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07
406화. 청룡학관의 미래에
험악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팽팽한 대치가 이어졌다.
“정녕 비켜서지 않겠다는 말인가!”
“불가합니다.”
강소천은 무림맹 강서지부의 책임자로서 청룡학관으로 들어가 내부의 상황을 확인하고자 했고, 백무흔은 절대로 그를 들여보낼 생각이 없었다.
여기에 백수룡의 친우들과 개방도들, 갱생문, 관까지 가세해 정문 앞을 가로막으면서, 수십 명이 넘는 인원이 무림맹의 무사들을 막아서고 있었다.
“……마지막 경고요. 비키지 않으면 더 이상은 말로 끝내지 않을 것이외다.”
강소천이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처음에는 실랑이에 불과했으나, 필사적으로 막아서는 그들의 모습에 강소천은 의문이 생겼다.
‘대체 무엇을 숨기려는 것이지?’
제아무리 청룡신협의 명성이 강호를 떨어 울린다 한들, 무림맹 지부의 책임자를 막아선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심지어 본인도 아니고 대리인을 내세우다니?’
이대로 순순히 물러나는 것은 결단코 있을 수 없는 일.
강소천은 굳은 표정으로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만하면 참을 만큼 참아 주었다. 무림맹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들을 모두 끌어내라. 내 직접 청룡신협을 만나 이 일을 따져 물을 것이다!”
““예!””
정문을 막고 선 무인들 중 절반 이상은 천살의 술법에 걸렸다가 이제 겨우 정신을 차린 이들이었다. 싸움이 일어난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비켜서지 않았다. 눈을 매섭게 부라리고, 후들거리는 팔다리를 움직이며, 다가오는 무림맹의 무인들과 일전을 벌일 각오를 보여 주었다.
“이자들이 끝까지……!”
강소천이 노여움에 찬 표정으로 일갈을 터트렸다.
결국 양측의 무인들이 충돌하려는 순간.
“이 늙은이가 몇 마디만 해도 되겠나?”
지금껏 이 사태에 끼어들지 않고 조용히 침묵하고 있던 노군상이 무거운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청룡학관주.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 강한 발언권을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지위.
그러나 어째선지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던 노군상이 앞으로 나서자, 청룡학관 강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백무흔은 불안한 표정으로 노군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큰일이군. 아까 전의 관주님의 반응을 생각하면…….’
노군상은 지금 마음속에 의혹을 품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청룡학관 안에서 붉은 용의 형태를 한 기운이 하늘로 치솟는 순간, 노군상에게서 숨기지 못한 두려움이 느껴졌으니까.
-저, 저 기운은 역시 그자의……! 어째서 이곳에……!
백무흔은 노군상이 중얼거리는 말을 똑똑히 들었다. 때문에 그가 지금 커다란 혼란과 의혹에 빠져 있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었다.
‘만약 그것이 역천신공의 기운이라는 것을 눈치채셨다면…….’
오히려 무림맹의 편을 들어, 당장 정문을 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저 안에서 느껴지는 기운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서 말이다.
비단 노군상뿐일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의구심이 차오르고 있을 것이다.
꾸욱…….
백무흔이 검자루를 단단히 말아쥘 때, 노군상이 입을 열었다.
“……오늘 일은 내가 모두 책임질 테니, 이만 물러나 줄 수 없겠나?”
백무흔은 손에서 힘이 풀렸고, 뒤에서 지켜보던 강사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나 강소천은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무림의 선배를 바라봤다.
“겨우 하신다는 말씀이 저들과 똑같은 것입니까? 청룡신협이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으나, 이 일은 맹에서도 결코 좌시하지 않을…….”
“내가 시켰네.”
강소천은 물론이고, 듣고 있던 사람들의 눈이 전부 휘둥그레졌다.
“……예?”
“내가 시켰다고 말했네.”
“갑자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노군상의 흔들리던 눈빛은 어느새 단호하게 변해 있었다.
“천살을 잡으면 고문하여 혈교의 정보를 캐낸 후, 최대한 잔인하게 죽이라고 백수룡 선생에게 지시했네.”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거짓이 아닐세.”
노군상은 충격을 받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주욱 둘러봤다.
“천살은 과거 내 친우를 죽인 원수라오. 놈이 이곳에 나타났다는 얘길 들었을 때, 나는 반드시 놈을 죽이겠다고 결심했소.”
갑작스러운 노군상의 고백에, 다들 무기를 내리고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내 손으로 직접 복수를 하기에는 능력이 모자랐지. 하여, 백수룡 선생에게 가능하면 놈을 가혹하게 심문한 후에 죽이라고 지시했소이다. 문을 열지 못하는 이유는 그래서요.”
“…….”
다들 말문이 막히는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말도 안 돼.’
‘어째서 그런 일을?’
‘설마 관주님이…….’
온갖 말들이 입안에서 맴돌았지만, 그들이 입 밖으로 내뱉기도 전에 노군상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알고 있소. 정파인으로서 해선 안 될 짓이지. 아무리 복수에 눈이 멀었다 한들, 자신의 손이 아니라 남의 손을 빌려 살인을 의뢰하다니. 그토록 증오해 온 살수와 다른 것이 무엇인지…… 나도 잘 모르겠군.”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노군상의 표정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기에 너무나 씁쓸하고 진지했다.
실제로 일부 무인들의 표정에 실망스러운 기색이 어렸다.
“선배님!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강소천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소리쳤다.
천수관음 노군상은 많은 이들이 존경하는 무림의 어른이었다.
그가 스스로의 명예를 진흙탕에 빠뜨리면서까지 청룡신협을 두둔하는 이유를,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사실을 말하는 것뿐일세.”
그리 말한 노군상은 청룡학관 강사들을 바라봤다.
소란 중에 겨우 정신을 차렸는지, 매극렴과 남궁수도 굳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노군상은 그들을 향해 빙긋 웃어 주었다.
부디 개입하지 말아 달라는 의미의 웃음이었다.
“이런 소인배가 어찌 관주로서 자격이 있다 말할 수 있겠소. 올해를 마지막으로 청룡학관주 자리에서 물러나겠소. 적당한 후임자를 찾아 인수인계를 할 시간이 필요하니, 부디 몇 달만 더 이 늙은이를 참아 주시오.”
“……!!”
강사들이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노군상의 말을 듣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관주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안 됩니다! 이렇게 갑자기……!”
노군상이 손을 들어 강사들을 조용히 시켰다.
“이미 마음을 정한 것이니, 아무 말도 하지 마시게.”
단호하게 말한 노군상은 다시 강소천을 향해 몸을 돌렸다.
“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한 번 더 청하겠네. 오늘은 이만 물러나 주게나.”
“…….”
저 말이 진실이든 아니든.
무림의 대선배가 스스로의 명예를 실추시키면서까지 부탁하고 있었다.
이 이상 압박하는 것은 강소천으로서도 큰 부담이었다.
결국.
“……알겠습니다. 오늘은 이대로 돌아가겠습니다. 단, 청룡신협에게 저를 찾아오라고 전해 주십시오.”
“고맙네.”
강소천과 그들이 이끄는 무림인들이 떠나고, 개방의 거지들도 눈치를 보다가 떠났다.
철두와 청천마저 갱생문과 관의 병력을 이끌고 돌아간 후, 노군상의 주변에는 강사들만 남았다.
그제야 다들 쌓인 말을 토해냈다.
“관주님!”
“어째서 그런 거짓말을…….”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었습니다!”
강사들 중 누구도 노군상이 한 말을 믿지 않았다.
그저 백수룡을 위해 시간을 끌어 준 것임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허허.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네만.”
노군상은 허허 웃으며 강사들을 둘러봤다.
그는 이들의 마음속에 의혹이 자라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어찌 모르겠는가.
그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크게 느꼈는데 말이다.
‘저 안에서 치솟은 불길한 기운은 분명…… 혈마의 무공이었다.’
과거에 직접 경험해 보았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차마 입 밖으로 그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었다.
섣부른 말 한마디가 청룡학관에 커다란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을 테니까.
‘차라리 내가 노망이 들어서 잘못 느낀 것이었으면 좋겠군.’
그러나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저 안에 남아 있는 사람은 천살과 백수룡뿐이다.
그렇다면 천살이 혈마의 무공을 익혔다고 생각하는 편이 옳겠지만…….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만약, 천살이 익힌 것이 아니라면?’
노군상은 머릿속에 드는 생각을 깊숙이 밀어 두었다. 그리고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강사들에게 말했다.
“의심하지 말게.”
스스로도 의혹을 걷어 내지 못했으면서, 노군상은 다른 이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백수룡 선생의 부탁이 의아하긴 하나, 워낙에 별난 친구가 아닌가. 청룡학관에 해가 될 일을 할 리가 없네.”
왜냐하면, 그는 청룡학관주이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노군상의 말이 강사들을 안정시킨 듯,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몇몇은 아직 할 말이 남은 듯 머뭇거리며 물었다.
“관주 자리에서 물러나신다는 말씀은…….”
“노, 농담이시죠?”
피식 웃은 노군상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참으로 길었던 밤이 지나고, 어느새 새벽이 밝아 오고 있었다.
“예전부터 해 온 생각이네. 청룡학관의 미래에, 나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 같더군.”
“…….”
“…….”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러나 노군상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사람처럼 홀가분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청룡학관은 더 강해질 것이야. 앞으로도 다 함께 힘써 주게나.”
다들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매극렴을 제외하면, 청룡학관 강사들 대부분이 노군상에겐 자식이나 손자뻘의 무인들이었다.
그들에게 노군상은 능력이 아주 뛰어난 관주는 아니었어도, 항상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어른이었다.
‘그 친구가 더 이상 비밀을 숨기지 않아도 되도록 말일세.’
그리고 그때, 정문이 열렸다.
끼이이익.
“……많이들 기다리셨습니까?”
백수룡이 지친 모습으로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옷이 피로 흠뻑 젖어 있었지만, 대부분은 천살의 피였다. 겉으로 보기에 백수룡은 크게 다친 곳이 없어 보였다.
“형님!”
“수룡아!”
가족들과 동기들이 달려가 백수룡의 몸을 살폈다. 여기저기 만져 대는 손길에 백수룡이 기겁을 했다.
“유난은…….”
백수룡은 한쪽에 서 있는 남궁수, 그리고 아직 의식을 차리지 못한 제자들까지 확인한 후에야 안심했는지 가볍게 웃었다.
“다들 무사하구나.”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많은 시선들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안에서 있었던 일은…….”
그때, 노군상이 다가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설명할 필요 없네.”
“……예?”
“자네는 많은 사람들을 구했어.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나?”
“…….”
“사소한 일은 우리가 알아서 처리했으니, 일단 쉬고 나중에 이야기하세나.”
“예. 알겠습니다.”
힘없이 웃은 백수룡은 비로소 긴장이 탁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럼 좀…… 쉬겠습니다.”
지난 며칠간 백수룡은 거의 자지 못했다.
게다가 혈마의 손가락을 사용해 술법을 펼친 피로감이 한 번에 몰려오면서, 의식이 한순간에 멀어졌다.
풀썩.
“수룡아!”
백무흔이 쓰러지는 아들을 안았다. 잠시 진맥을 해 본 그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몹시 피곤했나 봅니다.”
탈진한 것일 뿐, 몸에 큰 이상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에 매극렴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어느 때보다 길었던 청룡학관의 밤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