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24
423화. 후회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침상에 누워 있던 백수룡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으…….”
백수룡이 몸을 살짝 뒤척이며 신음하자, 뜬눈으로 옆을 지키던 백무흔이 아들의 손을 덥석 잡았다.
“수룡아! 정신이 드는 게냐!”
드르륵!
“뭐라고! 수룡이가 정신을 차렸어!?”
옆방에서 쉬고 있던 매극렴이 사위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문을 부술 기세로 열어젖히며 들어왔고.
““선생니임-!””
매극렴의 목소리가 제법 컸는지, 연무장에서 훈련 중이던 청룡오망이 땀범벅인 채로 달려오다가 방 입구에서 저희들끼리 부딪쳐 우당탕탕 넘어졌다.
“……뭐 하시는 겁니까?”
“너희들 뭐 해?”
그들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자현과 공손영이 청룡오망을 보곤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특히 의원인 자현의 눈매가 날카롭게 치켜떠졌다.
“설마 그 꼴로 환자 방에 들어갈 생각이었습니까? 당장 깨끗이 씻고 오십시오!”
““죄, 죄송합니다.””
자현은 청룡오망에게 혼을 내 쫓아낸 다음, 백수룡이 누워 있는 침상으로 다가갔다.
청룡신협의 부친과 외조부가 똑같은 표정으로 환자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의원님! 방금 우리 애가 뒤척였습니다!”
“왜 아직도 눈을 못 뜨는 겝니까? 대법이 끝난 지 벌써 사흘이나 지났거늘!”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물어보는 두 사람에게, 자현은 지난 사흘간 했던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한숨을 작게 내쉬며 말했다.
“청룡신협의 절맥증은 완전히 치유되었습니다. 깨어나지 못하는 건 육체적인 이유가 아니라, 정신적인 이유 때문으로 짐작됩니다.”
실제로 백수룡은 호흡도 고르고 혈색도 좋아 보였다. 전혀 아픈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자현은 말을 덧붙였다.
“청룡신협은 의지가 무척 뛰어난 분이시니, 곧 깨어나실 겁니다.”
물론 장담할 수는 없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백무흔과 매극렴은 잠시라도 백수룡의 곁에서 떨어지려고 하질 않았다.
“두 분은 잠시 물러나 계십시오. 제가 다시 한번 진맥을 해 볼 테니…….”
그 순간, 백수룡이 다시 뒤척였다.
“……한 가지는 꼭…….”
““수룡아!””
악몽을 꾸는지, 백수룡이 식은땀을 흘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약속…… 언젠가……. 만나러 가겠…….”
“…….”
그 순간 방 안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힘겹게 중얼거리는 백수룡의 표정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보였기 때문에.
“서, 선생님?”
서둘러 씻고 온 청룡오망도 스승의 표정을 보곤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백수룡은 천천히 눈을 떴다.
“음……?”
맨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옹기종기 모여서 자신을 걱정스레 내려다보는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백무흔과 매극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공손영과 인자한 표정의 자현.
그리고 그 뒤에서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서 있는 제자들.
길었던 꿈에서 깨어나 정신이 혼몽한 와중에도, 백수룡은 그들을 보며 웃었다.
“다들 오랜만은……. 아니지요?”
그러자 백무흔이 아들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주며 한숨을 쉬었다.
“이 녀석아. 네가 누워 있는 사흘이 내게는 십 년 같았다.”
“십 년이라……. 저도요. 꼭 십 년 만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네요.”
백수룡은 아버지의 다정한 손길을 느끼며 웃었다.
기쁘면서도 어딘가 씁쓸해 보이는 그런 웃음이었다.
* * *
백수룡이 깨어나면서 백룡장에 떠들썩한 소란이 일어난 것도 잠시.
“환자는 아직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모두 나가 주십시오! 가족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현은 엄격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전부 쫓아낸 후, 비로소 백수룡과 독대할 수 있었다.
“몸 상태는 어떠십니까?”
“……좋습니다. 이렇게까지 좋을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요.”
백수룡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대법이 끝나고도 사흘간 누워만 있었다는 말에 놀란 것도 잠시.
바뀐 몸 상태에 좀처럼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몸 안에 쌓여 있던 탁기가……. 전부 사라졌어.’
천음절맥은 몸 안에 탁기가 남들보다 몇십 배는 빠르게 쌓여, 기경팔맥을 막아서 서서히 죽음에 이르는 천형이다.
그런데 지금 백수룡의 몸 안에는 탁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깨끗하고 순수한 기운만이 몸 안에 가득했다.
‘역천신공으로 탁기를 모아서 만든 내단도 사라졌다.’
정확히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몸 전체에 내단이 흩어져 있었다. 하나의 덩어리가 수많은 알갱이로 잘게 쪼개져 전신 기혈에 깃든 것이다.
한마디로 단전이 사라진 셈.
물론 무공을 잃었다는 말은 아니었다.
오히려 전신의 기혈에서 언제든지 기운을 일으킬 수 있게 되었으니, 단순히 내공수발력만으로도 그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라졌을 터.
“……확실한 건 운기조식을 해 봐야 알 것 같습니다.”
환자의 상태를 알게 된 자현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녀도 천음절맥을 치료한 것은 처음이라 걱정이 많았던 것이다.
“그럼 잠시 자리를 비켜 드리겠습니다. 밖에 있을 테니, 조금이라도 이상이 느껴지면 바로 부르십시오.”
“감사합니다.”
자현마저 방에서 나가고, 백수룡은 처음으로 혼자 남았다.
엄밀히 말하면 혼자는 아니었다.
[깨어나서 정말 다행이다. 모두가 밤낮으로 얼마나 네 걱정을 많이 했는지 모른다.]“고마워.”
백수룡은 손을 뻗어 침상 한편에 놓여 있던 창룡신검을 가져와 무릎에 올렸다. 그리고 부드럽게 검신을 쓸어 주었다.
‘역천신공의 기운이 새어 나가는 걸 막아 줘서.’
[흠.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무얼.]어쩐지 부끄러워하는 듯한 말투에, 백수룡은 피식 웃었다.
자현이 역천혈류대법을 펼치는 동안, 창룡신검은 역천신공의 기운이 외부로 새어 나가는 것을 술법으로 막아 주었다.
만약 창룡신검의 술법이 없었다면, 역천신공의 기운이 백룡장을 넘어 멀리까지 뻗어 나갔을 것이 분명했다. 그랬다면 천음절맥을 백룡장에서 치료하겠다는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한 번 더 부탁해도 될까? 몸 상태가 바뀌고 나서 처음 하는 거라 제대로 조절할 자신이 없어서.’
[걱정하지 말거라. 그런데 너……. 말투가 조금 바뀐 듯한데.]‘내가? 잘 모르겠는데.’
백수룡은 바로 가부좌를 틀고 역천신공을 운기하기 시작했다.
예상대로였다. 전신을 휘도는 내공의 속도와 밀도가 전과 비교할 수 없었다.
게다가 제어하기 쉽지 않으리란 예측과는 달리, 역천신공의 기운은 백수룡의 의지대로 움직여 주었다.
비로소 백수룡은 확신할 수 있었다.
‘확실하게 역천신공 8성의 벽을 넘었다.’
환골탈태와 같이 밖으로 드러나는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그에 준할 정도로 몸 상태가 좋아졌다. 몸 내부는 그야말로 새롭게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천음신맥(天陰神脈).
하늘의 저주받은 천형(天刑)이었던 천음절맥을 드디어 극복해 낸 것이다.
파아아아앗-
운기조식이 끝난 순간, 백수룡의 몸에서 붉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가 순식간에 다시 안으로 갈무리되었다.
“후우우우…….”
백수룡은 호흡을 갈무리하며 천천히 눈을 떴다. 전신에 넘치는 활력을 느끼며 입가에 가벼운 미소가 지어졌다.
[스스로 운명을 극복해 냈구나.]창룡신검의 대견하다는 듯한 말투에, 백수룡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기막을 펼쳐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한 후 말했다.
“……이제 시작이지. 진짜로 극복해야 할 운명은 아직 남아 있거든.”
백수룡은 꿈속에서 만났던 혈마를 떠올렸다.
놈이 마지막에 남긴 의미심장한 말들을 되새기며 창룡신검에게 물었다.
“개벽. 하늘을 연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꿈속에서 그자를 만났구나.]백수룡이 전생의 꿈속에 들어갔다 왔다는 사실을 아는 건 창룡신검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도 없을뿐더러, 괜한 걱정을 끼치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많은 일이 있었어. 그곳에서…….”
백수룡은 긴 이야기를 시작했고, 창룡신검은 조용히 들어주었다.
* * *
자현은 생사신의의 보은패를 품 안에 챙겨 넣으며 말했다.
“보은패는 스승님께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벌써 가시려고요?”
“예. 봐야 할 환자가 많은지라.”
애초에 스승인 생사신의의 보은패를 회수하기 위해 청룡신협을 찾아온 그녀였다. 백수룡이 건강해진 모습을 확인했으니, 더는 지체하지 않고 떠나겠다고 했다.
백룡장 식구들이 은인에게 며칠만 더 머물다 가라고 붙잡았지만, 그녀도 보통 고집이 아니었다.
결국 아침 일찍 떠나는 자현을 백수룡이 배웅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생사신의께도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꼭 전해 주십시오. 그리고 만약 제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연통해 주십시오.”
“의원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럼 저는 이만…….”
“잠깐만. 이걸 받아 주십시오.”
자현은 백수룡이 내민 물건을 보고 동그랗게 눈을 떴다.
그것은 청룡이 똬리를 튼 모양의 손바닥만 한 옥패였다.
청룡학관의 학생과 강사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청룡패.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뒷면에 학생의 이름 대신 ‘보은(報恩)’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다는 것이었다.
“급히 만들다 보니, 학관 비품을 좀 빌려 썼습니다.”
“……보은패로군요. 제가 받기엔 너무 귀한 물건입니다.”
자현은 거절하려 했으나, 이번에는 백수룡의 고집이 조금 더 셌다. 그는 기어이 자현의 행낭에 보은패를 집어넣었다.
“제가 은혜를 입은 것은 자현 의원이지, 생사신의가 아닙니다. 생사신의의 보은패를 돌려드리는 것과 이건 별개입니다. 그러니 거절하지 마십시오.”
“……알겠습니다.”
결국 자현은 한숨을 내쉬며 백수룡이 건넨 보은패를 받았다.
그러다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녀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이 나중에 제 얘기를 들으시면……. 직접 청룡신협을 찾아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좀 특이한 환자이긴 했으니까요.”
“또 과로하시면 안 됩니다.”
그렇게 자현은 떠났지만, 함께 온 공손영은 개인적인 볼일이 있다며 며칠 더 남기로 했다.
백수룡은 일상으로 복귀했다.
다시 같은 시간에 일어나 제자들의 수련을 도와주고, 아직 수리가 다 끝나지 않은 자신의 사무실 대신 남궁수의 사무실로 출근했다.
“……벌써 다시 출근하나?”
“얼굴에 가득한 그 감정은 반가움 맞지?”
“…….”
전보다 야근은 조금 줄였지만 일은 여전히 많았다.
그렇게 며칠을 바쁘게 보냈을 때, 개방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용두방주의 제자이기도 한, 강서 분타주 왕손이 늦은 밤에 직접 백룡장을 방문했다.
“형제여!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저놈의 형제 소리 좀 그만했으면 좋겠지만, 백수룡도 이제는 거의 포기하고 받아들인 상태였다.
“……예. 걱정해 주신 덕분에.”
“다행히 저희가 보내 드린 보약이 몸에 잘 맞았던 모양입니다.”
냄새 때문에 몇 번이나 구토할 뻔했지만, 차마 그대로 말할 수는 없어서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이참에 재료와 배합을 알려 드릴까요? 저희 개방의 비전이긴 한데, 청룡신협도 거적만 안 둘렀지, 같은 형제이니…….”
“밤이 늦은 시간인데, 중요한 일이 있어서 찾아오신 거겠지요?”
백수룡의 싸늘해진 목소리에, 눈칫밥을 빌어먹는 거지답게 왕손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흠흠. 사실은 급보를 전하러 왔습니다.”
“급보라면?”
“모용세가가 멸문지화를 당했습니다.”
“……예?”
백수룡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왕손도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며칠 안 된 이야기입니다. 흉수는 혈교로 짐작됩니다. 아니, 거의 확실합니다.”
“…….”
검존 이후 절세고수를 배출시키지 못해 그 권세가 많이 영락했다고는 하나, 모용세가는 여전히 오대세가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혈교에 의해 하룻밤에 멸문지화를 당했다?
백수룡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구파일방에서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의견이 모이고 있습니다. 조만간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회합이 있을 듯합니다.”
“……그렇군요.”
생각해 보면, 혈교는 이미 무림을 혼란에 빠뜨릴 만한 여러 계획을 실행해 왔다.
‘그중에 몇 개는 내가 막았지만.’
혈교가 남궁세가에서 꾸민 계획은 백수룡의 개입으로 실패로 돌아갔고, 무림맹과 북해빙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모든 곳에 백수룡이 있을 수는 없었다.
혈교에서도 계획이 자꾸만 틀어지자 자신들의 힘을 제대로 보여 줘야 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본보기로 선택된 것이 모용세가였나.’
그렇지 않아도 혈교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던 구파일방은 이번 일로 커다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회합은 언제 어디에서 이루어집니까?”
“아직 확정된 것은 없습니다. 지금도 쉴 새 없이 전서구가 오가고 있으니까요. 다만 개방의 예상으로는…….”
무림을 대표하는 세력의 수장들이 모이는 회합이다. 장소와 날짜를 조율하는 것부터 쉽지 않은 일.
“원래 만날 예정이었던 곳이라면, 굳이 시간과 장소를 새롭게 조율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백수룡은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고 표정을 굳혔다.
“……천무제에서 구파일방의 회합이 이루어질 거란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