’
생각지도 못했던 잠룡의 등장으로 설가가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방에서 근신 중인 설무걸의 귀에도 이런 기류가 전해졌다.
“감히 그 새끼가!”
설무걸은 심복들에게 그 사실을 보고받았지만, 하필이면 근신 중이라 함부로 밖에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 뛰쳐나가서 설룡휘를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또 근신을 어기면 결코 가만두지 않겠다는 설수련의 엄명 탓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가문에 그딴 소문이 도는데, 고모할머님은 구경만 하고 있단 말이야?”
“……별다른 말씀은 없으셨습니다.”
설수련은 떠도는 소문을 듣고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히 방관하면서 소문을 더욱 부풀렸다.
‘이번 기회에 무걸 그 아이가 정신을 차린다면 좋은 것이고, 끝내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면…….’
설수련의 입가에 웃음이 맺혔다. 그녀는 선택만 하면 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가문의 홍복이라 여겼던 설룡휘가 설가에 재앙을 가져올 줄은, 설수련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시각, 설룡휘는 연회에서 설수련과 밀담을 나눴던 말상의 사내와 만나고 있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설룡휘입니다.”
“……마중천입니다. 공자께서 저를 만나고 싶어 하셨다고요?”
마중천은 의아한 표정으로 설룡휘를 바라봤다.
갑자기 설가에 나타나 후계 구도를 위협하고 있는 청년.
그 비범함도 놀랍지만, 이렇게 자신을 은밀히 불러낸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설룡휘가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조용한 자리에서 따로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이유를 여쭙겠습니다.”
두 사람은 설가의 영역 밖에서 약속을 잡고 은밀한 만남을 가졌다. 설룡휘의 요청이었다.
“평소 혈교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호오…….”
마중천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설룡휘를 바라봤다.
벌써 자신과 설수련의 관계를 눈치챘단 말인가?
북해빙궁에 도착한 것이 고작 며칠 전인데, 대단한 수완이었다.
‘친분을 만들어 둬서 나쁠 것은 없겠지.’
설무걸이 팽당한다면 다음 소궁주가 될 수도 있는 인물이었다.
북해빙궁은 훗날 혈교에 흡수되겠지만, 그전까지는 충분히 써먹을 말로 괜찮아 보였다.
“공자께서 본교의 어떤 부분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어떻게 해야 박멸할 수 있을까, 그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은 순간, 설룡휘가 벼락처럼 손을 뻗어 마중천의 목을 움켜쥐었다.
“커, 커헉! 이게 무슨 짓이냐……!”
눈을 부릅뜬 마중천이 분노한 얼굴로 설룡휘를 노려봤다.
“무슨 일인지 상황 파악이 안 돼?”
설룡휘의 입매가 뒤틀리며 호선을 그렸다. 무표정하다는 소문이 무색한, 불온함이 넘실대는 미소였다.
“나, 날 건드리면 후회할 것이다. 무슨 목적인지 모르겠으나, 감히 본교에…….”
그 순간.
설룡휘의 백발이 끝에서부터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스스스슷…….
이내 완전히 적발로 물든 머리카락이 허공에 나부끼고, 보석 같은 적안이 마중천을 빤히 응시했다.
“여, 여, 역천, 신……!”
경악으로 부릅떠진 마중천의 눈에 근원적인 두려움이 깃들었다. 이빨이 제멋대로 딱딱 부딪치고, 온몸이 덜덜 떨렸다.
“내가 누구인 것 같으냐?”
백수룡은 마중천의 목을 움켜쥐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러자 스스로 무릎을 꿇은 마중천이 머리를 바닥에 찍었다.
쿠웅!
미리 기막을 쳐 두지 않았다면 그 소리가 바깥까지 울렸을 것이다. 마중천이 이마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외쳤다.
“본교의 존귀하신 분을 뵙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 검증된 방법.
역천신공을 드러낸 백수룡 앞에, 마중천은 납작 엎드려 고개를 조아렸다.
‘혈교도들한텐 역시 이 방법이 잘 통한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