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39
438화. 저 정도면
캬아앗! 캬앗!
백수룡의 손아귀에 잡힌 은호는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바동거렸다. 조그만 발톱으로 열심히 할퀴어 댔지만, 백수룡의 손등에는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진흙탕에 뒹굴기라도 한 거냐? 며칠 사이에 은호가 아니라 황구(黃狗)가 됐네.”
혀를 찬 백수룡은 은호를 대야에 담그고 물을 끼얹어 벅벅 씻겼다. 거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구석구석 세심한 손길에, 은호는 간지러운지 몸을 배배 꼬았다.
캬아앗-!
“땟국물 흐르는 것 좀 봐라.”
대야의 물을 세 번 비우자, 사흘 동안 정강산 일대를 헤집고 다니며 꼬질꼬질해진 은빛 털이 비로소 제 색을 되찾았다. 그 과정에서 의미 없는 저항을 반복하다가 지친 은호는 녹아내린 찹쌀떡처럼 축 늘어졌지만.
“이제야 좀 영물 같네.”
백수룡이 깨끗해진 은호의 등을 몇 번 쓸어 주자, 녀석도 이내 기분이 좋아졌는지 가르릉거리며 몸을 치댔다. 은호의 몸에서 은은한 향기가 났다. 염라채의 산적들이 목욕할 때 쓰면 좋다며 챙겨 준 나무 열매를 미리 넣어 둔 덕분이었다.
백수룡은 수건으로 은호의 털을 대충 털어 주며 말했다.
“조금 이따 떠날 거니까, 멀리 가지 말고 근처에 있어라. 이제 나도 좀 씻어야겠으니까.”
백수룡은 옷을 벗고 나무로 된 둥근 목욕통에 몸을 담갔다.
펄펄 김이 끓는 물에 몸을 푹 담그자 피로가 단숨에 풀리는 기분이었다.
“흐어. 좋구나…….”
백수룡이 목욕통에 등을 기대고 노인네 같은 소리를 내는데, 옆에서 무언가가 폴짝 뛰어드는 기척이 느껴졌다.
풍덩!
은호가 목욕통으로 뛰어들었다.
씻겨 줄 때는 싫어하더니, 물장난은 치고 싶었던 모양.
그러나 백수룡이 몸을 담근 물은 은호가 씻은 물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뜨거웠다.
캬아앗-!!
기겁한 은호가 백수룡의 어깨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그러곤 원망 어린 울음소리를 내며 앞발을 마구 휘두르는데, 솜방망이처럼 보여도 웬만한 외공고수 못지않은 힘이 실린 공격이었다.
휙휙휙!
물론 그걸 얌전히 맞아 줄 백수룡이 아니었다. 고개만 살짝살짝 틀어서 요리조리 전부 피했다.
“누가 들어오래? 네가 멋대로 들어와 놓고 왜 나한테 난리야?”
백수룡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은호의 뒷덜미를 잡아 목욕통 밖에 내려놓자마자, 은호는 우다다다 밖으로 달려나갔다.
백수룡은 그 빨빨거리는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미 은호는 얌전했던 것 같은데…….”
[수백 년의 세월을 살아온 영물과 일 년도 살지 못한 새끼를 비교해선 안 되지.]목간 한쪽에 놓인 창룡신검이 부르르 떨었다.
염라채에 온 이후로는 거의 방치되다시피 했지만, 창룡신검의 목소리는 오히려 전보다 생기가 넘쳤다.
[벌써 정강산을 떠난다니 아쉽구나. 오랜만에 풍부한 자연의 기를 느낄 수 있었는데. 이곳에서 네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괜찮을 듯한데…….]창룡신검이 자기는 여기서 쉬면서 기다리면 안 되겠냐고 슬쩍 운을 떼어 보았으나, 백수룡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되겠어.”
정체를 숨겨야 하니, 사파 회합에서 백수룡이 창룡신검을 뽑을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이유 때문에라도 창룡신검은 꼭 필요했다.
“당신이 없으면 술법은 누가 걸어 줘?”
“무슨 섭섭한 소리를. 절세신검이자 천하제일 술법가, 유능한 조언자이면서 전생의 비밀을 공유하는 막역한 친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알면서도 또 속아 넘어가는구나.]그렇게 목욕재계를 마친 후, 백수룡은 처음 염라채에 입고 온 흑의무복으로 다시 갈아입었다.
동경 속에는 여전히 설룡휘의 얼굴이 있었다. 본래의 얼굴로는 사파 회합에 참석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백수룡은 동경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빙궁에서는 이 얼굴로 충분했지만, 산적처럼 보이기엔 조금 심심하단 말이지. 머리 모양과 색을 좀 바꿔야겠어.”
[네가 원하는 모양을 떠올려 보거라.]백수룡이 자신이 아는 가장 산적다운 머리색과 모양을 떠올리자, 그 즉시 창룡신검의 술법이 발동했다.
스스스슷…….
순식간에 머리카락이 길고 풍성하게 자라나며 담황(淡黃)색으로 물들었다.
마치 사자의 갈기처럼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
백수룡의 기억 속에 있는 맹사부와 똑같은 머리색이었다.
“……나쁘지 않네.”
캬아앗!
어느새 방으로 돌아온 은호가 바뀐 백수룡의 모습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백수룡은 손짓으로 은호를 불렀다.
“마침 잘 왔다. 너도 염색 좀 하자.”
캬아?
잠시 후, 은호는 동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신기해했다.
흰 눈처럼 새하얗던 털이 주홍색으로 물들고, 그 위로 까만 줄무늬가 생긴 것이다.
백수룡은 얼핏 보면 새끼 고양이처럼 보이는 은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앞으로도 네 역할이 중요하니, 잘 부탁한다.”
캬아앗!
은호를 들어 어깨 위에 올린 백수룡은 행낭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녹의수사와 그를 수행할 부하들이 단촐한 차림으로 백수룡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셨나 보군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저희도 방금 준비를 마쳤습니다.”
녹의수사는 평소 즐겨 입는 녹의가 아닌 품이 넓은 백색도포를 입고 죽립을 썼는데, 그 모습이 영락없는 서생이었다.
“헌데…….”
녹의수사는 달라진 백수룡의 모습에 놀란 눈치였다.
단순히 머리색과 눈동자색 때문이 아니었다.
그에 걸맞게 표정이나 기세도 전보다 더 사납고 거칠게 느껴졌다.
어쩌면 이쪽이 진짜 이 사내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덩치가 그리 크지 않은데도, 마치 거대한 산악을 마주하는 것 같구나.’
과거 녹림투왕과 마주 섰던 자들이 이런 막막한 기분이었을까.
녹의수사는 감탄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반쯤 농담 삼아 백수룡에게 물었다.
“저희 쪽으로 완전히 전향하기로 결심하신 겁니까? 염라채는 언제든지 환영입니다만.”
“며칠 지내 보니 썩 나쁘지 않습니다만, 아직은 학관에서 애들 가르치는 게 더 좋아서요.”
두 사내는 마주 보며 씨익 웃었다.
떠나기 전에 준비할 것은 많지 않았다.
형산까지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한 평범한 의복과 무기 정도가 전부였다.
“이건 부탁하신 유엽도입니다.”
백수룡은 녹의수사가 건넨 도를 받아들었다.
아무런 무늬도 없는 평범한 도집에서 슬쩍 칼을 뽑아 보자, 시퍼런 예기가 번뜩이는 칼날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 생각보다 너무 좋은 칼인데요?”
“염라채의 신진고수가 지닌 칼이 너무 평범해도 이상해 보일 겁니다.”
“하긴……. 잘 쓰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백수룡은 유엽도를 허리춤에 매달았다. 며칠 새 정이 든 거치도는 끌러서 장걸에게 건네주었다.
“형님! 도착할 때까지 편하게 모시겠습니다!”
“짐은 저희한테 주십시오!”
녹의수사의 수행원은 백수룡에게도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장걸과 구길. 여기에 녹의수사와 백수룡까지 총 네 명이 회합에 참석하는 인원의 전부였다.
‘각 세력마다 최대 네 명의 인원만 데리고 만나는 것이 약속이었지.’
사파의 망종들 중에서 과연 몇이나 약속을 지킬지는 모르겠지만, 녹의수사는 먼저 저들에게 신뢰를 보여 주기로 결심했다.
그에게 있어 이번 회합은 단순히 모여서 혈교와 정파무림의 전쟁에 대응할 방법을 모색하는 자리가 아니라, 녹림투왕의 후계자임을 선언하고 인정받기 위한 자리였으니 말이다.
“대형! 몸조심해서 다녀오시우!”
염라채의 부채주, 적만패는 누구보다 아쉬운 표정으로 일행을 배웅했다.
채주와 부채주가 동시에 자리를 비울 수는 없는 탓에, 그는 이곳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거령채랑 호문채. 그 잡놈들이 건방을 떨면 대가리를 쪼개 버려야 하는데…….”
“네놈이 그럴까 봐 안 데려가는 거다.”
“뭔 마음에도 없는 말을. 놈들 대가리를 제일 쪼개고 싶은 건 대형이잖수.”
적만패는 자신의 애병인 도끼날을 쓰다듬으며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백수룡을 바라봤다. 순간 그의 커다란 대흉근이 불끈거렸다.
“청룡신협 선생. 우리 형님 좀 잘 부탁드리오. 그리고 나중에 이곳에 또 들르면, 다시 한번 외공으로 붙어 봅시다.”
백수룡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달라질 건 없겠지만, 또 도전한다면 얼마든지 받아 주지.”
“으하하하! 건방진 게 딱 내 취향이라니까! 다음에 만날 때까지 열심히 근육을 키워 놓겠소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염라채는 왁자지껄했다.
고작 사흘이었지만 부대끼며 친해진 산적들이 다가와 잘 가라며 인사를 건네고, 간식 따위를 챙겨 주기도 했다.
-애송아. 갈 곳이 없으면 나와 함께 녹림에 가는 건 어떠냐?
백수룡은 눈을 빛내며 녹림 이야기를 해 주던 맹사부를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나쁘지 않았을 것 같소. 아니, 꽤 재미있게 지냈겠지.’
많은 산적들의 배웅을 받으며, 백수룡과 녹의수사 일행은 사파 회합에 참여하기 위해 정강산을 떠났다.
* * *
그로부터 며칠 후.
사파 회합이 열리는 형산을 향해 출발한 녹의수사 일행은, 별다른 사건 사고 없이 일정한 속도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여정이 편했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었다.
“사, 사람 살려…….”
“어머니……. 잘 계시죠……?”
흙바닥에 널브러진 장걸과 구길은 넝마 같은 꼴로 하늘을 올려봤다. 분명 대낮인데 이상하게 하늘이 샛노랗게 보였다.
끔찍한 근육통에 사지를 부들거리는 염라채 산적들의 귀에, 진정한 염라대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훈련생들. 당장 일어납니다.”
캬앙!
유엽도 한 자루를 도집째 몽둥이처럼 휘두르는 염라대왕과, 그 악마의 하수인처럼 구는 새끼 호랑이 한 마리.
“본 교관의 목소리가 안 들립니까? 다섯 세겠습니다. 그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훈련생들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다섯. 넷…….”
“자, 잠깐만요!”
“일어났습니다!”
장걸과 구길은 부들거리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그러면서 질린 표정으로 백수룡을 바라봤다.
‘이 인간은 악마인가?’
‘수혁이 그 녀석은 이런 수련을 정말 매일 받는다고?’
백룡장에 있는 조카를 향한 존경심이 절로 생겨나는 지난 며칠이었다.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고…….’
‘왜 그딴 말을 해서는…….’
녹의수사가 백수룡에게 무공을 배우는 모습을 보고, 둘 다 용기를 내서 백수룡에게 무공을 가르쳐 달라고 한 것이 일의 시작이었다.
“본 교관은 분명 경고했습니다. 나한테 무공을 배우는 것은 아주 힘들 것이다. 그러니 신중히 생각해 봐라. 그때 훈련생들은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하, 할 수 있다고…….”
“가르쳐만 주시면 뼈가 부러져도 따르겠다고…….”
백수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어깨에 앉은 은호도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힘드니 관두고 싶습니까? 혹시 뼈가 부러졌습니까? 아니면 몸이 어딘가 작살이라도 났습니까? 훈련생들은 정신상태가 그것밖에 안 되나!”
““아, 아닙니다…….””
인정사정없는 갈굼에 둘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불어오는 바람에 백수룡의 담황색 머리카락이 거칠게 흔들렸다.
“알면 됐습니다. 뭐합니까? 쉴 만큼 쉬었으니 다시 훈련 시작합니다. 실시.”
““시, 실시!””
장걸과 구길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백수룡이 알려 준 훈련을 수행했다. 가까운 곳에 있던 바위와 통나무가 동원되었고, 생각보다 뛰어난 훈련 조교인 은호가 그들을 끊임없이 채찍질했다.
그리고 그 훈련의 성과는 상상 이상으로 굉장했다.
쩌어어엉!
바위에 선명한 손바닥 자국을 남긴 장걸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내공 하나 없이 오로지 외공만으로 이뤄 낸 성과였다.
“말도 안 돼…….”
구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덩치에 비해서도 움직임이 너무 둔한 것이 약점이었는데, 며칠 만에 몸을 쓰는 방식이 크게 개선되었다. 이제는 전이었다면 결코 피할 수 없는 공격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기초가 튼튼해서 흡수도 빨라.’
장걸과 구길은 염라채에서도 손에 꼽히는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내공은 보잘것없지만, 십 년 넘게 장강산을 오르내리며 단련한 외공은 웬만한 무인들과도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백수룡이 한 일은 녹림십팔식의 일부를 적용하여, 그들의 잠재된 능력을 끌어낸 것에 불과했다.
한마디로 가르치는 맛이 나는 학생들이었다. 나날이 발전해 가는 둘의 모습이 백수룡을 흐뭇하게 했다.
‘그래도 저 양반하고는 비교도 안 되지만.’
백수룡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혼자서 녹림십팔식을 수련하고 있는 녹의수사가 있었다.
“후우우우…….”
상의를 탈의한 몸에서 새하얀 김을 뿜어 내고 있었다. 마른 듯 보이지만 근육으로 꽉 찬 몸은 한 마리의 고고한 학을 연상시켰다.
화아아악!
녹의수사가 움직이는 투로에 따라 태풍이 몰아쳤다가 산들바람으로 변하기도 했다. 자유자재였다. 낙엽들이 그를 중심으로 휘몰아쳤다. 손짓 한 번에 대기가 일그러지고, 발 구름에 지진이 번졌다.
“완전히 물 만난 고기로군.”
이미 삼십 년이 넘는 세월을 녹림투왕이 남긴 무공으로 단련한 사내. 타고난 체격이 크진 않아도 그 신체의 완성도는 백수룡이 지금껏 보아온 누구보다 뛰어났다.
녹의수사에게 전해진 녹림십팔식은 천고의 기연이나 다름이 없었다. 마른 땅에 물이 스며들듯, 순식간에 그 오의를 흡수해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저 정도면…… 내가 더 가르칠 필요도 없겠는데.”
백수룡은 헛웃음을 지으며 녹의수사가 자신의 무학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을 지켜봤다.