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02
401화. 살다 보니
천살이 술법을 발동함과 동시에, 그의 상처에서 흐르던 핏물이 기화(氣化)하며 술법의 힘을 증폭시켰다.
츠츠츳…….
핏빛 안개가 천살의 몸을 뒤덮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팽창하여 삽시간에 수백 장 너머로까지 퍼져 나갔다.
[닿아선 안 된다! 저건…….]―화아아아악!
팽창이라기보다는 폭발에 가까운 속도.
술법이 발동되기 전까지 아무런 전조도 없었고, 천살이 상처입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백수룡은 술법의 기운을 정면에서 뒤집어쓸 수밖에 없었다.
“……!!”
벼락을 맞은 듯 백수룡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정신이 멍해지고, 머릿속이 혼탁해지면서 세상이 뒤집히는 듯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절벽 아래로 끝없이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감각이 현실에서 아득히 멀어지면서, 환청이 들리고 환영이 보이기 시작했다.
추락 끝에 백수룡이 도착한 곳은 백룡장.
-선생님!
헌원강과 위지천, 여민, 거상웅, 야수혁.
제자들의 목소리였다. 백수룡은 고개를 돌려 녀석들을 찾았다. 멀리서 달려오며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수련을 하다 왔는지, 다들 무복이 먼지투성이였다.
‘거기 있어. 아직 살수가 남아 있어서 위험하니까.’
백수룡이 말했으나 제자들은 듣지 않았다.
해맑게 웃으며 달려오는 아이들의 모습에 백수룡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여간 더럽게 말을 안 듣는다니까.
그때, 갑자기 나타난 복면인들이 제자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안 돼!’
혈교도들이었다.
적들의 손에서 백수룡이 잘 아는 마공들이 펼쳐졌다. 그중에는 자신이 개량한 것도 있었다.
‘서, 선생님!’
‘도와주세요!’
‘왜 우리가 죽어야…….’
비명이 터지고 핏물이 번졌다. 제자들은 피를 흘려 가면서 스승에게 도와달라고 외쳤다.
‘멈춰! 멈추란 말이다!’
백수룡은 제자들을 구하기 위해 전력으로 달렸지만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무기력하게 제자들이 죽어 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털썩.
백수룡이 무릎을 꿇은 순간.
제자들을 해친 흉수들 중 일부가 이쪽을 돌아보더니 복면을 벗었다.
-교관님.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 백수룡을 덮쳤다.
‘너희들이 왜…….’
옛 제자들.
피 칠갑을 한 옛 제자들이, 공허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청룡오망이 흘린 피 웅덩이 위에 서서.
-이렇게 될 줄 몰랐습니까?
얼굴에 검상이 가득한 일호가 비릿한 조소를 지었다.
-우릴 이렇게 만들어 놓고, 당신만 행복을 찾으려고 했습니까?
뒤에 있는 다른 녀석들도 침묵으로 일호의 말에 동조했다.
‘너희는…….’
그 순간, 백수룡은 이것이 현실이 아님을 깨달았다.
전부 천살이 펼친 술법이 만들어 낸 환상이었다.
처음 겪었다면 속절없이 당했을지도 모르지만, 이미 몇 번이나 비슷한 술법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무엇보다.
‘진짜 너희들이었다면, 그런 원망조차 하지 않았을 테지.’
-…….
백수룡은 씁쓸한 표정으로 옛 제자들을 일별한 후,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술법이라는 것을 인식한 이상 벗어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에겐 천하제일의 술법사가 곁에 있었다.
[정신 차리거라!]창룡신검의 목소리가 백수룡의 정신을 맑게 일깨웠다. 사악한 술법의 기운이 흠칫 놀라서 주춤하는 순간, 백수룡은 곧바로 역천신공을 일으켰다.
콰콰콰콰콰!
천하에서 가장 패도적인 기운이 몸 안에 스며든 술법의 끈적끈적한 기운을 불태웠다. 빠르게 감각이 현실로 돌아왔다. 백수룡은 즉시 창룡신검을 휘둘러 천살을 베었다.
“……어떻게?”
천살은 아슬아슬하게 뒤로 물러나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놀란 눈으로 백수룡을 바라봤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흐리멍텅했던 그의 눈에, 무시무시한 살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기분이 더러워진 건 진짜 오랜만이야.”
푸화아악!
푸른 장포가 미친 듯이 펄럭였다. 머리 색만 붉게 변하지 않았을 뿐, 백수룡은 이미 역천신공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백수룡은 섣불리 천살을 공격하지 않았다.
천살의 술법에 당한 것이 자신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쿨럭!”
“쿨럭!”
“쿨럭!”
악연호, 명일오, 제갈소영이 피를 한 움큼 토하고 있었다. 그들의 목에 검은 핏대가 거머리처럼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그것이 곧 얼굴과 전신으로 번져 나갔다.
“크윽……!”
노군상도 마찬가지였다. 앞의 세 사람보다는 조금 나아 보였지만, 그 역시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고 있었다.
“……무슨 짓을 한 거지?”
백수룡은 살기충천한 표정으로 천살을 노려봤다. 창룡신검에 넘실거리는 시뻘건 강기가 당장이라도 천살을 갈기갈기 찢어발길 기세였다.
그러나.
“절 죽인다고 술법이 풀릴까요?”
멈칫.
창룡신검 위로 넘실대던 강기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 모습을 본 천살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저와 함께 죽는다면, 아무래도 선생님이 더 손해니까요.”
“…….”
백수룡은 침착해지려고 노력했다.
지금 상황에서 흥분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화가 났다는 사실까지 감출 이유는 없었다.
“만약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한 명이라도 죽는다면, 네 사지를 찢고, 혀를 자르고, 눈알을 파내고, 피부를 벗겨 소금에 절여서 아주 천천히 죽여 주마.”
진득한 살기가 묻어나는 협박에, 천살은 오히려 눈을 반짝였다.
“본교에서 많이 사용하는 방법들이군요. 직접 해 보신 것 같은데, 맞습니까?”
“네가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도 많을 거야. 하나씩 천천히 체험시켜 주지.”
“하하! 무척이나 흥미가 동하는 이야기입니다만……. 개인적인 호기심은 잠시 뒤로 미뤄 두고,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천살은 입술을 모아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술법에 당한 사람들이 더욱 고통스러워하며 신음을 흘렸다.
“제가 마음만 먹으면, 저들은 모두 죽습니다.”
“…….”
[지금 저자의 술법 구조를 파악하는 중이니, 조금만 기다리거라.]창룡신검이 화가 난 목소리로 말하며 검신을 부르르 떨었다.
다행히도 천살은 그녀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존재감은 느껴지는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검을 바라보았다.
“보통 검이 아닌 줄은 알았지만……. 항마(降魔)의 힘이 담긴 보물이었을 줄은 몰랐군요. 굉장히 오래 준비한 술법인데, 이렇게 쉽게 빠져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천살은 백수룡이 자신을 공격하지 못하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남은 것은 축제의 마지막 밤을 즐기는 것뿐이었다.
“원래 계획은 선생님을 세뇌한 후, 제자들을 죽이게 한 다음에 세뇌를 풀어드리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그건 좀 어렵겠군요. 방법을 좀 바꿔야겠습니다.”
“……어떻게 나한테 술법을 건 거지? 웬만한 방법으론 어림도 없는데.”
창룡신검이 천살의 술법을 분석하는 동안 시간을 끌어야 했다. 다행히도 천살은 순순히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최대한 간단하게 설명하면, 제 피를 매개로 술법을 펼쳤습니다.”
“피?”
백수룡은 비로소 술법에 걸린 사람들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악연호, 명일오, 제갈소영, 노군상의 옷에는 모두 천살의 피가 묻어 있었다. 천살에게 상처를 입히면서 튄 것인데, 그중 일부가 몸에도 닿은 것이다.
그건 백수룡도 마찬가지였다. 장포의 소매에 피가 튀었고, 얼마 안 되는 양이지만 손등에도 핏방울이 튀었다.
“……술법을 펼치려고 일부러 상처를 만들었나?”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습니다. 다들 워낙에 무공이 뛰어나셔서, 어렵지 않게 저를 난도질하시더군요.”
그야말로 미친 계획이었다.
조금만 어긋났어도 술법을 펼치기 전에 자신이 죽었을지도 모를 일.
하지만 천살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짓을 하는 인간이었다.
“고대로부터 피는 강력한 술법의 재료였습니다. 정파에서는 인간의 피를 이용한 술법이 사악하다며 점점 멀리했지만, 혈교는 그것을 더욱 발전시켰습니다.”
“……설마.”
백수룡도 아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지금 그가 받은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왜냐하면 지금 천살이 말하는 술법은…….
“혈마의 술법이 한낱 살수에게 이어졌을 줄은 몰랐군.”
전대의 혈마는 천하제일의 무인이자 인세 드문 경지에 이른 술법사이기도 했다. 당시 팔장로였던 귀령자가 혈교를 대표하는 술법사로 알려져 있었지만, 혈마와는 감히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그 중에서도 교도들의 피를 이용해 펼치는 혈마의 술법은, 천하에서 가장 기괴하고 강력한 술법 중 하나로 손에 꼽혔다.
“어떻게 그걸?”
이번에는 천살도 진심으로 놀랐는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보면 볼수록 당신은……. 그걸 아는 사람은 장로들 중에서도 많지 않습니다. 정말 너무 궁금해서 그러는데, 알려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천살의 표정은 간절해 보이기까지 했다.
물론 그렇다고 알려 줄 백수룡이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걸린 술법을 풀어주면 한번 생각해 보지.”
“음. 그럼 이렇게 하면 되겠군요.”
어딘가 묘하게 어긋난 대화와 함께.
삐이이이이익-
천살이 휘파람을 길게 불자, 고통스러워하던 악연호, 명일오, 제갈소영, 노군상의 몸에서 검은 핏대가 사라졌다.
“허억. 허억…….”
“우리한테 무슨 짓을…….”
“다, 다들 괜찮아?”
바닥에 주저앉은 네 사람이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었다. 그들의 몸에서 술법의 기운이 사라지고 있었다.
‘정말로 술법을 풀었다고?’
백수룡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천살이 갑자기 네 사람의 몸에서 술법을 거둘 이유가 없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천살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동시에 여러 가지 술법을 유지하는 건 저도 조금 힘들어서.”
천살이 네 사람의 몸에서 술법을 해제한 이유는, 더욱 큰 술법을 펼치기 위해서였다.
“선생님에게 술법이 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예상도 어느 정도는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천살은 미리 다른 보험을 들어 두었다.
‘인기척?’
백수룡은 이쪽으로 접근해 오는 인기척을 느꼈다.
한둘이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적지 않은 수의 인영(人影)이 다가오고 있었다.
“절세고수를 죽이기 위해선 항상 준비가 철저해야 하거든요.”
백수룡은 천살이 술법을 처음 발동했던 순간, 붉은 기파가 팽창하며 수백 장 밖까지 퍼져 나가던 것을 떠올렸다.
왜 그렇게 멀리까지 술법의 기파가 퍼져 나가는지 의아했는데,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살수들은 제물이었군. 네가 술법을 펼치는 데 필요한.”
“맞습니다. 이해가 빠르셔서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니 좋네요.”
천살은 청룡학관에 잠입한 모든 살수들에게 미리 술법을 새겨 넣었다.
살수들은 그것이 천살이 자신들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마공을 익힌 무인의 피는 그 자체로 강력한 재료입니다. 게다가 죽은 자의 원한까지 스며들면, 술법을 펼치기에 아주 적합한 상태가 됩니다.”
수십, 아니 백 명도 넘는 숫자였다.
이지를 상실한 무인들이 백수룡을 포위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무림맹, 개방, 하오문. 백수룡이 아는 얼굴들도 적지 않았다.
마공을 익힌 살수 수십 명의 피를 바쳐 완성시킨 혈교의 술법이었다.
[혈교에 이토록 사악한 술법이 있었다니……!]천살의 술법을 분석하고 있던 창룡신검이 경악했다.
그리고 백수룡은.
“너희들까지…….”
선두에서 다가오는 다섯 명을 보고 표정이 무참히 일그러졌다.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살수들과 싸우고, 그 피를 뒤집어쓴 제자들이, 천살이 펼친 술법에 걸리고야 만 것이다.
그 뒤로 보이는 이들도 천라지망을 펼치고 살수와 목숨을 걸고 싸웠던 무인들이었다. 그들은 조용히, 그러나 이지를 상실한 눈으로 천살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백수룡 선생님. 혹시 탈혼마인이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
“이건 평범한 무인을 일시적으로 탈혼마인으로 만드는 술법입니다. 발동 조건이 까다롭고, 재료도 많이 필요하지만, 그리고 오래 지속되는 술법도 아니지만…….”
천살은 빙긋 웃더니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저희가 오늘밤을 즐기기엔 충분할 겁니다.”
스르륵.
천살이 어둠 속에 몸을 숨겼지만, 백수룡은 그를 쫓지 않았다. 당장 눈앞에 있는 탈혼마인들을 신경 쓰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수룡아! 괜찮은 거냐?”
한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백무흔이 백수룡에게 달려왔다.
천살이 심상치 않은 술법을 펼친 순간, 백무흔은 곧바로 매극렴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킨 후 돌아왔다.
서로의 무사한 모습을 확인한 부자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안심하기엔 너무 일렀다. 백수룡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버지는 관주님과 강사들을 지켜 주세요.”
“……알겠다. 조심하거라.”
백무흔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완전히 탈진한 강사들을 데리고 벽이 있는 곳으로 물러났다.
다행히 탈혼마인들이 노리는 것은 백수룡뿐인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관심을 주지 않았다.
백수룡은 익숙한 얼굴들, 특히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청룡오망을 바라보며 이를 꽉 악물었다. 전생의 기억이 겹쳐져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조금만 참아라. 곧 제정신으로 돌아오게 해 줄 테니까.”
백수룡이 굳은 각오가 어린 표정으로 제자들을 바라볼 때였다.
쿠르르릉!
벼락과 함께 백수룡 앞에 내려선 것은 남궁수였다. 그의 몸에서 새하얀 전류가 튀었다.
“빌어먹을…….”
만만치 않은 남궁수의 무공을 떠올린 백수룡이 눈썹을 찌푸렸다. 적이 되었을 땐 누구보다 까다로운 상대. 백수룡은 전력으로 남궁수부터 쓰러뜨릴 생각으로 주먹을 단단히 말아쥐었다.
그 순간 들려온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바로 주먹을 휘둘렀을 것이다.
“백수룡.”
평소와 다름없는 멀쩡한 남궁수의 목소리에, 오히려 백수룡이 깜짝 놀랐다.
“넌 왜 멀쩡해? 분명 너한테도 피가 튀었을…….”
백수룡은 이내 그 이유를 깨달았다.
남궁수의 옷 어디에도 핏방울은 묻어 있지 않았다.
몸에 이물질이 묻는 것은 평소에도 용납하지 않는 남궁수였다.
설령 피 몇 방울이 묻었어도, 그 즉시 뇌전으로 태워 버렸을 것이다.
“……살다 보니 네 결벽증이 도움이 되는 날도 있네.”
주위를 둘러본 남궁수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앞으로 학생들에게 위생에 더 신경 쓰도록 가르쳐야겠군.”
“이 상황에서 그딴 걸 농담이라고…….”
백수룡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피식 웃었다.
어쨌든 그 덕분에 격앙됐던 감정도 어느 정도는 가라앉았다.
한결 여유를 되찾은 백수룡이 남궁수에게 말했다.
“우선 여기부터 정리하고, 천살 그 새끼를 잡아 족치자고.”
“그렇게 하지.”
두 사람은 등을 맞댄 채, 몰려오는 탈혼마인들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