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01
400화.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이런 식으로 만나는 건 계획에 없었는데.”
낮게 한숨을 내쉰 천살은 두 손을 들어 올리고 천천히 돌아섰다.
동시에 그의 얼굴 근육이 뒤틀리더니, 곽두용의 얼굴이 다른 얼굴로 변하기 시작했다.
우드드득!
역골공이 펼쳐지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백수룡과 눈이 마주친 순간에는 완벽하게 진의협의 얼굴이 되어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백수룡 선생님.”
자신을 향해 친절하게 미소 짓는 진의협의 얼굴을 본 순간, 백수룡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그것도 네 얼굴은 아닐 텐데?”
“죄송하지만 원래 얼굴은 잊어버렸습니다. 자꾸 바꾸다 보니, 어느새 어떤 게 제 얼굴인지 모르게 되더군요.”
기괴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으면서, 천살은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반죽처럼 주물러 댔다. 그러자 얼굴이 계속 바뀌었다. 성별과 나이가 다른 얼굴들로 끊임없이 바뀌는 것이, 마치 변검(變?) 공연을 보는 듯했다.
“당신처럼 잘생긴 얼굴이었다면 잊지 않고 잘 기억해 두었을 텐데……. 그냥 평범한 얼굴이었거든요.”
천살이 마지막으로 바꾼 얼굴은 백수룡의 얼굴이었다. 백수룡과 거울처럼 마주 선 천살이 활짝 웃었다.
“어떻습니까? 본인과 똑같은 얼굴을 본 감상은?”
“원판보다는 못하네.”
“그럼 조금 바꿔 볼까요? 남궁수 선생님이랑 섞어 봐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사악!
날카로운 검기가 천살의 머리카락 몇 가닥을 베고 지나갔다. 고개를 살짝 젖힌 천살은 뭐가 그리 웃긴지 어깨를 들썩이며 큭큭 댔다.
“미친 새끼라는 말이 사실이었군.”
백수룡은 미간을 좁히고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의 목소리에서 스산한 살기가 뚝뚝 묻어났다.
“개인적으로는 미치광이라고 불리는 걸 더 좋아합니다. 한번 그렇게 불러 주시겠습니까?”
“싫어. 이 미친 새끼야.”
“하하하! 역시 선생님은 다른 사람들과 반응이 다르군요.”
정체가 발각되었음에도 천살의 태도는 여전히 태연했다.
“아쉽습니다. 제가 직접 찾아가서 깜짝 놀라게 해 드리고 싶었는데……. 하지만 어쩔 수 없지요. 인생은 변수의 연속이니까요.”
천살은 과장된 몸짓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고개를 돌려 노군상을 바라봤다.
“설마 관주님에게 들킬 줄은 몰랐습니다. 퇴물 늙은이라고 무시했다가 한 방 먹었군요.”
“……어쭙잖게 날 도발해 봐야 소용없다. 알다시피 노인은 참을성이 많거든.”
노군상은 두 눈에 살기를 띠면서도 함부로 천살을 공격하지 않았다.
자칫 선공을 가했다가 반격이라도 당하면, 천살이 빠져나갈 기회가 생길 수도 있었으니까.
[백 선생. 섣불리 공격하지 말고 조금만 더 시간을 끌게. 곧 다른 선생들도 올 것이네.]작게 고개를 끄덕인 백수룡이 천살에게 말을 걸었다. 마침 물어보고 싶은 것이 몇 가지 있었다.
“곽두용은 어떻게 했지?”
즉시 대답이 나왔다.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백수룡이 미심쩍은 표정을 짓자, 천살은 억울하다는 얼굴로 항변하며 노군상을 바라봤다.
“관주님께서는 잘 아시겠지만, 저는 아무나 죽이지 않습니다. 꼭 필요하거나, 그만한 가치가 있거나, 제 기분을 불쾌하게 할 때만 사람을 죽입니다.”
나름의 확고한 기준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지만, 결국 자기 내킬 때 죽인다는 소리나 다름이 없었다.
즉, 곽두용은 운이 좋았다는 이야기였다.
“곽두용 선생님은 그중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피식 웃은 천살은 품 안에 손을 넣어 청룡패를 꺼냈다.
바로 곽두용의 것이었는데, 피가 묻어 있었다.
“사정을 잘 설명하고 칼과 청룡패만 빌려달라고 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제게 화를 내지 뭡니까? 심지어 저를 죽이려고까지 하더군요!”
천살은 진심으로 화가 난 듯 씩씩거렸다.
물론 백수룡은 그것이 전부 연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말 실망했습니다. 우리의 우정이 고작 그 정도였다니. 청룡학관에 와서 가장 친하게 지낸 사람이었는데……. 그렇게까지 화를 낼 일은 아니지 않나요?”
천살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곽두용의 청룡패를 다시 품 안에 집어넣었다.
“그래도 이건 기념으로 가져갈 생각입니다. 청룡학관에서의 많은 추억이 담긴 물건이니까요.”
“어디로 가져가려고? 저승으로?”
빈정거리듯 말했지만, 백수룡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곽두용이 살아 있다.
천살이 굳이 지금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을 테니까, 아마도 그건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진의협도 살아 있나?”
“아니요. 죽였습니다.”
천살은 이번에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별로 친하지도 않았고, 살려 두면 뒤처리가 귀찮아지니까요. 죽이고 시체는 흔적이 남지 않게…….”
천살은 말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피부가 따끔따끔할 정도의 살기 때문이었다.
“네놈은…… 결코 살아서 이곳을 나가지 못할 것이다.”
노군상이 살기를 피워올리며 무시무시한 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나 천살은 백수룡의 얼굴로 빙긋 웃어 보일 뿐이었다.
“좋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보도록 하죠.”
“……내 얼굴이지만 진짜 재수 없네.”
혀를 찬 백수룡은 검을 뽑았다. 창룡신검은 아버지에게 빌려주고 없었지만, 지금 들고 있는 예비용 검도 한때 위지열의 대장간에 있던 물건이었다.
“아직 궁금한 게 많은데, 일단 족쳐 놓고 시작해야겠어.”
“그 전에 저도 하나만.”
손을 뻗어 백수룡을 멈춰 세운 천살이 말했다.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해 드렸으니, 공평하게 저도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지껄이는 건 자유지.”
고개를 끄덕인 천살이 질문했다.
그것은 지난 한 달 동안 백수룡을 관찰하면서 가장 궁금했던 질문이었다.
“혹시 마공이나 사파의 무공을 익히셨습니까?”
“웬 헛소리지?”
백수룡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내면의 동요를 감췄다.
그 표정에서 별다른 것을 읽지 못한 천살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강호초출이나 다름없던 사람이 일 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무림십존이라 불릴 만큼 강해진다는 건……. 기연이 많았다곤 해도, 익힌 무공 자체가 특별하지 않으면 설명이 안 됩니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백수룡은 ‘자신과 싸운 혈교의 장로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살이 눈을 교활하게 빛내며 말을 이었다.
“당신은 정파보다 우리 쪽이랑 결이 잘 맞는 것 같거든. 백수룡 선생님. 정말 마공을 익히지 않았습니까?”
“뭐 눈에는 뭐만 보이는 법이지.”
백수룡이 같잖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더니, 검을 들어 천살을 겨눴다.
“천하제일의 살수가 얼마나 잘났는지 한번 보자고. 다들 준비됐지?”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휘익! 휘익! 휘익!
세 사람이 천살을 넓게 포위하며 내려섰다.
악연호. 명일오. 제갈소영.
백수룡의 동기들이 나타나 천살을 포위한 것이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이 개잡놈! 빨리 가지 못하겠느냐! 내 손자가 살수에게 상처라도 입으면 네놈이 책임질 것이냐!”
“……제 아들이기도 합니다만?”
한숨을 푹푹 내쉬며 걸어오는 백무흔과 그 등에 업혀서 사위를 못살게 구는 매극렴.
그리고.
쿠르르릉!
저 멀리, 높은 건물 위에서 남궁수가 존재감을 드러내며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하하…….”
천살은 순식간에 자신을 포위한 이들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청룡학관에서 청룡신협만 경계하면 된다고 판단한 것이, 어쩌면 가장 큰 실수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살막이 가지고 있던 정보가 무색할 정도로, 저들 개개인이 뿜어내는 기세가 범상치 않았다.
한 명 한 명이 당장 무림에서 명성을 떨칠 수 있을 정도.
‘청룡학관은 청룡신협이 나타나면서 옛 명성을 되찾은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전부터 잠룡들이 잠들어 있던 것인가?’
천살은 그런 감상적인 생각을 하며, 백수룡에게 물었다.
“……무림십존이 합공을 하는 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내가 명성에 연연하지 않는 겸손한 성격이라서.”
씨익 웃어 준 백수룡이 한 걸음 내딛자, 동기들도 동시에 포위망을 좁혔다.
“수룡아. 받아라.”
휘익!
백무흔은 창룡신검을 백수룡에게 던졌다.
휘리릭 날아온 검의 손잡이가 정확히 백수룡의 손에 착 감겼다.
[검을 존중하는 태도는 아들보다 아버지가 훨씬 나았거늘…….]묘하게 아쉬워하는 창룡신검의 목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백수룡은 지친 기색이 역력한 백무흔과 매극렴에게 말했다.
“두 분은 물러나 계세요.”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으마.”
두 사람이 물러나는 걸 곁눈질로 확인한 후, 백수룡은 다시 천살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강해.’
거미가 온몸의 피부 위를 기어 다니는 듯한 감각이 위험 신호를 보냈다.
적어도 전에 죽인 혈교의 장로들과 동급.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천살이 살수라서 위험한 것이 아니었다. 그 자체로 극도로 위험한 존재였다.
‘게다가 술법까지 익혔다고 했지.’
[강한 술법의 기운이 느껴지는구나. 상당히 수준이 높아. 헌데 묘하군. 이 찜찜한 기운은 어디서…….]창룡신검이 상당히 수준이 높다고 말할 정도라면, 천하에서 손에 꼽는 술법사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차피 고문을 해도 정보를 얻는 건 불가능하겠지.’
아직 시도해 보진 않았지만, 백수룡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혈마안을 사용해도 천살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즉, 죽이는 것이 최선이었다.
[절대 놓치면 안 돼. 이 자리에서 반드시 놈을 죽인다.]백수룡은 천살을 포위한 이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동기들이 동시에 무기를 꺼내 들었고, 노군상도 내공을 끌어올렸다.
쿠르르릉!
남궁수는 멀리서 뇌강을 준비하며 천살의 도주에 대비했다.
설령 무림맹주나 흑야마제가 오더라도 빠져나가지 못할 포위망.
분명 절체절명의 순간일 텐데.
“백수룡 선생님. 당신은 지켜볼수록 흥미롭고 놀라운 사람이더군요. 요 며칠은 당신을 죽일 생각에 설레고 흥분돼서 잠이 안 왔습니다.”
천살은 웃고 있었다.
그 여유가 백수룡을 조금씩 불안하게 만들었다.
“계속 고민했습니다. 당신을 가장 고통스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눈앞에서 제자들을 죽이는 것? 청룡학관을 불태우고 시신으로 언덕을 쌓는 것?”
곧 ‘무언가’가 일어날 것이다.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느낀 백수룡은 천살에게 달려들었다.
“죽어라.”
순식간에 짓쳐 든 백수룡의 검이 천살의 목을 스쳤다. 목에 가는 실선이 그어졌으나, 완전히 베는 데는 실패했다.
공격을 피해 물러난 천살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아니, 그런 것으로는 복수심만 키울 뿐, 당신의 견고한 정신을 무너뜨릴 수는 없겠더군요.”
악연호, 명일오, 제갈소영이 동시에 출수했다.
뿐만 아니라 노군상의 장법도 천살의 등을 노렸다.
촤아악! 푸확! 퍼어엉!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공격에 천살의 몸에 점점 상처가 늘어났다.
그럼에도 천살은 지껄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온몸에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괴로워하기는커녕, 입가에는 점점 미소가 맺혔다.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창룡신검이 백수룡의 머릿속에서 비명을 질렀다.
[이 술법은……!]그 순간, 피투성이가 된 천살의 두 눈이 붉게 빛나고 입가에는 사악한 미소가 맺혔다.
천살은 여전히 백수룡의 얼굴을 하고 있었기에, 백수룡에겐 그 모습이 마치 과거의 자신을 비추는 거울처럼 보였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제자들을,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죽이게 하면 어떨까요?”
“……뭐?”
섬뜩한 감각과 동시에.
화아아아아악!
천살이 오랫동안 준비한 술법이 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