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82
381화. 무대 바깥에서는
선선한 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오는 구(九)월의 어느 날.
청룡학관 최대의 축제인 청룡제가 시작되었다.
“당과 사세요!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당과가 있습니다!”
“청룡제 기념 영웅건 팝니다! 기념품으로 하나씩 사가세요!”
“청룡신협(靑龍神俠)의 별호가 새겨진 목검 팝니다! 아이들 선물로 제격입니다!”
“아저씨. 뇌룡신검이라고 적힌 건 없어요?”
“물론 있지요!”
도시 전체가 평소와 비교할 수 없이 활기찬 모습이었다.
상인들은 며칠 전부터 밀려드는 손님에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거리마다 좌판이 벌어졌고, 평소에는 보기 힘든 경극패, 잡기패, 만담꾼들이 공연을 열었다. 비파를 든 악사들도 흔히 볼 수 있었다.
“푸하하하! 저것 좀 보게!”
“악사 양반! 한 곡 뽑아 주시오!”
축제에 들뜨고 눈과 귀를 현혹당한 사람들은 평소보다 쉽게 전낭을 열었다. 공연패와 악사들의 입가에도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청룡학관의 문은 아직 열리지 않았건만, 도시는 이미 축제 분위기였다.
그러나 갑자기 인파가 많이 몰리는 곳에는 온갖 범죄와 사건 사고도 잦아지기 마련이었다.
“싸움이다!”
와장창!
객잔의 문을 부수고 나온 두 사내가 서로에게 험악한 욕설을 쏟아 냈다. 둘 다 칼을 든 무림인이었다. 아침부터 몸에서 술 냄새가 진동을 했다.
“다시 지껄여 봐라 개자식아. 사지를 토막 내기 전에.”
“네놈 실력으로 나를 죽이겠다고? 상대를 못 알아본 그 쓸모없는 눈깔부터 파내 주마.”
지나가던 행인들이 겁을 먹고 물러났다. 무림인들의 싸움에 잘못 휘말렸다가는 목이 날아가기에 십상이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둘 다 무기를 내려놓으시오.”
당장이라도 칼부림을 벌이려던 두 무인은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돌아보더니, 이내 코웃음을 쳤다.
“어딜 포두 따위가 무인들의 일에 끼어들어?”
“뒈지기 싫으면 저리 꺼져라. 관무불가침이란 말도 못 들어 봤냐?”
술에 취한 두 무인은 상대의 옷만 보고 비웃음을 흘렸다.
그들에겐 상대의 기도를 살필 만한 실력이 없었고, 옷만 보고 포두와 포도부장을 분간할 안목 또한 없었다.
“……관무불가침. 내가 가장 싫어하는 무림인들의 변명이지.”
청천은 냉막한 표정으로 술에 취한 두 무림인과 부서진 객잔의 물건들, 그리고 겁에 질린 사람들을 둘러본 후 말을 이었다.
“너희들을 기물손괴, 음주소란, 공무집행방해죄로 이 자리에서 현행범으로 체포하겠다.”
“하! 어디 해 보려면 해 보시든…….”
그다음 순간, 두 무인은 청천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
빠악! 빠악!
두 번이면 충분했다. 검집으로 두 난동꾼의 코뼈를 부러뜨린 청천은 쓰러져 비명을 지르는 무인들의 아혈과 마혈까지 짚어 버렸다.
“지옥판관 청천이다!”
“우와아!”
청천은 자신을 알아보고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대부분은 무림인이 아닌 민간인들의 환호였다.
“……번거롭게 되었군.”
무림인 범죄자의 검거율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높은 청천은 ‘지옥판관’이라는 무시무시한 별호로 불리고 있었다. 그의 뛰어난 무공과 자비가 없는 손속에 불구가 된 무인이 기백이 넘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자들을 포박해 관아로 이송해라.”
“예!”
청천은 인근을 순찰 중이던 포졸들에게 현행범을 맡기며 신신당부했다.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마라. 축제 기간 동안 우리는 도시의 치안을 유지해야 한다. 수상한 움직임이 있으면 곧장 내게 보고하도록.”
“예!”
고개를 끄덕인 청천은 죽립을 눌러쓰고 인파 속에 몸을 숨겼다. 혼자서 순찰을 도는 편이 훨씬 빠르고 효율적이기 때문이었다.
홀로 순찰을 돌던 청천은 갱생문의 문주인 철두와 잠시 접선했다.
“청천 형님. 그쪽은 어떻수?”
“특별히 수상한 움직임은 없었다.”
가을임에도 민소매 무복 차림으로 거리를 배회하는 철두의 모습은 언뜻 뒷골목을 제패한 사파의 마두처럼 보였으나, 겉모습과 달리 그는 이제 어엿한 정파의 일원이었다.
철두는 바글바글한 인파가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작년과는 비교도 안 되는군. 아니, 도시에 사람이 이렇게까지 몰린 적이 있긴 하오?”
“적어도 지난 십 년 중에는 오늘이 제일 많을 거다.”
“허! 이렇게 많은 사람이 전부 청룡제를 구경하러 왔다니…….”
“정확히는 백수룡을 보러 온 거겠지.”
“어차피 그게 그거 아니우.”
철두는 피식 웃으며 멀리 보이는 청룡학관을 바라봤다.
이른 아침부터 인파가 몰리는 바람에, 축제 준비가 끝날 때까지는 청룡학관은 잠시 문을 닫아 둔 상태였다. 수많은 인파가 저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청룡신협이라니. 새삼 어마어마한 사내와 인연을 맺었다는 생각이 드는구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여간내기가 아니긴 했지.”
백수룡은 두 사람 모두에게 생명의 은인이자, 인생을 바꿔 준 사람이었다.
부작용이 극심한 가짜 마공을 익혔던 청천은 백수룡을 만나 제대로 된 무공을 익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뒷골목 파락호에 불과하던 철두 또한 백수룡을 만나지 못했다면 백발마수에게 살해당했을 것이다.
그만큼 두 사람에게 백수룡은 고마운 사람이었다. 청룡신협의 명성이 천하에 진동하는 지금은 자주 만나진 못하지만, 그 은혜를 잊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철두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들려오는 풍문을 듣자 하니, 청룡신협이 여기저기 은혜를 빚지게 하고 다닌다던데. 그에게 은혜를 갚을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답디다.”
“그것참 녀석다운 고약한 취미군.”
“순번을 따지면 우리가 꽤 앞쪽 아니겠수? 기회를 양보할 순 없지.”
피식 웃은 청천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녀석이 직접 부탁한 일이니만큼, 실수가 있어선 안 된다.”
“물론이오. 애들한테 조금이라도 수상한 기미가 보이면 전부 보고하라고 일러두었소.”
대답하는 철두의 목소리도 사뭇 진지했다. 민소매 무복 바깥으로 드러난 흉터 가득한 근육이 폭발할 것처럼 꿈틀댔다.
과거 저잣거리에 떠도는 삼류무공을 익히고도 무공을 익힌 고수들과 맞서던 철두다. 백수룡에게 배운 굉천부를 부단히 수련한 지금은 어엿한 고수의 기도를 풍겼다.
작게 고개를 끄덕인 청천이 물었다.
“개방 쪽은 어떻지?”
“분타주와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있소. 거지들이 혈안이 돼 있더군. 최근에 방주가 당한 일도 있었으니. 하오문은 어떻수?”
“점소이들이 도시 밖에서 온 손님을 모두 기록하고 있다.”
며칠 전, 백수룡은 두 사람을 불러 청룡제 기간 동안 도시에 수상한 움직임이 없는지 지켜보라고 지시했다.
-혈교가 움직일 거야. 축제 때 날 노리는 건 거의 확실한데, 혹시라도 다른 사람들을 노리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도시에서 혈사를 일으키려고 할지도 몰라.
-……!
그날부터 청천과 철두는 가용인원을 모두 동원해 청룡학관 주변을 은밀히 감시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뿐만 아니라 백수룡에게 연락을 받은 하오문, 개방도 정보망을 최대한 가동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청룡학관을 중심으로 천라지망(天羅地網)을 펼쳐 놓고 놈들을 기다리자고.
백수룡의 계획이었다.
만약 청룡학관 밖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발생한다면, 즉시 대처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할 것.
-청룡학관 내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쓸 것 없어. 너희는 바깥에서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경계해.
백수룡의 지시대로, 두 사람은 청룡학관에는 연락을 위한 최소한의 인원만 파견했다.
저곳에는 다른 누구도 아닌 청룡신협 백수룡이 있으니까.
-만에 하나라도 청룡학관에서 도망치는 놈이 있으면 놓치지 말고.
어쩐지 즐거워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하던 백수룡의 얼굴을 떠올리며, 청천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혈교는 상상도 못 하겠지. 청룡학관은 물론이고, 도시 전체에 백수룡의 눈과 귀가 깔려 있다는 걸.”
“밖으로 도망쳐 나오는 놈들이 있으면 좋겠는데. 그래야 우리 차례도 돌아올 거 아뇨.”
“……철없는 소리.”
두 사람이 청룡학관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눌 때, 닫혀 있던 청룡학관의 정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문이 열린다!”
문이 열리자마자 수많은 인파가 청룡학관 안으로 밀려들었다.
그 안에 백수룡을 노리는 살수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청천과 철두는 그것을 알면서도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저 요란한 축제가 백수룡이 혈교를 끌어들이기 위해 준비한 무대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무대 바깥은 우리가 지킬 테니, 너는 마음 놓고 축제를 즐겨라.”
마치 청천의 중얼거림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잠시 후 청룡학관 안에서 청룡신협을 연호하는 목소리가 들려 왔다.
* * *
청룡학관이 멀리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흑립을 눌러쓴 자가 도시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었다.
“본교에서 정보가 샌 모양입니다.”
그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어려 있었다.
흑립인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주변에 누군가가 있는 것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함정입니다. 청룡학관 주변으로 천라지망이 펼쳐져 있습니다. 개방, 하오문, 관아가 협력했습니다. 모르고 있었으면 한 방 먹을 뻔했습니다. 아니, 이미 내가 눈치챘다는 것도 계산하고 있을지도…….”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흑립인이 돌아섰다.
언제부터 와 있었는지, 그와 똑같은 흑립을 쓴 자들이 유령처럼 일렬로 서 있었다.
“왜 본교의 장로가 둘이나 청룡신협의 손에 죽었는지 알겠습니다. 백수룡은 상상 이상으로 교활하고 용의주도합니다. 정파의 고수라고 생각하고 상대해선 안 됩니다.”
“…….”
대답은 없었다.
허락하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도록 배웠기 때문이었다. 입이 무거운 것은 살수의 기본 덕목이었다.
“여러분도 알겠지만, 약 반년 전 이곳에서 칠살이 죽었습니다. 그 일로 우리 살막은 제법 곤란을 겪었지요. 심증은 있었는데 오늘 확신했습니다. 그것도 청룡신협의 짓이었다는 걸.”
흑립인들은 분명 눈앞에 존재함에도 허상처럼 일렁였다. 하나같이 고절한 은신법을 익힌 탓이었다.
“하하. 어찌나 교활한지, 일부러 빈틈을 드러내면서 절 끌어내려고 하는데 몇 번은 정말 넘어갈 뻔했습니다.”
말이 많은 것은 그가 특이한 경우였다.
사실 그는 모든 면에서 특별했다.
“함정이더라도 바뀌는 건 없습니다. 여러분의 임무는 청룡학관의 주요 인물들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살막의 남은 살수들을 대부분 데려왔다.
청룡신협은 이것까지 예상했을까?
그렇다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독심이 강한 자일 것이다.
그의 주변인 중 상당수는 축제를 마지막까지 즐기지 못할 테니까.
“본교의 장로를 둘이나 죽여 놓고, 자기 사람들은 모두 무사할 거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거라면 조금 실망스럽겠지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피식거리던 그가 흑의인들에게 말했다.
“각자 목표에게 접근한 후, 신호가 있을 때까지 대기하십시오. 혹시 질문 있습니까?”
일렬로 늘어선 흑립인들의 일렁임 중 하나가 순간적으로 진해졌다.
“최우선 임무는 청룡신협의 생포 혹은 제거라고 들었습니다. 각자 임무를 마친 후엔 청룡신협을 협공합니까?”
그 질문에, 천살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함부로 나서면 죽여 버리겠습니다. 그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 겁니다.”
살수들의 눈에 동요하는 빛이 흘렀다.
천살은 친근하고 부드럽게 웃었지만, 살막의 살수들은 그 웃음에서 소름 돋는 살의 외에는 느낄 수 없었다.
“항상 그래 왔듯, 나는 독자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겁니다. 내 예술을 방해하지 마세요. 각자 임무를 마친 후엔 도망치든, 축제를 즐기든 알아서 하면 됩니다.”
절세고수를 암살하기 위해 혈교가 키워 낸 최강의 살수.
실제로 살행에 나선 적은 많지 않지만, 천살은 움직일 때마다 강호를 충격에 빠뜨린 죽음을 만들어 냈다.
“저도 슬슬 가 봐야겠군요. 더 늦으면 의심받을지도 모르니.”
부드럽게 웃은 천살이 몸을 돌려 언덕을 내려갔다.
“때를 봐서 내가 신호를 보내겠습니다. 그때까지 각자 잘 숨어 있으시길.”
이번에도 대답은 없었다.
언덕 위에서 불어오던 바람이 일순간 잠잠해졌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