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89
388화. 그 별호는
마음이 들뜨는 밤이었다.
화려한 옷을 입은 곡예단이 거리에서 사람들의 눈을 현혹하고, 귀를 즐겁게 하는 악사들의 연주에 절로 어깨가 들썩였다.
달콤한 냄새를 맡은 아이들이 부모에게 칭얼댔고, 아이를 목말 태운 아버지들은 못 이기는 척 아이의 손에 당과를 쥐여 주었다. 평소 엄격한 어머니들도 오늘은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청룡제를 구경하기 위해 온 관람객들로 도시 전체가 불야성을 이루었다.
하하하하!
아이들의 웃음소리, 젊은 연인들의 달콤한 속삭임, 고객과 흥정하는 상인들의 목소리, 먹고 마시며 떠드는 무인들의 목소리로 늦은 밤 시간임에도 활기가 넘쳤다.
푸욱.
“다들 즐거워 보이지? 너희한테는 아무런 감흥도 없겠지만.”
잠시 후, 고통을 참는 듯한 목소리가 힘겹게 흘러나왔다.
“……어떻게?”
화려한 축제에도 빛이 닿지 않는 곳이 있었다.
주변에 아무런 노점도 무대도 없어 빛이 스미지 않은 좁은 골목.
살수가 조용히 일을 처리하고 시체를 숨겨 두기에 최적의 장소이기도 한 그곳에.
“어떻게 널 찾았느냐고?”
“……그렇소.”
평범한 중년 사내의 얼굴을 한 살수는 자신의 복부를 쑤시고 들어온 비수를 물끄러미 내려보았다.
옻칠을 해서 빛을 반사하지 않도록 한 비수는 본래 그의 것이었으나, 갑자기 나타난 습격자는 비수를 빼앗아 주인의 몸 안에 밀어 넣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
아무리 살막의 살수가 뛰어나다고 해도, 절세고수에게 뒤를 잡힌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게 잘 숨었어야지.”
은은한 달빛 아래, 백수룡은 스산한 미소를 지으며 살수를 바라봤다. 그는 살수를 벽으로 밀어붙이며 속삭였다.
“잠깐 대화 좀 할까?”
“…….”
백수룡의 얼굴에서 청백 대항전 내내 보여 주던 미소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청백 대항전에서 보여 준 모습이 전부 꾸며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것 또한 백수룡이 가진 모습 중 하나일 뿐.
“……그냥 죽이시오.”
살수는 덤덤히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인 것처럼 보였다.
절묘하게 찌르고 들어온 비수는 당장 숨통을 끊어 놓지는 않았지만, 조금만 비틀면 내장이 가닥가닥 끊어질 것이고, 끔찍한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죽게 될 것이다.
이미 혈도까지 제압된 상황.
입 외에는 몸에서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이 없었는데, 백수룡은 살수가 어금니 안쪽에 숨겨 둔 독단마저 빼앗아 자결조차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청룡신협. 들었던 것 이상으로 철두철미하군.”
“칭찬 고마워.”
“당신이 정말로 정파의 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확인해 보고 싶나?”
살수는 백수룡의 소름끼치는 안광을 마주했다. 감정을 대부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온 몸의 솜털이 곤두섰다.
“……고문을 한다고 해도, 내게서 정보를 캐낼 수는 없을 것이오.”
“살막 놈들이라 그런가. 살수 주제에 자부심이 넘치네. 그거야 해 보면 알겠지.”
살수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입가에 억지 미소를 띠며 말했다.
“한 가지만 알려 드리겠소.”
“말해 봐.”
“나 말고도 살수 여럿이 청룡학관에 잠입했소. 그리고 그들이 노리는 건 당신만이 아니라오.”
“…….”
백수룡은 가만히 들었고, 살수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당신은 절세고수이니 암습을 막을 자신이 있겠지.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축제를 즐기러 온 사람들, 동료 강사들, 그리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어린 제자들은? 혼자서 그들을 노리는 칼을 모두 막아 낼 자신이 있소?”
그것은 협박이라기보다는 상대를 걱정하는 듯한 묘한 말투였다. 목소리에 묘한 울림이 있었다.
“주변 사람들을 지키고 싶다면 교에 투신하시오. 그대가 비록 교의 장로를 둘이나 죽이고 계획을 여러 번 망쳤지만, 교의 높으신 분들은 그대에게 자비를 베풀기로 하셨소.”
“자비?”
고통으로 떨리던 살수의 목소리가 점점 평온을 되찾았다. 그는 염려 가득한 눈빛으로 백수룡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소. 우리와 함께 교로 간다면 아무도 죽지 않을 것이오. 하지만 거절한다면 이곳은 곧 피로 물들 테니…….”
살수의 목소리는 묘한 운율을 가지고 있었다.
상대의 정신을 혼몽하게 만드는 음공(音功)의 한 종류로, 오살(五殺)은 이 정도 거리에서 음공을 펼쳐서 임무에 실패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 내 말을 들으시오. 우선 이 손을 내려놓은 다음…….”
“…….”
오살은 청룡신협의 눈동자가 서서히 흐릿해지는 것을 보았다.
아무리 절세고수라 한들, 완벽하게 방심한 순간에는 빈틈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특히 지금처럼 상대의 복부가 뚫렸을 땐, 감히 반격하리라 예상하지 못할 터.
‘손에서 힘이 빠지고 있군.’
청룡신협이 비수를 쥔 손에서 힘을 빼는 순간, 오살은 역으로 그 비수를 뽑아 청룡신협을 찌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의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살수치고는 말이 너무 많아서 신기했는데, 음공 때문이었군.”
백수룡이 다른 손을 뻗어 오살의 목을 움켜쥐자, 숨이 막힌 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컥……!”
“들어 본 적 있어. 살막의 살수들 중에는 칼침 놓는 것 말고도 특별한 재주를 가진 놈들이 있다고.”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소?”
“한 오십 년 전쯤, 혈룡대주에게서?”
말도 안 되는 농담에 오살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침묵했다.
백수룡은 갑자기 말이 없어진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
“몇 가지 물어볼 테니 협조해. 그럼 최대한 빨리 죽여 주지.”
“…….”
“대답이 없는 걸 보니 협조할 생각은 없나 본데.”
“…….”
“어쩔 수 없지.”
그 순간, 백수룡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화르르륵!
어둠 속에서 시뻘건 불꽃이 피어난 듯했다.
그 눈과 마주한 오살의 눈이 경악으로 부릅떠졌고, 이내 두 눈에서 피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백수룡에게 혈도가 잡힌 탓에 고개를 돌리지도 못했다.
“으으…….”
근원적인 공포에 저절로 온몸이 덜덜 떨려왔다.
무림 최강의 살수조직이라는 살막.
그들은 고통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살수들이지만, 혈마안 앞에서는 공포에 질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살막의 뿌리가 바로 혈교이기에.
역천신공의 기운이 집중되자, 오살의 정신이 빠르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히, 히히히…….”
오살은 웃었다. 입꼬리만 억지로 올라간 웃음이었다. 두 눈에서 여전히 피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백수룡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질문했다.
“청룡학관에 살막의 살수가 몇이나 숨어들었지?”
정신이 반쯤 나간 오살이 백수룡 앞에 무릎을 꿇었다. 배에 박힌 비수가 안에서 움직였지만, 그는 고통조차 느끼지 못했다.
“……먼저 숨어든 인원은, 다섯. 나머지는 대기 중…….”
“총인원은?”
“정확한, 인원은, 모르지만, 살막 대부분, 동원됐습니다…….”
그 순간 백수룡의 표정이 굳었다.
적지 않은 인원을 보냈으리라고 예상은 했지만, 설마 살막을 전부 동원했을 줄이야.
“살생부의 명단은? 그리고 정확한 계획은?”
“명단은, 오직, 천살만, 알고 있습니다…….”
오살은 천천히 죽어 가고 있었다. 뱃속에 파고든 비수가 장기를 건드리고 있었고, 정신마저 망가졌다. 가만히 두어도 반 각이면 죽을 터였다.
물론 백수룡은 그딴 것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천살은 어디 있지?”
“본인 외엔, 아무도, 모릅니다…….”
“제대로 아는 게 없군.”
백수룡이 실망스럽다는 듯이 말하자, 오살은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저희 다섯 중 하나라도 죽으면, 서로가, 그리고 천살이 알게 됩니다. 술법이, 걸려 있어서…….”
“술법이라고? 천살이 건 것인가?”
“그렇습니다…….”
꽤 유용한 정보였다. 천살이 무공뿐만 아니라 술법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그리고…….”
털썩.
말을 이어 가던 순간, 갑작스레 오살이 옆으로 쓰러졌다.
옆머리에 닿은 충격 탓인지, 혈마안에 당해 흐리멍덩했던 눈에 원래의 빛이 돌아왔다. 혈마안으로도 지배하지 못할 만큼 죽음에 가까워진 탓이었다.
“천살의 말이, 맞았군……. 당신은, 우리 쪽에 더 가까운, 인간이오.”
바닥에 쓰러진 오살이 백수룡을 올려보며 킬킬 웃었다.
“조심하시오. 천살은, 항상 여러 가지 계획을 준비하니까…….”
진심으로 걱정해서라기보다는 조롱에 가까운 말이었다. 이내 숨이 멎은 오살의 눈이 완전히 감겼다.
“빨리 천살이란 놈부터 잡아야겠군.”
방금 죽인 살수가 상당히 수준이 높긴 했지만, 백수룡을 죽이려고 보낼 정도는 아니었다.
그 사실로부터 백수룡은 상대의 의도를 추측해 볼 수 있었다.
처음부터 들킬 것을 예상하고, 살수 다섯을 미끼로 먼저 들여보낸 것.
백수룡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기 위해서 말이다.
‘한 놈이라도 죽으면 서로 알게 된다고 했지. 그렇다면…….’
그때 익숙한 기척 하나가 빠르게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백수룡은 역천신공의 기운을 서둘러 갈무리했다.
날 듯이 경공을 펼쳐 온 사람은 매극렴이었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사뭇 심각했다.
“한 놈을 놓쳤다.”
잠시 후, 각각 다른 방향에서 남궁수와 노군상도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모였다.
“마지막은 놓쳤다.”
“……마찬가지일세.”
네 사람은 각자 하나씩 살수를 맡아 처리한 후, 먼저 일을 끝낸 사람이 미리 위치를 파악해 놓은 마지막 살수까지 처리하기로 미리 약속해 두었다.
하지만 세 명 다 마지막 살수의 기척을 놓쳤고, 그들은 혹시 백수룡이 마지막 살수를 처리했나 싶어 찾아온 것이었다.
그러나 백수룡도 고개를 저었다.
“살수들이 술법으로 서로의 생사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놈이 곧바로 청룡학관을 빠져나갔으면 알 방법이 없습니다.”
모두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살수가 기척을 완전히 감추고 인파 속으로 모습을 감춘 이상, 찾아내는 것은 몇 배로 어려워진 셈이었으니까.
“허! 살수가 밖에서 활개라도 치면 큰일이거늘.”
“당장이라도 잡으러 가야 합니다.”
“잠깐. 그게 놈들이 노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일단은…….”
다들 초조한 표정으로 의견을 낼 때였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백수룡이었다. 그는 활짝 열린 청룡학관의 정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 몰라서 지원군에게 감시를 부탁했거든요.”
“지원군이라니? 우리 말고 누가 또 있단 말이냐?”
백수룡은 세 사람, 특히 매극렴을 보며 씨익 웃었다.
“일이 다 끝날 때까진 비밀로 하려고 했는데……. 아마 꽤 반가우실 겁니다.”
* * *
구살(九殺)은 인파에 몸을 숨기고 청룡학관을 빠져나갔다.
‘모두 죽었다.’
그는 천살이 걸어 준 술법으로 오살, 육살, 팔살, 십살이 모두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살아남은 것은 자신 하나. 그저 운이 좋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첫 번째 계획은 실패다. 빨리 이 사실을 알리고 새로운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구살은 자연스럽게 인파에 섞여 청룡학관을 빠져나갔다.
개방과 하오문이 천라지망을 펼쳤지만, 그가 소란을 일으키거나 무공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놈들에게 변장이 발각될 확률은 없었다.
미행이 붙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인적이 드문 도시 외곽에 들어서면서였다.
‘꼬리가 붙었군.’
자연스럽게 어두운 골목으로 상대를 유인한 구살은 뒤로 돌아섰다.
“다 온 건가?”
그를 미행한 자는 흑립을 쓴 사내였다.
어딘가 느긋해 보이는 자세, 한 손에는 술이 든 것으로 짐작되는 호리병이, 허리춤에는 검이 매달려 있었다.
“안 그래도 멈춰 세울까 했는데. 아무래도 살수 소굴까지 따라가는 건 무서워서 말이야.”
상대의 넉살에 구살은 대답 대신 곧바로 달려들며 검을 뽑았다.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일격필살의 쾌검이었다.
‘일검에 끝낸다.’
구살은 살수답게 단기 결전을 선호했다. 내공과 외공의 힘을 한 점에 끌어모아 집중했다.
흑립을 쓴 상대도 승부를 피하지 않았다. 호리병을 하늘 높이 휙 던지는 것과 동시에, 발검의 자세를 취했다.
‘어리석긴.’
살수가 정면 대결에서 약하다는 편견이 있지만, 살막의 살수는 달랐다. 구살의 일검은 웬만한 절정고수들도 피할 수 없는 속도를 지니고 있었다.
희미한 달빛 아래에서, 두 검객의 신형이 교차했다.
끈이 툭 하고 끊어지면서, 흑립이 바람에 날려 날아갔다. 그 탓에 달빛 아래에 사내의 얼굴이 드러났다.
상대의 얼굴을 본 구살의 동공이 순간 확장되었다. 잠시 평정심이 흔들린 것이다.
“……청룡신협?”
아니, 닮았지만 달랐다. 결이 더 부드럽고 성숙한 분위기가 있었다.
그 순간, 구살은 이곳에 오기 전에 파악해 둔 청룡신협의 가족관계 중에서, 부친의 별호를 떠올렸다.
“옥면…….”
“자네, 그 별호는 금지어야.”
그 순간, 구살의 가슴이 쩍 하고 갈라지며 피가 솟구쳤다.
풀썩.
무릎을 꿇은 구살의 몸이 옆으로 쓰러지고, 백무흔은 아래로 떨어진 호리병을 낚아챘다.
“아들 녀석 때문에 축제도 못 즐기고 이게 무슨 고생인지 원.”
백무흔은 바닥에 떨어진 흑립을 주워 먼지를 툭툭 털었다. 그리고 호리병의 뚜껑을 열어 남은 술을 모조리 털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