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25
424화. 그거 꽤나 솔깃한데.
왕손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현재로선 천무제에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회합이 열릴 가능성이 큽니다.”
“…….”
백수룡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천무제는 정파무림의 가장 중요한 행사로 자리잡았다.
천무제는 더 이상 단순히 오대학관 학생들이 모여서 무공을 겨루는 대회가 아니다.
장차 정파무림을 이끌어 갈 후기지수들의 실력을 만천하에 알려 정파무림의 힘과 세력을 과시하고, 동시에 사파무림을 견제하고 억눌러 온 수단이기도 했다.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백수룡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로 대변되는 정파무림 수뇌부의 생각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상징성이 큰 행사이니만큼, 혈교와의 전면전을 선포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이기도 하겠군요.”
그들은 천무제에서 멸마척사의 기치를 내세워, 오십 년 만에 혈교와의 전쟁을 선언할 작정인 것이다.
“허! 벌써 거기까지 예상하시다니. 맞습니다. 저희 개방의 예상도 같습니다.”
왕손이 감탄한 표정으로 바라봤으나, 백수룡이 보기엔 조금만 머리가 있으면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이었다.
즉, 혈교에서도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혈교가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겠습니까?”
천무학관이 있는 호북땅 한복판까지 병력을 끌고 쳐들어올 확률은 거의 없겠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할 리는 없었다.
그리고 백수룡이 아는 혈교는, 천무제에서 얼마든지 살겁을 일으키고도 남을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왕손은 백수룡이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에서도 그런 부분은 예상하고 있습니다. 무림맹과 협조해, 사전에 혈교의 세작들을 철저하게 색출할 겁니다.”
“음…….”
남궁세가와 무림맹의 일을 모두 겪어 본 입장에서는, 그리 믿음이 가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건 백수룡이 어쩔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그가 아무리 무림에 명성을 떨치는 십존이라고 해도,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자존심은 저 높은 구름 위에 있었으니까. 그 수뇌부의 결정에 함부로 끼어들 수는 없었다.
‘무림맹에나 더 신경 쓰라고 서찰을 한 통 보내 놔야겠군.’
그러다 문득, 백수룡은 일전에 무림맹주가 해 준 이야기를 떠올렸다.
오십 년 전에 그가 직접 전쟁에서 겪은 일들을.
-당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수많은 중소문파와 세가들. 모두가 뜻을 모아 혈교를 치기로 했다. 하지만 전쟁을 시작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지.
-어째서입니까?
-동맹이란 것들이 사사건건 트집을 잡았으니까. 편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 자기 문파의 고수를 어느 부대에 배치할 것인지, 전쟁이 끝난 후에 전리품은 어찌 나눌 것인지…….
당시 과거를 회상하던 야율황의 두 눈에는 흉흉한 살기가 맴돌고 있었다.
-어찌어찌 준비를 끝내고 출정했지만, 나가서도 잡음이 많았다. 평소 앙숙이었던 문파 간의 싸움은 흔한 일이었고, 배식 순서 하나에도 기 싸움을 벌였지.
-…….
현 무림맹주 야율황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그다지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들의 저력이 대단함은 인정하지만, 단합되지 않는 그들의 고고한 자존심과 체면, 위신 따위 때문에 지난 전쟁에서 입어도 되지 않을 피해를 너무 많이 입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백수룡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모용세가의 멸문이 모두에게 위기감을 주긴 했겠지만, 여전히 자존심을 세워 뻣뻣하게 군다면 동맹을 안 하느니만 못 해.’
혈교는 수십 년간 음지에서 복수를 준비하며 힘을 키워 왔다.
정파무림이 또다시 과거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면, 이번에 짓밟히는 쪽은 이쪽이 될 것이다.
“머리가 복잡해 보이시는군요.”
“아무래도 그렇습니다.”
백수룡은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늦은 시간에 찾아와 준 왕손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늦은 시간인데 급보를 전하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형제끼리 별말씀을. 그리고 정작 중요한 정보는 아직 꺼내지도 않았는데요?”
“……뭐가 더 있습니까?”
“있고 말고요.”
왕손이 씩 웃더니 백수룡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순간 구수한 냄새가 훅 끼쳤으나, 개방의 보약에 익숙해진 백수룡은 어렵지 않게 참아낼 수 있었다.
“천무제의 결과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정확히 무슨 말씀이신지?”
“지금부터 드릴 말씀은 극비 정보입니다.”
왕손은 단순히 모용세가의 멸문지화 소식을 전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물론 충격적인 소식이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널리 알려질 일.
그가 개방의 은인이자 형제에게 가져온 정보는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었다.
“아시다시피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자존심은 대단합니다. 특히 구파는,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지만 자신들을 구름 위의 신선들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좀 재수가 없어요.”
구파‘일방’으로 함께 묶여 불리지만, 천하의 가장 밑바닥에 사는 개방도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구파의 장문인들도 그 사실을 걱정하고 계십니다. 특히 본산 제자들은 콧대가 너무 높아서, 웬만한 방법으로는 다른 문파 출신의 명령을 듣지 않으리라는 것을요.”
“…….”
수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무림에 군림해 온 명문대파의 자부심.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백수룡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생겼다.
‘같은 구파끼리도 서로 양보하지 않으려 한다면, 그보다 못한 출신들에게는 오죽할까.’
더군다나 최근 수십 년은 숙적이라 할 만한 사파의 세력도 존재하지 않았으니, 현시대를 이끌 구파일방 출신 무인들의 오만은 그 어느 때보다 하늘을 찌른다고 했다.
“여기서부터가 본론입니다. 그래서 저희 방주님께서 한 가지 꾀를 내셨습니다.”
“용두방주께서요?”
용두방주, 즉 개방주는 지난 전쟁에도 참여했던 인물이었다.
누구보다 혈교의 위험성을 잘 아는 그는 구파일방의 무인들을 단합시킬 방법을 생각해 냈고, 한 가지 계획을 떠올렸다.
“이번 천무제의 결과에 따라, 혈교와 전쟁에 나설 편제를 조직하자고 제안하신 겁니다. 즉, 후기지수들이 낸 결과에 승복하고 승자의 지휘에 따르자는 거지요. 구파의 문주님들 대부분이 이미 동의하신 것으로 압니다.”
“……하.”
그 말을 들은 백수룡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계획 자체가 놀랍기도 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오만함에 조금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천무학관이 당연히 우승하리라는 걸 전제로 한 계획이군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렇습니다.”
천무학관은 지난 십 년간 압도적인 성적으로 천무제에서 우승해 왔고, 그 이전에도 거의 모든 우승은 천무학관의 차지였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에서 심혈을 기울여 길러낸 후기지수 대부분이 천무학관 소속.
우스갯소리로, 천무학관에서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출신이 아닌 학생을 찾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할 정도였다.
천무학관의 천무제 우승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입장에서는 당연한 전제였고, 대부분의 무인들이 그 전제에 동의할 터였다.
왕손이 뒤늦게 백수룡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 청룡학관 강사이신 청룡신협께서는 조금 불쾌하실 수도 있습니다만…….”
“아닙니다. 전혀 안 불쾌합니다. 원래 편견이라는 게 쉽게 바뀌는 게 아니니까요.”
“……편견이요? 어떤 것이?”
백수룡은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였다.
용두방주의 계획대로 천무제 결과에 따라 구파일방의 서열이 정리된다면, 분명 지금보단 혈교와의 전쟁에서 도움이 될 것이다.
“어쩌면 그보다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고…….”
“예?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혼잣말을 중얼거린 백수룡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씩 웃었다.
만약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출신이 매우 드문 청룡학관이 천무제에서 우승한다면?
‘그걸 명분으로 내가 구파일방의 지휘권을 가져오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구파일방의 누구도 상상 못 한 일이겠지만, 백수룡의 머릿속에서는 그것을 현실로 만들 계획이 이미 세워지고 있었다.
게다가 천무제와 관련된 뜻밖의 호재는 그것 하나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올해는 천무제 자체가 확대되고, 몇 가지 새로운 종목도 신설될 거라고 합니다.”
“새 종목이라면 어떤?”
“일종의 번외 경기랄까요. 오대학관 졸업생들만 참여하는 비무대회라든가, 강사들이 참가하는 조별 시합이라든가……. 그 규모도 상당할 거라더군요.”
“번외 경기라…….”
이야기를 들을수록 백수룡의 입꼬리가 점점 올라갔다.
청룡학관 졸업생 대표로 누굴 내보낼지, 조별경기에 누구와 함께 나갈지 머릿속에 순식간에 떠오른 것이다.
“재미있겠네요.”
선전포고하기에 앞서, 정파무림은 제대로 자신들의 힘과 세력을 과시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올해 천무제에는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관심과 흥미가 쏠릴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왕손은 마지막으로 덕담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올해는 무림 전체가 천무제를 지켜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낸 학생들은 어마어마한 영광을 차지하겠죠. 청룡신협의 제자들이 꼭 그 자리에 있길 바라겠습니다.”
“개방의 우정에 늘 감사드립니다.”
“하하! 저희가 남도 아니고, 밥그릇을 나눈 형제 아닙니까!”
밥그릇을 나눈 적은 없지만, 오늘만큼은 백수룡도 기꺼이 개방의 형제가 되어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만큼 왕손이 가져온 정보는 백수룡에게 굉장히 유용했다.
‘덕분에 미리 준비할 수 있겠어.’
물론 목표는 같았다.
청룡학관의 천무제 우승.
여기에 더해 구파일방에 지휘권을 가져오는 것.
그리고 번외 경기를 미리 준비하는 것까지.
‘천무제의 모든 영광은 청룡학관이 가져간다.’
백수룡은 단 하나도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부분에서 그는 이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욕심이 많았으니까.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왕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수룡은 직접 그를 배웅했다.
“아, 이건 별로 중요한 건 아니긴 한데.”
백룡장의 대문을 나서기 전, 왕손은 뒤통수를 긁적이며 백수룡을 돌아봤다.
“요즘 다른 사파 세력들의 움직임도 심상치가 않습니다.”
“……어디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오십 년 전 혈교가 사라진 이후, 지금까지 무림은 구파일방을 대표로 하는 정파가 주도해 온 시대였다. 그들 입장에서는 태평성대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파의 무인들에겐 숨을 죽인 채 보낸 세월이었다. 혈교를 무너뜨리고 기세가 등등한 정파무림이 다음번엔 자신들을 노릴까 봐 전전긍긍해야만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정파무림과 혈교의 전쟁이 당장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사파 세력들의 선택은 둘 중 하나였다.
혈교에 붙거나, 두 세력 간의 전쟁이 벌어지길 기다렸다가 어부지리를 노리거나.
“일단 규모가 있는 사파 세력들은 전부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녹림, 흑사련, 모산파, 악인곡…….”
“방금 악인곡이라 하셨습니까?”
백수룡이 익숙한 이름을 듣고 되묻자, 왕손이 부연설명을 했다.
“예. 벽안귀라는 자가 새로운 곡주가 됐는데, 저희가 알아보기로 보통 인물이 아닙니다. 혈수귀옹이 죽은 이후에 악인곡을 순식간에 휘어잡았는데……. 왜 웃으십니까?”
왜 웃기는.
백수룡이 직접 악인곡의 새로운 주인으로 만든 인물이었으니, 웃을 수밖에.
‘잘하고 있나 보군.’
종종 벽안귀에게 직접 서신을 받긴 했지만, 개방을 통해서 그 소식을 들으니 조금 다른 기분이었다.
“예전에 한번 싸운 적이 있습니다. 아깝게 놓쳤는데, 그새 악인곡을 휘어잡은 모양이군요. 그때 죽였어야 했는데……. 허탈한 마음에 실소가 나왔습니다.”
그 능숙한 거짓말에 왕손은 깜빡 속아 넘어갔다.
“저런. 그런 사연이 있으셨군요. 하여간 악인곡도 그렇고, 녹림도 그렇고. 사파의 거두들도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어쩌면 놈들 간에도 회합이 있을지 몰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흐음. 그거 꽤나 솔깃한데.”
“……예? 방금 뭐라고?”
왕손이 몹시 당황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백수룡은 시치미를 뚝 떼며 반문했다.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