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96
395화. 이제부터는
‘흐름을 내줘선 안 된다.’
이살은 판단과 동시에 움직였다.
쿠우웅-!
진각 한 번에 땅이 갈라졌다. 거미줄처럼 번져 나가는 균열이 지반을 흔들었다. 실전 경험이 부족한 애송이들이라면 잠시나마 움직임이 경직될 터.
동시에 이살은 합격진을 이루는 중심축인 헌원강을 노리고 쇄도했다. 밤공기를 가르는 묵빛 칼날. 마령단을 복용하기 전보다 곱절은 빠른 속도였다.
그러나 헌원강에게 이런 변칙적인 공격은 일상에 불과했다.
피잇!
간발의 차이로 헌원강은 고개를 젖혔다. 목덜미에 가느다란 실선이 새겨지고 핏물이 맺혔다. 그러나 헌원강은 제 몸의 상처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개진(開陣).”
그 말투와 진지한 표정에서 평소와 같은 장난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좌우로 흩어지며 이살을 포위한 위지천과 여민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웅-!
헌원강은 눈으로 보지 않음에도 후배들의 움직임을 선명하게 느꼈다. 서로의 기운이 공조하면서 일어난 현상이었다.
합격진(合擊陣)이란 다수의 힘을 제대로 활용하고자 고안된 방식이었다. 때문에 보통은 같은 무공을 익힌 사형제들끼리 펼칠 때 가장 큰 효용을 발휘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너희들이 익힌 무공은 하나같이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잘난 줄 아는 녀석들이다. 그래서 합격진을 이루는 데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백수룡은 제자들이 익힌 네 가지 신공을 창안자들만큼이나 자세히 알고 있었다.
내공의 흐름, 초식, 무공에 깃든 사부들의 사상이나 신념을 가장 가까이에서 배우고 가르쳤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반대로 생각해 봐라. 그런 무공들이 하나로 어우러지면 얼마나 강해지겠냐?
-……!!
제자들이 자신에게 패배해 연무장을 구르고 분한 표정을 지을 때마다, 백수룡은 제자들에게 가능성을 북돋워 주었다.
-정신 똑바로 안 차려? 이따위로 해서 한 번이라도 날 이길 수 있겠어?
-조금 강해졌다고 자만하지 마. 무림에 나가면 객사하기 딱 좋은 수준이니까.
-……방금 그건 좋았다. 다시 해보자.
때론 혹독하게 몰아치고, 때론 확실하게 이해할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하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언젠가 제자들이 자신조차 뛰어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쩌저저정!
백룡장의 연무장에 네 사람의 그림자가 어우러졌다. 겹쳤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할 때마다 그림자들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더니, 종내에는 흐릿한 잔상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우우우웅-!!
수라혈천도. 무극검. 빙백신공.
하나하나가 천하제일을 다투는 오만한 신공들의 기운이, 당대의 계승자들에 의해 하나로 합일(合一)을 이루는 순간.
스걱-!
눈앞의 살수는 더 이상 두려운 상대가 아니었다.
설령 그가 마인으로 변하기 전보다 곱절이 강해졌다고 해도, 지금 세 사람은 곱절의 곱절은 강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
뒤로 훌쩍 물러난 이살은 허리를 베고 지나간 상처를 손으로 꾹 눌렀다.
얕지 않은 상처가 화끈거렸다. 단순히 베인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사나운 공력의 잔재가 몸속을 헤집고 있었다. 입술 사이로 핏물이 비쳤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이살의 눈앞에서 상식이 파괴되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의 손에 죽어 나간 무인의 숫자가 백이 넘었다.
개중에는 자신보다 강한 초절정의 무인도 있었고, 이름만 들으면 알 법한 고수도 여럿 있었다.
살막의 두 번째 살수는 그런 자들을 수없이 죽여 온 사신이었다.
‘아무리 암습이 아니었다고 해도.’
단언컨대, 어려울 것이 없는 임무였다.
살수답지 않게 정면승부를 펼친 것은 핑계가 될 수 없었다.
고작 약관도 되지 않은 후기지수들에게, 마령단을 삼키고도 궁지에 몰린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뛰어난 후기지수 수준이라고?”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이살은 그 정보를 가져온 자의 눈알을 뽑아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후우, 후우……. 아직 방심하지 마.”
“선배만 방심 안 하면 돼.”
“저만 평소보다 기운의 공조가 잘되는 느낌인가요?”
“……나도 그래. 지금이라면 선생님한테도 한 방 먹일 수 있을 것 같은데.”
“다섯이 다 모였다면…….”
“딴생각은 살수부터 처리하고 나서 해.”
셋은 표정이 들뜬 가운데서도, 이살을 바라보는 눈빛에 날카로움을 잃지 않았다. 상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하하……. 완전히 잡힌 물고기 취급이군.”
이살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그는 자신의 실책을 인정했다.
살수로서 가장 하지 말아야 할 방심을 했으며, 목표물의 실력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천살도 이 부분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범인들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혼절시킬 수 있을 만큼 농밀한 자신의 살기가, 청룡오망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청룡신협이 대체 어떤 수련을 시켰기에, 후기지수라고 부르기에도 어린 무인들이 산전수전 다 겪은 무인들처럼 싸운단 말인가.
“……만회하려면 대가를 크게 치러야겠군.”
그러나 아직, 이살은 죽지 않았다.
으적!
마령단은 부작용이 적지 않은 단약이었다.
하나를 삼킨 것만으로도 족히 열흘은 요양해야 하고, 두 개를 삼키면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사경을 헤매야 한다.
으적!
세 개를 삼키면, 설령 살아남는다 해도 인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크크크…….”
시뻘겋게 충혈됐던 이살의 눈동자가 아예 새카맣게 물들고, 육신이 뒤틀리며 인간의 형상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츠츠츠츳…….
몸 위로 흐르던 묵빛 기류가 짙어져 불꽃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완전한 마인(魔人)의 모습.
칼날 위로 흘러넘칠 듯하던 묵빛 검기가 압축되면서, 불완전하지만 단단한 형상을 이루어 칼날을 감쌌다.
“미친……. 강기잖아.”
세 사람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초절정 이상의 경지에 이른 고수들만이 사용할 수 있다고 알려진, 그 무엇도 파괴할 수 있다고 알려진 기의 결정체.
물론 지금 이살이 만들어 낸 것은 제대로 된 강기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에 비하면 훨씬 조잡하고 불완전한 기의 덩어리.
단전에 넘쳐흐르는 내공을 억지로 압축해서 만든 편법에 가까웠다.
“……웬만하면 부딪치지 마.”
여민의 말에 헌원강과 위지천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흑도와 검혼의 단단함이라면, 저 강기 비슷한 것도 어느 정도 막아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기가 견딘다고 해도, 무기를 쥔 당사자들이 충격을 견뎌 내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크크……. 크하하하!”
이살이 광소를 터트리며 달려들었다. 더 이상 그의 모습에서 살수의 인내심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 마리의 짐승처럼 피를 갈구하며, 상대를 찢어발기기 위해 칼을 휘둘렀다.
콰콰콰쾅!
불완전한 강기가 훑고 간 바닥에 커다란 흉터가 남았다. 정면으로 맞서는 게 불가능한 위력. 백룡장의 일부가 무너졌다.
뿐만 아니라 옆구리에 벌어졌던 상처가 저절로 낫고 있었다. 인간의 잠력을 모조리 끌어내는 마령단의 효능이었다.
휘익!
헌원강과 위지천이 각각 좌우로 흩어져 적의 머리와 심장을 노렸다. 절묘한 합격은 백수룡이라고 해도 감탄할 정도였다.
그러나 마인이 된 이살은 기이한 각도로 육체를 비틀어 공격을 피하고, 주먹을 휘둘러 헌원강을 후려쳤다.
쩌어엉!
간신히 흑도를 들어 막았으나, 강렬한 충격에 날아가던 헌원강은 담벼락에 충돌한 후에야 겨우 멈춰 섰다.
“쿨럭!”
바닥에 피를 뱉어낸 헌원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뼈 몇 군데에 금이 간 것 같았지만, 아파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퉤!”
울혈을 뱉어내고 다시 달려들었다. 마인의 칼이 위지천을 노리고 있었다.
잠시라도 쉬었다간 후배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헌원강은 고통을 잊었다. 흑도 위로 수라혈천도의 검붉은 기운이 맺혔다.
“네 상대는 나다!”
그 섬뜩한 기운에 마인이 된 이살마저 흠칫 돌아볼 정도였다. 덕분에 위지천에게 향하는 칼이 잠시 멈췄고, 그 찰나를 파고든 빙백환이 위지천을 노린 칼날을 옆으로 튕겨 냈다.
까앙!
한숨 돌린 위지천이 물러나고, 그 빈틈을 헌원강이 메웠다. 위지천도 바로 태세를 정비해 다시 검을 휘둘렀다. 빙백환이 마인의 시야를 끊임없이 교란했다.
헌원강, 여민, 위지천은 싸움을 시작한 이후로 한 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만큼 잠시도 방심할 수 없는 싸움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피할 수 없는 공격은 내가 막는다.’
헌원강은 선배로서, 그리고 가장 뛰어난 운동신경과 외공을 단련한 무인으로서 정면에서 마인을 상대했고.
‘잠깐만 빈틈을 만들어 주세요.’
위지천은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검과 하나가 되었다. 무극검이 마인의 몸에 누구보다 많은 상처를 남겼다.
‘발을 묶는 건 나한테 맡겨.’
여민은 피가 나도록 이를 악물고 빙백신공을 펼쳤다. 마인의 몸이 굳어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은 냉기의 영향이었다.
“크아아아악!”
그렇다고 해도 버거운 싸움이었다.
마령단을 섭취한 마인은 고통을 느끼지 못했고, 선천지기를 담보로 끌어올린 공력은 끝없이 강기를 쏟아 냈다.
콰콰콰쾅!
아무리 위지열이 만들어 준 무기가 마인의 불완전한 강기를 막을 수 있게 해 주고, 부단히 수련한 육체가 한계를 넘어선 상황에서도 버티게 도와준다고 한들.
혼자였다면 잠시도 견디지 못했을 싸움.
그러나 다들 이를 악물고 버티는 것은, 전부 같은 이유였다.
‘내가 쓰러지면 다른 두 사람도 위험해.’
흔히들 생사를 가르는 싸움을 겪고 살아남은 경험은, 무인을 한 단계 더 높은 경지로 끌어올린다고들 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싸움에서 깨달음을 얻고 강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은 큰 내상을 입거나 불구가 되기도 십상. 멀쩡히 살아남아 깨달음을 얻는 것은 재능이 있고 준비가 된 소수에 불과하다.
그걸 알기에,
백수룡은 제자들이 언제든지 이런 상황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부단히 수련시킨 것이다.
시작은 헌원강이었다.
화아아아악-!
붉은 물감이 퍼지듯 밤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수라혈천도의 영역. 반쯤 무아지경에 빠진 헌원강이 칼춤을 추었다.
취한 듯 기묘한 움직임으로 마인의 칼을 비껴내고, 그 옆을 스치듯 돌아서며 원을 그렸다.
서걱!
흑도가 칼을 든 마인의 팔을 잘라냈다. 동시에 헌원강이 울컥 피를 토해 내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끄아아악!”
마인이 고통에 괴성을 지르며 남은 손으로 헌원강을 짓이기려 했다. 그 순간 맹렬한 냉기가 마인을 휘감았다.
쩌저저적!
북해의 눈보라를 재현한 듯한 눈보라에 마인의 피부 위에 서리가 맺혔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냉기에 마인이 온몸에 호신강기를 두르며 저항했다.
저벅, 저벅.
몸을 돌려 자신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는 마인에게, 여민은 모든 내력을 쏟아 내 창백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지금이야.”
그 순간, 위지천이 여민의 곁을 빛살처럼 스쳐 갔다.
촤아아악!
비록 불완전하지만 나름대로 호신강기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것을 두른 마인의 몸을, 무극검이 그대로 꿰뚫었다.
털썩.
옆구리의 절반이 날아간 모습으로, 마인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동시에 위지천도 혼절해 쓰러졌다.
그러나 즉사하고도 남을 가슴의 상처를 입고도 마인의 생명력은 끈질겼다.
“크르르…….”
두 무릎을 꿇은 채 완전히 새카맣게 변한 동공을 몇 번 깜빡이더니, 이살이 의식을 되찾았다.
“놀랍군……. 한 명도 죽지 않고 살아남다니.”
이살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자신을 빈사상태로 만든 어린 무인들을 바라봤다.
“……허나 너희의 친우들과 스승은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곧 그들의 장례를 치르며 통곡하게 되겠지.”
죽어 가는 이살의 입가가 일그러졌다. 호흡이 가빠진 그가 억지로 킬킬 웃으며 저주를 내뱉었다.
“과연 너희 중 몇이나 살아남을까? 살아남은 자들도 지옥을 겪게 될 것이다. 그리고 훗날 알게 되겠지. 차라리 오늘 내게 죽는 게 행운이었음을…….”
촤악!
이살의 목을 날려 버린 헌원강이 비틀거리며 중얼거렸다.
“지랄 마. 아무도 안 죽을 거니까.”
헌원강은 주위를 살폈다. 위지천은 혼절했고, 여민도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괜찮아?”
“어…….”
모두 가진 내공과 체력을 한 톨도 남김없이 소진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헌원강은 당장이라도 쓰러져 자고 싶은 유혹을 떨쳐내며 말했다.
“살수들이 더 올지도 몰라. 일단 여기서 나가자.”
헌원강과 여민이 함께 위지천을 부축했다. 세 사람이 함께 백룡장을 빠져나가려 할 때였다.
콰아앙!
문을 부술 듯이 열고 들어온 사람은 매극렴이었다. 한바탕 격전을 치르고 온 듯, 그의 검이 피에 젖어 있었다. 그 뒤로 무림맹 강서 지부의 무인들이 따라왔다.
“괜찮은 것이냐?”
적인 줄 알고 흠칫했던 헌원강과 여민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매극렴도 학생들을 살피더니 가슴을 쓸어내렸다.
“저희 선생님은요……?”
헌원강의 질문에 매극렴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니, 너희는 이제 걱정 말고 쉬거라.”
그 말에 긴장이 탁 풀린 헌원강과 여민은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매극렴은 함께 온 무림맹원들에게 학생들을 부탁한다고 신신당부한 후, 몸을 돌렸다.
“이제부터는 어른들이 나설 것이니.”
그의 눈에서 시퍼런 광망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