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62
361화. 좀 바쁘게
다음 날.
백수룡은 아침 일찍 북해빙궁을 떠날 계획이었지만, 정문을 나서지 못하고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렇게 많이는 못 가져간다니까요?”
그의 앞에는 북해빙궁의 무인들이 가져온 선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아버지의 진짜 원수를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딸을 치료해 주신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별것 아니지만 받아 주십시오. 저희 가문의 가보인데…….”
북해에서만 구할 수 있는 영약이며 보석, 털옷, 말린 생선까지.
백수룡이 떠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늦기 전에 감사 인사를 전하겠다며 찾아온 사람들이 가져온 선물들.
[북해의 날씨는 추울지 몰라도, 북해의 인심은 그 어느 곳보다 따뜻하구나.]‘혼자 속 편한 소리 하네. 이거 들고 가야 하는 사람은 나거든?’
고마운 마음과 별개로, 부피가 큰 물건들, 부담스러운 물건은 전부 거절했다.
그럼에도 남은 선물이 한 수레는 될 것 같았다.
결국 등에 멜 커다란 행낭을 새로 구해야 했다.
“무슨 보부상도 아니고…….”
커다란 등딱지를 멘 거북이 같은 모양새가 된 백수룡이 한숨을 쉬었다.
그 모습을 본 은휘령이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다들 고마운 마음이 커서 그런 것이니 이해해다오.”
“이해는 하는데…….”
말을 흐리던 백수룡은 결국 피식 웃고 말았다.
북해빙궁. 은사부의 고향.
비록 본인은 이곳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곳에는 여전히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 그녀의 혈육들이 남아 있었다.
백수룡은 그들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무림맹과의 동맹으로 폐쇄적인 문화가 점점 바뀔 수도 있겠지. 그리고 만약 나중에 여민이 궁주가 되면…….’
지금 생각하기엔 너무 먼 미래였다. 백수룡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제 정말 가 보겠소. 시간 맞춰 돌아가려면 제법 촉박해서.”
“……조카에게 안부 전해다오.”
“가족이 생긴 걸 알면 분명 좋아할 거요.”
씩 웃은 백수룡은 몰려온 무인들에게도 가볍게 포권을 취한 후 경공을 펼쳤다.
휘이익!
순식간에 북해빙궁이 멀어졌다. 뒤에서 들려오던 감사하다, 은혜는 잊지 않겠다, 나중에 다시 뵙겠다, 등등의 말소리도 금방 사라졌다.
[떠나올 때 본 이들의 표정이 밝더구나.]뺨에 닿는 눈송이가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기분이 좋을 정도로 시원했다. 백수룡이 웃으며 말했다.
“오랫동안 설가에 억압받다가 자유를 되찾은 덕분이겠지.”
동의한다는 듯 창룡신검이 부르르 떨었다.
그러곤 묘한 말을 내뱉었다.
“뭔 소리야?”
천리를 보는 눈으로도 역천의 운명은 읽을 수 없다.
그 말인즉슨, 운명을 타고난 자는 다른 이들의 운명까지도 바꿀 힘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네가 또 어떤 이들의 운명을 바꿔 나갈지, 곁에서 계속 지켜보는 것에도 큰 의미가…….]따악!
백수룡의 중지 탄지공이 창룡신검의 검집을 때렸다.
“됐고, 축지술법이나 걸어 줘. 여기저기 들르려면 시간 없으니까.”
[몇 번이나 말했지만, 너는 나를 존중할 필요가……!]백수룡은 북해빙궁까지 왔던 길을 반대로 짚어 갔다.
개학까지 남은 시간이 촉박했지만, 바로 청룡학관으로 가지는 않았다.
우선 섬서에 도착하자마자 현무학관으로 향했다.
초췌한 안색의 설신우가 백수룡을 기다리고 있었다.
백수룡은 그에게 빙궁에서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결국 그렇게 되었군요…….”
설신우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면서도, 진작 바로 잡았어야 할 일이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차마 고맙다는 말은 못 하겠습니다.”
“이해합니다.”
긴 대화는 나누지 않았다. 백수룡은 설신우에게 북해빙궁이 그를 용서했노라는 말을 전해 주고 돌아섰다.
현무학관을 나선 후에는 풍월화공의 장원을 찾아갔다.
“누구…… 설마?”
검노가 눈썹을 꿈틀댔다.
처음에는 바뀐 머리색과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이내 익숙한 기도를 느끼곤 백수룡임을 알아본 것이다.
백수룡이 씩 웃으며 말했다.
“얼마 안 됐는데 무척 오랜만에 뵙는 것 같군요. 안에 풍월화공도 계십니까?”
“……안에 있네. 자네를 보면 또 난리가 나겠군.”
백수룡이 왔다는 소식에 풍월화공이 버선발로 뛰어나왔다.
그는 백수룡을 보자마자 눈을 부릅떴다.
“자네, 머리색이……!”
“아, 이거요.”
백수룡은 여전히 백발인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술법으로 바꾼 건데, 급하게 오느라 바꾸는 걸 깜빡했습니다. 지금이라도 풀어 달라고…….”
“안 돼! 풀지 말게!”
빽 소리를 지른 풍월화공의 귓가에 청아한 음성이 들렸다.
[춘삼아. 활기가 넘치는 성격은 여전하구나.]“대체 어떤 놈이 그 금기된 이름을……!”
고리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던 풍월화공은 이내 백수룡의 허리춤, 창룡신검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기운에 입을 떡 벌렸다.
“스, 스승님?”
[춘삼아. 오랜만이구나.]“어째서 스승님이 그런 곳에…….”
“그 모습으론 어디 앉지도 못하실 것 같습니다만…….”
[스승을 놀리는 게냐?]퍼뜩 정신을 차린 풍월화공이 헛기침을 하곤 백수룡에게 말했다.
“흠흠. 일단 안으로 들어오게. 스승님.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백수룡은 두 사람에게도 북해빙궁에서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은사부의 친우였던 두 노인은 과거 설수련의 만행에 분노하다가, 백수룡이 설수련의 목을 베었다는 부분에서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북해빙궁의 태상호법이 되었다는 부분에서는, 둘 다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백수룡을 바라봤다.
“자네는 그 짧은 시간에 대체 뭘 하고 다닌 건가?”
“……믿기 힘들지만, 자네 말이니 전부 사실이겠지.”
세 사람은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룻밤 자고 가라는 풍월화공의 제안에 백수룡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서둘러 가 봐야 합니다. 들러야 할 곳이 한 군데 더 있어서요.”
“그럼 오래 붙잡지 않을 테니, 밥이라도 한 끼 먹고 가게나.”
“밥 정도라면야…….”
풍월화공의 표정이 이상하게 간절하기도 했고, 마침 출출했기에 백수룡은 밥을 먹고 가기로 했다.
그런데 잠시 후, 풍월화공은 만찬이 차려진 식탁 위에서 젓가락 대신 붓을 드는 것이 아닌가?
“……뭐하십니까?”
“자네는 신경 쓰지 말고 밥이나 먹게.”
검노가 옆에서 풍월화공의 붓을 홱 빼앗고는 핀잔을 주었다.
“이놈아. 손님 불편하게 밥상머리에서 뭐 하는 짓이냐.”
그러자 풍월화공이 당과를 빼앗긴 어린애처럼 흥분해서 떼를 썼다.
“내 붓 내놔라, 이놈아! 봐라! 백발이 아니냐! 백발이! 이걸 보고도 어떻게 안 그릴 수 있단 말이냐!”
“……주접이군, 주접이야.”
[춘삼아. 내 너를 이리 부끄럽게 가르치지 않았거늘…….]결국, 풍월화공이 그림을 한 장 더 완성한 후에야 백수룡은 그곳을 떠날 수 있었다.
“그럼 언젠가 나중에 또 뵙겠습니다.”
“조심히 가게! 얼굴 간수 잘하고!”
섬서를 떠난 백수룡은 무림맹이 있는 호북 무한에 도착했다. 그 전에 머리색은 원래대로 바꾸었다.
“무림맹 총사범 백수룡이오.”
백수룡은 도시에 들어서자마자 신분을 밝혔다.
무림맹을 떠나기 전에 류설이 발급해 준 맹원패를 보여 주자, 성문 앞에서 신원 조회를 하던 병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처, 청룡신협?”
백수룡이 섬서를 거쳐 북해빙궁까지 다녀오는 동안, 청룡신협의 명성은 그 끝을 모르고 올라갔다.
“청룡신협이라고?”
“혈교 장로를 둘이나 죽였다는 그 청룡신협 말이오?”
“실제로 본 사람들은 옥면신룡이라고도 부르던데…….”
“허어! 어쩐지 멀리서부터 범상치 않아 보이더라니.”
수군거림은 백수룡이 도시 안으로 들어서자 더욱 심해졌다. 순식간에 도시 전체에 소문이 퍼진 것이다.
“청룡신협! 그대에게 비무를 신청하겠소!”
“본가에 초대하고 싶습니다. 부디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영광을…….”
“당신을 사모해요!”
사방에서 어마어마하게 많은 관심이 쏟아지는 터라, 백수룡은 도망치듯 경공을 펼쳐 인근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뛰어올랐다.
“예전에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등줄기에 식은땀이 맺힐 정도였다.
청룡신협이 나타났다는 소식에 도시 전체가 들끓었는데, 여기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이번에도 개방도들이었다.
“거지들의 형제! 청룡신협이 무한에 돌아왔소이다!”
“무림맹을 구한 영웅! 거지들과 밥그릇을 나누고 한 이불을 덮는 사내!”
“명예 개방도! 명예로운 개방도!”
저것은 욕인가 칭찬인가.
백수룡은 동네방네 쏘다니며 자신에 대한 온갖 소문을 퍼트리는 거지들을 노려보며 치를 떨었다.
“저 거지새끼들을 진짜…….”
[형제 중에 개방도가 있었더냐?]“말이 되는 소리를 해.”
한숨을 내쉰 백수룡은 곧바로 무림맹으로 향했다.
수많은 무인들이 그를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켰으나, 그의 경공을 따라잡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휘익!
그가 무림맹 정문 앞에 내려서자,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대기하고 있던 위사들이 동시에 포권을 취했다.
““총사범을 뵙습니다!””
예전에 문을 부수고 들어간 전적이 있기에, 그 후로 무림맹의 위사들은 청룡신협의 얼굴을 달달 외웠다.
백수룡은 군기가 바짝 든 위사들을 지나쳐 무림맹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상치 못했던 상대와 조우했다.
“……백수룡.”
“남궁수?”
날카로운 눈매와 서늘한 인상.
높낮이가 거의 일정한 무덤덤한 목소리.
설룡휘를 연기할 때 참고하긴 했지만, 역시 원조는 달랐다.
백수룡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네가 왜 아직도 여기에 있어? 남궁세가에 안 갔어?”
“……미아를 가문에 데려다주고 다시 이곳으로 왔다.”
“왜? 설마 나랑 같이 돌아가려고 기다린 거냐?”
백수룡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묻자, 남궁수의 눈썹이 크게 꿈틀거렸다.
“헛소리를.”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쉰 남궁수가 말을 이었다.
“뇌룡검 제갈선 대협께 배움을 청하기 위해서다.”
제갈세가주 제갈선은 수십 년 전부터 뇌기무공의 고수로 유명했다.
남궁수는 방학 동안 그와 교류하면서 천뢰검법을 더욱 발전시키고 있었다.
“근데 왜 제갈세가가 아니라 무림맹에 있어?”
“무림맹에서 내게 맹원들의 교육을 부탁했다. 그래서 하루에 두 시진씩 봐주고 있는 중이다.”
자세히 보니, 남궁수 뒤편에 탈진해 널브러진 무인들이 보였다.
“하여튼 누가 강사 아니랄까 봐…….”
“너야말로 그 꼴은 뭐지?”
커다란 등딱지 같은 행낭을 메고 온 백수룡의 모습에, 남궁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부업으로 보부상이라도 시작했나?”
“……그런 게 있어.”
설명하자면 너무 길었다. 그리고 적당한 자리도 아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고. 일단 무림맹에 중요한 서한을 전달해야 하거든.”
남궁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비켜 주었다.
“그러지. 어차피 돌아가는 길에도 시간은 많을 테니.”
돌아가는 길이라니?
역시 같이 가자는 말이 아닌가.
백수룡은 영 찝찝한 표정으로 남궁수를 바라봤다.
딱히 싫은 건 아니지만……. 묘하게 잡혀 가는 기분이었다.
“제갈소영 선생도 함께 갈 거다.”
“알았어. 이따가 보자고.”
남궁수와 짧은 재회를 마친 백수룡은 곧바로 맹주실을 찾아갔다. 맹주 대리 류설을 만나 북해빙궁의 서한을 전달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예상치 못했던 두 번째 사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으하하하! 이게 누군가! 만나는 족족 혈교도들의 목을 자르고 다니는 무림의 영웅이 아닌가!”
권왕 야율황.
천하에서 가장 강한 주먹을 가진 사내가 활짝 웃으며 백수룡을 맞이했다.
임시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류설은 그 뒤편에서 떨떠름한 표정으로 백수룡에게 눈인사를 했다.
“맹주님? 돌아오셨습니까?”
“며칠 전에 일정을 다 마치고 돌아왔네. 자네가 왔다는 소식은 방금 들었고. 할 이야기가 아주 많을 것 같군. 거기 앉게나.”
백수룡은 맹주가 권한 자리에 앉았다.
“헌데…….”
백수룡을 바라보는 맹주의 눈빛이 묘하게 빛났다.
“자네는 볼 때마다 더 강해지는군. 이제는 말석 정도가 아니라…….”
백수룡이 기겁해서 맹주의 말을 끊었다.
“제발 그 입 좀 단속해 주십시오. 맹주님 한마디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압니까?”
지금도 날파리가 이렇게 많이 꼬이는데, 얼마나 더 많아지게 하려고.
백수룡의 매서운 눈빛을 본 맹주가 큭큭 웃었다.
“알겠네. 하여튼 자네가 무림맹을 다시 찾은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현무학관 소식인가?”
“그 이상입니다.”
백수룡이 가져온 소식은, 이 능글맞은 무림맹주조차 경악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북해빙궁이 봉문을 풀었다고?”
“그들이 맹과 동맹을 맺고 싶어 해?!”
“혈교가 수십 년 전부터 북해빙궁과 접촉했었다니!”
하나같이 믿기 힘든 이야기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무림맹주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백수룡을 바라봤다.
“자네, 그동안 도대체 뭘 하고 다닌 건가?”
백수룡은 그제야 묵직한 행낭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좀 바쁘게 돌아다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